[11화]
크르릉, 하고 건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바닥이 울리는데도 안으로 걸어갔다.
온몸을 흔드는 진동과 화약 냄새가 순식간에 코끝을 스쳤다. 확인할 필요도 없는 폭탄이었다. 희뿌연 시야를 무시하며 그저 직진했다.
“지금 어딜 가려는 겁니까!”
서준이 그런 혜수의 뒷덜미를 붙잡아 버렸다.
“그림, 찾아야 해요.”
“지금 그림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13시 18분, 폭발음 확인 바란다.”
― 섹션 D에서 폭발 발생.
무전이 끝나기 무섭게 곧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르며 미술관에서 우르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재난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았다. 모래 먼지가 그들의 뒤를 따랐고, 몇몇의 얼굴엔 피까지 흐르고 있었다.
― 알파는 즉시 VIP와 밴으로 이동. A7이 아닌 N1 루트로 이동한다. 앞서가는 화물차 엄호하면서 N1 루트 이동. 나머지는 대기.
모건의 다급한 무전에 혜수를 제 옆으로 잡아당기고, 준비된 총기를 낮게 파지했다. 무전기 채널을 바꿨다.
“요한! 무전 들었어? 내용 확인해.”
― 네!
순간, 미술관 밖에서 찢어지는 것 같은 여자의 외침이 들렸다.
“나부터 보호해!!”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자기부터 보호할 것을 명령했다. 미술관의 가장 큰 책임자인 엘리스와 그 무리가 차량에 올라타고 도망치는 게 멀리 창밖으로 보였다.
혜수는 서준이 한눈팔고 있는 틈에 제 그림이 걸려 있던 섹션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우르릉, 소리가 나더니 공간을 임시로 나눈 것 같은 얇은 벽 하나가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
“으악!”
그러자 벽 바로 앞에 몸을 숨기고 있던 대머리가 벌떡 일어나 모습을 드러냈다.
“내 그림 어디로 간 건지 빨리 말해.”
그런 무식한 용기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쯤엔 거의 광기에 가까웠다.
남자는 무기 하나 없이 호기롭게 외치는 여자의 모습이 어이없었는지 배를 잡고 웃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맨손으로 파란 스카프가 가리고 있는 혜수의 목덜미를 잡았다.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윽! 이거…… 놔!”
놓으라는 말에 바닥에 내팽개쳤다.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집어 던져서 맨바닥에 몸이 살짝 튀어 오른 것 같았다.
“아흑…….”
등과 목뒤가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창문을 통해 넘어가려는 대머리를 보고 급한 마음에 옆에 있던 돌을 집어 던졌다.
뻐억!!
뜻하지 않게 명중했다. 뭔가 던져서 사람을 맞힌 경험은 처음이었다.
굉장한 쾌감이었지만, 돌아선 그의 광대 옆으로 붉은색 핏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걸 보고 기겁했다. 아무래도 눈이 돈 건 자기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다시 가까이 다가온 그는 혜수의 앞섶을 잡아 올렸다.
“Labrikiyne. 남동쪽으로 3.5마일 떨어져 있는 지점의 세컨드 하우스.”
“뭐?”
“내가 지금 이걸 너한테 말하는 이유는 널 죽이겠다는 뜻이야.”
남자가 대답조차 기다려 주지 않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큭!”
엄청난 압박감에 순식간에 그림에 대한 생각 같은 건 사라졌다. 목을 압박하는 어마어마한 통증, 얼굴도 곧 터질 것 같았다. 그의 손등을 손톱으로 긁어 내고, 꼬집어도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웬 미친년 때문에 일도 치르기 전에 손을 더럽히게 생겼군.”
“허, 으흑, 허억……!”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점점 의식이 멀어졌다. 늘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랐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여기서 이렇게 죽는다는 건 너무 억울했다.
탕!!
그때 총알 하나가 정확하게 대머리의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있는 힘껏 목을 조르고 있던 손에 힘이 빠졌다.
혜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어서 뒤로 도망쳤다.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기침을 토했다.
“어헉, 허, 헉…… 쿨럭!! 흐윽!”
서준이 다가와 혜수를 부축했다. 다른 손으로는 여전히 총을 파지한 채였다.
“괜찮아요?”
쿨럭, 쿨럭 숨을 뱉어 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심까지 몰려오는지 구석에 기어가 침을 뱉어 냈다.
혜수를 죽일 기세였던 대머리 남자는 서준의 등장에 재빨리 창문 밖으로 도망쳤다.
“다쳤어요?”
“하, 아아. 괘…… 괜찮아요. 하아.”
다친 게 아니라는 말에 안도한 그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넘기고 물었다.
“제정신이에요?”
“하아……. 나중에 혼나면 안 될까요?”
목소리를 들어 보니 다행히 목에 이상이 생기진 않은 것 같았다.
“나 잡아요.”
총을 뒷주머니에 꽂고, 그가 혜수의 허리를 안아 대번에 일으켰다. 다리에 힘을 싣지 못하고 그에게 매달리듯 온전히 기댔지만, 서준은 버거워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아름다웠던 미술관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모했다.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던 시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괴성을 지르며 달렸다.
건물 안에서는 낮게 천둥이 치는 것 같은 불안한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혜수를 부축하며 복도까지 나왔는데 두 사람 앞으로 어린 여자가 달려가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일순, 서준의 발걸음이 멎었다.
“서준 씨!”
콰쾅!!
바로 앞으로 커다란 돌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먼저 위험을 감지한 혜수가 그를 당겨 살렸다.
“하…….”
혜수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자기보다 훨씬 큰 몸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느라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멋 부리느라 입었던 하얀 원피스가 엉망이 됐다. 찢어진 팔꿈치에선 피가 나 흘렀다.
“아흐……. 혼자, 멋있는 척은 다 하더니…… 죽으려고 환장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두고 죽기만 해요!”
“이 정도로 안 죽어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서준이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혜수를 일으켰다.
“엉망이네, 진짜.”
피와 먼지가 묻은 팔과 다리를 내려다보며 혜수가 울상을 짓자, 서준은 일부러 힘줬던 제 머리를 마구 헤집고 씩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똑같이 엉망이죠?”
“이 와중에 농담이 나와요? 너무…… 으윽.”
“어디 봐요.”
“이 정도로 안 죽거든요?”
똑같이 쏘아붙이는 걸 보니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씩씩하고 예쁜 여자 때문에 이 와중에 농담도 웃음도 나왔다.
둘은 인파 안에서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 부둥켜안았다. 창문과 입구 쪽이 무너지는 바람에 다른 길을 찾느라 조금 더 늦게 건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위험을 피해 허둥지둥거리며 뛰어다니는 사람들, 잿빛 먼지와 비명이 범람했지만 푸른 하늘이 보이는 게 반가웠다.
혜수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찢어진 원피스, 뒤로 넘어지면서 팔꿈치엔 피 맺힌 상처가 생겼고, 헐렁하게 풀린 스카프 사이로 보이는 선명하게 남은 손자국까지. 그마저도 서준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초청받은 쪽에 연락해서 보호 요청해요.”
갑자기 뭔가 생각난 혜수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요?”
“이대로 못 돌아가요. 아직 할 일이 있어요.”
단호한 대답에 황당해져 말을 잃었다.
“꺄아아악! 살려 주세요!”
“테러가 틀림없어!”
“저 안에 아직 내 아들이 있다고요!”
알아들을 수 없거나 혹은 겨우 알아듣는 언어들이 뒤섞여 둘의 귓가에 시끄럽게 울렸다.
“할 일?”
“조금 전에 그 대머리가 내 그림을 가져갔는데, 라브리……. 세컨드 하우스에 대해서 얘기했어요. 그게 어딘지 찾아야 해요.”
서준은 어금니를 사리물며 화를 참아 냈다. 그나마 이 여자이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림이 중요해요?”
“말했잖아요. 나한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림이에요.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할 일 하세요.”
주변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두 사람의 시간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안 괜찮아.”
“잠깐……!”
“오래된 건물에 색만 다시 칠해 놓은 거라 언제 무너질지 몰라서 대피해야 합니다. 작가님이 다시 움직이면, 괜한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어.”
“지금 협박해요?”
“네.”
억울하단 표정을 하면서도 순순히 끌려왔다. 혼자서 구렁텅이를 파고 들어가 앉는 인생이지만, 남의 발목까지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광장 근처에 다다르자 경찰과 구조대원들, 군인들까지 군데군데 포진해 있었다.
아까 그 난리에 이어폰이 망가진 탓에 서준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 몸체를 직접 들어 말했다.
“엘리스는? N1이라고 했어.”
― 국도인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는 아직 확인 안 돼요.
“하나만 더. 미술관에 있던 작품들을 빼 간 것 같아.”
― 그게 중요해요?
“따지지 말고.”
옆에서 무전을 들은 혜수가 바짝 다가와 몰아붙이듯 물었다.
“뭐래요? 내 그림,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어요?”
“알면? 직접 찾아가기라도 하려고?”
서늘해진 눈빛에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건 제가 결정해요. 정보 정도는 줄 수 있잖아요.”
“작가님, 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닌데.”
“그쪽 눈엔 내가 지금 농담하는 거로 보여요?”
“제발 정신 차려요. 사람들 다친 거 안 보여?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분하지만 뼈를 때리는 것 같은 맞는 말이었다. 반박할 수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비참했다.
― 내부 CCTV 기록이 없어졌어요.
그의 옆에 바짝 붙어서 무전을 듣고 있던 혜수가 지금이다 싶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