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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역이 집착남이 되었다-121화 (외전) (121/125)

외전 1화

<최애와의 알콩달콩한 시간>

최애랑 연애하는 기분이란 생활 속 덕질 그 자체였다.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눈앞에 최애의 모습으로 눈도장을 찍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아무렴 실물이 최고니까!

하지만 내가 이곳에 빙의한 후로 엄청 아쉬운 점이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최애의 사진과 동영상을 남길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이제는 마탑주가 된 니얀을 비공식 부하로 둔 에일린 코웻이 아니겠어?

어느 날 니얀의 구슬을 보다가 문득 동영상과 원리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길로 니얀을 달달 볶아 촬영하는 기기를 토해내게 했다. 과연 마탑의 마법사들은 유능한지 내가 의뢰한 지 정확히 10일 만에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모두 되는 마법 아티팩트를 만들어주었다.

“폐하. 여기 있습니다.”

“와, 이것이 바로…!”

아티팩트를 내미는 니얀의 얼굴이 다소 핼쑥해진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나는 카메라 아티팩트를 받아들면서 아주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내 요청대로 카메라랑 쏙 빼닮아 있었다.

나는 소중한 것을 다루듯 그것을 가슴에 품었다.

“니얀의 야심작 니나입니다.”

“니나? 이름까지 붙였어요?”

“물론이죠. 제 영혼을 갈아 넣었거든요.”

작명 센스가 영 나보다 못 미치는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떠랴.

내 사랑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어.

“고마워요. 니얀!”

“소원 들어주기로 한 약속, 잊지 마세요.”

“당연하죠.”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니나를 두 손에 꼭 쥔 채로 곧장 달려간 곳은 레이몬드가 있는 연무장이었다. 이제는 황제가 된 그가 탁 트인 공간에 있을 일은 장소를 이동할 때와 훈련할 때뿐이니까.

원래 황제는 개인 훈련을 받지만, 그는 해오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부하들과 함께했다. 그것이 내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나는 레이몬드의 근처로 소리 없이 다가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성능 검사를 위해서 동영상도 돌렸다. 찰칵대는 소리에 부하의 훈련을 봐주던 레이몬드가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황후? 그게 뭐지?”

“폐하의 모습을 이 니나 속에 영원히 담아두고 싶어서요.”

나는 흡사 촬영기사가 된 것처럼 셔터를 연이어 눌렀다. 그는 이상한 물건의 등장과 내 기이한 행위에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나의 요구에 할 수 없이 훈련을 이어나갔다.

“안 돼요, 안 돼. 그러면 어색해지잖아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세요.”

“그…러지.”

“좋아요, 좋아. 그거야. 너무 멋있어요, 폐하!”

부하들도 당황하여 쭈뼛거렸지만, 워낙 내 주접 행동이 소문이 난 바람에 자연스럽게 굴려고 노력했다.

“휴. 좋았어.”

나는 사진을 양껏 확보하고 나서야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은 역시 특별한 수고로움을 요하는 법이지. 셔터를 누르는 손이 멈추자 레이몬드가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 다 한 건가?”

“네. 일단은요.”

“뭘 한 거지?”

“니얀에게 마법 아티팩트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이렇게 순간의 모습이나 움직이는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답니다.”

“호오. 신기한걸.”

나는 사진을 옆으로 넘기며 보여주다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어머! 이거 너무 멋지게 나왔어요. 역시 우리 폐하야.”

“크흠. 그런가. 이 니나라는 거 탐나는데? 황후를 찍을 수도 있는가?”

“안 돼요. 이건 폐하 전용 니나란 말이에요. 폐하의 모습으로만 꽉 채울 거예요!”

“나도 갖고 싶군.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야겠어.”

나의 단호한 거절에 레이몬드는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다 니나 화면을 보고 있는데 어깨를 살짝 잡아끄는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황후. 내가 지금 곁에 있는데, 그 속의 나 말고 실물의 나를 좀 봐주지그래?”

“아이, 폐하도 참.”

레이몬드는 팔을 붙잡더니 내 머리칼에 얼굴을 파묻고서 뽀뽀를 해댔다. 그 감촉이 간지러워 웃고 있으려니 옆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시선의 의미야 뻔했다.

“너희는 훈련에 집중해라.”

“예!”

레이몬드도 그들을 의식했는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연무장에서 애정행각으로 집중을 흐리는 건 조금 너무한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 둘은 꽁냥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황제 부부를 바라보는 부하들이란.

내 거친 애교와 쑥스러운 레이몬드의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부하들, 그건 아마도 닭살 돋는 일상!

예상대로 부하들의 표정엔 집에 가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속내를 도저히 감출 줄 모르는 이들이었다.

***

“폐하. 황제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응? 황제께서?”

귀부인들과 티타임을 가지며 사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시종장 멜라스가 노크 후 들어와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해왔다.

“네. 대련 도중에 다치셨다고 합니다. 급히 찾고 계십니다.”

“또….”

“어머, 어떡하나요. 황제 폐하께서 위중하신가 봐요.”

“어서 가보셔야겠어요. 폐하.”

지겹다는 내 반응과는 반대로 오히려 같이 자리한 귀부인들이 난리가 났다. 입에서 하마터면 불경한 말이 튀어 나갈 뻔했지만, 간신히 참아냈기에 망정이었다.

“이런. 먼저 자리를 비워서 어쩌지요?”

“무슨 그런 말씀을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폐하.”

“그럼 실례하겠소.”

나는 무거운 엉덩이를 떼며 시종장의 뒤를 따랐다.

“폐하는 어디에 계시나?”

“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시지요.”

잠시 후 방에서 나와 복도를 걸으며 단둘이 되었다. 나는 앞서가는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시종장.”

“예.”

“폐하가 많이 다치신 거 아니지?”

“…예. 그렇죠.”

멜라스도 한숨 섞인 대답을 내어놓는 걸 보니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훈련만 마치고 나면 몸에 있는 작은 상처를 모조리 찾아내어 나를 불러내는 건 이제 일과로 잡혀있을 정도였다. 다친 곳이 없으면 일부러라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싶은 합리적인 의심까지 들었다.

점잖은 멜라스는 그저 황제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고, 나 또한 부르는 대로 갈 뿐이고…는 무슨,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시종장. 이대로는 안 되겠소.”

나는 잘 걷고 있던 걸음을 멈추어 섰다.

“붙어있을 때 애정행각을 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어쩔 수 없으시구나….”

“일을 보고 있을 때도 매번 불려갈 수야 없지 않겠소?”

멜라스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황후 폐하께서도 공사가 다망하시니 말입니다.”

“내 말이 그 말이오.”

“애정행각도 이왕이면 밤에 하시는 게 좋지요. 후사도 볼 수 있을….”

“그래서 말인데.”

다급히 그의 말을 자르며 덧붙였다.

“오늘이야말로 기필코 한마디 해야겠어!”

“좋은 생각이십니다, 황후 폐하. 오늘은 꼭 성공하시길.”

불끈 주먹을 쥔 나는 시종장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으쌰으쌰 했다.

“황후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털컥.

시종장이 노크와 함께 도착을 알렸다. 허락이 떨어지는 목소리에 문을 열자 가운을 입은 레이몬드의 뒷모습이 보였다. 늘 그렇듯이 훈련이 끝나 목욕재계를 마치고 나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폐하. 다치셨다고요.”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그가 내게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바다같이 깊고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시리도록 푸른 색깔은 절절한 열기를 띠고 있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알 수 있었다.

실없이 부를 때마다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이렇게 얼굴을 볼 때마다 결심이 무너지곤 했다. 특히 저 칠흑 같은 머리카락 끝에 걸린 물방울을 보면 내 마음까지 방울방울 맺히는 것 같달까.

“에일린.”

시종장이 나가고 단둘만 남자 그가 본색을 드러냈다. 레이몬드는 내 팔을 잡아당겨 너른 가슴으로 나를 폭 감싸 안았다. 갓 씻은 살 내음과 향유 냄새가 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나는 이 틈을 놓칠세라 그의 체취를 실컷 들이켰다. 물론 그에게는 티가 나지 않게 몰래몰래.

“내 체향이 그리 좋은가? 안길 때마다 코를 격하게 킁킁거리는군.”

“흡.”

몰래 맡는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다.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니. 순간 낯이 뜨거워졌지만 그렇다고 멈출 생각은 없었다. 기왕 들킨 거 더 열심히 해야지.

그나저나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가슴팍이 그대로 얼굴에 닿아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대로 영원히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니야, 이게 아니지.

나는 그의 가슴을 슬쩍 밀어내며 고개를 들었다.

오늘에야말로 꼭 한마디 하겠다는 결심을 이행할 필요가 있었다.

“폐하. 저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르시면 안 됩니다.”

“뭘 하고 있었는데?”

“귀부인들과 정사를 논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대뜸 자리를 비우면 무척이나 곤란하답니다.”

“그대는 나와 귀부인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하나?”

“….”

이렇게 단순하고도 이분법적인 사고가 나온다고?

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레이몬드가 씨익 웃었다. 그도 다 알면서 괜히 땡깡을 부려보는 거였다.

“그대는 나의 전용 치유제야. 언제나 내가 1번이었으면 좋겠어.”

그는 얼굴을 내 머리카락에 파묻은 채로 비비적거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서릿발같은 기세에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무표정을 잘도 지어 보이건만. 단둘만 되면 애교를 떨어대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아… 알았어요. 대련 도중에 다쳤다면서요. 어딘데요?”

“입안이 터졌어.”

“검술 대련인데 왜 안이 터져요?”

“주먹으로 싸웠거든.”

“네?”

아무리 훈련이라지만 황제를 쥐어패다니 대체 누구란 말이야?

“누구랑요?”

“대마법사.”

“아. 니얀이 황성에 왔어요?”

니얀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

그는 제국 소속이 아닌 엄연히 마탑 소속이니까. 그리고 지금은 마탑주지.

가만.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지금 황제랑 마탑주랑 주먹다짐을 했다 이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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