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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황후 따위 되고 싶댔어-134화 (134/191)

134화

차 시중을 드느라 문간에 서 있던 시녀만 곤란하게 되었다. 아직 나이 어린 그녀는 이럴 때 주인을 달래야 하는 건지, 아니면 못 들은 척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루이제는 급기야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고, 시녀는 더더욱 곤란에 빠졌다.

“저어… 루이제 님…….”

“뭐야!”

“앗, 저, 저기… 그게…….”

루이제는 신경질이 잔뜩 난 표정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가를 쓱 문질렀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무관심한 척하기’ 작전은 완전히 실패임이 증명된 이상, 차라리 카르반테에게 가서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갑자기 용기백배한 용사처럼 씩씩하게 방을 나서려던 루이제는 문을 열자마자 째지는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 바람에 막 안으로 들어오려던 카르반테가 기겁을 하면서 루이제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루이제! 왜 그러는 겁니까? 무슨 일이에요?”

기절할 듯 놀랐던 루이제는 눈앞에 서 있는 카르반테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녀가 얼른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가자, 조용한 방 안에는 카르반테와 루이제, 두 사람만이 남았다.

그러자 루이제는 또 문득 서러워졌다. 그동안 말 한마디 걸어오지 않다가 이제 와서 뭐야! 다짜고짜 심술 섞인 짜증을 부리려는 순간, 카르반테가 루이제의 몸을 와락 껴안았다.

“카, 카, 카른?”

“…루이제,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뭐… 뭐를?”

카르반테는 그제야 품에 안았던 루이제를 살짝 놓아주며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물 자국이 선명한 눈가가 우선 시야에 들어오자, 애써 다잡았던 마음이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틀림없이, 자신을 내보내고 싶은데 그런 말을 하기가 힘들어서 고민하다 못해 눈물이 난 것이리라. 위트레트에서의 일도 모자라, 달리 기댈 사람도 없는 루이제를 또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에 카르반테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루이제, 저는… 떠나겠습니다.”

루이제의 표정이 순간 텅 비었다.

“카른, 방금… 그게 무슨 소리야?”

“만약, 루이제가… 허락해 준다면, 위트레트로 가겠습니다. 아니면 그 주변이라도… 저는 그곳 이외엔 아는 사람도, 갈 곳도 없으니까요. 루이제가 위트레트로 오게 된다면 그때는 루이제의 눈에 띄지 않는 다른 곳으로 갈 겁니다. 그러니… 당신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부족해서,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역시 안 되는 모양이군요.”

루이제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당황한 정도가 아니라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싫어졌다는 뜻인가? 그래서 떠나겠다는 걸까? 그런데 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뭐지? 뭐가 안 된다는 거야? 왜 카른이 우는 거야?

“카른, 서… 설마 우는 거야?”

카르반테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린 채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 사이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 떨어진다.

루이제는 남자가 눈물까지 흘리며 우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보았다. 그것도 카르반테처럼 건장하고 강한 남자가 울다니. 마치 이상한 연극을 보는 것처럼 얼떨떨했다. 그리고 곧바로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카른… 카른. 왜 그래? 왜… 왜 우는 거야? 나를… 나를 떠나는 게, 죄책감이 느껴져서… 흑, 그, 그래서 우는… 거라면, 그, 그러지 않아도 돼……. 카른이, 꼭, 떠나고 싶다면 나, 나도… 나도 붙잡을 수가…….”

“…네?”

카르반테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그가 어리둥절해졌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리를 쥐어짜는데, 갑자기 루이제의 몸이 아래로 쑥 꺼졌다.

어린애처럼 바닥에 퍼질러 앉은 루이제는 화장과 머리 장식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도 모른 채 얼굴을 가리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 그렇지만, 그렇지만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내가, 으, 흑……! 자, 자꾸 짜증 내고, 마, 말도 못되게 하고… 그래서, 시, 싫어진 거야? 그럼 사, 사랑한다는 말은 왜 했어! 흐윽… 나, 나는, 짜증은 내지만, 화, 화도 잘 내지만! 그래도 카른이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닌데 왜 갑자기… 끅, 흐윽… 황후 마마 미워! 카른, 당신도 미워! 나는 정말 당신이랑 결혼도, 흑! 결혼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소리를 지르고야 만 루이제는 다시 방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밖에서 듣던 시녀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설마 루이제 님이 차이신 거야?’는 둥, 저희들끼리 소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방 안에서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카르반테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주저앉은 루이제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루이제,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말해보십시오. 저랑… 뭐라고 하셨습니까?”

“간다면서 그건 왜 물어! 당신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저를 내보내시려는 게 아니셨나요? 제가… 이제 제가 싫어지셔서, 저에게 말도 걸지 않으시고… 저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어지신 게 아니었단 말입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황후 마마가 그러라고 시키신 거란 말이야!”

말하다 보니 또 성질이 난다. 루이제는 다음에 아르사크를 찾아가면 결혼 못 한 책임을 마구 따지리라고 생각했다. 아르사크가 화를 내면 자신 따위야 주먹질 한 번으로 죽일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카르반테와 결혼도 못 하는데 더 살아서 뭐 할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대체 황후 마마께서 왜 그런 일을……?”

“카른이 나한테 약혼하자고 말해주지 않으니까! 내가… 내가 먼저, 실수이긴 했지만… 약혼자라고 말했는데, 당신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잖아! 흑, 몰라. 가려면 얼른 가버려. 꼴 보기 싫어.”

“정말입니까?”

루이제는 카르반테에게 붙잡힌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은 따갑고 목이 다 칼칼했다. 분명 얼굴도 보기 싫게 부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반테의 눈빛은 루이제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어떤 기대일까. 이를테면…….

“루이제,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말이 떨어진 순간, 루이제는 우스꽝스러운 소리로 딸꾹질을 했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아예 튀어나올 기세로 벌어지고, 뒤이어 빨간 입술도 서서히 벌어졌다. 루이제는 마치 기절할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더니, 카르반테가 손을 놓아버리기라도 할세라 그의 양손을 있는 힘껏 거머쥐었다.

“카른, 나… 나랑, 결혼할 거야? 결혼…하자고 했어? 방금 청혼한 거야?”

“네. 루이제가 정말 저를 쫓아내시려던 게 아니라면…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면, 부디… 부디 저를 남편으로 맞아주실 수 없겠습니까?”

루이제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단지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가, 다시 카르반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불붙은 것처럼 빨개져 있었다. 아마 루이제 자신도 별다르지 않으리라.

다시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뺨을 실룩거린 루이제는 갑자기 있는 힘껏 카르반테를 밀치듯 목을 껴안았다.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면서도, 카르반테는 루이제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녀를 감쌌다.

드레스가 다 흐트러진 것도 모른 채, 루이제는 아직도 울음이 걸린 목을 깔딱이면서 종알거렸다.

“한 번만 더 날 떠나겠다는 말을 하면 당신이 타고 가는 마차 앞에 드러누워서 울 거야.”

“…그러지 마십시오.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약속하는 거지?”

카르반테는 조심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피곤할 때 내쉬는 한숨과는 달랐다. 그는 빙긋이 웃는 얼굴로 루이제의 발개진 뺨을 바라보다가, 조그만 귀 옆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떼면서 대답했다.

“약속합니다. 평생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104장 신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 (5)

“…그래서 카른이 저를 꼭 안아주면서 청혼을 했지 뭐예요!”

루이제가 지금 생각해도 황홀하다는 듯이 양손을 모으며 말했다. 아르사크는 손수건을 접어 이마 위에 얹는 시늉을 하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래, 잘됐구나. 정말 축하한다. 이제 그만 가.”

“아이참! 아직 더 들어보세요. 그런 다음에 카른이 저를 일으켜 세우고는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셔요?”

“안 궁금해.”

“글쎄 저를 보고 ‘사랑스런 남작님’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냥 시골 저택에 갇혀있게 내버려 둘 것을. 아르사크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재잘거리는 루이제의 말에 맞춰 대충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간간이 ‘응’ ‘아하’ ‘그렇구나’ 정도의 무의미한 추임새만 넣어주면, 이야기는 루이제 혼자 다 했다. 상대방이 듣거나 말거나, 끝도 없이 신나서 떠들어댈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아르사크는 루이제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머릿속으로는 끝도 없이 로즈안나의 혼수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었다. 도맡아서 준비하겠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막상 준비하려고 보니 제법 막막한 일이었다.

유목민들은 대개 아주 어린 나이부터 혼수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식을 치르는 것은 혼인이 가능한 나이가 된 이후지만, 예복에서부터 융단, 자잘한 생필품까지 직접 자수를 놓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아르사크도 어렸을 때 마을의 어른들이나 언니들이 혼수품을 준비하느라 수를 놓는 것을 보면서 자랐으므로 혼수쯤이야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곤란하네. 여기선 유행하는 물건들이 늘 바뀔 텐데.’

로즈안나에게 ‘필요할 만한 것’이라고 했으니 로즈안나 본인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아르사크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여태까지 자신이 잘 모르는 것, 예컨대 드레스나 장신구, 의상, 사교 예의 등 어쨌든 먹고사는 것과 별 관련 없는 것들은 필요할 때가 닥치면 계속해서 로즈안나의 도움을 받아왔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으니, 아기자기한 물품 같은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아오지 않은 아르사크로서는 골치가 아플 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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