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어느 날인가, 여느 때처럼 거리를 뛰어다니며 혼자서 놀던 마티타가 어느 귀부인이 타고 가던 마차에 살짝 치였다. 손목을 약간 삔 정도로 그쳤지만 이미 남편을 비슷한 방식으로 잃은 마티타의 어머니는 마티타가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본 순간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울부짖었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귀부인의 입장은 난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격이 깐깐하거나 오만한 사람이었다면 그까짓 일로 뭘 그리 소란이냐며 슬쩍 내빼거나 금화 한 개쯤 던져주고 말았을 텐데, 그날 마티타를 친 마차에 타고 있던 귀부인은 담이 좀 약한 사람이었다.
귀부인은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우는 마티타의 어머니에게 자신이 마티타가 일생 동안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해 주겠다고 말했고, 삔 손목에는 과할 만큼의 보상금도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마티타는 황궁에 일자리를 얻게 된 것이었다.
부모님에게 닥친 불행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차피 마티타는 그때 너무 어렸으므로 도망치던 일이나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일 같은 것은 그리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황궁에서 그녀가 처음 배운 일은 계단과 난간을 걸레질하는 방법이었다. 특유의 긍정적이고 해맑은 성격을 발휘해 마티타는 모두들 힘들다고 울상인 일도 얼굴 한 번 찌푸리는 일 없이 해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일을 하게 됨으로써 어머니가 고생을 덜 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어른 한 사람과 아이 셋이 끼어 자기에도 비좁던 셋방에서도 탈출할 수 있었고, 귀부인이 주었던 보상금으로 오빠와 언니는 튈브리크 구석진 곳에나마 작은 가게도 차렸다.
그 모든 것이 마티타 자신의 성실함 덕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티타는 언제나 자신이 ‘특별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소문의 주인공인 새 황후의 시중을 드는 시녀로 뽑혔던 일도 마티타의 그런 믿음을 공고히 해주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래도 마티타에게 운이 따르지 않는 날인 모양이다. 마티타는 벌써 1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선 자세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고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오른손에 들린 깃털 먼지떨이의 끄트머리가 이따금 떨리는 것만이 마티타가 아직 돌이 되어 굳어버리지는 않았음을 증명했다.
“마티타? 너 뭐 하는 거야?”
“시씨, 나 어떡해……?”
세탁한 이불보를 들고 침실로 건너가던 시씨는 마티타의 처절한 목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가 헉, 하는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하마터면 팔에 안고 있던 이불보를 떨어트릴 뻔한 시씨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사건 현장으로부터 두어 걸음 물러섰다.
“마티타, 너… 어쩌다 이랬어?”
“먼지를 털다가… 정말 실수였어! 먼지떨이를 살짝 움직였는데 이게 그만…….”
마티타는 두 동강이 난 채 발치에 구르고 있는 돌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유리 조각품도 아니고 명색이 돌덩이면서, 그렇게 힘없이 추락할 건 뭐란 말인가?
그것은 아르사크가 클루이트에게서 받은 원석이었다. 선물로 받은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 처박아두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쿠션을 깔아 선반에 장식해 두었던 것이다.
그것을 마티타가 청소를 하다가 떨어트렸고, 원래 살짝 금만 가 있던 돌은 두 쪽으로 완전히 갈라져 수습이 불가능해 보였다.
“세상에, 이게 정말 원석이었구나. 난 황후께서 그냥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지 뭐야. 아무리 봐도 돌덩이로밖엔 안 보이더라고. 그런데 이것 좀 봐. 이렇게 예쁜 장밋빛 수정을 본 적 있어?”
“시씨! 지금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야?”
“어쩔 수 없잖아. 그럼 너랑 같이 여기 주저앉아 울면 돌이 다시 붙기라도 한대?”
얄미운 소리를 잘도 하면서, 시씨는 마티타의 어깨를 건성으로 두드리고 이불보를 정리한다는 핑계로 침실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마티타는 원흉인 먼지떨이를 팽개친 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돌을 이리저리 맞춰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쪼개진 돌이 힘 좀 줘서 누른다고 다시 하나로 달라붙을 리가 없었다.
“망했어. 난 이제 쫓겨날 거야. 황후께서 선물 받으신 건데 그걸 깨뜨리다니… 에레벤나 님, 저 꽤 착하게 살지 않았나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양손에 든 돌조각을 내려다보다가,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탄식을 했다가, 마티타는 혼자 바빴다. 침구를 정리하며 바깥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시씨도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지만 그녀로서도 마티타를 구해줄 만한 뾰족한 수는 없었다.
“어떡하지, 풀이라도 개어서 붙이면 붙을까? 아냐, 그러려면 이걸 가지고 나가야 하잖아. 그럼 도둑질이 되는데. 난 망했어.”
“마티타, 어쩔 수 없어. 황후 마마께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용서를 빌어.”
“용서하시겠어? 시씨, 너도 들었잖아. 네페 영주의 아드님이 황후 마마께 감사의 표시로 선물한 거라고! 그런 걸 감히 하녀가 깨뜨렸는데 용서가 되겠니?”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시씨와 마티타가 영양가 없는 말다툼으로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바깥에 나갔던 아르사크가 방으로 돌아왔다.
마티타는 사색이 된 채 저도 모르게 돌을 쥔 손을 뒤로 숨기려 했지만 아르사크의 눈이 더 재빨랐다.
“마티타? 너 뭘 숨겼어?”
“어… 아, 저, 마마… 그게…….”
“마티타, 손을 당장 앞으로 내밀어.”
아르사크의 옆에 서 있던 로즈안나가 엄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마티타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등 뒤로 돌렸던 손을 주춤주춤 내밀었다. 모두가 놀라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마마, 죄송합니다! 저, 제가… 제가 청소를 하다가 그만 부주의하게… 마마께서 아끼시는 것인데, 이렇게 되어서… 정말…….”
“뭐야, 이렇게 보니 훨씬 더 예쁘잖아?”
“네… 네?”
“봐, 로즈.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마티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르사크와 로즈안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뒤에 선 시녀들의 사색이 된 표정도.
그러나 아르사크가 농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마티타의 손에서 돌을 가져가더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비춰보며 감탄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쪼개서 줄 것이지, 어디로 보나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생긴 채로 줄 건 뭐야?”
“아르사크 님.”
로즈안나가 헛기침을 하며 아르사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수정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르사크는 그제야 마티타 쪽을 돌아보며 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티타, 넌 평소 착실한 아이였으니 이번 일은 넘어가겠어. 하지만 앞으로는 보다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렴.”
그리고는 ‘이제 됐지?’라는 듯이 로즈안나를 쳐다봤다. 로즈안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아르사크 대신 마티타를 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마마!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이건 이대로 올려둬. 너희들도 와서 봐.”
아르사크가 시녀들에게 손짓을 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들이 우르르 마티타 곁으로 몰려들었다. 이제 막 물이 올라 피어나기 직전인 꽃봉오리처럼 부드럽고 선명한 분홍빛 수정의 아름다움에 모두들 호들갑스러운 감탄을 쏟아냈다.
마티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운에 감사했다. 오늘만큼 감사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르사크의 수정 이야기는 시녀들 사이에서 단박에 화제가 되었다. 또래의 시녀 다섯 명이 같이 쓰는 마티타의 방에서도 밤늦게까지 그 수정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다섯 명 중에서 아르사크를 모시는 시녀는 마티타 뿐이었으니, 모두들 당사자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안달이었다.
“정말 그렇게 예뻐? 시씨한테 들었는데 꼭 장미로 만들어진 수정 같다면서?”
“뭔가 좋은 향기도 난다던데 그게 정말이야?”
“향기는 안 나. 아니다, 뭔가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했어!”
“그게 진짜야? 세상에!”
“아주 희귀한 수정이라며?”
“맞아. 귀부인들도 그런 건 본 적 없을걸? 황후 마마쯤 되시니까 그런 것도 받으시는 거지.”
마티타는 한껏 들떠 있었다. 거한 사고를 치고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간 데다가, 나중에 수정을 보던 아르사크가 ‘마티타가 이걸 깨뜨린 게 오히려 잘한 일인데?’라고 농담을 하는 것을 우연히 듣기까지 했던 것이다.
클루이트가 준 수정에 대한 소문은 어리거나 젊은 시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매우 희귀한 보석이라는 점, 게다가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장밋빛이라는 점, 심지어 네페 영주의 아들이 황후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점이 설렘과 호기심을 동시에 부추긴 것이다.
“그런데 네페 영주님의 아들이 왜 황후 마마께 그런 것을 드렸을까?”
“바보야, 황후 마마는 아름다우시잖아. 당연히 찬사의 뜻으로 바친 거지.”
“그런 거라면 차라리 꽃다발이 낫지 않나?”
“꽃다발은 금방 시들잖아!”
“맞아, 수정은 시들지 않잖아! 세상에, 어쩌면 그 남자가 황후 마마를 연모하는 게 아닐까?”
“뭐? 그럴 리가 있겠어? 황제 폐하께서 계신데?”
“그러니까 더 애틋한 거지! 로맨스 소설에도 많이 나오잖아.”
“그러고 보니 장밋빛 수정이라고 했지? 그렇게 귀하고 보기 드문 걸 바칠 정도면 그럴 수도 있겠어. ‘꽃은 시들지만, 제 마음은 시들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너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것 아니야? 그래도 너무 로맨틱하다. 정말 그럴지도 몰라. 그렇지? 마티타, 어떻게 생각해?”
초롱초롱한 눈 네 쌍이 자신을 향하자 마티타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르사크가 말하기로는 분명 검술을 가르쳐주고 받았다는 것 같았는데…….
“아니… 그치만 황후 마마께선 그게, 음… 그 사람에게 검술을 가르쳐주고, 감사의 뜻으로 받으신 거라고 말씀하셨는걸?”
“그럴 리가 없어. 황후 마마께서 아무리 할 줄 아는 게 많으시다 하더라도, 영주의 아들쯤 되는 사람인데 여태 검술도 배우지 않았다는 게 말이 돼?”
“맞아. 정말 검을 배웠더라도 그건 분명 미끼였을 거야. 대놓고 황후 마마께 이런 물건을 바치면 폐하께서 수상하게 생각하실 테니까.”
“그러니까 말로는 제자로서 드리는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애타는 마음을 그 뒤에 숨긴 거지……! 어떡해, 너무 안타까워.”
네 명은 마티타의 말 같은 것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