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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하지 마세요 (78)화 (78/136)

78화

어슴푸레하던 램프 빛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탓인지, 서로를 찾고 대화를 주고받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신전에 가보려고 해요.”

“꼭 당신이 찾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군요.”

“그러길 바라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요.”

“맞을 겁니다. 신관님께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진 않으실 테니.”

라비엘리는 어쩐지 차갑게 식어가는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뛰었다.

“만약 동생을 만나게 되면,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떨어져 있던 시간이 너무 길어서 내가 알아볼 수는 있을지도 걱정이고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만약 동생을 찾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라비엘리는 마이어가에서 나올 생각이었다. 모자를 만들어 팔거나 여관에서 일해서라도 동생을 책임질 생각이었다.

“우습죠? 아직 그 아이가 맞는지 아닌지조차 모르는데.”

“…….”

“하지만 맞다면 난 그 아이를 위해 뭐든 할 거예요.”

루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기뻐야만 했는데.

“라비엘리.”

저를 짓누르던 생각에서 해방된 것인지, 아니면 체념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루시안이 말을 이어갔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루시안은 제가 실수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여기서 적당히 물러서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램프의 불빛이 꺼져버린 것처럼, 그가 세워두었던 장벽 역시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런 사람이요?”

* * *

“주인님.”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저를 부르는 소리에 니엘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

“식사할 시간이에요. 몸을 일으켜 드릴게요.”

제법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은 능숙하게 니엘의 목덜미에 손을 받쳤다.

그러고는 푹신한 동시에 단단한 베개를 등에 조심스레 대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반들반들하게 손질된 부목을 배게 뒤에 밀더니 딸깍, 소리 나게 앞으로 접었다.

이것은 니엘의 몸이 옆으로 쓰러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고마워, 엘자.”

어느 날 갑자기 몸이 굳어지기 전까지, 니엘은 힐스에서 제법 유명한 의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식사부터 목욕까지 전부 남의 손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마 니엘의 아버지가 거상이 아니었다면, 그는 다리가 굳어진 순간 뒷골목에 내다 버려졌을지도 모른다.

“괜찮으세요? 불편하진 않고요?”

“응, 목이 너무 세워진 것 같은데 베개를 조금 더 내려주겠어?”

“네, 잠시만요.”

니엘의 요청에 엘자가 천천히 베개를 내렸다.

“이제 어떠세요?”

“좋아.”

그녀는 니엘을 향해 한 번 싱긋 웃더니 테이블을 침대 앞으로 끌어왔다. 그러곤 들고 온 쟁반에서 요리를 꺼내 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크림 수프와 닭고기 프리카세예요. 후식은 파이를 드릴게요. 록센에서 왔다는 과자 기술자가 솜씨가 아주 좋아요.”

“기대되는군.”

“제 취향은 파이보단 누가에 가까웠지만, 조금 늦었더니 벌써 다 팔리고 없지 뭐예요.”

사실 이런 평범한 대화를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니엘은 제 상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고,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몸에 적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근육 마비가 오는 동시에 찾아온 다발적인 통증 역시 니엘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니엘은 하녀와 시종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었지만 아주 가끔은 똑같은 자세로 너무 오래 누워 있던 탓에 욕창이 생기기도 했다.

게다가 근육 손실로 인한 몸의 통증, 소화가 되지 않아 생기는 복부 통증까지.

“그리고 식사를 마치시면, 외젠느의 시를 읽어드릴게요.”

노부인은 마치 제 자식을 보듯 정성스레 니엘을 돌보았다.

물론 니엘의 아버지에게 엄청난 보수를 받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저택에서 일한 터라 니엘의 상태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동정하고 있었다.

“아니, 그보단.”

그때, 니엘의 커다란 두 눈에 우수가 차오르더니, 조금 전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루시안에게선 아직 연락이 없나?”

“네.”

“기별이 올 때가 되었는데.”

니엘은 작게 중얼거렸다.

루시안 마이어와 니엘 페른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다. 갑작스러운 병증으로 고통받을 때도, 그의 곁을 지키며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건 루시안이었다.

니엘에게 루시안은 형제 이상의 존재였다.

“곧 편지가 오지 않을까요? 아니면 먼저 연락해보시는 게 어때요?”

엘자가 천진한 목소리를 냈다. 물론 루시안과 니엘의 속내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니엘은 엘자의 말에 어쩐지 실소가 터졌다.

“루시안은 내가 보낸 첩자나 다름없는데, 첩자에게 편지를 보내라고?”

“……예?”

“엘자.”

“네, 주인님.”

은수저를 든 채 움직임을 멈춘 엘자를 보자, 니엘은 어쩐지 그녀를 놀려주고 싶어졌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어디에서도 발설해선 안 돼.”

엘자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저택에서 이토록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건, 천성이 빠릿빠릿한 것도 있었지만 워낙 조심성이 많고 신중한 탓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어디에서 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힐스와 루시안이 있는 곳은 400km 이상 떨어져 있어 설령 말이 퍼진다 해도 이미 상황은 끝났을 것이다.

“그는 지금 아주 중요한 복수를 하러 갔어.”

니엘은 부러 몹시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의 말에 즉각 반응을 보이는 엘자가 재미있어서였다.

“복수요?”

“그래, 복수.”

노부인은 겨우 복수란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떨리는지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주인님, 어째서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세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버린 내 몸보다 무서운 건 없지.”

“주인님.”

“물론 이건 그 사람 탓이 아냐. 나도 알고 있어.”

“…….”

엘자는 한참 전 뜬 크림 수프를 루시안의 입에 넣을 생각도 못 하고 그를 빤히 보았다.

“그 사람 탓이 아니라면서 왜 복수……를 하시려는 거예요?”

“진한 피를 나눈 나의 친구가 두고 볼 수 없다는군.”

니엘의 머릿속에 아름다운 미소의 루시안 마이어가 잠시 스쳤다 사라졌다.

“하지만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감정은 용서예요, 주인님.”

엘자는 니엘이 편해지길 바랐다. 이것은 그녀의 진심이었다. 그의 주인이 침대에 누워 누군가를 미워하며 여생을 보내는 걸 원치 않았다.

그는 언젠가 다시 일어설 사람이었다. 침대에서 만들어낸 공상과 증오로 생을 망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니엘의 감정은 그녀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깊고 어두운 것이었다.

“아니, 엘자.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건,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거야.”

이 목소리는 엘자가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음산했다.

마른침을 넘긴 엘자는 저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루시안 도련님이 만나러 가신 그 사람이…… 대체 누구예요?”

드디어 스푼을 그릇 위에 내려놓으며 엘자가 물었을 때였다.

“날 버리고 내 인생을 침대 위에 꽁꽁 묶은 남자.”

“…….”

복수를 말하는 사람치곤 몹시 온화한 얼굴로 니엘이 중얼거렸다.

“테아노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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