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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하지 마세요 (32)화 (32/136)

32화

오직 신만을 섬기는 삶을 살기로 맹세하지 않았던가.

너의 맹세는 이토록 가벼운 것인가.

“……클라인 이온. 너는 파면당해 마땅하다.”

누가 시켜서 한 선택은 아니었다.

몇 해 전, 클라인 이온은 제게 내려진 신탁과 마주해야 했다.

사제가 되어 평생 신을 섬기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거부하고 평범한 사내의 삶을 살 것인지.

제국에서 사제가 갖는 의미는 몹시 특별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신의 대변인이 된다는 건, 여느 왕국의 왕에 견줄 만큼 강력한 권위를 갖는 것이었다.

물론 권력에 의한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도통 여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클라인, 일레아나 영애께 조금 더 친절하게 굴 순 없었느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영애께서 눈물을 쏟으셨다는 걸 공작께서 아시면 얼마나 속이 상하실지.’

‘…….’

‘성품으로 보나, 가문으로 보나 일레아나 영애만 한 분이 없다. 게다가 황제까지 탐을 내실 정도로 미모가 뛰어나시지 않느냐.’

‘알겠습니다, 아버지.’

‘혼담이 오고 가는 상황이니, 영애께 정중히 사과드리고 그런 경솔한 언행은 삼가거라.’

정인이니, 사랑이니, 여인이니…… 이런 것들은 전부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클라인은 그저 책을 읽어 견문을 넓히고 수사학이나 천문학 같은 것을 공부하는 일이 훨씬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여인이란, 그저 제 미소를 한 줌이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분을 바르고 거짓 웃음을 지어내는 종족이라 생각하며.

사랑에 빠지는 일이 경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 앞에 선택지가 놓였을 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신의 아들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곳에선 적어도 여인 때문에 역겨울 일도 없을 것이며, 원하는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을 테니까.

“……레브리안.”

그녀의 이름을 입술 안에 머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저릿하였다.

마치 주술로 레브리안을 불러낸 것처럼 코끝에 그녀의 향기가 맴돌았다.

“젠장.”

그와 동시에 뻐근해진 아랫도리가 불경스럽다.

묵직하게 차오른 것이 마치 레브리안를 향한 그의 마음처럼 무겁게 내려앉는다.

“안 돼.”

클라인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피어나는 그녀의 잔상이 클라인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

여인을 취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낼 방법은 오직 하나.

자리에서 일어선 클라인은 숨을 몰아쉬며 서랍을 열었다. 덜덜 떨리는 손끝에 차가운 금속이 닿는다.

작은 칼을 바짝 쥐고 남은 손으로 소매를 걷어 올리자 사제복 속에 감춰진 팔목이 드러났다.

곱상한 얼굴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무수한 상처.

날카로운 칼에 베였다 새살이 돋길 반복하며 엉망이 된 팔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클라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신이시여.’

그러곤 주저하지 않고 제 팔에 붉은 선을 그려 넣었다.

그리하자 저를 집어삼킬 듯 타올랐던 욕정이 새빨간 피와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통증을 참아내며 클라인은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제 육신을 전부 가져가도 좋으니, 제발 이 끔찍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 * *

레브리안은 그날 밤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기묘한 한기에 어깨를 움츠리며 돌아누웠을 때였다.

‘이상해.’

날이 추운 것도 아닌데 방 안이 얼어붙은 듯하다. 입바람을 불면 입김이 날 것처럼.

다시 잠을 청하려 찬찬히 눈을 감는다.

몸에 힘을 풀려는데, 잔뜩 움츠린 몸이 갑자기 돌이 된 것처럼 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레브리안의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일더니 바람을 타고 낯선 이가 불쑥 들어왔다.

‘!’

낯선 감각에 레브리안이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쉿.”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은 사내가 나른한 숨소리를 내었다.

“……!”

레브리안은 낯선 이의 얼굴은 확인하지도 못한 채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러나 분명 익숙한 향기다.

‘신관님?’

어설피 잠이 든 순간에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향기.

분명 클라인 이온의 향기다.

그러나 신관님이 몰래 제 침실에 들어와 저를 안을 리 없지 않은가.

혼란한 레브리안의 머릿속과는 상관없이 사내는 완전히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 와선 레브리안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러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레브리안의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려 했지만, 사내가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곤 다소 강압적으로 레브리안을 움켜잡았다.

“지금 뭐 하는……!”

레브리안이 사내의 손을 잡고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잔뜩 흥분한 사내를 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끙끙거리며 몸을 비틀자 귓가에 사내의 숨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뜨겁고 축축했으며 몹시 낯설었다.

두 다리를 버둥거리자 이번엔 묵직한 다리가 레브리안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이거 놔!”

소리를 질러야 했다. 그러나 가슴이 답답해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오, 신이시여.

저를 가엾이 여기소서.

레브리안은 저를 감싼 사내의 팔뚝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신히 몸을 비틀어 오른쪽 다리를 뺀 레브리안이 악을 쓰려던 순간이었다.

“레비.”

“……!”

그 순간 레브리안의 귓가를 적신 건 다름 아닌 클라인의 음성이었다.

“!”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얼굴이었다면 지금보단 덜 놀랐을 것이다.

레브리안은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의 말간 얼굴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클라인은 저를 부르는 레브리안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어루만졌다.

입술에 닿는 사내의 손끝은 무척 섬세하고 보드라웠다. 마치 입술끼리 맞닿은 것은 아닐지 착각이 일 만큼.

여기서 뭘 하는 건지 무슨 일인지 물어야 했고,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레브리안은 다정히 저를 내려다보는 클라인의 시선에 입술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마치 불같은 것이었다.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의지로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욕망이었다.

그녀는 복잡하게 빛나는 클라인의 시선을 완벽하게 느꼈다.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던 때 클라인이 조심스레 레브리안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동시에 클라인이 레브리안의 손을 붙잡았다.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한 손을 쥐자 두 사람 모두 떨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자 커다란 손바닥 안에 레브리안의 손이 완전히 포개졌다.

타인과 살을 맞대는 건 놀라운 일이다.

내 것이 아닌 온기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평화를 얻을 수 있으니까.

레브리안의 가슴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클라인의 손이 닿은 부분을 시작으로 뜨겁고 저릿한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 물결처럼 스미고 있었다.

작은 얼굴을 두 손 가득 품은 클라인이 레브리안의 숨을 들이마신다. 그녀의 혀는 달고도 달았다.

삼키듯 혀를 머금었다가 놓으면, 이번에는 레브리안이 애타게 다시 클라인의 것을 찾아 끙끙댔다.

나른하면서도 거친 숨이 마구 엉긴다.

그러나 이래도 되는 걸까.

클라인 이온은 평범한 사내가 아니다.

그는 신에게 일생을 바치기로 맹세한 사제가 아닌가.

신전에서 잡일을 하는 한낱 잡부 따위가 감히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되는 자다.

그런데 그를 탐해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클라인을 밀어낼 수 없었다.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도, 도저히 그를 벗어날 수 없었다.

아마 신은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며 레브리안이 클라인을 끌어안는 순간이었다.

처음보다 한껏 열이 오른 클라인이 레브리안을 집어삼키듯 입으로 물었다.

“흣…….”

애써 신음을 참던 레브리안의 입술이 잘 익은 과실처럼 벌어진다.

그러자 피부에 뱀이 기는 것처럼 야릇한 감각이 이어졌다. 배 속이 간지럽게 꼬여 두 다리를 가만히 둘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소변이 흐르는 듯 무언가 울컥 쏟아졌다.

‘어째야 하지…… 이제 난, 사제님은…… 우리는 대체.’

레브리안은 눈을 질끈 감으로 제 목덜미를 파고드는 클라인의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클라인은 만지는 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는지, 레브리안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체향을 들이마셨다.

“읏…….”

레브리안은 어깨를 움츠리며 야릇한 소리를 냈다. 허벅지 사이가 축축해지고 있다.

모든 것을 내어주겠노라 마음먹었으나 공연히 안달 난 여인처럼 보일까 봐, 레브리안이 허벅지를 꼭 붙였을 때였다.

그녀 허벅지 사이에 크고 단단한 것이 닿았다.

그러자 한껏 데워진 클라인의 손이 레브리안의 아랫도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레비.”

“…….”

그녀를 부르는 클라인의 목소리가 어쩐지 섬뜩하게 들린다.

레브리안은 대답 대신 가빠진 호흡을 흘렸다. 그 순간 누군가 위에서 당긴 듯 허리가 들리고 말았다.

그러자 클라인의 향기가 목덜미에, 보드라운 배를 지나 음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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