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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하지 마세요 (7)화 (7/136)

7화

그날 밤 테아노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였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웠으나 이제 2주 후면 달라질 것이다.

테아노는 콧김을 내뿜으며 침대 위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치마를 들치자 단정히 모은 라비엘리의 두 다리가 드러났다.

“이제 걱정 마시오. 우리 모두에게 즐거운 일이 생기는 게지.”

종아리부터 찬찬히 매만지던 손이 허벅지를 품는다.

손에 꽉 차는 허벅지를 쥐자 라비엘리의 호흡이 다소 가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함께 즐거워할 수만 있다면.”

테아노는 라비엘리의 속옷을 아래로 끌어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품에서 갈색 병을 꺼냈다.

망할 산파가 말한 재료를 구하는데 막대한 돈을 들였다.

정확히 2주. 만약 그녀의 말대로 되지 않는다면 테아노는 산파가 불법으로 의술을 자행했다는 걸 황제에게 고하고 그녀의 목을 칠 생각이었다.

오른손 첫 번째 손가락에 기름을 듬뿍 묻힌 테아노가 산파의 뜻에 따라 움직일 때였다.

“……!”

불쾌한 이물감에 라비엘리가 침대 시트를 말아 쥐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테아노는 천천히 숫자를 세며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분명 메말라 있었으나 손가락에 기름을 바른 덕에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좋아, 느낌이 어때?”

테아노의 나른한 음성이 치부를 타고 들어왔다.

라비엘리는 그저 두 눈을 질끈 감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떻냐고…… 응? 어떤지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응?”

반듯하던 후작의 목소리는 변하고 있었다.

“네년의 형편없는 구멍 때문에 비싼 돈과 시간을 들였으니, 오늘은 값어치를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비명이라도 제대로 질러.”

옷을 벗어젖힌 테아노가 난폭하게 소리치며 라비엘리의 드레스를 찢기 시작했을 때였다.

쾅쾅쾅!

다급한 소리가 또다시 그의 욕망을 방해하고 말았다.

“젠장!”

갑작스러운 소리에 뻣뻣하게 굳었던 성기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테아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문을 대고 소리쳤다.

“내일 아침 목이 날아가고 싶지 않다면 당장…….”

그러자 문밖에서 난처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후작님, 황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뭐?”

“황제 폐하의 전갈을 가져온 전령입니다.”

그 말엔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테아노는 어기적거리며 옷을 주워입고는 라비엘리에게 소리쳤다.

“금방 돌아올 테니 그대로 있으시오.”

밤중에 온 황제의 전갈이라면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라비엘리는 슬립을 추스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부디 대화가 길어지길, 심각한 일이길 바라고 또 바랐다.

금방 돌아온다던 테아노는 그날 밤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라비엘리로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라비엘리는 저택의 주인이 황제의 명을 받고 급히 오스트린으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스트린이요?”

테아노는 영 입맛이 없는지 수프를 입에 대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태후 전하께서 요양 차 오스트린의 신전에 계신데 오스트린에 지금 가벼운 병증이 도는 모양이오. 그런데 전하께서 어제부터 몸이 좋지 않으시다고 하는군.”

“…….”

“황제 폐하께서 이 문제로 몹시 걱정하고 계시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자는 나라에 많지 않으니까.”

테아노는 마지막 단어에 힘을 주었다.

“아니, 내가 유일한 사람이지.”

그는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의사였다.

훌륭한 의술뿐 아니라 제약 기술로도 명성이 높았는데, 종기로 고생하던 황제를 단번에 치료한 일로 유명해졌다.

‘후작께서 저택을 비운다.’

테아노가 저택 밖으로 나가는 건 그녀에게 유일한 해방구나 다름없었다.

마음껏 책을 읽고, 깊이 자고, 해가 떴다 기울 때까지 정원에 앉아 평화로운 공기를 마실 생각이었다.

“네, 알겠어요.”

라비엘리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어내려 노력했다.

지금 기쁜 기색을 드러내선 안 되었다.

그런 생각 끝에 고개를 슬쩍 들었을 때, 라비엘리는 맞은편에 앉아 있던 루시안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루시안은 라비엘리를 한번 보더니 기분 나쁘다는 듯 눈을 피하곤 다시 태연히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뭐야?’

우연히 저택 주변을 산책한 이후, 루시안과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식탁에서의 루시안은 평소보다 훨씬 더 냉담한 얼굴이었다.

어쩐지 이유를 알고 싶었으나 쓸데없는 호기심이라는 걸 잘 알았다.

“휴, 그래서 아주 곤란해졌소.”

테아노의 머릿속은 몹시 복잡했다.

갑자기 오스트린에 가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다. 거금을 들여 산파가 시키는 대로 일을 착착 진행할 생각으로 들떠있지 않았던가.

2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아야 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자리를 비워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황제의 명이니 미룰 수도 없었다.

만약 라비엘리를 데려간다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하다.

방법은 오직 하나.

라비엘리를 저택에 두고 누군가 저를 대신해 밤마다 그녀의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게 하는 것뿐이었다.

하녀도, 여인도 아닌 저를 대신할 사내는 누구인가.

테아노는 느릿하게 수프를 뜨며 루시안을 힐긋거렸다.

‘저 뱀 같은 녀석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종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황궁에서 온 전갈을 받은 뒤 테아노는 꼬박 하루를 잠들지 못하고 고민하였다.

결국, 첫닭이 울었을 때가 되어서야 루시안을 불렀다.

이른 시간이었으나 루시안 마이어는 예의 단정하고도 고고한 얼굴로 아버지 앞에 섰다.

“부르셨습니까, 아버지.”

초조한 얼굴로 두루마리를 들고 있던 테아노가 루시안을 쳐다보았다.

자신과 조금도 닮지 않은 미남자는, 저를 아버지라 부르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섬뜩하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

그는 첫날 다소 안하무인처럼 행동했을 때를 제외하곤 저택에서 생각보다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테아노는 의식적으로 루시안을 멀리했고, 하루에 두 번 식사 자리에서 보는 것 외에는 마주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따로 불러낸 건 사실 처음이었다.

때문에, 루시안 역시 테아노의 용건이 몹시 궁금하였다.

한참을 주저하던 테아노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힐스에선 무슨 일을 했지?”

테아노 마이어와는 두 번째 독대였다. 그는 얼떨결에 아들을 들인 것이 불편하고 끔찍한지 반나절 사이 얼굴이 꺼칠해져 있었다.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루시안은 가볍게 대답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들을 만나서 묻는 말이 겨우 저런 것이라니.

루시안 마이어는 마르고 예민한 인상의 사내가 불현듯 딱하게 느껴졌다.

“의학?”

루시안의 말에 테아노가 양미간을 바짝 당기며 되물었다.

“그럼 의사란 말인가?”

“네.”

어둠 속이었지만 테아노의 얼굴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가 버린 아들이 의사가 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

“으음.”

루시안이 그를 관찰하고 있는 사이, 테아노의 머릿속도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테아노는 처음 루시안 마이어를 마주한 순간을 떠올렸다.

라비엘리가 2층으로 올라간 뒤, 서재에서 이 낯선 사내는 가방 속에서 작고 동그란 것을 꺼내놓았다.

그것은 분명히 십수 년 전, 힐스의 어느 여인에게 바친 퀴징 글라스(렌즈 하나에 막대기가 달린 안경)였다.

‘분명 그 여자에게 준 것이었는데.’

퀴징 글라스는 고급 진주로 장식된 데다 테아노의 이니셜 ‘T’까지 새겨져 있었다.

설령 그녀가 이걸 어딘가에서 떨어뜨렸고, 이 사내가 주웠다 해도 이니셜만으로 모든 정황을 추측할 수는 없다.

전후 사정을 전부 꿰고 있는 걸로 보아 루시안 마이어가 자신의 아들일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테이블 위에서 빛나는 진주를 마주했을 때, 테아노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고 말았다.

여인에게 두고 온 퀴징 글라스는 애정의 증표가 아니라, 이걸 팔아 목숨을 부지하라는 의미였다.

이런 식으로 아들까지 끼워서 나타나라는 뜻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시안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당황하는 테아노를 꼼짝 못 하게 밀어붙여서 제 짐을 풀게 했다.

그래서 그저 어물거리며 루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의심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흐르듯 라비엘리에게 소개까지 하고 나자 그제야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은은한 갈색 머리는 대체 어디서 온 거지?’

제노베파는 금발이었고 자신은 짙은 흑발이다.

게다가 테아노는 광대가 불거지고 코가 납작했는데 아들이라는 녀석은 오뚝하게 솟은 콧날에 아름다운 갈색 머리가 아닌가.

자신과 조금도 닮지 않은 외모엔 여전히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 찾아온 이유는 뭐지?”

힐스에서 의학을 전공했다면 그곳에서 의사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귀족들에게 밖에서 낳아온 사생아는 사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상대는 대부분 잡부나 평민, 혹은 창부였기 때문에 적당히 돈을 쥐여주면 해결할 수 있었다.

간혹 아이를 두고 사라지는 일도 있었으나 그럼 대충 유모를 고용해 기르면 그만이었다.

아이를 기르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돈이었다.

계속 품고 있는 것도, 혹은 두고 가는 것도 결국에는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 자란 성인이, 그것도 의사가 되어서 나타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알량한 돈 몇 푼 때문에 찾아온 건 아니라는 결론이다.

‘재산을 노리겠지.’

테아노는 루시안 마이어의 불길하고도 오묘한 적갈색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단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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