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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타오르는 (76/95)

76화. 타오르는



 

미아는 온몸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안의 손길과 움직임은 그녀의 몸과 마음을 자꾸만 달아오르게 했다.

쇄골에 입술을 파묻은 이안이 미아의 허벅지를 들어 제 허리에 다리를 감게 했다.

허리를 끌어안는 그의 팔 위로 미아의 체중이 쏠렸다.

이안은 그녀를 바싹 끌어안으며 몇 번이나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잘못한 거 압니까.”

“자, 잘못이요?”

“그렇게 웃지 말았어야지.”

“네?”

그 웃음이 그를 얼마나 자극하는지, 미아는 모를 터였다.

이안은 알려주고 싶었다.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어떻게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는지.

“몸에 닿아도 상관없는 것이라고 했나.”

“네?”

“이거 말이야.”

그가 애니가 남기고 간 연고를 들어보였다.

미아가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이자, 이안은 연고를 손끝에 푹 찍어 바른 후 그녀의 드레스를 들쳤다.

순식간에 드러난 그녀의 복부 위로 그가 입술을 묻었다.

따뜻한 미아의 체온이 고스란히 그에게 전해졌다.

이안은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손을 들어 연고를 꼼꼼히 배에 바르기 시작했다.

차갑고 미끈한 액체가 몸에 닿자 잠깐 허리를 떨었던 미아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오늘 밤은 못 재우겠군.”

“가, 갑자기 왜.”

이안은 답 없이 미아의 입술을 찾아 물었다.

이안의 손이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밤이 빠듯했다.

❀ ❀ ❀

“너 정신 나갔지?”

신시아의 말은 거침없었다.

이안은 어젯밤 미아와 나눈 짙은 정사를 되새기며 창밖을 보던 시선을 거뒀다.

아침까지 물고 놔주고 싶지 않았는데, 미아가 자꾸 잠에 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안은 그녀를 끌어안고 잠들어야 했다.

“정신 나갔냐니.”

“아침 정무 회의에 반드시 참석하라고 했잖아.”

“그 자리를 내가 왜.”

“온 귀족들에게 알려야지. 네가 돌아왔다고.”

알리지 않아도 이미 아는 사실일 텐데 굳이 왜.

나지막이 읊조리는 이안의 말에 신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뱉었다.

“누가 단순히 너 돌아온 거 알리래? 네가 궁에 머무는 건 이미 모두 알고 있어. 내 말은, 네가 정치에 관심 있다는 걸 알리라는 말이었잖아.”

“갑자기 시간이 변했다고 했지.”

“응, 두 시간 당겨졌어. 내가 하인을 보냈잖아. 너에게 알리라고.”

아니, 오지 않았다.

중간에 누군가 막아섰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어젯밤 미아와 그가 정사를 나눴다는 사실 역시 알 가능성이 농후했다.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네 하인을 책망해야 할 것 같은데.”

“평소라면 일찍 일어나 나왔을 너잖아. 안 나오고 대체 뭘 했던 건데.”

“그야…….”

그가 말을 잇지 않고 시간을 두자 신시아의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이안이 하려던 말을 눈치챈 듯하였다.

“됐어, 하지 마. 절대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할 생각도 없다.”

“네가, 그…… 타오르는 시기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중요한 때인 만큼 집중 좀 해줄래?”

“저번에 말한 건.”

아, 그거.

신시아는 말끝을 흐렸다.

달브 황국의 추위는 아직 가시지 않았다.

사라진 황태자비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고, 심지어 그녀가 죽었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좋진 않아, 상황이.”

“역시 서신을 전하는 편이 낫겠군.”

“네가 직접? 뭐라고 쓰게. 당신들의 영애를 내가 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거 너무 협박범 같은 말이잖아.”

협박범이라.

뭐, 크게 틀리지도 않았다.

어쨌든 쥐고 놔줄 생각이 없는 그였으니, 미아 가족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황당할 만했다.

그러나, 이대로 미아를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내색은 못 해도 그런 가족을 신경 쓰고 있을 미아가 걱정이 되었다.

“일단 선물부터 구해.”

“열흘은 걸릴 거야. 너 근데 그 큰돈이 어디서 났어? 궁을 떠날 때, 하나도 없이 나갔을 텐데.”

세상에는 발견되지 않은 보석들이 많았다.

물론 아이가라고 그 보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두 황량한 땅이라고, 기회 없는 땅이라고 생각한 그 땅도 마찬가지였다.

“…….”

“말을 말자. 바미스 경이 널 찾았어.”

“성가시군.”

“친해 두면 나쁠 것 없어. 데리고 있는 사병들의 실력이 나쁘지 않으니까.”

“내 여자에게 헛소리나 할 생각 마.”

신시아는 입이 턱 벌어졌다.

언젯적 일을 가지고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건지.

이안이 미간을 좁힌 채 신시아를 보았다.

“그때 무슨 대화를 나눴지?”

“별로 특별한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특별하지 않은 무슨 대화.”

신시아야 말로 궁금했다.

대체 그녀가 아는 비밀이 몇 개나 된다고,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왔단 말인가.

누가 보면 자신이 미아에게 위협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싶었다.

이제껏 만난 여자도 없었고, 결혼은 했다지만 달린 자식도 없었다.

게다가 어찌나 부인에게 매정했는지 오죽하면 방도 따로 쓸 지경이었으니.

오히려 그런 문제에 대해 미아가 물어보았다면 거침없이 답을 해주었을 텐데, 정작 미아가 한 질문은 다소 낯선 질문이었다.

“아이가성에 혹시 어린아이가 있었니?”

“어린아이?”

“험하게 대하기라도 했어? 미아 양 겁먹게.”

기억을 되짚을 필요도 없었다.

어린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이안의 앞에 굳이 어린아이를 내보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가성에 지내는 아이들은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서 지냈고, 이안은 모자람 없이 그 애들을 돌볼 수 있도록 식량과 배움을 제공했다.

“그런 일은 없다.”

“그런데 왜 그랬지? 네 어린 시절에 대해 묻던데. 아이를 좋아하는가? 그런 걸 궁금해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미아가 신시아에게 그런 질문을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미아, 자신의 아이에 대해 생각한 것이다.

훗날 이 아이와 이안이 잘 지낼 수 있을지.

그것을 염려한 것일 거라고 이안은 생각했다.

“뭐라고 대답했어.”

“어?”

“뭐라고 대답했냐고.”

신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답변했을 뿐인데, 혹시 그로 인해 책망받으려나?

어린 이안은 누군가와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역시,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곧고 바른 애정을 쏟을 수 있을지도 의문인 사람이었다.

당장 미아에게도 마음을 표현하기 이전에, 제대로 전하기 이전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던가.

그것을 알고 있기에 미아가 그런 걱정을 하고, 질문을 했다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냥, 뭐. 솔직하게 대답했지. 어린 시절에 그런 게 흠도 아니고. 네가 아이를 싫어하는 것도 사실이잖아? 뭐, 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싫어하지만.”

그래, 그게 정답이었다.

이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을 싫어한다.

하지만 그 사람에 미아와 아이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가야겠다.”

“어딜! 나 얘기 안 끝났어.”

“뭐든 나중에 해. 나중이라는 기회가 네게 주어진다면.”

서슬퍼런 이안의 반응에 웬만해서 신시아는 입을 닫으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물러설 수 없었다.

그에게 전해야 할 소식이 있던 탓이다.

“혼인한대.”

뚝.

이안이 밖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신시아를 돌아보았다.

“그들이?”

“그래. 아니, 정확히는 혼인했대. 오늘 혼인하기로 했으니, 지금쯤이면 식을 올리고 있을 거야.”

“왜 이런 시기에. 어떤 반발을 살 줄 알고.”

“그게 나도 의문이야.”

왜 둘을 굳이 혼인시켰을까.

올리비아에게 약점 잡힌 것이 없는 한, 둘을 결혼시킬 이유는 절대 없어 보였다.

이미 달브 황국민들은 지나치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서 굳이 카일렌을 혼인시킨다, 그것도 적국의 황후였던 올리비아와?

잃을 것밖에 없어 보이는 행동이었다.

“다른 소식은.”

“없어. 뭐 신혼여행을 떠난다는데, 그게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네.”

“신혼여행이라.”

떠나보내는 건가.

이안은 어쨌든 이 소식을 언젠가 전해 들을 미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카일렌에게 남은 마음이 없다 해도, 신경쓰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런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술렁여서.

이안은 주먹을 꽉 쥔 채로 방을 빠져나갔다.

신시아는 그런 이안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늦게 붙은 불이 더 무섭게 탄다더니…….”

❀ ❀ ❀

“미아 양?”

미아는 고개를 들었다.

온몸이 뻐근했지만, 황제의 명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일이 있다고 먼저 나간 이안이 그녀 혼자 윌리엄을 만난 사실을 알면 화를 낼지도 몰랐지만.

우선 현명하게 대처하고 보자, 라 생각한 미아는 결국 응접실에 앉았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정무 회의가 끝난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눌 것이 있어. 늦었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윌리엄은 미아에게 싱긋 웃어 보인 후 시종을 불렀다.

시종은 차를 내오라 이르는 윌리엄의 말에 고개를 숙인 채 응접실을 나갔다.

비로소, 응접실에 미아와 윌리엄 둘만 남았다.

“배가 조금 부르신 것 같군요. 이제야 조금 태가 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요.”

“보기 좋습니다. 식사는 잘하고 계세요? 제가 특별히 더 신경 써달라고 얘기는 했는데.”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며칠 전 시중을 부르셨다죠? 극적인 상봉이 아주 아름다웠다는데.”

애니의 입궁은 아주 조용히 치러졌다.

애니가 들어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매우 극소수일뿐더러, 둘이 마주치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이안과 베아트리체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윌리엄이 아는 걸까.

역시 궁 안에서는 사방이 귀고 눈일까.

사소한 행동도 트집 잡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미아 역시 알았다.

그래서 여기를 오는 내내 마주치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시중에게도 자신의 신분을 속이느라, 그저 귀족 영애 중 한 명인 시늉을 했다.

“아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허락해준 적은 없지만, 윌리엄은 인사를 받았다.

어찌 됐든 그들을 받아준 것은 그였으니까.

“별말씀을요.”

“저, 그런데 혹시 저를 부르신 까닭이…….”

“그냥 보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윌리엄은 태연히 말했다.

윌리엄의 말에 당황한 미아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그녀를 비웃기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아아, 농담입니다. 미아 양께서는 정말 순진하시네요. 제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고.”

“하하, 죄송해요…….”

무언가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가 흘렀다.

미아는 손을 내려 드레스 자락을 쥐었다가 놓았다.

베아트리체를 대할 때와는 다른 긴장감이었다.

“그래서일까요.”

“…….”

“제가 이 소식을 전해도 분명 기뻐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슨 소식이요?”

“카일렌 황제가 올리비아 형수, 아니 이제는 아니죠. 올리비아 양과 혼인했답니다.”

미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렇다는 말은, 노아와 메릴린이 공식적으로.

미아를 포기한다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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