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비겁한 공격
“……아!”
미아는 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낮게 신음했다.
이안은 그런 미아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바깥을 살폈다.
무슨 일인지는 안 보아도 알 것만 같았다.
“저, 왜 갑자기 앞을 막아선 것인지. 저희는 급한 일이 있어, 얼른 가봐야 하는데…….”
“마차를 열어보아야겠다.”
“네? 안을 보시겠다고요?”
‘이 목소리는, 카일렌의 목소리?’
미아가 식은땀을 흘리며 귀를 세울 때, 이안은 검자루를 손에 쥐었다.
“조금만 참아. 금방 의사를 만나게 해줄 테니.”
“어, 어디 가시려고요.”
“이번에야말로 그대가 돌아갈 곳을 없애겠어.”
“이안 경!”
미아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이안의 옷깃을 쥐어 당겼다.
둘이 부딪히는 것은 싫었다.
여기는 달브고, 이안은 보나 마나 은밀히 자신을 찾느라 수족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싸움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를 죽이는 게 그렇게 두려운가?”
“그런 게 아니에요!”
미아는 답답한 마음에 큰소리를 뱉어냈다.
실수였다.
이안은 얼굴이 구겨졌다, 물론 그 얼굴을 미아가 볼 수는 없었지만.
“미아?”
밖에서 미아를 찾는 카일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은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미아의 손을 뿌리쳤다.
미아의 손이 빈 허공을 쥐었다.
곧이어 마차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안, 안 돼요. 이안!”
미아는 몸을 틀어 따라 나가려 했지만, 결박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안은 미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차를 돌아보았다.
미아가 그를 부르고 있었으나, 그에겐 여유가 없었다.
카일렌이 검을 빼 들고 이안의 앞에 섰다.
확실히 전과는 다른 기세였다.
자신의 아내를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사내의 투지 같은 것이 엿보이는 눈빛이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이안 경?”
“비키지 않으면 베겠습니다.”
상대는 다섯 명이었다.
곧 늘어날 터였고, 늘어난다면 싸움은 불리해졌다.
돌파하려면 지금뿐이었다.
이미 마차를 모는 마부는 겁에 질려 있었다.
“예정대로 마차를 몰아.”
이안이 낮게 명령했다.
마부는 카일렌의 눈치를 살피며 말의 고삐를 바짝 쥐었다.
카일렌이 눈짓하자, 기사들이 마부의 주위를 에워쌌다.
“비켜.”
“경이라면 비키겠습니까? 마차를 열고, 황태자비 전하를 모셔라.”
“여기 그런 여인은 없는데.”
“아까 분명 목소리를……!”
“황태자비는 여기 없어. 그대의 부인은 황궁에 있지 않은가? 여자 하나로 만족 못 할 만큼 가벼운 성미라는 것은 알겠지만, 내 여자에게 손대는 꼴은 보지 못하겠는데.”
내 여자.
카일렌은 뱉지도 못한 말을, 감히 이안은 스스럼없이 잘도 뱉어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내가 그녀를 부르는 호칭에 불만이라도 있는 모양이군.”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선을 또 넘는다면, 그때는 참지 않겠습니다.”
카일렌은 나직이 말했다.
참을 만큼 참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미아를 찾지 못한다면, 카일렌이 가진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 때문에 곤란한 줄은 알겠지만, 그걸 이겨내는 것 또한 황태자의 몫일 테지.”
“내 아이를 가진, 내 부인입니다.”
아이라는 말에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이안이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날카로운 검의 날이 번쩍하고 빛을 내며 허공을 갈랐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검과 검이 맞닿았다.
그 소리를 기점으로 기사 두 명이 마차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차의 문을 열어젖혔다.
“황태자비 전하!”
그들은 그 안에 눈이 가려진 채 묶여있는 미아를 보고 놀란 듯 입을 벌렸다.
카일렌은 이안의 정신이 마차로 향한 틈을 타 이안에게 칼을 휘둘렀다.
예리한 칼끝이 이안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이안은 발을 뻗어 카일렌의 다리를 넘어뜨리고 마차 안으로 몸을 욱여넣는 기사의 배에 검을 찔러넣었다.
울컥, 하고 기사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퍼지는 피비린내에 미아가 사색이 됐다.
“……그대로 있거라.”
“이안,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가만히 있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옆에 있던 기사가 칼을 들고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이안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칼을 몇 번 피하며 장단을 맞추다 기사에게 빈틈을 보였다.
기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순간, 이안은 기사의 손목을 잘라냈다.
검을 든 손이 날아가며 피가 솟구쳤다.
“아아악!”
기사의 비명이 컸다.
미아의 몸이 달달 떨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안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바닥을 나뒹구는 기사의 모습을 본 카일렌은 사색이 되었다.
물론 검술을 익히고 배웠던 그였지만, 실제 검으로 사람을 찌르거나 다치게 한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의 곁에는 늘 그를 지켜주던 호위 기사들이 있었다.
강하고 큰 이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한 번에 무너졌다.
목숨을 걸고, 매 순간 분투해온 이안과 주어진 대로 살았던 카일렌의 삶은 근본부터가 달랐다.
“다음은 너다.”
이안이 카일렌을 향해 검을 겨눴다.
카일렌은 뛰는 심장을 간신히 내리누르며 검을 고쳐 쥐었다.
배운 대로만 하면 돼, 배운 대로만 하면 할 수 있어.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챙, 쓰윽, 챙!
검과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검날끼리 긁히며 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위를 울렸다.
이안은 카일렌을 몰아치듯 공격해왔다.
몸이 뒤로 밀리며 마차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카일렌으로서는 공격을 막아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약점을 보일 때까지, 그때까지만 우선 버티자.
그렇게 생각한 카일렌이 어떻게든 힘을 내보려고 할 때, 히이잉! 하는 말의 소리가 들렸다.
“미아!”
마부가 혼자 도망가자, 검이 반사시킨 빛에 놀란 말이 혼자 앞발을 들고 달려나가려 했다.
이대로라면, 미아가 위험했다.
거의 이긴 싸움이었으나, 이안은 과감히 카일렌을 등졌다.
말이 뛰어오르자 마차의 앞이 들렸다.
“꺄악!”
미아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눈이 보이지 않자, 공포는 두 배로 커졌다.
몸이 앞으로 쏠렸으나, 포박한 줄 때문에 떨어지지는 못하고 허공에 발이 떴다.
“…….”
카일렌이 당황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안은 앞으로 곧장 달려나가는 말 때문에 크게 기울어지는 마차로 향했다.
그러곤 곧장 말과 마차를 연결하는 줄을 차례로 끊어냈다.
마차의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며 문이 열렸다.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바퀴가 깨졌다.
깨진 바퀴와 함께 무너지는 마차 속으로 뛰어든 이안이 미아를 묶고 있던 줄을 끊었다.
마차가 급격히 기울어졌다.
저러다간 두 사람 모두 마차에!
카일렌이 황급히 넘어가는 마차를 등으로 받쳐 들 때, 이안은 미아를 품에 안고 굴렀다.
“이, 이안?”
미아가 떨리는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이안은 미아의 머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어깨를 힘주어 안았다.
마치 괜찮다고 다독이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카일렌은 마음에 생채기가 난 것만 같았다.
“……재밌군.”
이안은 카일렌을 올려보았다.
카일렌은 금방이라도 이안의 목을 베어낼 듯 검을 쥐고 있었다.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미아의 눈을 가린 채로 품에 안은 이안의 모습이 카일렌을 자꾸만 자극했다.
죽이고 싶다. 죽여버리고 싶다.
한 번도, 변한적 없던 미아가 이렇게 변한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그만 없으면 미아의 마음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검으로 이안을 베고 싶은데.
“……카일렌?”
미아가 카일렌을 불렀다.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듯했다.
이 정적과 살기 속에 이안과 카일렌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쯤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불쌍한 너에게 알려주고 싶은 사실이 있군.”
‘나를 자극하지 마.’
카일렌은 이안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수세에 몰린 것은 자신이면서도, 여유를 보이는 이 모습이 미칠 듯 싫었다.
대체 뭐가 다르기에, 뭐가 그렇게 잘났기에 이안은 이런 순간에도 여유롭단 말인가.
“미아는 나를 선택했다.”
“…….”
“미아는 나를 바라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
“닥쳐!”
카일렌은 검을 높게 쳐들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부정하고 싶었을 뿐이다.
검이 허공을 가르며, 바람을 일으켰다.
“안 돼요!”
그 순간이었다.
미아가 이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알고, 아니 그보다 검을 겨눈 것을 알면서도?
뒤늦게 힘을 빼었지만, 미아의 머리칼이 잘려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리석긴!”
이안은 미아를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섰다.
검을 쥔 이안의 손이 카일렌을 겨눴다.
“미아, 당신은 나의 아내입니다! 어째서 다른 남자를 위해 목숨까지!”
“카일렌, 이건 아니에요. 이안, 이안도 나를 놓아줘요.”
미아가 버둥거렸으나, 이안은 끄떡없었다.
이안이 카일렌을 쏘아보았다.
형형한 눈빛 안에 담긴 냉소가 카일렌의 마음속 깊은 곳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더는 내 앞을 막지 마.”
이안은 미아의 팔을 당겨 제 목에 두르게 한 뒤 걸음을 옮겼다.
툭, 무슨 기척이 나는 것 같았으나 미아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어, 어디 가는 거예요? 이안, 이것 좀 풀어줘요.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요.”
“…….”
“이안, 일단 괜찮은지부터 좀 보고.”
“말이 많군.”
“…….”
누가 말을 더럽게 안 들어서.
미아는 이안의 목에 두른 팔을 풀었다.
하지만 이안이 더 빨랐다.
그가 그녀의 양 손목을 속박하듯 한 손에 쥔 채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할수록 불편해지는 건 너다.”
“걷는 게 서로 편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
“이거 좀 놔봐요. 아까부터 자꾸 내 뜻은 전부 무시하고 있는데, 그럴 거면 그냥!”
미아는 속상했다.
아까 무슨 일이 일어난 지는 몰라도, 싸움이 벌어진 것이라면 이안이 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괜찮은지만 살피고 싶은데, 어떤 모습인지라도 보고 싶은데.
“말을 잇지 않는군.”
“지금 내려주면 안 떠날게요.”
“…….”
“진짜.”
“…….”
“약속.”
투욱.
그제야 천천히 이안이 미아를 바닥으로 내려두었다.
이안은 미아를 가만히 응시하였다.
주위의 기척을 느끼려는 듯 두리번거리는 미아의 얼굴에 피가 튀어있었다.
이안은 품에 손을 넣어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미아의 얼굴을 닦는데, 그녀가 이안의 손목을 낚아채듯 쥐었다.
휘릭, 순식간에 미아의 눈이 드러났다.
이안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안?”
미아는 생전 처음 보는 이안의 파리한 얼굴에 당황한 듯 그를 불렀다.
이안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급히 그의 얼굴을 쓸었다.
그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툭, 투둑.
아래를 향한 그의 손을 따라 핏방울이 떨어졌다.
미아는 제 위로 쓰러지는 이안의 몸을 받아냈다.
등을 끌어안자 뜨겁고 미끈한 액체가 손을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이안, 이안?!”
미아가 이안을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곧 이안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미아가 이안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넘어지는 순간조차 이안은 미아가 머리를 찧을까 제 손을 그녀의 머리 아래로 받쳤다.
“잠시 쉬었다 가지.”
“…….”
“잠시면 돼, 잠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