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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예비 시어머니의 등장 (42/95)

42화. 예비 시어머니의 등장



 

비잘린? 다르뷔?

성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아는 우왕좌왕했고, 이안은 그런 미아가 사랑스러웠다.

비록 어머니의 등장은 달갑지 않았지만, 저의 존재를 설명할 때 드디어 ‘다르뷔’를 언급했다는 것이 크나큰 발전이라면 발전이었다.

“다르뷔.”

이안은 마치 제가 제 손으로 직접 답을 골라주듯 그렇게 말했다.

미아는 혼인도 안 한 사이에 그런 칭호를 붙이는 것이 맞는 일인지는 알 수가 없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대체 저 아이의 어디가 좋은 거지?’

저런 허술한 점?

베아트리체는 미아를 빤히 보던 시선을 거뒀다.

특별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다만, 눈동자가 총명하고 소박하면서도 온화한 것이 인상은 썩 좋았다.

“안으로 안내하지.”

“들어오시게요?”

“그럼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겠니.”

이안은 반갑지 않은 듯한 얼굴로 걸음을 돌렸다.

미아는 자연스레 이안을 쥐고 있던 팔을 빼어내려 했지만, 이안은 미아의 손을 찾아 쥐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순간도. 그것도 베아트리체의 앞에서는 더욱.

베아트리체의 시선이 맞잡은 둘의 손으로 향했다는 것을 눈치챈 미아의 몸이 굳었다.

“……저어, 손 좀.”

미아가 이안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안은 그런 미아의 목소리를 듣고도 별 반응이 없는가 싶더니 오히려 힘을 주어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몸이 더 바싹 붙자, 그녀의 전신을 훑은 긴장과 염려가 그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놓고 싶은가.”

“그게 아니라, 보시니까.”

“누가.”

“화, 황태후 전하께서.”

“보면 안 되나? 그대는 내 것인데.”

“…….”

“내 것을 자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

자랑하다니.

자랑할 것이 뭐가 있다고.

괜히 그 말을 들은 미아의 뺨이 달아올랐다.

이안은 이렇게, 낯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정답구나.”

베아트리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안은 애써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반응할 가치조차 없었다.

저 말을 하는 저의가 뻔했기 때문이다.

이안은 베아트리체에게 순순히 미아를 내어줄 생각도, 빼앗길 생각도 없었다.

베아트리체가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아가 아까워죽겠으니까.

“아, 아니에요.”

거기에 또 순순히 대답하는 것은 미아였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아의 손등을 엄지로 쓸어내렸다.

긴장을 풀어도 좋다는 듯한 그의 행동에 큼지막한 손에 잡힌 그녀의 손이 꿈질거렸다.

이런 미아의 행동이 더욱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건 아는지.

이안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미아를 지키는 것은 오직 그 뿐이다.

아무리 그 상대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냉철한 여자일지라도.

❀ ❀ ❀

“…….”

“…….”

미아는 어색한 분위기를 견뎌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주방에 가서 뭐라도 돕는다고 할 것을 그랬어.’

속으로 생각하던 미아는 이안과 베아트리체의 눈치를 번갈아 살피며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차를 마시려는 미아를 말린 것은 이안이었다.

“먹지 말아라.”

“어미를 의심하는구나.”

의심?

날카롭지는 않지만 다소 의문스러운 이안의 행동에 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안은 시선을 베아트리체에게 돌렸다.

“의심하지 않게 생겼습니까?”

“내가 먼 황궁에서부터 직접 챙겨온 찻잎이다. 먹어보지도 않고 그것을 독차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독차?

이어 들린 말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물론 찻잎을 직접 챙겨온 것도, 차를 우려준 것도 베아트리체였다.

그러나 설마 그녀가 독차를 먹이려 했을까.

미아는 턱 벌어지려는 입을 애써 힘을 줘 다물었다.

“먹고 나면 이미 늦었습니다. 죽음으로 아는 것이 의미 있습니까?”

“독차가 아니다.”

“믿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마시면 믿을 것이냐? 어미에 대한 믿음이 이리 없어서야.”

“누구보다 제가 죽기를 바라시는 분이 어머니시잖습니까. 게다가 아무도 믿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머니이십니다.”

……무슨 모자지간의 대화가 이래.

미아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위의 대화에 머리가 어질할 정도였다.

이안이 근거 없는 말을 할 사람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베아트리체가 진심으로 독차를 그들에게 권했을 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끔찍한 가정이었다.

“미아 양, 드셔 보세요. 몸에 좋은 차입니다.”

“미아, 절대 먹을 생각하지 마.”

“제가 미아 양을 생각해 특별히 가져온 차인데, 마시지 않는다면 서운합니다?”

“……서, 서운하시다고요?”

두 사람을 번갈아보다 눈이 핑그르르 돌 뻔한 미아가 베아트리체의 말에 놀란 듯 되물었다.

표정이 사색이 된 것이 보였다.

‘쯧, 저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고작 서운하다는 말에 동요하는 사람이 어쩌다 이안의 눈에 든 것일까.

제 아들의 안목을 시험할 좋은 기회임을 안 베아트리체가 일부러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과장되게 슬픈 얼굴이 된 그녀를 걱정하는 미아의 눈빛이 여실히 느껴졌다.

베아트리체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상큼한 찻잎 향이 입안에서 터져 나오더니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맛이 좋은 차인데.”

“그래도 마시지 마.”

“이, 이안 경.”

미아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이안을 불렀다.

이안의 시선이 미아를 향하자, 미아가 결심한 듯 찻잔을 들어 보였다.

“미아. 경솔한 짓은 삼가.”

“하지만, 전 이 향을 맡아본 적이 있어요. 달브 황국에서도 먹어본 적이 있는 차 같아요. 간혹 바트르 황국에서 달브 황국으로 차와 특산품을 보내주시곤 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먼저 마셔볼게요. 괜찮으면, 이안 경도 마시는 거예요. 어때요?”

이안과 베아트리체 사이에 있었던 일은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쁜 채로 둘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이안은 외롭고 편이 없다.

베아트리체가 그의 편이 되어주진 못하더라도, 죽으라 말할 만큼 미워하지는 않길 바랐다.

아직 겪어본 적이 없는 미아이기에, 베아트리체가 얼마나 음흉한 사람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이안을 해하려고 했다면, 윌리엄이 즉위하자마자 이안을 제거할 수도 있었다.

끔찍한 생각이지만, 역대 폐위된 왕들의 말로를 생각하면 그랬다.

하지만, 이안은 처형당하지 않았고 이곳에서 자신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아는 베아트리체를 믿기에 충분하다 여기고 있었다.

“생각도 말 거라.”

“좋은 생각이네요, 미아 양.”

게다가, 이안은 전에 본 적 없이 말이 많았다.

어머니의 말에 꼬박꼬박 답을 하는 모양새를 보니,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가 형성되기 전에는 분명 친밀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만 같았다.

잠시 다투었다거나, 서로 오해가 생긴 것이라면 풀 수 있지 않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미아는 이내 찻잔을 다시 들어올렸다.

“미아. 당신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었나?”

그제야 이안은 평소와 다른 낯설고 차가운 목소리를 내었다.

미아는 냉담한 그의 반응에 놀라 그를 보았다.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가졌다’고 생각하는 그인 줄은 알았지만, 주인이라는 표현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쓸 줄은 몰랐다.

“주인이라니. 여인을 소유물처럼 다루면 안 되지.”

베아트리체는 이안을 타이르듯 말했다.

이안은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럼 자식을 소유물처럼 대하는 것은 됩니까?”

“그건 다른 문제잖니. 네가 가진 모든 것, 네게 주어진 모든 것은 내가 준 거니까.”

베아트리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테이블 위로 기울이더니, 이안의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미아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으나, 이안에게는 명확히 들릴 만큼 또렷한 목소리와 발음으로.

“네가 얼마나 천박하게 태어났는지, 그런 너를 어떻게 황제로 만들었는지 잊은 것은 아니겠지.”

베아트리체의 말에 이안의 몸이 굳었다.

미아는 그런 이안을 힐긋 보다가 손에 든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미처 이안이 말리기도 전에 차를 한 모금 머금은 미아는 꿀떡하고 차를 삼켰다.

그래, 이 맛은 분명 아는 맛이었다.

나쁜 맛이 아니다, 오히려 과일 향이 매우 싱그러운 차였다.

아이가에서는 특히 맛보기 어려운 맛이었다.

이걸 고른 베아트리체의 성의와 정성이 느껴지는 맛이기까지 했다.

“너, 너무 맛있어요!”

“내가 마시지 말라고 분명히……!”

“그렇죠?”

“이안 경도 드셔보세요!”

이안은 미아의 손에서 찻잔을 쳐냈다.

바닥으로 떨어진 찻잔이 깨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의 얼굴이 차게 식어있었다.

어째서 말을 듣지 않은 건지, 미아는 왜 스스로 어리석게 위험을 자처한 건지.

순간적으로 튀어오른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큰 소리에 놀라 달려온 시중이 바닥에 떨어진 찻잔을 보고 얼른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지러 자리를 피했다.

미아는 멍하니 이안을 보았다.

이안이 화를 낸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렇지만.

“자, 이걸로 피를 닦으세요.”

베아트리체는 미아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아차 싶은 마음에 그제야 이안이 시선을 내리자 미아의 발목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깨진 컵의 조각이 살갗을 긁고 지나간 듯했다.

“가, 감사합니다.”

미아는 조용히 몸을 숙여 제 발목을 닦으려 했다.

이안은 그 손수건마저 팽개치고는 자신의 옷깃을 찢어 미아의 상처를 닦았다.

그리고 상처 위로 천을 동여맸다.

“정말이지, 경계가 과하구나.”

“내 말을 대체 왜 안 듣는 거지?”

이안은 베아트리체의 말을 무시하고 곧장 미아에게 소리쳤다.

미아는 억울함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벌렸다가 오므렸다.

그때였다.

“헙…….”

미아는 안을 저미는 듯한 통증에 숨을 들이켰다.

일순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이 일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온몸의 세포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미아?”

갑자기 안색이 변한 미아의 모습에 이안이 당황했다.

미아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이안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희게 질린 손끝이 벌벌 떨렸다.

이안은 휘청거리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미아의 몸이 아래로 쓰러지듯 기울었다.

그런 미아를 끌어안은 이안이 베아트리체를 노려보았다.

“대체 차에 무엇을 탄 겁니까?”

“차에 아무것도 타지 않았어. 그 차는 그냥 차일 뿐이다.”

“그런데 멀쩡하던 미아가 갑자기 이럴 리가 없잖아!”

모두 웅웅거리는 것만 같다.

미아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리는가 싶더니 곧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녀의 몸 위로 열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찻잔을 치우러 오던 애니가 그런 미아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미아님!”

“이상하군, 그 차는 임신한 이들에게만 반응하기 마련인데.”

“뭐라고?”

“설마 아이를 가진 것이냐, 미아 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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