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좋아하는 것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뭐라도 해줄 텐데.
이안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 싶다는 욕구가 언제부터 자리 잡았는지는 모르지만, 미아는 꼭 그의 마음에 드는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
이제 미아가 보고 살아야 할 사람은 이안뿐이었으니까.
단순히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과는 다른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건 맛있었다.”
한참만에 이안이 입을 열었다.
미아가 눈을 반짝였다.
“네? 어떤 거요?”
드디어 좋아하는 것을 말해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대가 만든 빵.”
“제가 만든 빵이요?”
“그래, 사과가 들어갔던 것.”
설마. 진짜?
미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이안은 예의 그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 그냥 먹을만 하시다고…….”
“……그건 찬사가 아닌가?”
세상에 어느 누가 찬사를 그렇게 할까.
하지만 이안은 분명 그녀가 한 음식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없지만, 단 것도 질색이지만, 그녀가 만든 빵만큼은 맛있다고 답했다.
미아는 저도 모르게 신이 났다.
작게 어깨를 들썩이며 만족의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며 그가 고개를 돌렸다.
또 금방 투명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라.
이안은 미아의 반응이 너무나도 뻔해 오히려 우스웠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것을 숨기려, 이안은 애써 얼굴 근육을 경직시켰다.
수프를 가져오느라 자리를 비웠던 애니는 전보다 기분이 좋아진 미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애니!”
식사를 그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미아는 수프를 몇 모금 더 떠먹었다.
그 모습을 본 애니는 감격해 눈물을 삼켰다.
그녀는 이곳에 와서 무엇을 맛있게 먹는 일이 드물어도 너무 드물었다.
그래서 내심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다.
스프를 떠먹는 미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안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무언가가 손에 잡혀왔다.
그녀가 서재로 갑자기 들이닥친 탓에 미처 숨길 새가 없었다.
가슴이 무거운 것은, 그리고 식욕이 없는 것은 그가 받은 이 서신 때문이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은 미아의 얼굴은 보기 좋았다.
다른 어떤 근심도 얹어주고 싶지 않을 만큼.
게다가 그는 아직 그녀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이가에 남은 것은 가족의 위신을 생각해서라고.
어쩌면 빌어먹을 그 남편의 미래와 안위를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여전히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아서.
“…….”
이안이 조용히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미아의 시야엔 보이지 않게 테이블보 아래로 손을 숨겨 손짓했다.
대기하고 있던 시중이 이안에게 다가오자, 이안은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그리고 조용히 서신을 건네며 시중에게 은근히 눈짓하는 순간,
“무슨 일이에요, 이안 경? 어디 불편해요?”
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알아차리기 전에 몰래 태워 없애려고 했던 그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는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여기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녀를 속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감히 그에게 몇 번이나 되묻거나, 캐물을 생각을 하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그게 옳을까?
평소의 이안이라면 ‘신경 꺼’ 한 마디로 모든 것을 해결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건 신뢰의 문제였다.
어차피 오래 숨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미아의 시선은 곧게 이안을 향해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힌 이안이 입을 열었다.
“달브 황국에서 그대를 보내달란 요청이 왔다.”
“…….”
툭.
미아가 들고 있던 스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달브에서 연락이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미아의 송환 요청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를 돌려달라니, 그런 요청을 아이가에 머무는 이안에게 직접하다니.
“그리고 난 그대를 보내지 않을 작정이야.”
이안은 단호히 말했다.
보내지 않을 작정이면, 달리 뾰족한 수가 있나.
상대는 황국이었다.
그것도 이미 전쟁에서 승리한 적이 있는.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그럼 그대를 보내야 하는가?”
미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존재가 아이가의 위협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가슴을 옥죄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생기가 도는 것 같던 그녀의 얼굴이 곧장 어두워지자 이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런 모습을 보일까봐 들키지 않으려 했던 것인데, 의외로 미아는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저를 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단 말도 있었어요?”
설마 싶었다.
간단한 청이라면, 예의상 했을지도 몰랐다.
‘아이가에 우리 황태자비가 있으니 보내주세요’ 정도의 서신이라면, 그럴듯하게 거절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어진 이안의 말은 이런 기대를 깨기에 충분했다.
“무력을 써서라도 되찾으러 오겠다는군.”
미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력’이라는 말이 주는 위압감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무력이요?”
“걱정할 것 없다. 나는 이제껏 진 적이 없으니.”
이안은 그렇게 말하고 더 말할 것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미아의 시선이 그를 좇아 바삐 움직였다.
이안은 애써 그 시선을 무시했다.
그녀의 얼굴에 물든 의구심을 그가 몰아낼 수 없다는 것이, 그녀에게 그가 반드시 이길 거란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이 그를 속상하게 했다.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지.
그리 생각하며, 이안은 스스로를 달랬다.
“식사는 끝난 것 같군. 조금 더 휴식을 취하도록 해.”
미아가 미처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이안은 벽난로로 다가갔다.
그러곤 활활 타오르는 불씨 속에 서신을 던져 넣었다.
미아는 그대로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서신을 쓰자. 마음을 전하는 거야. 난 여기서 잘 지내고 있고, 찾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마음을 전달한다면 아마 달브 황국에서도 더는 나를 찾지 못할 것이야. 간절히 청하면 들어줄 분들이셔, 내 마음을 알아줄 분들이셔.’
급하게 편지지를 찾아 펜을 움켜쥔 미아가 황급히 손을 놀렸다.
‘경외하는 달브 황국의 황제 빌헬,’
그러다 문득 손이 멈췄다.
이건 내 진심인가?
여기서 나는 정말로 잘 지내고 있는가.
그 물음에 그녀는 멍해졌다.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거짓을 써서라도 달브가 아이가를 공격하는 일은 없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사실, 미아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었다.
아이가 안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고, 성의 시중들과도 친해지던 참이었다.
달브 황궁에서 함께하던 사람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곳의 시중들 역시 착하고 고왔다.
그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성주인 이안은 어떠한가.
겉으로는 무심히, 차갑게 구는 것 같지만 그녀의 청이라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들어주었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이기는 해도 그것이 무섭거나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 미아는 정말로.
정말로 ‘잘’ 지내고 있었다.
카일렌의 비밀을 알고 목숨을 스스로 포기하려 했던 그때에 손을 내밀어준 이안 덕에.
여기에 와 그녀를 도와준 애니 덕에, 또 수많은 시중 덕에.
그녀는 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 말도 적을 수 없었다.
미아는 정말 여기에 남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아이가를 위험에 처하게 한다면?
정말로 달브의 황제가 미아를 돌려받겠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건 또 모를 일이었다.
황제는 항상 인자한 표정으로 그녀를 대했지만, 그녀는 그의 속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전쟁도 단 한 마디 ‘감히?’라는 말로 시작한 그였으니까.
그럼 그냥 순순히 달브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을까.
아이가와 이안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순 없으니까.
어째서 나는 어디서든 민폐만 될까.
자기혐오로 빠지지 않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쓸데없는 일을 벌이려 하는군.”
“이안 경?”
언제 온 것이지?
기척도 없이 다가와 알아채지 못했다.
이안은 미아의 손에서 거칠게 편지지를 빼앗아 구겼다.
마치 그녀가 무슨 행동을 할지 전부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뭐 하는 짓이에요.”
“무어라 보내려고.”
“네?”
“여기서 잘 지낸다, 난 여기서 행복하다. 폐위된 폭군의 아이를 가졌고 아이가에서 그와 함께 아이를 키우려 한다. 그렇게라도 보낼 생각인가?”
“……그, 그건.”
“할 수 없겠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대는 황태자비의 자리를 버리고 희대의 폭군과 함께한 여자가 될 테니. 가문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둘째치고, 가족들이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를 테니까.”
“…….”
서글프게도 맞는 말이었다.
아이가에 남겠다고 말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를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저 이안에게 협박받아 이런 편지를 쓰게 됐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럼 그녀에게 남은 수는 대체 무엇일까.
이렇게 되자, 미아는 차라리 카일렌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이냐고.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느냐고.
이제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없고 그 사실만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를 찾겠다는 연락을 막지 않은 것일까.
다른 여자를 데리고 황궁으로 갈 생각을 했다면, 적어도 미아를 찾을 뻔뻔함은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돌아갈 텐가?”
“…….”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인지, 나와 있는 것이 싫은 것인지. 그 둘 모두인지. 나로선 알 방법이 없으니.”
이안이 말끝을 흐렸다.
미아의 시선이 불안하게 그의 시선을 좇았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법 빠른 걸음이 복도를 울렸다.
그가 그녀를 데리고 향한 곳은 성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외진 방이었다.
이런 곳에 방이 있나 싶었다.
“당분간 애니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둘이 사이가 워낙 좋아 다른 일을 꾸밀지도 모르니. 혹여 애니를 불러 다른 뜻을 품었다간 그 아이를 가만두지 않겠다.”
“왜 저를 여기…….”
“가두는 것이다.”
“네?”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이다. 네 마음을 내가 믿을 수 없으니까.”
“……저는, 그냥 누구도 다치는 것이 싫을 뿐이에요. 저 때문에 아이가가 침입을 당한다면.”
“그렇다고 해도 그건 그대의 탓이 아니지.”
“하지만.”
“그럼 믿음을 주겠는가?”
이안이 미아를 끌어당겼다.
허리를 움켜쥐는 손길이 제법 거칠었다.
그녀의 몸이 놀라 순간 뻣뻣해졌다.
갑작스럽게 맞닿은 탄탄한 허벅지의 감촉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 두 입술이.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미, 믿음이라는 건.”
“이렇게 줄 수 없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냐.”
“도망가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어요.”
“내게 한 약속을 지킨 이는 이때껏 아무도 없었다. 살려만 주면, 충성하겠다. 그렇게 말한 자들을 풀어주면 반드시 도망갔지. 내 밥에 독을 타고, 나의 등에 칼을 찔러 넣었다.”
“…….”
“너라고 다르리라, 내가 어떻게 믿어야 하지?”
“…….”
미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지난 시간들이 마치 그녀의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상황이 변하면 마음도 변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자비를 내민 그를 그렇게 배신하였을까.
미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자신을 믿어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아픔을 가늠할 수 없어서, 깊이를 잴 수 없어서.
“쓰리군, 침묵은.”
이안은 그렇게 말하고 방을 빠져나갔다.
조용히 들어온 시중이 가구에 쌓인 먼지를 털고 난로에 불을 올렸다.
그녀는 그가 나간 자리를 가만히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입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