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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향기로운 구원자 (32)화 (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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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오른 해나가 떨리는 손으로 13층의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펼쳐진 광경에 한 번 더 놀랐다.

특실이 있는 층이라 그런지, 로비부터가 일반 병실층과 달랐다.

두리번대며 병실을 찾던 해나가 곧 1310호 밑에 걸린 형우의 이름을 발견하고 병실의 문을 열었다.

“아빠?”

문을 열고 들어온 병실은 꼭 호텔 스위트룸 같았다.

문을 열면 바로 침대가 보이던 6인실이랑은 천지 차이였다.

입구에서 열 걸음은 더 갔을 때야 비로소 큰 방 안의 제 침대보다 큰 침대가 보였다.

침대에 누워 있던 형우가 해나의 목소리에 일어나고,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던 인우도 일어나 해나를 반겼다.

“왔어요?”

해나는 놀라 심장이 벌렁벌렁한데, 너무도 평온한 인우의 인사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순간 아빠도 잊고 인우를 향해 돌진한 해나가 큰 소리를 내자, 형우를 의식한 인우가 해나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아버님 쉬시게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죠.”

그제야 아빠를 의식한 해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빠, 나가서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쉬고 있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형우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나는 인우의 손목을 잡고 병실 밖으로 나와 13층의 휴게실로 향했다.

8층의 휴게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잔디밭이 깔린 외부 휴게실이었다.

“지금 이게 다 무슨 상황이에요?”

하루아침에 달라진 병실과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는 해나가 팔짱을 끼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해나 씨 혼자 병실 이동하려면 힘들 것 같아서 제가 먼저 와서 처리했습니다.”

별일 아니라는 듯한 인우의 태도가 거슬린 해나가 앙칼지게 말했다.

“최소한 저한테 귀띔이라도 했었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오전 내내 업무를 처리하는 데 바빠 휴대폰 확인을 하지 못했던 해나가 그제야 휴대폰을 꺼냈다.

[아직 도착 전인가 보네요. 수납과 병실 이동은 제가 하겠습니다.]

정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제야 그 메시지를 확인한 해나가 머리를 짚었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데, 아버님 주치의를 만났습니다. 어제 본 저를 기억하고 말을 걸더군요. 지금 병실 이동이 가능하다고 해서 해나 씨가 언제 올지 몰라 먼저 했습니다.”

휴대폰을 확인하지 못한 제 불찰이었다.

그래도 어딘가 억울하고 답답한 해나가 병실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식의 대우는 과해도 너무 과했다.

이 과함이 부담스럽고 불편한 해나가 따져 물었다.

“병실 선택 정도는 저한테 물어봤어야죠. 제 상황에 특실이 가당키나 해요?”

“상황이 어떤데요. 특실은 왜 안 됩니까.”

“몰라서 물어요? 특실 하루 입원비가 얼만 줄 알아요? 나는 집중 치료실 입원비도 신용카드 할부로 결제했어야 했어요. 6인실은 아빠한테 미안해서 무리해서라도 2인실로 바꾸려고 했는데, 특실은 비싸도 너무 비싸잖아요.”

자존심에 돈 얘기는 하지 않으려 했지만, 상황이 어떻냐고 묻는 인우에게 똑바로 알려 주어야 했다.

그래서 해나는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했다.

말하면서도 부끄럽고 창피해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돈을 왜 걱정합니까. 내가 있는데.”

인우는 정말 이해가 안 됐다.

집중 치료실 입원비도 제가 수납했고, 특실 입원비도 해나에게 내라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해나가 이만큼 화를 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니까 그걸 인우 씨가 왜…!”

해나는 창피하고 미안해 자꾸만 화가 치밀었다.

이미 계약금을 3억이나 받았는데, 저를 위해 또 큰돈을 쓰게 하는 게 용납이 안 됐다.

“난 해나 씨를 위해서 돈 쓰면 안 됩니까.”

들려온 인우의 대답에 해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너무도 악의 없고 순수한 말이었다.

“내가 이러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계약금은 계약금이고, 이건 그냥 내가 이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버님을 시끄럽고 작은 병실에서 계시게 하고 싶지 않았고, 해나 씨를 딱딱하고 좁은 침대에서 자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 달라고 한 적 없고, 할 생각도 없어요. 난 그저 조금이나마 편했으면 좋겠어서 그런 겁니다.”

인우의 솔직한 고백에 해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놀란 인우가 해나의 손을 잡고 일으키려는데, 해나가 인우의 손을 쳐 냈다.

“놔둬요.”

또다. 해나를 위한 배려가 또 해나를 화나게 했다.

인우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화났습니까. 주제넘게 굴어서 미안합니다.”

예전처럼 해나가 도망가 버릴까 겁난 인우는 바로 사과를 했다.

평생 사과해 본 적 없던 인우는 해나를 만난 후로 사과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전보다 훨씬 쉽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인우가 사과를 해 오자 해나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해나의 눈물에 놀란 인우는 어정쩡하게 몸을 굽혀 해나의 어깨를 잡았다.

“웁니까? 왜, 왜 울어요.”

처음 보는 해나의 눈물에 너무 놀라 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었다.

아무래도 이 상태로는 안 될 것 같다고 판단한 인우는 해나를 번쩍 일으켜 주변의 벤치에 앉혔다.

순식간에 벤치에 앉혀진 해나가 다리를 모아 무릎을 끌어안고 한참을 훌쩍였다.

“그렇게 화났습니까…?”

안절부절못하며 해나의 울음이 그치길 기다리던 인우가 해나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고개를 들어 눈물을 닦은 해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인우의 얼굴을 쳐다도 보지 않고 말했다.

“화난 거 아니에요.”

제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 해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인우가 벤치에서 일어나 무릎을 굽혀 해나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럼 왜 울었습니까.”

말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도 이러고 있을 기세였다.

집요하게 얼굴을 봐 오는 인우에게 두손 두발 다 든 해나는 모기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창피해서요….”

“네?”

작은 목소리 탓에 알아듣지 못한 인우가 고개를 돌린 해나의 얼굴을 향해 자세를 바꾸며 되물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해나가 이제는 벽을 보며 소리쳤다.

“창피해서요!”

“도대체 뭐가 창피합니까.”

정말 말하기 싫은데, 인우는 집요해도 너무 집요했다.

어쩔 수 없었다.

주먹을 꽉 쥐고 눈을 질끈 감은 해나가 랩을 하듯 빠르게 말했다.

“이미 3억이나 꿀꺽했는데, 또 돈 쓰게 한 것도. 나는 쳐다도 못 볼 특실을 껌 사듯 아무렇지 않게 선택한 인우 씨 재력도. 그 발끝에도 못 미치는 내 레벨도! 그 와중에도 우리 아빠 편하겠다 생각한 내 양심도. 그냥 하나하나 다 창피하고 분하고 또 미안하고. 그래서 그랬습니다! 됐어요?”

따발총을 쏘듯 빠르게 말하는 해나의 뒷모습이 귀여웠다.

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지 모르고 독단적으로 군 제 자신이 한심했다.

“나 봐요.”

인우가 나긋나긋하게 해나를 부르자, 해나는 기름칠이 필요한 깡통 로봇처럼 끼긱대며 몸을 돌려 인우를 향해 돌아섰다.

해나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간 인우는 해나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창피할 일 아닙니다. 내가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어요.”

순순히 제 탓을 하는 인우의 모습에 해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아버님을 위해서도, 해나 씨를 위해서도 아니에요. 앞으로 나도 매일 올 병실인데 6인실은 내가 불편해서, 나 편하자고 맘대로 옮긴 겁니다. 그럼 괜찮지 않아요?”

인우의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에 해나가 픽 하고 웃었다.

“그게 뭐예요. 내가 애도 아니고. 바보같이.”

해나의 웃음에 용기가 난 인우가 큰 손으로 해나의 얼굴을 감쌌다.

그러고는 긴 엄지로 해나 두 눈가의 눈물을 슥슥 닦아 냈다.

“그러니까 울지 마요. 내가 이기적인 거니까.”

울먹울먹하게 눈물이 맺힌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해나는 심하게 자극적이었다.

이 상황에서 이러는 건 정말 미친놈인 거 아는데, 알면서도 해나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축축이 젖은 해나의 눈과 달리 인우의 두 눈은 점점 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인우 씨…?”

어깨가 점점 아파 오는 걸 느낀 해나가 인우를 불렀을 때였다.

“한 번만 더 이기적일게요.”

“네?”

대답 대신 인우의 입술이 부딪쳐 왔다.

한 손으로 해나의 목덜미를 단단히 받친 인우가 제 몸을 밀착시켰다.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러운 인우의 입맞춤에 놀란 해나의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그 틈으로 인우의 혀가 들어와 해나의 입 안을 쓸어내렸다.

그간의 어린아이 장난 같은 입맞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진한 입맞춤이었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리는 해나를 더욱더 세게 옭아매는 인우 탓에 두 사람의 몸은 밀착되어 가고 있었다.

“하….”

눈을 감지도 못할 만큼 놀란 해나가 숨을 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주먹으로 인우의 단단한 가슴팍을 두어 번 치고 나서야 인우는 제 입술을 떼어 냈다.

“지금, 이게….”

“미안,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정신이 돌아왔는지 연신 사과를 내뱉던 인우는 급기야 뒷걸음질까지 쳤다.

“어, 그러니까 이게 지금….”

“미안해요. 다음에, 다음에 다시 올게요.”

마지막까지 사과의 말을 해 오던 인우는 먼저 휴게실을 떠났다.

해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멈춘 시간 속에 제 심장만 움직이는 것처럼 거세게 뛰었다.

“뭐야…?”

그대로 한참을 서 심장의 움직임이 잦아들기만 바랐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벤치에 앉지도 못했다.

심장이 꼭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다.

힘겹게 벤치까지 걸어가 그대로 벤치에 주저앉은 해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금, 키스하고 도망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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