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향기로운 구원자 (31)화 (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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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주차장에 들어선 인우가 해나를 먼저 올려 보냈다.

“먼저 올라가 있어요. 주차하고 올라갈게요.”

“같이 올라가도 되는데.”

“자리 찾는 데 오래 걸릴까 봐 그래요. 먼저 가 있어요.”

“네. 그럼… 얼른 와요.”

주차장 자리를 찾는다는 핑계로 해나를 먼저 올려 보낸 인우는 주차를 마친 후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아직까지도 입 안에 있던 박하사탕을 뱉어 낸 인우가 물을 틀어 입을 헹궜다.

“매워….”

몇 번 입을 헹구고 나니 한결 괜찮아진 인우가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도착한 집중 치료실 앞에서 의사와 해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방방 뛰며 의사에게 감사를 전하는 해나의 곁으로 다가서자, 해나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했다.

“아빠 상태가 많이 괜찮아졌대요! 오늘 밤까지만 여기 있고 내일부터는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대요!”

“그래요? 잘됐네요. 감사합니다.”

신난 해나를 아빠 미소로 보던 인우가 의사에게 감사를 전했다.

“혹시, 외출은 좀 힘들겠죠? 제가 다음 주에 결혼식을 하는데….”

해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인자하게 웃던 의사는 곧장 단호히 말했다.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외출은 조금 힘들 것 같은데요.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지켜봐야 하는 단계입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색전술을 하려면, 외출이나 퇴원은 너무 위험해요.”

“네….”

의사가 제 말에 시무룩해진 해나를 달랬다.

“컨디션 잘 조절해서 완쾌하시고 나면 어디든 가실 수 있으니까요. 저도 최대한 외출하실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해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의사가 자리를 떠났다.

축 처진 해나의 어깨를 보는 인우의 마음이 불편했다.

“결혼식을 아버님 건강 회복 후로 미루죠.”

인우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리저리 얽힌 문제가 많아도, 해나의 축 처진 어깨를 펼 수만 있다면 결혼식쯤이야 얼마든지 미룰 수 있었다.

“아니에요. 입장 발표도 했고, 청첩장도 다 돌렸고. 지금 미루기엔 너무 늦었어요. 우리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해나는 절대 결혼식을 미룰 수 없었다.

계약금까지 받은 계약 결혼인데, 제 사정을 운운할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아빠가 집중 치료실로 간 사실도 말을 안 한 거였는데, 결혼식을 미루는 건 해나의 상식선에선 불가능했다.

“미뤄도 됩니다.”

“안 돼요.”

“내가 괜찮다니까요.”

“내가 안 괜찮다니까요.”

집중 치료실 앞에서 미루자, 말자로 잠시 실랑이를 벌이는 중에 면회 시간 5분 전이라는 알람이 들렸다.

그러자 두 사람 모두 실랑이를 그만두고 일단 프로텍터로 척척 갈아입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이 숨죽여 웃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돌아온 해나가 인우의 팔짱을 꼈다.

“사이좋아 보여야 하니까, 가요.”

살짝 속삭인 해나가 팔짱을 낀 상태로 걸음을 옮기자,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굳은 인우도 뚝딱대며 입구로 향했다.

“아빠!”

전과 달리 무거운 기계들을 대부분 뗀 형우가 해나를 보며 웃었다.

“장인어른, 저도 왔습니다.”

“오랜만이네.”

늘 자는 모습, 지친 모습만 보다가 너무나 오랜만에 듣는 아빠의 목소리에 해나는 눈물이 터져 버렸다.

“아빠….”

형우의 손을 부여잡고 우는 해나를 보던 인우가 조금 전의 의사처럼 해나의 어깨를 살살 토닥였다.

“아빠 이제 괜찮아, 해나야.”

제 손을 토닥이는 형우의 손길, 어깨를 토닥이는 인우의 손길에 해나의 울음은 점점 거세졌다.

불안했다. 아빠를 위해 한 결혼이었는데 그것도 못 보고 아빠와 영영 이별하게 될까 봐.

매일 혼자 와 힘들어하는 아빠에게 씩씩한 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꼭 주차장에서 30분은 울다 일어났었다.

그간의 설움과 걱정이 한번에 터져 주체되지 않았다.

“해나 씨가 많이 걱정했어요. 저도 그렇고요.”

“너만 독종이게? 아빠도 독종이야. 아빠가 우리 딸 결혼도 못 보고 어딜 가.”

인우의 말에 형우가 해나의 손을 토닥이며 능숙하게 해나를 달랬다.

한참을 울던 해나가 아이처럼 눈물을 슥슥 닦으며 말했다.

“그럼. 아빤 아무 데도 못 가.”

그런 해나를 형우도, 인우도 아빠 미소로 바라봤다.

“아빠 내일이면 병실로 옮겨도 된대. 나 이제 퇴근하면 매일 올 거야. 혼자 저녁 먹느라 얼마나 심심했는데.”

“아이구, 신랑이랑 드셔요.”

해나의 귀여운 투정에 형우가 장난스레 말했다.

해나의 투정과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면회 시간이 끝나 갔다.

“내일 나 반차 내고 오면 병실로 옮길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알겠어, 알겠어. 얼른 들어가.”

형우의 손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던 해나가 마지못해 꽉 잡은 손을 놓았다.

인우가 다가와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린 해나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내일 뵐게요.”

씩씩하게 인사를 한 인우가 해나의 손을 잡고 집중 치료실을 나섰다.

“결혼식 미뤄요.”

프로텍터를 벗자마자 2차전이 시작되었다.

“안 돼요. 아빠한텐 내가 잘 말해서….”

“아버님이 결혼식 보시려고 힘내셨다고 하시잖아요.”

그 말에 살짝 흔들릴 뻔했지만, 해나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안 돼요. 내가 아빠한테 잘 말하고, 의사 선생님께도 다시 한번 건의해 볼 테니까 예정대로 진행해요.”

정말 괜찮은데.

이럴 땐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될 텐데.

아빠 없이 결혼식을 할 해나의 얼굴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똥고집으로 유명한 해나의 고집을 인우가 당해 낼 리 없었다.

“하…. 알겠어요. 결혼식 전까지 아직 며칠 남았으니, 아버님 경과 보고 다시 요청드려 봐요.”

“녜에.”

이 와중에도 잔뜩 울어 코맹맹이가 된 해나의 대답이 귀여웠다.

미친놈.

탱탱 부은 얼굴로 코를 풀며 대답하는 저 모습도 귀여워 보이는 제 자신이 제가 봐도 미친놈 같았다.

“가요.”

코를 한번 팽 푼 해나가 인우를 이끌었다.

주차장에서 단번에 차를 찾아낸 해나가 이제는 꽤나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았다.

부드럽게 운전해 해나를 집 앞까지 모신 인우가 빌라 앞에 차를 세웠다.

“내일 봐요. 아, 자기 전에 얼음찜질 꼭 해요.”

인우가 손가락으로 제 눈을 가리키며 얼음찜질을 하라고 당부했다.

탱탱 부은 눈도 그것대로 귀여워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알아요, 못생긴 거.”

인우의 의도를 알 리 없는 해나가 입을 삐죽였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갈게요.”

인사하고 돌아선 해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인우는 또 한 번 웃었다. 

“귀여워….”

핸들을 작게 팡팡 치며 중얼대던 인우가 늘 그랬듯 해나의 방 불이 켜짐을 확인하고 그제야 차를 돌렸다.

***

“좋은 아침입니다!”

기분 좋게 출근한 해나가 어제보다 더 밝게 인사했다.

자리에 앉아 업무를 준비하던 해나가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하지만 저 오늘 반차를 내게 됐어요. 열두 시부터 자리에 없겠지만, 업무 전화는 받을 수 있으니 편하게 연락 주세요.”

“네, 팀장님.”

휴…. 오늘 점심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직원들이 반가운 해나의 반차 소식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나는 반차를 내게 돼 오후에 해야 할 일까지 처리하느라 오전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딱 11시 50분이었다.

“저 이만 나가 볼게요. 다들 열심히 일해 주시는데 죄송해요.”

해나가 한 번 더 직원들에게 사과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근데 팀장님, 저번에도 연차 꽤 길게 쓰시지 않았어?”

“그러게요. 결혼 준비 때문에 그러시나?”

직원들이 해나의 연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평소에도 저보다 어린 해나 밑에서 일하는 게 싫었던 박 대리가 말을 얹었다.

“아무리 결혼 준비를 한다고 해도 무슨 연차에, 반차에…. 한주 그룹 사모님 된다고 유세 부리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래요. 주임님도 결혼하실 때 연차 한번 안 냈잖아요.”

해나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저번에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져서 급하게 결혼하게 됐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아버지 병원 때문에 그럴 수도 있잖아요.”

해나를 유독 따르던 아영이 해나의 편을 들며 말했다.

“맞아요. 아직 이유도 모르는데 그렇게 뒷말 하는 건 좀….”

“게다가 팀장님이 연차 내신다고 해서 우리한테 일을 넘기지도 않잖아요. 해야 할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하시고, 오늘도 오후 업무까지 다 하시고 가셨는데요.”

몇몇 해나를 존경하고 잘 따르는 직원들이 맞장구를 치자, 할 말이 없어진 박 대리도 입을 닫았다.

늘 화목했던 팀 분위기가 요즘따라 자주 무거워졌다. 싸해진 사무실 안이 적막으로 가득 찼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던 해나는 퇴근 후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집중 치료실 입원비 수납하고, 병실 이동하려고요.”

집중 치료실의 입원비를 익히 들어 떨리는 손으로 신용카드를 내밀며 말하던 해나의 귀에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미 수납 완료하셨다고 확인되고요, 병실도 이동 마치셨어요.”

수납 창구 직원의 말에 토끼 눈이 된 해나가 놀라 물었다.

“네?”

“오늘 아침에 수납하셨다고 뜨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에 잠시 얼이 빠졌던 해나가 카드를 지갑에 넣으며 재차 물었다.

“어…. 그럼 어느 병실로 이동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딸인데….”

“1310호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해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층별 안내도를 확인했다.

“1310호가… 여깄다.”

13층. 상급 병실(특실, 1인실)

안내도에 쓰인 글을 읽던 해나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특실이라니. 보험 처리가 되지 않고 하루에 60만 원이나 하는 입원실이라니.

형우를 6인실에 입원시키고 가슴 아파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하루아침에 특실로 바뀐 병실에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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