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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향기로운 구원자 (26)화 (26/84)

@26

처음 보는 아름의 모습에 해나는 안절부절못했다.

해나는 어설프게 아름의 등을 토닥이며 부러 센 척을 해 가며 오히려 그녀를 위로했다.

“야, 나 그렇게 안 힘들었어. 괜찮아. 내가 누구야. 독종이잖아.”

해나의 말에 자신을 토닥이던 해나를 밀어낸 아름이 소리쳤다.

“그러게, 내가 돈 빌려준다고 했잖아! 주는 거 아니고 빌려주는 거라고, 그거 받았으면 이 지경까진 안 왔어도 됐잖아!”

아름의 말에 해나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 회사 지금 사정 안 좋잖아. 아저씨가 너 계속 선보게 하는 것도 그렇고. 안식년을 포기해도 그 돈은 너한테 쓰는 게 맞다고 봤어. 내가 어떻게 그 돈을 받겠어.”

허를 찌르는 해나의 말에 아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지금 네가 내 사정 걱정할 때야?”

“그럼, 걱정되지. 네가 그냥 친구냐. 내 친구도 됐다가, 언니도 됐다가, 엄마도 되는데.”

“알긴 아네.”

“아무튼 너 화 풀렸으면 됐어. 너한테 혼날 생각에 하루 종일 걱정돼서 입장 발표문도 아직 못… 어? 입장 발표문!”

하루 종일 잊고 있던 입장 발표문이 생각난 해나가 급하게 휴대폰을 찾아 들었다. 

꺼 둔 휴대폰의 전원을 켜자 문자 메시지 알림이 연달아 띠롱, 띠롱 울렸다.

[발표문 확인했습니까.]

[수정 사항이 있다면 오늘 6시 안으로 연락 주셔야 합니다.]

[확인은 해 본 겁니까?]

[왜 연락이 안 돼요.]

[해나 씨.]

[입장 발표문 올립니다.]

휴대폰엔 부재중 전화 두 통과 인우가 자신을 찾은 메시지들이 수두룩했다. 

“지금 몇 시지?”

“몇 시긴. 7시….”

“아, 망했다. 입장 발표문 컨펌을 안 했어.”

“컨펌 안 해도 돼. 내가 아까 봤어. 아주 감동스럽게도 지어냈더라. 지금 인터넷에도 대박이라고 난리야.”

아름이 그렇게 말하면서 태블릿 피시를 해나의 손에 건네주었다.

인우가 혼자 작성하고 올린 입장 발표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주인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주인우입니다.

chi-u의 대표로서, 그리고 한주 그룹의 차남으로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5월,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기로 했습니다.

늘 지친 저를 따스하게 보듬어 주어 치유해 주는 사람입니다.

또 저보다도 능력 있고 멋진 사람입니다.

제가 다른 여성과 약혼할 예정이었다는 기사는 사실이 아닙니다.

1년여 전부터 예비 신부와의 사랑을 키워 왔고, 이제 저희 두 사람 다 확신이 생겨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일이 자연스러웠지만 저의 예비 신부는 일반인입니다.

이 시각 이후로 회사에 찾아가시거나 근거 없는 추측으로 발생되는 일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이게 입장 발표야, 협박문이야?”

입장 발표문을 다 읽은 해나가 헛웃음을 쳤다.

그 와중에 휴지로 코를 한번 킁, 푼 아름이 발표문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콕 집었다.

“여기. 여기가 이상하잖아. 1년 전부터 만났다니. 내가 너한테 소개팅 대타 부탁한 게 한 달도 안 된 일인데. 그래도 뭐, 모르는 사람은 잘 속을 만큼 기가 막히게 써 놨더라. 아주 로맨티스트야.”

“그러게. 아까 컨펌을 했어도 그대로 내보내라고 했겠다. 잘 썼네.”

꽤나 로맨틱하고 해나를 보호하려는 메시지가 강한 발표문이었다.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아무튼. 이렇게 된 거 잘해 봐. 힘들면 우리 집으로 튀어 오고.”

“걱정 마. 나 이제 아빠 면회 가야겠다. 눈 얼음찜질하고 쉬어. 내일 퉁퉁 부을라.”

아름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 해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름의 집을 나섰다.

“아, 그래도 잘 풀려서 다행이다.”

병원으로 가기 전 인우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인우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

잔뜩 굳은 인우의 목소리가 꽤 매서웠다.

-어딥니까.

도대체 휴대폰은 장식인지 뭔지, 해나는 한 번에 전화 받는 일이 없었다.

입장 발표문을 보내고 난 지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는 연락 한 통이 없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기에 결국 정해진 시간에 입장 발표문을 업로드했다.

한참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아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되어 회사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거기서도 해나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머리끝까지 약이 오른 인우가 마지막으로 걸어 본 전화였다.

-어, 저 지금 아빠 병원 가려고요. 그렇지 않아도 인우 씨한테 전화하려는 참이었어요.

하루 종일 사람을 그렇게 약 오르게 해 놓고 본인은 저렇게 태평한 목소리라니.

인우는 차오르는 답답함에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느슨하게 만들었다.

“메시지, 전화. 다 지금 봤습니까?”

인우가 간신히 화를 꾹 눌러 가며 묻자 들려오는 해나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뚝뚝 묻어 나왔다.

-네. 죄송해요, 인우 씨. 오늘 기자들도 그렇고 직원들에 친구들까지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도저히 업무를 볼 수가 없길래 꺼 뒀었어요. 퇴근하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제일 친한 친구가 화가 많이 나서…. 아무튼 죄송해요. 제 잘못이에요.

전투력 풀 충전한 치와와같이 굴 줄 알았는데.

이번엔 너무 쉽게 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 오는 해나의 모습이 의외였다.

“하…. 네. 별일 없는 거면 됐습니다. 쉬세요.”

-저,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병원으로 오실래요?

지쳐 나가떨어지고 싶을 때쯤, 꼭 이때쯤 어떻게 알았는지 해나가 먼저 인우를 찾는다.

그럼 인우는 도저히 거절할 방법이 없다.

항상 해나가 고픈 건 제 자신이기에.

이럴 때면 천하의 개새끼가 되려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주인의 사랑이 고픈 순한 강아지가 되어 꼬리를 한껏 흔들 수밖에 없었다.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넥타이를 다시 고쳐 매는 것도 잊은 인우가 급히 차를 출발시켰다.

해나의 회사와 얼마 멀지 않은 거리의 병원인데도 인우는 늘 해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 걸리는 신호등은 죄다 뽑아 던지고 싶었다.

“도착했어요.”

인우는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주차를 하자마자 해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가 조금 막혀서요. 일단 차에 계세요. 3분이면 도착해요.

그렇게 기다렸는데 3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그냥 애초에 태우러 오라고 하지.”

그 3분이 못내 아쉬워 중얼거린 인우가 운전석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잠시 있으니, 누군가 운전석의 창문을 톡톡 쳤다.

“인우 씨.”

온종일 제 피를 말리던 해나였다.

해나가 다치지 않게 문을 살짝 열자 해나가 뒤로 물러났다.

인우가 내리려고 자세를 잡는데, 별안간 해나의 손이 인우의 목덜미로 향했다.

“넥타이가….”

아까 느슨하게 풀어 놓고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넥타이였다.

익숙하게 넥타이를 정리해 주는 해나의 손길에 인우는 숨조차 뱉을 수 없었다.

셔츠 위로 넥타이를 정리해 주는 것뿐인데 제 모든 걸 송두리째 잡고 흔드는 기분이었다.

등 위로 한 줄기 땀이 흐르고, 아래쪽이 묵직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넥타이를 다 정리하고서야 인우의 얼굴을 쳐다본 해나가 황급히 변명했다.

“아, 아빠가 어디 나갈 때 넥타이를 고쳐 주던 게 습관이 돼서….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자 인우는 그제야 참은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고… 아니, 그런데 왜 병원으로 불렀습니까?”

괜찮다고 말한 후에 하마터면 고맙다고 말할 뻔했다.

재빨리 말을 돌린 인우가 해나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도 해나는 듣지 못한 듯했다.

“결혼 발표도 했으니까 아빠한테 말하려고요.”

“아버님은 모르십니까?”

“네.”

“말씀을 안 드렸습니까? 도대체 왜….”

놀라 영문을 묻는 인우에게 해나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 보면 알아요.”

해나가 인우를 데려간 곳은 인우도 가 봤던 병실이 아닌 집중 치료실이었다. 들어가기 전 소독을 하고 프로텍터까지 입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집중 치료실로 들어가자 이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기구를 달고 있는 형우가 보였다.

해나가 씩씩하게 아빠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인우는 가만히 선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 나 왔어. 오늘은 인우 씨도 같이 왔어.”

해나의 말에 눈을 뜬 형우가 손가락과 눈동자를 움직였다.

“인우 씨! 빨리 와요!”

해나가 아직 입구에 서서 그저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는 인우를 불렀다.

인우는 해나의 부름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저 왔습니다, 장인어른.”

이제 너무도 자연스럽게 장인어른이라 부르는 인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형우가 작게 웃었다.

해나가 아빠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빠, 우리 이제 곧 결혼해. 식장도 예약했고, 드레스도 골랐고 ,청첩장도 나왔어. 아빠 얼른 나아서 결혼식에서 이렇게 내 손 잡아 줘야지, 그렇지?”

해나의 말에 형우는 제 손을 잡고 있는 딸의 손을 한 번 꽉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본 인우가 반대편으로 가 형우의 손을 잡았다.

“장인어른, 이제야 찾아와 죄송합니다. 얼른 쾌차하셔서 결혼식에서 꼭 뵙고 싶어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해나가 씩씩한 목소리로 형우에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아빠 많이 괜찮아졌대. 아빠가 힘낼 수 있게 도와주라고 하셔서 오늘 인우 씨도 데려왔어. 얼른 힘내서 일어나야 해. 알겠지?”

말을 마친 해나가 형우의 손에 입을 맞췄다.

인우는 아빠의 옆에 서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해나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면회 시간이 끝나가자 해나가 형우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일 또 올게, 아빠.”

형우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인우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저도 이제 같이 오겠습니다.”

인우의 말에 놀란 해나가 인우에게 눈짓을 보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해나의 눈짓을 가볍게 튕겨 낸 인우가 말을 이었다.

“매일 해나 씨랑 같이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나으세요, 장인어른.”

그 말에 형우가 인우의 손을 한 번 더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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