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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향기로운 구원자 (25)화 (25/84)

@25

“이, 이게 뭐야….”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한 해나의 눈에 보인 광경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회사의 정문은 해나를 보러 온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어? 오해나 아니야?”

자신을 알아보는 듯한 기자에 재빨리 뒤돈 해나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와 섰다.

“수진 씨, 가요.”

영우의 목소리였다.

출근길에 기자들 탓에 들어가지 못하는 해나를 발견한 영우는 해나를 수진이라 부르며 뒤에서 어깨를 잡아 앞으로 밀었다.

“뭐야, 아닌가 보네.”

영우 덕에 기자들이 금방 해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감사합니다.”

해나가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별말씀을요. 얼른 가죠, 수진 씨.”

후문으로 회사에 들어온 해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놀랐죠?”

마침 그 모습을 본 영우가 다가와 다정하게 묻자, 해나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네. 완전…. 생각도 못 했어요, 이런 거.”

영우가 해사하게 웃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셀럽의 삶이랍니다.”

영우의 능청에 놀란 마음이 진정된 해나가 장난스레 하소연했다.

“하루아침에 셀럽이 돼 버린 일개 일반인인 저는 이 상황이 너무 놀랍네요.”

“그럴 거예요. 인우가 오늘 인정 기사 낸다고 했으니 조금만 참아요. 인정 기사 뜨면 기자들은 회사의 직원 보호 차원으로 출입을 막을게요.”

“매번 감사합니다, 전무님.”

자신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해나의 얼굴에 장화 신은 고양이가 겹쳐 보였다.

“아니에요, 그럼 가서 일 봐요.”

“네. 좋은 하루 되세요, 전무님.”

정문의 기자 떼라는 큰 난관을 겨우 헤치고 사무실에 들어왔건만, 사무실에는 기자들보다 더한 하이에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저번에 와서 팀장님 찾던 그분 맞죠?”

“와,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더니만. 우리 회장님 아들이었다니.”

“이번에 출시된 향수도 대박 났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저희를 속이실 수가 있어요!”

잔뜩 흥분한 직원들이 대답할 틈도 없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아직 업무는 시작도 안 한 해나는 마치 이틀 내리 야근한 듯한 피로감을 느꼈다.

“나 말 좀 하자. 저 말 좀 할게요, 여러분.”

해나가 갑자기 찾아온 두통에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이제 모든 직원은 해나의 입만 바라보는데, 해나는 입을 열긴커녕 가방만 뒤적였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직원들이 해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팀장님!!”

“찾았다.”

직원들의 타는 속도 모르고 열심히 가방을 뒤적이던 해나가 청첩장을 꺼내며 말했다.

“하나씩 받아요. 청첩장 주면서 말하려고 했는데 기사가 먼저 났지 뭐예요.”

청첩장을 받은 직원들이 서둘러 너도 나도 청첩장을 펼쳐 봤다.

“주영호‧이혜영의 차남 신랑 주인우, 오형우의 장녀 신부 오해나.”

“우리 회장님 성함 맞잖아!!”

놀란 직원들이 또다시 해나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대박. 그럼 팀장님 이제 한주 그룹 며느리 되시는 거예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거예요?”

“얼마나 만나셨어요?”

“프러포즈는 어떻게 받으셨어요?”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머리가 멍해진 해나는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저희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급하게 식을 올리게 됐어요. 자세한 건 곧 있을 입장 발표로 확인하시고, 일들 합시다, 일!”

“팀장님!!”

“자, 일합시다, 일!”

해나의 단호한 말투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직원들이 다들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을 때, 막내 직원 아영이 쭈뼛쭈뼛 걸어와 칭얼거렸다.

“너무해요, 팀장니임….”

해나는 말끝을 늘이며 앙탈을 부려 대는 아영에게 무심하게 답했다.

“기획서 완성은 하시고 너무하다 하시는 거죠?”

“넵. 돌아가겠습니다.”

뜨끔한 아영까지 자리로 돌아가자 해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도 하기 전에 영혼이 털려 버린 해나에게 또 하나의 난관이 닥쳐왔다.

“하…. 올 것이 왔구나.”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꺼내 든 해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단 두 글자로 해나를 잔뜩 긴장시킨 주인공은 아름이었다.

아마 오늘 아침에 기사로 이 사실을 접하고 잔뜩 화가 나 전화했을 것이다.

심호흡을 마친 해나가 눈을 질끈 감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

-야!! 오해나!!

한마디도 채 마치기 전에 귀를 때리는 아름의 사자후에 정신이 아찔한 해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지금 회사라서, 이따 저녁에 너희 집으로 갈게.”

-퇴근하자마자 뛰어와라.

아름은 그 말을 끝으로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목소리에 아름의 분노가 여실히 묻어났다.

요 며칠 이 미친 결혼 준비로 바빠 아름을 잊었던 해나가 망연자실했다.

“또 뭐야….”

아름의 전화가 끊긴 지 1분 만에 울린 휴대폰에 해나가 쳐다도 보기 싫은 휴대폰을 들었다.

이번엔 어쩌면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인우였다.

하지만 이 일을 꾸민 것도 자신이기에 인우를 탓할 수도 없었다.

“여보세요.”

잔뜩 가라앉은 해나의 목소리에 인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한테 들었습니다. 기자들이 찾아왔다고. 괜찮습니까?

“네. 전무님께서 도와주셔서 무사히 잘 들어왔어요.”

해나의 말에 인우의 한쪽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아, 형이 도와줬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형이 도와주는 건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으나, 자신은 매번 놓치는 기회를 꼭 형한테 뺏기는 것 같았다.

“네. 다행이죠. 그거 확인하려고 전화했어요?”

실은 걱정돼서 전화한 게 맞았다.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 말이 목에 턱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 오늘 오후 6시에 입장 발표 올릴 겁니다.

그래서 인우는 다른 핑계를 찾았다.

뱉고 보니 꽤 괜찮은 핑계였다.

“아, 네. 알겠습니다.”

너무도 간결한 해나의 대답에 인우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발표문은 메일로 보내 드릴 테니 발표 전에 먼저 보시고, 수정 사항 있으면 연락 주세요.

이렇게 비즈니스적인 대화가 또 있을까.

결혼 발표를 앞둔 커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건조하기 짝이 없는 대화였다.

“네, 그럼.”

전화를 끊은 해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름이는 어떡하지….”

머릿속에 온통 아름에게 혼날 생각뿐인 해나는 방금 전 인우와의 통화를 까맣게 잊었다.

“일단 할 일부터 하자.”

출근한 지 30분째 아직도 업무를 시작조차 못 하고 있는 이 상황에 우선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그 뒤로도 끊임없이 울려 대는 휴대폰을 결국 끄고 가방에 집어넣은 해나가 머리를 질끈 묶었다.

쌓인 일을 하나하나 처리하다 보니 그나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

“수고했어요….”

직장인이 제일 기다리는 시간 퇴근 시간.

해나는 오늘만큼 퇴근이 달갑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이 정도면 머리끝까지 열 받은 거겠지?”

고개를 푹 숙이고 신발을 질질 끌며 아름의 집으로 향하는 해나의 모습이 꼭 교무실에 끌려가는 초등학생 같았다.

“후….”

평소 같았으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겠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심호흡을 한번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틱,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소리가 사형 선고같이 느껴졌다.

“아름아…?”

쭈뼛대며 들어간 해나가 조심스레 아름을 찾았다.

테라스에 앉아 야경을 보며 와인을 마시던 아름이 해나를 돌아봤다.

“말해.”

아름의 차가운 목소리에 잔뜩 움츠러든 해나가 앉지도 못하고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몇 마디로 설명할 일이 아닌지라 이야기를 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렇게 된 거야….”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쭈글대는 해나의 설명이 끝나자, 아름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 때리는 건 아니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난 아름 탓에 놀란 해나가 장난으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 했다.

그런데 아름의 다음 행동이 의외였다. 아름은 해나를 향해 걸어오더니 말없이 안아 주었다.

“뭐야, 왜 이래. 화난 거 아니었어?”

“힘들었지….”

자신을 위로하는 아름의 말에 해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처음에 기사 봤을 땐 그냥 놀랐지. 진짜 너무 놀랐어. 그다음엔, 어떻게 이렇게 중대한 일을 나한테 말도 안 했을까. 너한텐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친구였나?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하긴 했을까? 이런 생각들에 잔뜩 화가 났지.”

잔뜩 겁을 먹고 온 이유도 이거였다.

제일 친한 친구에, 가족만큼 의지하는 사이인 아름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여기까지 와 버린 것.

그에 대해 실망했을 아름이 걱정돼 친구 사이가 끊겨도 할 말 없겠다 하는 마음으로 왔었다.

“그러다 아까 입장 발표문을 봤어. 그 안에 적힌 내용이 내가 아는 내용과는 좀 달라서 아, 이게 다가 아니겠구나 싶었지. 그래서 와인 한 병 까 놓고 너 오기만 기다렸어. 네가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하고서.”

점점 감정이 북받쳐 오는지 말을 뱉는 아름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다.

요 며칠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린 탓일까?

메마른 듯 좀처럼 나지 않는 눈물에 해나가 되레 아름의 등을 토닥였다.

“근데 네 얘기를 듣고 나니까…. 너무 미안해.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지도 몰랐던 게 너무….”

아름은 이제 꺽꺽 소리까지 내며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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