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0화 (233/233)

* * *

‘어떻게 한담….’

다음 날 아침, 텐트에서 일어난 나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퀼라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동기들을 모두 잃었을 때의 트라우마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내게 더 매달리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만일 이번 전쟁에서 내가 죽는다면, 아퀼라는 정말로 남은 삶을 살아갈 힘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기 싫다고 안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음은 의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온단 말이다. 게다가 이 미친 아포칼립스 세계는 내가 여주인공이라고 해서 나를 살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이 미친 로판 세계는 각성하라!

‘괜찮은 전술이 없나?’

나는 이전 세계의 지식을 떠올려 보려 노력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군 장교 출신도 아니고 군사적 전술을 어떻게 알고 있겠는가? 내가 알고 있는 전술이라곤 기껏해야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이 전부인데 그런 걸 써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XX, 이럴 줄 알았으면 삼국지를 좀 더 여러 번 읽어봤을 텐데.

‘우리의 신체 능력을 이용해서 총을 더 강하게 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아르콘의 장점을 이용할 방법을 고민하던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마력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건 전생에 읽었던 창작물에 자주 등장했던 무기 중 하나인데, 탄환에 마력을 실어서 쏘면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그것과 같이 탄환에 오러를 담아 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형태의 오러 사용은 이론상으로만 논의되었을 뿐, 실제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고 윈터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래도 지금은 방법이 없어.’

지금은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은 모두 시도해 봐야 할 때였다.

마침내 결심을 마친 나는 내 총을 챙겨서 텐트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새로운 총이 개발 및 보급되어서 내가 들고 있는 것은 이전에 쓰던 산탄총이 아닌 꽤 쓸 만한 소총이었다. 이거라면 탄환에 오러를 싣기 더 적절할 것이다.

나는 아직 사람들이 기상하지 않은 틈을 타 인근에 있던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나무를 향해 총을 조준했다.

‘일단 한번 시도해 보자.’

나는 방아쇠를 당겨 총을 쐈고.

탕-!

“아….”

탄환이 발사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탄환에 오러를 싣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국경방위군에서 총이 잘 사용되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팔 년 동안 총을 써 왔고, 검을 주로 쓰던 국경방위군 대원들에 비해 훨씬 총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총기를 충분히 공부하지 않아서 실패한 걸지도 모른다.

탕-! 탕-! 탕-!

그렇게 나는 몇 번의 시도를 이어갔고….

“후우….”

탄환이 바닥날 때까지 총을 쐈지만 전부 실패하고 말았다.

탄환은 정말로 짧은 시간 내에 발사되는데, 그동안 작은 탄환에 빠르게 오러를 싣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탄창을 교체하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뭔가에 실패하다니, 아무래도 기강이 해이해진 모양이다.

‘정신 차리자, 사루비아.’

나는 다시금 총을 들고 나무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나무줄기는 이제 내가 쐈던 탄환의 자국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아무래도 새로운 방법이 필요할 것 같은데.’

나는 진지한 얼굴이 되어 나무줄기를 노려봤다.

내가 피나는 연습 끝에 그 짧은 발사 시간 내에 탄환에 오러를 싣게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그런 기예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전술은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어야 효과가 있는 건데 소수에게만 해당된다면 별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전략을 고려해봐야 했다.

‘탄환을 발사하는 순간에 오러를 두르는 게 아니라, 미리 오러를 두를 수는 없을까?’

하지만 탄환이 총 안에 있을 때에는 위치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오러를 두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고민하며 방법을 찾다가, 문득 내 머릿속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총구 앞에 미리 오러를 두르고 있다가, 탄환이 발사되는 순간에 오러를 응축한다면?’

탄환이 발사되는 순간 오러를 두른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발사와 동시에 이미 존재하던 오러를 응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곧장 적합한 오러의 형태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방아쇠를 당겼고….

탕-!

“아!”

이번에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탄환에 오러를 두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찌릿한 감각이 손끝에서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거의 성공할 뻔했어….”

아슬아슬하게 탄환을 놓쳤지만, 어쨌든 오러를 작은 범위 내에 응축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는 진짜로 물러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한 이상, 나는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탕-!

오러로 소음을 막지 못한지라 평소보다 소리가 훨씬 강하게 울렸지만, 탄환이 발사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온몸에서 짜릿한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틀림없이….

“성공이다.”

콰과광-!

그와 동시에, 탄환에 맞은 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반파되었다. 부서진 나무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공중에 흩날리는 파편들 속에서 나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탄환에 오러를 응축했더니 일반적인 탄환과 달리 폭탄이 터지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내게 된 것이다.

이거라면 틀림없이 불리한 전투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 *

“무슨 소리지?”

이시나는 어디선가 들리는 총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란한 소리에 그의 잠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

이시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숲 너머를 보았다. 그가 텐트를 친 곳은 숲 근처였기 때문에 소리가 더욱 잘 들려왔다.

혹시나 적이 아닐까 싶어 이시나는 빠르게 제 총을 챙겼다. 브테인 왕국군이 벌써 이곳까지 내려왔을 수도 있고, 재수가 없으면 그들을 쫓는 황실군일 수도 있었으니까.

이시나뿐 아니라 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숲의 입구에 몰려들어 있는 상태였다. 이시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숲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긴장 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숲속에서 걸어 나온 건 바로….

“이시나 님! 저 대단한 발견을 했… 초, 총은 왜 여기로 겨누고 계십니까?”

“사루비아?”

상대를 확인한 이시나가 황급히 총을 내렸다. 한순간이라도 사루비아에게 총을 겨누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사루비아, 갑자기 숲에서 총은 왜 쏘고 있던 거야! 위험하게!”

주위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사루비아를 보았지만, 이시나는 얼른 사루비아에게 달려가 그녀를 감싸며 사루비아가 그들의 편임을 피력했다.

그런데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사루비아가 꺼낸 건 폭탄과도 같은 발언이었다.

“이시나 님, 저 탄환에 오러를 담는 법을 찾아냈습니다!”

“뭐, 뭐? 그걸 어떻게…!”

“이제 오러탄을 쓸 수 있습니다!”

환한 웃음과 함께 그렇게 외치는 사루비아를 보며, 이시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을 벌이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오다니.

그래도 환하게 웃는 사루비아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서, 이시나도 사루비아를 따라 마주 웃었다.

그건 참으로 사루비아다운 행보였다.

* * *

“왔다.”

저 멀리서 행진하는 브테인 왕국군 무리를 보고 병사들 중 한 명이 속삭였다.

좁은 협곡 아래로 브테인 왕국군이 일렬로 행진하고 있었다. 우리는 정찰을 통해 그들이 이곳을 지날 것을 짐작하고 협곡 위에서 몸을 은폐한 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좋겠지만….

“아돌브 제국군이다!”

이렇게 누가 봐도 전략적으로 써먹기 좋은 수상한 협곡 위에서 완전히 몸을 숨기는 건 무리였다.

우리는 모습을 드러내고 맞받아치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돌브 제국은 무너졌지만, 너희 손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주겠다!”

“이종족들이군! 그래봤자 소수인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다!”

…음, 비방전을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 왠지 입이 심심하군. 그래서 나는 앞쪽으로 나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검으로는 발릴 XX들이 총을 들었다고 기세등등하구나! 총으로도 발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XX들아!”

“사루비아, 제발 입 좀 다물어….”

“이시나 님, 저 조금만 더 도발 좀… 읍읍.”

내 주특기는 사실 사격이 아니라 도발이라고 봐도 거의 무방하지 않은가. 이번에야말로 내 주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시나에 의해 결국 나는 뒤로 끌려가고 말았지만 이제 양 진영 간의 분위기는 불이 붙어 있었다.

“전투 개시!”

마침내 우리 측의 대장이 그렇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모두 총을 들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기도 전에….

파바방-!

탄환이 발사됨과 동시에, 브테인 왕국군 측에서 화려한 폭발이 일어났다.

“뭐, 뭐야?”

“폭탄을 쏘고 있는 건가?!”

탄환이 발사될 때마다 그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국경방위군의 병사들이 동시에 오러를 담아 쏘는 탄환은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아니야! 저놈들… 탄환에 오러를 담아 쏘고 있다!”

적군 중에도 눈썰미가 좋은 놈이 있는지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지만.

“계속 발사하도록!”

나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총을 꽉 붙든 채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그들은 좁은 협곡에서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우리의 공격에 당할 뿐이었다. 예상한 대로 좁은 길에서 오러가 터지니 효과는 더욱 위협적이었다.

뒤에 있는 무리가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놓치지 않고 그쪽을 향해 탄환을 발사했다.

파방-!

“으악!”

제일 뒤에 있는 무리가 무너지니, 도망치던 브테인 왕국군은 어찌할 줄 모르고 병사들의 사이에 갇혀 버렸다.

‘이제 총으로는 우리를 이기지 못할걸.’

나는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려 미소 지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계속하여 전투를 이어 나갔지만, 양상을 보니 전쟁의 승패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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