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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56화 (229/233)

그건 내 진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랜 시간 전의 일인걸?”

“부품이 빠진 자리에는 그만큼 빈 공간이 생깁니다. 그 안에 흑마술의 마력이 침투해서 문제가 생긴 거죠. 그동안 흑마력이 축적되다가 임계점에 다다랐는데, 스트레스가 촉매제가 되어 지금 터진 걸로 추측됩니다.”

그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내가 이름을 잃어버린 빈자리에 흑마술이 축적되어서 내가 이렇게 아프게 됐다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둘 중 하나죠. 그 부품을 다시 채우든가, 들어차 있는 흑마력을 제거하든가.”

“흑마술은 어떻게 하면 빼낼 수 있어?”

흑마술로 거래한 이름을 다시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았다. 게다가 다시 찾을 방법도 없지 않는가. 그러니 흑마력을 빼내는 쪽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빅팀은 다시 한번 회의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글쎄요…. 인체 흑마술 분야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 연구가 덜 된 상태여서…. 언젠가 듣기로는 특수한 재료를 배합해서 만든 물약을 복용하면 인간 내부에 고인 마력을 빼낼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네요. 그래도 관련 자료를 찾아서 물약을 한번 만들어 볼게요.”

“그래….”

내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아, 그럼 빅팀 저 자식이 물약을 만들 동안 나는 이렇게 앓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만 다행히 의사가 해열제와 진통제를 처방해줬기에 얼마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흑마술로 인한 병이라니, 정말 로판 같으면서도 환장할 일이었다. 나는 아련한 눈으로 아퀼라를 보았다.

“아퀼라….”

“응, 응, 사루비아.”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아퀼라는 빠르게 반응했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빅팀 저 자식을 잘 쪼아서 물약을 만들도록 해줘….”

“그래, 반드시 빅팀을 잘 쥐어짜 볼게.”

“사, 사루비아 님?”

“고마워, 아퀼라….”

“사루비아 니이임!”

* * *

다행히 해열제와 진통제는 아주 효과가 좋았다. 그것을 복용하면 빅팀이 물약을 만들 때까지 일상생활이 가능할 것 같았다.

쾅쾅쾅-!

그러나 다음날, 나는 누군가가 집 문을 요란하게 흔드는 소리에 잠이 깨고야 말았다. 아니, 사실 노크 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따르르르릉-

침입자가 있을 때 울리는 종소리 또한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대체 어떤 XX야?”

저 종소리는 정해진 길이 아닌 뒤뜰 등을 통해 침입했을 때 울리는 종소리였다. 즉 우편배달부 등은 저런 소리를 내지 않는단 말이다.

“사루비아, 내가 갈게.”

“아냐, 내가 저 XX의 얼굴을 확인해야겠어.”

가뜩이나 어제 의사를 부르느라 잠을 설쳐서 피곤한데, 이 아픈 나를 깨운 자식이 누구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다. 나는 분노에 가득 차서 아퀼라보다 앞서 쿵쾅쿵쾅 발을 구르며 내려갔고.

“사루비아 님~!”

“달린, 이 미친 XX야!”

아침부터 우리의 잠을 깨운 달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대체 정해진 길을 내버려 두고 왜 정원으로 침입한 거냐?

그런데 그 때 달린의 뒤에서 익숙한 얼굴이 하나 더 불쑥 나타났다.

“아, 알타이르 님!”

“사루비아, 내가 왔다!”

“믿고 있었지 말입니다~!”

우리는 진한 재회의 포옹을 했다. 놀랍게도 아퀼라는 알타이르를 견제하지 않았다. 음, 우리 사이에 이성적 감정의 교류가 0이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군.

“알타이르 님, 돌아오신 겁니까?!”

“그래, 무사히 돌아왔지…. 정말 피곤한 나날이었어….”

알타이르가 그간의 개고생을 떠올리는 둣한 촉촉한 눈이 되기에, 나는 일단 들어가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큰일을 해낸 영웅 알타이르 앞에서 달린을 쥐잡듯 잡을 순 없었기에 달린에게 화를 내는 일도 멈췄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을 응접실로 들인 뒤 나는 그들이 각자 찾아온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달린이 찾아온 이유는 바로….

“사루비아 님, 저 야영이 너무 힘듭니다.”

“그렇다고 남의 신혼집에 쳐들어오자면 어쩌자는 거야!”

바로 야영하기 싫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현재 국경방위군은 여전히 제국군과의 전투와 황성의 경비를 위해 수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지낼 곳이 없으므로 막사를 치고 야영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달린 이 미친X은 야영이 너무 힘들다면서 황성 경비 임무를 맡은 날을 틈타 우리 집에 쳐들어온 것이다.

“헤헤, 사실 사루비아 님 얼굴이 뵙고 싶은 것도? 같았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나는 달린을 보며 씩씩댔지만, 곧 달린이 나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해줬기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아 참, 사루비아 님이 아시면 좋을 소식도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저희의 자치 도시의 영토가 정해졌습니다.”

“그래? 어딘데?”

“음, 정확히는 못 외웠는데…. 어쨌든 저희가 기존에 마물을 막던 국경을 포함해서 아래 마을을 길게 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달린이 들고 온 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난 지도를 이리저리 살피며 우리의 새로운 자치 도시의 모양을 익혔다.

“특이한 모양이네. 아니, 오히려 효율적인 통치가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지도를 다 훑어보고 접어둔 나는 알타이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타이르는 아까부터 날 보며 의기양양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알타이르 님도 막중한 임무를 완수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임무 중에 별일 없으셨습니까?”

“임무라….”

알타이르가 비장한 얼굴이 되더니 말했다.

“브테인 왕국의 왕궁으로 가자마자, 나는 감옥에 갇혔다.”

“…예?!”

“아돌브 제국에서 온 스파이라는 이유였지. 하아, 예상했던 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어.”

“세상에… 그래서 어떻게 되신 겁니까?”

“그렇지만 다행히 왕자들 중 한 명이 내 얘기에 호기심을 느끼고 나를 풀어줬지. 그리고 내 말을 자세히 들어본 뒤 모순이 없다고 하며 믿어줬어. 내가 이종족이기 때문에 아돌브 제국에 원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그제야 이해하더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테인 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브테인 왕국은 어땠습니까?”

“그곳은 제국보다 작지만 우리보다 훨씬 왕권이 강한 나라였어. 놀랍게도 국민들이 강력한 왕권이 유지되도록 지지하고 있더군. 일반 백성들을 위한 구휼이나 복지 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백성들이 직접 복지 제도에 의견을 낼 수 있게 했다더군.”

“역시, 각자의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는 알타이르와의 대화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의 자치 도시도 저런 식으로 꾸려가도록 해야지.

원하는 만큼 떠든 알타이르가 잠시 목을 축이자, 아까부터 눈치를 보고 있던 달린이 얼른 끼어들었다.

“사루비아 님, 사루비아 님!”

“어, 어?”

“결혼식을 준비하신다고 휴가를 썼다고 들었습니다. 결혼식 축하드립니다!”

“그래, 고맙다…. 너한테 이런 말을 다 듣는군.”

“헤헤, 휴가는 잘 즐기셨습니까?”

“아니, 내가 요 며칠 좀 아파서….”

“허억! 어디가 아프신 겁니까? 괜찮으십니까?!”

“아니, 설명하자면 좀 긴데 하여튼…. 지금은 진통제를 먹어서 괜찮아.”

달린은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녀에게 괜찮다며 손을 내저어 보였다. 그제야 달린도 화제를 바꿨다.

“그래서 웨딩드레스는 정하셨습니까? 제가 또 그런 걸 보는 눈이 있지 말입니다.”

뜬금없는 내 웨딩드레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예쁜 걸 좋아하는 달린이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응, 그건 정했는데…. 아직 반지는 못 정했고, 결혼식장을 어디로 할지도 고민이야.”

“그렇습니까? 반지는 하고 싶은 모양이 있으십니까?”

“결혼반지가 다 거기서 거기 아냐?”

나는 결혼반지를 고를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 다이아몬드 반지는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였다.

“다이아몬드는 다 비슷해 보이더라.”

“에이, 그래도 무려 결혼 반진데 당연히 다이아몬드로 골라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응, 그러긴 했어. 그런데 다른 것들도 예쁜 게 많더라.”

내 머릿속에 내가 보았던 화려한 반지들이 떠올랐다. 자수정, 토파즈, 오팔…. 예쁜 반지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 시선을 끈 건 루비 반지였다. 아퀼라의 눈 색과 닮은 것 같기도 해서, 나는 루비 반지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한참 동안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아퀼라가 그걸 사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어쨌든 결혼 반지는 당연히 다이아몬드 아닌가 말이다.

그나저나 달린 얘, 내 결혼에 대해 이렇게 참견하다니….

“너 많이 컸다?”

“그, 그런 사실 없습니다….”

내가 눈을 부라리자마자 달린은 금방 꼬리를 말았지만, 곧 다시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 되어 말했다.

“사루비아 님은 가끔 보면 참 신기하신 분 같습니다. 취향이 확고하신 것도 같은데, 또 어떨 때는 불분명하셔서.”

“내가? 내 취향 완전 확실하지 않아?”

동의할 수 없는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취향이 너무 확실해서 탈이었다. 예를 들어 단 음식을 좋아하고, 밝은색 옷을 좋아하고, 비싸고 예쁜 걸 좋아하고….

내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 보이고 있을 때, 달린이 고개를 저으며 그게 아니라는 듯 말했다.

“에이~, 제 말은 남자 취향 말입니다.”

“콜록, 콜록!”

“풉! 뭐, 뭐?”

“하하하!”

부엌에서 달린을 위한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던 아퀼라가 기침했고, 알타이르는 재미있다는 듯이 배까지 부여잡으며 웃었으며, 나는 하마터면 다시 사레에 걸릴 뻔했다. 아니, 대체 얘가 결혼할 사람을 앞에 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나 달린은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려는 듯 내게로 몸을 기울이더니 속삭였다.

“곧 결혼하실 분이니까, 결혼 전에 여자들끼리 이런 솔직한 이야기 좀 해 봐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퀼라 님이 이상형이신 겁니까?”

“그래! 왜냐하면 앙큼한 고양이 같잖아!”

…그 말에 잠시 집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달린도, 아퀼라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니, 하지만 예민하고 낯 가리는 게 딱 고양이 같지 않나? 내 캐해로는 완전 고양이인데….

“그, 그렇습니까? 뭐, 잘 알겠습니다….”

“사, 사루비아, 나는 이만 가볼게….”

알타이르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나의 이상형에 대한 달린과의 토크는 중단되었고, 달린은 그날 우리 집에서 좀 더 시간을 때우다 갔다.

* * *

한편 우리가 반지까지 전부 고르는 동안에도, 빅팀은 여전히 물약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진통제와 해열제를 삼키며 날을 보내야 했다.

“에휴….”

확실히 아프기 전보다 기운이 없기는 해서, 나는 소파에 엎어진 채 끙끙댔다. 이제 나는 물약 말고 다른 방법을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라는 부품이 빠진 거니까, 거기 새로운 부품을 끼울 수는 없나?’

그러니까 다른 소중한 것을 만들고 그게 새로운 부품으로서 작동하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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