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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50화 (223/233)

이전에는 그렇게 피하려 했던 고스트그룸의 입 속으로 스스로 달려가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눈앞에 새까맣고 거대한 고스트그룸의 입 속이 보였고, 마침내 그곳으로 몸을 던진 순간….

“허억, 허억…. 뭐야?”

낯선 천장이었다.

…뭐지? 왜 낯선 천장이지? 혹시 내 계산이 틀린 것이었고, 방금 죽어서 또 다른 세계에 빙의한 건 아니겠지?

“흑흑, 사루비아 님!”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내 불안감은 빅팀의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의해 종식될 수 있었다. 나는 지하실 바닥에 쓰러진 채 누워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옆으로 깨져 있는 거울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그건 분명히 깨져 있었다.

나는 내게 매달리는 빅팀을 한 손으로 밀어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깨진 거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루비아 님? 아, 그러고 보니 사루비아 님이 눈을 뜨시면서 그게 깨졌…. 아.”

문득 무언가를 느꼈는지 빅팀이 입을 벌렸다.

“와…. 마력이….”

빅팀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마도 마력의 흐름을 느끼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그 마력의 흐름을 느낀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옷소매를 걷어내고 내 손목을 가만히 보았다.

‘아프네.’

분명히 예전에 계약 마법이 나타났던 바로 그 부분이 찌릿거리고 있었다.

차가운 것도 같고, 뜨거운 것도 같은 이상한 감각이었다.

나는 손목을 마구 쓸며 어떻게든 그 감각을 잊으려 애썼다가, 곧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아….”

내 손목에 아주 흐릿하게 남아 있었던 계약 마법의 흔적이 진하게 빛을 발하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동안 내 손목을, 아니, 내 혈관 곳곳까지 파고들어 나를 얽매이고 있던 금제가 풀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국경방위군에서 제대한 뒤에도 여전히 나를 구속하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내 혈관, 아니, 내 영혼까지 묶여 있다가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사루비아 님?”

“아….”

나는 나도 모르게 흐른 눈물 한줄기를 슥 닦아냈다. 그렇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그래, 이 낯선 감각에 나는 도무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세계에 빙의한 뒤 이토록 자유로운 기분을 느껴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내 손목에는 아무런 문양도 없었다.

그게 의미하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계약 마법의 완전한 파괴였다.

* * *

챙-! 챙-!

황제의 집무실 안으로 몰려드는 병사들을 상대하던 윈터는, 이상한 감각에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목에 남아 있었던 계약 마법의 흔적이 진하게 변했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동안 얼음에 갇혀 있었던 것 같이 차갑던 그의 손목에 피가 도는 기분이었다. 비로소 그가 하나의 인간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사루비아가 성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퀼라.”

윈터는 자신의 옆에서 경비병을 상대하는 아퀼라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땀으로 몸이 흥건히 젖은 채 검을 휘두르던 아퀼라가 고개를 들었다.

“사루비아가 성공했다.”

“사루비아가….”

마찬가지로 손목을 확인한 아퀼라가 미세한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늘 손목이 뜨거웠는데, 열기가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역시, 사루비아가 자유를 되찾아줄 줄 알았습니다.”

윈터는 사루비아가 성공할 것이라고 틀림없이 믿고 있었다. 사루비아는 한 번 목표한 게 있으면 반드시 이루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아퀼라는 윈터 자신보다도 더욱 맹목적으로 사루비아를 믿고 있던 것 같았다. 그는 늘 까다로운 아퀼라로부터 신뢰를 얻는 사루비아가 역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짧은 감상을 멈춘 뒤 윈터는 앞으로 그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사루비아가 해냈으니, 나도 해내야겠군.’

아퀼라와 함께라면 몰려드는 경비병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아래층에서 싸우던 이들에게 지원을 가면 되겠지.

2황자군 사건 이후 아퀼라와 윈터는 이제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물론 사루비아에 관한 일이라면 경계를 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에 있어서는 서로가 유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럼 아퀼라, 일단 이 자들부터 모두 처리하도록 하지.”

“예, 금방 처리할 수 있습니다.”

계약 마법에서 해방된 여파인지, 갑자기 새로이 힘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전보다 더욱 맹렬한 눈빛으로 황실군을 노려봤고.

쾅-!

복도에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전투가 재개되었다.

물론 전투의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 * *

“후우, 후우!”

몰려드는 경비병들을 뒤에 매달고 달리던 카론은 문득 이상한 감각이 들어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손목에 무겁게 얹혀 있던 돌멩이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그는 곧 자신의 손목이 평소와 다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시나 님! 계약 마법이 이상합니다!”

“…정말이네.”

카론의 옆에서 함께 경비병들의 눈길을 끌고 있던 이시나가 침착하게 답했다.

“계약 마법이 파괴됐어.”

“계약 마법이 파괴됐다면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카론이 되물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사루비아가 말해준 계획을 벌써 잊어버린 상태였다. 이시나는 이동을 멈추고 뒤를 돌아 경비병들을 마주 보았다.

“첫째, 우리는 이자들을 전부 이겨야 해.”

“그건 자신 있습니다.”

카론이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검을 빼 들었다. 그의 검 끝이 경비병들을 겨누었다.

이시나 또한 옆에서 카론과 마찬가지로 검을 잡았다.

그가 사루비아를 따라 총을 주 무기로 쓰기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나는 오래 전 검을 쥐던 감각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시나는 카론과 함께 경비병들의 사이로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외쳤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쾅-!

카론이 힘으로 경비병 하나를 저 멀리로 날려버리는 가운데 이시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황성의 문을 여는 거야! 국경방위군이 진격할 수 있도록!”

* * *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

“대체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국경방위군이 플뢰르-로센 지방에 도착한 이후 제이슨은 내내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곳에는 브테인 왕국군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병사들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중에도 왠지 대대장은 이상하리만큼 침착한 얼굴이었다. 꼭 이렇게 기묘한 상황이 된 이유를 전부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에잇! 왜 이럴 때 달린은 영창에 간 거야?’

제이슨은 아마도 지금쯤 영창에 가 있을 자신의 옛 후임, 현 중대장을 떠올리며 답답해했다. 그녀가 있었다면 그래도 간부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떠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대대장이 그들의 앞으로 나서더니 말했다.

“자, 우리 설산 대대 제군들. 이제부터 우리는 황성으로 이동한다.”

“…에에~?”

제이슨은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냈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제이슨에게 눈길을 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제이슨과 마찬가지로 모두 깜짝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황성? 갑자기 황성은 왜 가는 거지?’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제이슨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을 때, 갑자기 대대장이 비장한 얼굴이 되더니 말했다.

“제군들, 그동안 이곳에 강제로 끌려와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나.”

그 말에 병사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대대장이 갑작스럽게 저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대, 대대장님!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제국민 출신의 부사관 한 명이 당황하여 그렇게 물었다.

제이슨은 간부들의 동태를 살피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종족인 간부들만 침착한 상태야.’

그들만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편 대대장은 따뜻하면서도 진지한 눈으로 병사들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우리는 억울하게 끌려와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강제당했다. 그 과정에서 동료가 죽는 광경을 수도 없이 지켜봐야만 했지.”

“……!”

“그러나 이 제국의 아무도 초개처럼 던져진 목숨들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 대민 지원을 나가 노예처럼 부려질 때면 제국민과 관료들의 차별적인 시선에 시달리지 않았나. 제군들은 이런 불합리를 언제까지 두고 볼 셈인가?”

“맞아, 맞아.”

어딘가에서 동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대장은 그들 모두를 경악시킬 소식을 전했다.

“황성에서 혁명이 일어날 거다.”

“그게 무슨……!”

“이미 제대한 이종족들이 우리의 계약 마법을 해제시키기 위해 황성에 침입하기로 했다. 이 전쟁은 애초부터 눈속임용이었지. 지금도 그들은 종족의 해방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미 제대한 동지들이…?”

“그렇다면 우리도 마땅히 힘을 보태야겠지. 이제 우리는 황성으로 진격하여, 부패한 제국을 완전히 뒤집는다. 자, 나를 따라 올 자 있나?”

병사들은 다들 갑작스러운 대대장의 선언에 깜짝 놀라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들은 밀려오는 감동에 눈 밑을 훔쳐야 했다.

“이미 제대하고도 우릴 위해….”

설산 대대는 국경방위군의 그 어느 부대보다도 자주 동료의 죽음을 견뎌 온 부대였다. 그 누구보다 이 나라에,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의 부조리함에 뿌리 깊이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 상실의 경험에서 비롯된 강한 동료 의식에 말미암아, 앞서 제대한 이종족들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에 크게 감동을 받은 상태였다.

그리하여 혁명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곧 여기저기서 동조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저도 따르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제 병사들의 눈은 황실에 대한 복수심과 혁명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반면 제이슨은 그들보다 좀 유보적인 상태였다. 패티와 매티를 돌보며 한 발짝 물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된 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반역에 참가하는 건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의 양옆에서 패티와 매티가 외쳤다.

“예!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갑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제이슨은 그만 반사적으로 같이 외치고 말았다.

“저도 갑니다!”

…제이슨은 잠시 공허한 기분을 느끼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결국 또 고생길에 제 발로 오르게 되다니. 하지만 패티와 매티를 보호자도 없이 보낼 수는 없었다….

‘대체 어떤 미친X이 혁명을 일으킨 거야…!’

혁명의 주동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미쳤다고 생각하며, 제이슨은 황성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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