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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49화 (222/233)

* * *

지하는 몹시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단검에 오러를 둘러 주위를 밝혔다. 산호색 빛 너머로 희미하게 지하 공간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으음….”

나는 지하를 보고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왜냐하면 그곳의 모습은….

‘창고나 다름없잖아!’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 있어서 거울이 어디에 있는지 짧은 시간 안에는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다 뒤져야 한다고?”

그 전에 동료들이 붙잡혀서 처형되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역시 몇 명을 더 데려왔어야 했나?

내가 고민하고 있던 그때, 빅팀이 내 앞으로 나섰다.

“여기부터는 제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네가?”

“예,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그가 집중하려는 듯 눈을 꼭 감고서 중얼거렸다.

“이건… 틀림없는 마력 3회전 공법…!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마력 처리 방법인데, 과연 황실 흑마법사…. 대단하군요.”

“뭐? 마력 3회전 공법이라는 게 진짜 있는 거였다고?”

들어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 카론을 괴롭혔던 흑마술사가 나한테서 벗어나려고 할 때 마력 3회전 공법을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단 말이다.

그게 진짜 존재하는 거였다니, 그놈도 생각보다 정직한 녀석이었군….

내가 사실 그 흑마술사는 사실만을 말했다는 숨겨진 진실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빅팀은 마력 감응을 유지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나는 주위에서 나올 적을 경계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빅팀이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있었다.

“왜? 이 속에 아티팩트가 있는 거야?”

“예, 여기서 굉장히 강렬한 파장이 느껴집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곧장 잡동사니의 산에 달려들어 물건을 헤집기 시작했다.

‘거울, 거울!’

분명히 황제는 아티팩트가 거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물건들이 워낙 많이 쌓여 있는 탓에 거울을 찾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허리를 굽히고 한참이나 노동을 하다가, 나는 문득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빛을 비춰 보는 거야.’

거울은 빛을 반사시킬 테니, 오러를 이용해 빛을 내보면 되겠다!

나는 곧장 단검에 오러를 둘러 물건을 비쳤고, 그 순간 내 눈을 강하게 찌르는 산호색 빛에 인상을 찌푸렸다.

“윽!”

물건 중 어딘가에서 빛이 반사되고 있던 것이었다.

“찾았다!”

그 빛의 끝을 따라가자마자, 나는 낡은 거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거울은 아마도….

‘처, 청동거울?’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유물과도 같은 모습에 나는 잠시 감탄했다. 오래전에 걸린 계약 마법이라 이런 물건을 쓴 걸까?

내가 거울을 들고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자, 빅팀이 질린 얼굴이 되더니 말했다.

“바로 그곳에서 아주 강력한 마력이 퍼져나오고 있습니다.”

“그래?”

“예, 수백 개, 아니, 수천 개의 마력이 선처럼 얽혀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수백 개란 아마도 계약 마법에 현재 종속되어 있거나, 계약 마법의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대한 이들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거울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우리를 힘들게 했던 그 계약 마법이 이 거울에 모두 모여 있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아르콘들이 계약 마법으로 인해 고통받았고, 목숨을 잃었을까. 내가 이것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계속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

그러나 이제 그 잔인한 굴레를 끝낼 시간이었다.

나는 거울을 바닥에 내려놓고,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아마도 그냥 검격으로 파괴할 수는 없겠지.”

“예, 아마도 특수한 마법적 장치가 되어 있을 겁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빅팀이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마력 3회전 공법이라 함은, 한 가지의 마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의 마법을 중첩해서 걸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도로 어려운 공법이라는 거지요. 하나는 계약 마법일 테니, 또 다른 두 가지의 마법이 거울에 동시에 걸려 있을 겁니다.”

“그럼 계약 마법을 깨려고 하면 다른 두 개의 마법이 나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

“정확합니다.”

그 말에 나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빅팀의 말이 맞다면 어떤 흑마술이 여기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빅팀, 여기에 심겨 있는 마법 종류가 뭔지 네가 알아낼 방법은 없어? 베니를 건다 해도?”

“황실 마법사는 저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나서 그건 저도….”

“알았어, 그렇다면….”

나는 거울을 노려본 채 단검을 높이 들었다.

거울을 깼을 때 그 어떤 흑마술이 나를 공격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이것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할 뿐이었다.

내 검에 다시 한번 오러가 둘러졌고, 거울이 산호빛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파지직-!

분명 거울을 향해 검을 내리찍었는데, 거울이 깨지는 대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앗…!”

갑자기 환한 빛이 눈앞을 가득 채워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공간에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그러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빅팀도 곁에 없었다.

지금 나는 거울 속 공간에 홀로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주위에는 거울로 된 미로가 있었고, 곳곳에서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혼란스러운 광경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

아마도 이게 거울에 설정되어 있던 두 번째 마법일 터이다. 거울로 된 미로로 나를 이동시키는 것. 다만 눈에 띄는 점은….

“여기, 진짜 공간은 아니구나.”

내 시야는 이상하리만큼 흐렸고, 땅을 밟고 있는 대신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꼭 꿈을 꿀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실제로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기보다는 거울 미로라는 환상 속에 갇혀 있는 것에 가깝겠다.

그 순간, 거울 속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쳐 보이던 내 모습이 사라지고 이제 그 자리에는 아퀼라가 나타나 있었다.

“아퀼라…?”

내가 의아해져서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퀼라!”

내가 들고 있던 단검에 찔린 아퀼라가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그의 몸뚱이가 소리 없이 고통으로 경련했다. 늘어선 거울마다 시뻘건 피웅덩이가 비추어 곧 공간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거울이 보여주는 환영이고 환상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나는 피투성이가 된 아퀼라의 모습을 보며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손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덜덜 떨렸다.

이토록 손이 떨리는 이유는….

“황제, 이 미친 XX야!”

바로 분노였다.

무수한 거울의 상 속에서 아퀼라가 처참하게 찢기는 모습을 끝없이 목도해야만 한다니. 거울에 이딴 마법이 걸어 놓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잔혹한 광경을 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침입자의 정신을 흔들어 놓으려는 의도의 환영 마법으로 보였으나, 내 가슴이 아픈 것보다도 아돌브 제국에 대한 분노가 더 크게 느껴졌다.

덕분에 나는 지나칠 정도로 생생한 환영 속에서도 절망감에 삼켜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미친 XX들을 어떻게 하면 조질 수 있지?’

문득 내 손을 내려다 보니 여전히 단검이 들려 있었다. 아퀼라의 피로 피투성이가 된 단검.

그러나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이 칼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합!”

나는 다시 한번 힘주어 옆에 있던 거울을 찔렀다. 그러자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오….”

다시 한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번에 나는 낯선 숲속에 서 있었다.

아니, 낯선 숲속은 아니었다. 어쩐지 낯익은 느낌이 드는 숲속….

“잠깐만.”

숲의 정체를 알아차린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알고 있었다.

세 번째 흑마술이 시작되었고, 내 예감이 맞다면 곧….

“꺄아아아악!”

눈앞에 나타난 마물을 본 순간 저절로 내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 눈앞에 있는 건 원작의 사루비아를 죽음으로 몰았으며 지금의 나 또한 죽일 뻔했던 바로 그 마물, 고스트그룸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미친 마물을 이런 곳에서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 순간, 고스트그룸이 내 존재를 인지한 듯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섬찟한 그 모습을 보며 내 얼굴은 더욱 핏기 없이 질렸다.

* * *

“사루비아 님, 사루비아 님!”

거울을 검으로 찌르자마자, 거울이 깨지는 대신 사루비아가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빅팀은 바닥에 쓰러진 사루비아를 거세게 흔들며 어떻게든 그녀를 깨우려 노력했지만 사루비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영혼이 흑마술의 힘으로 인해 다른 세계에서 헤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큰일인데….”

빅팀이 초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어찌 보면 도망칠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사루비아를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단지 사루비아의 협박 때문에 강제로 혁명군 활동에 동참하게 되었지만, 이제 빅팀은 진심으로 사루비아를 응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루비아와 그녀의 동료들이 혁명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게 되어 버렸으니까.

부족한 힘이더라도 어떻게든 이 세계를 바꾸고자 하는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보게 되어 버렸으니까.

지하실로 내려오기 전 목숨을 걸고 싸우던 아퀼라의 처절한 모습을 목도한 뒤에는 더욱 진심으로 이들이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영혼이 가상의 세계에 너무 오래 갇히게 된다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몰라….”

* * *

“엄마야아아아!”

고스트그룸이 나를 쫓아오는 가운데 나는 폐가 찢길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죽어라 뛰었다. XX, 이 상황을 한 번 겪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뇌리를 점령하면서 더욱 제대로 대처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때와 달리 나를 도와줄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고, 나도 마수를 상대할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건 총은커녕 작은 단검이 전부였다!

게다가 문제는 이 환상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거울과 달리 깨뜨릴 수 있는 부분도 없었고, 이 공간을 나가는 통로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없는 어두운 숲만이 내 앞에 펼쳐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멈추지 못하고 한참 달리면서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나를 반드시 잡아먹겠다는 듯 입을 쩍 벌리고 전속력을 달려오는 고스트그룸의 모습이 보인다.

“환장하겠네!”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다시 발을 재촉하려던 순간, 조금 전 보았던 광경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나는 움찔했다.

고스트그룸의 입 너머로 이질적인 공간이 언뜻 보였던 것이다.

분명 내가 예전에 보았던 고스트그룸의 입 속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건 꼭 어딘가로 향하는 입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설마 저기가….’

이 환상 속에서 빠져나가는 출구가 고스트그룸의 입 속에 마련되어 있는 걸까?

하지만 그 가설을 실제로 시험해보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내가 그대로 고스트그룸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냥 꿀꺽 삼켜지고, 환상 세계 속에서 죽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엔딩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차마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달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뒤를 흘끗흘끗 돌아봤지만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머릿속에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난 달리던 방향을 꺾으면서 몸을 숙여 돌멩이 하나를 빠르게 집어 들었다. 한 손으로 간신히 들 수 있는 커다란 돌멩이였다. 그다음으로, 나는 몸을 휙 돌리고서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고….

“야압!”

고스트그룸의 입 속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돌멩이가 새까만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정말 저기가 출구인가?’

돌멩이를 삼켰지만 고스트그룸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언뜻 보기로는 돌멩이가 캄캄한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도 같았다.

“…괜찮을 거야, 사루비아.”

결국 나는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했고.

그대로 고스트그룸의 입 속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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