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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46화 (219/233)

다행스럽게도 궁의 1층은 텅 비어 있었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가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는 활짝 웃었다.

‘아퀼라, 베니!’

그들도 살금살금 걸어 1층을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아퀼라가 빠른 속도로 내 곁에 다가왔다.

“사루비아, 경비병은 전부 처리했어?”

“응, 달린이 두 명을 끌고 갔고, 한 명은 내가 마비 침을 쐈어.”

“우리의 정체를 들킨 건 아니지?”

“달린을 그냥 황제한테 미쳐 있는 영애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더군.”

아무래도 이 세계의 황제는 일반적인 로판 속 황제처럼 황후 자리를 노리는 귀족 영애들로 인해 곤욕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황제의 집무실을 찾아야 했다. 지도를 통해 집무실의 위치는 미리 파악해둔 상태였지만, 가는 길에 경비병을 최대한 적게 만나면서 정면 충돌을 미루는 게 관건이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황제가 있는 궁인 만큼 경비도 삼엄한 데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애써 평범한 귀족처럼 보이려 허리를 꼿꼿하게 폈고, 아퀼라는 우리를 에스코트하는 사람처럼 우리의 앞에 섰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을 때, 익숙한 얼굴들이 점점 1층에 보이기 시작했다.

서쪽 문을 통해 들어온 윈터, 브레이브, 레온, 그리고 그들이 보호하고 있던 흑마술사 빅팀….

비록 황성에서 일하는 사용인의 옷이나 귀족들의 옷을 입었다지만, 낯선 얼굴이 복도에 늘어나니 사용인들도 수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들은 점점 의구심이 느껴지는 눈으로 우리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 주변 탐색을 마친 빅팀이 허둥지둥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 아래에 매개체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이 아래에서 강력한 마력의 파장이 느껴집니다.”

“그래? 지하실의 입구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알 수 있어?”

“거기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대략적인 위치가 이 아래쪽 부근이라는 것뿐….”

그렇게 말하며 빅팀이 발로 바닥을 쾅쾅 찍자, 도끼를 사용하는 브레이브가 흥미로운 눈으로 바닥을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바닥을 부수고 가는 게….”

“혹시 미치셨습니까?”

“미친 건 너겠지.”

내가 브레이브와 조용히 언쟁을 벌이고 있던 그때, 어디에선가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발생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우리 모두는 빠르게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쳐다봤다.

‘서쪽 입구…!’

서쪽 입구에서 막 달려오는 게, 아무래도 쓰러져 있던 경비병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모이는 경비병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동쪽 입구와 남쪽 입구에 있는 경비병까지 모두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시종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각 입구를 확인하더니, 더욱 놀란 얼굴이 되었다.

“1층 경비병들이 모두 쓰러졌다!”

아까보다 더욱 큰 울림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그 목소리를 들은 듯, 2층에서 경비병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종은 낯선 우리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주변을 살펴보던 그가 이윽고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실례지만, 다들 어떤 용무로 이곳에 들어오셨습니까?”

때가 왔다. 여기서 이 시종을 속여넘길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황성에 침입한 이상 어느 정도의 무력 충돌은 예상하고 있었으니.

이제 싸울 시간이었다.

윈터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들자마자 경비병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둘러쌌다. 동시에 윈터의 검을 둘러싸고 차가운 오러가 휘몰아쳤다.

그들은 오러와 우리의 눈에 띄는 외모를 보고는 우리의 정체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이종족!”

“이제야 눈치챘군.”

나는 전형적인 악당의 대사를 읊으며 드레스에 숨겨 두었던 단검을 꺼냈다.

좁은 공간에서 근거리에 총을 잘못 쓰다가는 아군까지 다치게 할 수 있으니, 근접전을 위해 내가 선택한 무기였다. 윈터의 부모님께 모든 종류의 검을 훈련받아서 이제 나는 웬만한 선임들만큼 검을 쓸 수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숨겨 두었던 무기를 꺼냈고, 복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브레이브는 대체 어떻게 저 도끼를 숨겨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또한 무기를 꺼냈다.

챙-! 챙-!

여러 명의 경비병들과 대적하며 날붙이가 맞부딪치는 살벌한 소리가 난무했다.

수적으로는 우리가 지극히 열세였지만 승기를 잡고 있는 건 당연히 우리였다. 우리는 팔 년간 지옥 속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병사들이었으니 혼자서 경비병 몇 명 정도야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벌써 경비병들 사이에 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빨리 올라가! 어서!”

브레이브와 레온이 힘을 합쳐 몰려오는 경비병들을 밀어내며 외쳤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빈 틈을 통과해 달렸다. 다른 부대원들도 내 뒤를 따랐다.

“아래는 브레이브랑 레온 님이 맡아주실 거야!”

그렇지만 당연히도 우리가 곧바로 황제의 집무실까지 진격해 갈 수는 없었다. 위층에서 병사들이 추가로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원 소식을 받은 건지 아래에서도 병사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제길…!”

충분히 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도 경비병 수가 많았다. 오러 블레이드를 쏘아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몇 명 정도는 잡힐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금 칼을 휘두르려는 그 순간, 베니가 내 등을 가볍게 밀어냈다.

“다들 위로 올라가십시오. 제가 틈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베니는 국경방위군에 있을 때도 검을 잘 다루기로 소문난 천재였다. 게다가 그녀는 전열을 흔드는 데 가장 적합한 바람 속성의 오러를 다루기도 하고.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베니는 심호흡을 하더니 검을 크게 휘둘렀다.

콰과광-!

강한 바람이 병사들을 일제히 한 곳에 밀어넣으며 경비병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다시 한번 틈이 만들어지자 베니가 다급히 외쳤다.

“올라가십시오!”

우리는 이번에도 베니의 말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무리마저 나뉜 지금 아마 남은 자들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체포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황성을 점령해내고, 희생한 동지들을 감옥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처형당하기 전에.

“…그럼 우리가 구해줄 때까지 무사히 버티고 있어!”

나는 배에 힘을 주어 외친 후 3층을 향해 돌진했다. 아퀼라와 윈터, 빅팀이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3층은 바로 황제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아까와 마찬가지로 3층에도 병사들이 쫙 깔려 있었다.

“이런.”

집무실 안에 들어가서도 전투를 해야 할 텐데, 또 이곳에는 누가 남는담.

일단 내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병사들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을 때, 윈터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남겠다. 얼른 가도록.”

그때, 이번에는 아퀼라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윈터 님이 가십시오.”

“왜지?”

“그건….”

아퀼라가 짐짓 비장한 얼굴이 되더니 말했다.

“윈터 님은 황제에게 원한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 윈터가 어색한 얼굴이 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윈터는 황제와 대련하며 마취 침으로 인해 굴욕적인 패배를 맞아야 했던 경험이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는 윈터가 황제를 제압하는 게 더 짜릿한 복수가 될 것이다. 더 이상 윈터는 황제를 봐줄 이유가 없으니까.

아퀼라가 윈터의 입장을 배려해주다니, 내가 북부에 고립되어 있던 동안 아퀼라와 윈터도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

윈터는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사루비아와 함께 가도록 하지.”

곧 복도가 화려한 불로 뒤덮였다. 병사들은 거대한 불길에 접근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지금 가!”

아퀼라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나와 윈터, 그리고 빅팀은 함께 돌격해 눈앞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그토록 찾는 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의자에 앉은 황제가 일견 담담한, 그러나 긴장감이 드리운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침입자군.”

집무실 안에 있는 건 시종 한 명과 호위 기사 한 명뿐이었다.

나는 빠르게 오러 블레이드를 날려 시종을 쓰러뜨렸고 윈터는 호위 기사를 처리했다.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지키는 호위 기사인 만큼 대단히 강한 자였지만, 검술의 최강자인 데다 얼음 속성 오러를 극한까지 다룰 수 있는 윈터를 일대일 대결에서 이길 수는 없었다.

내내 뒤에서 따라온 빅팀은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부들부들 떨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황제의 호위 인력이 모두 쓰러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황제는 점점 미간을 일그러뜨리다가 호위 인력이 전부 쓰러지고 나서는 직접 검을 들었다.

“밖에 아무도 깨어 있는 병사가 없는 건가? 이봐!”

“예, 폐하. 모두 쓰러뜨렸습니다.”

내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답하니, 황제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우리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지만 명백히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의 입장에서 우리는 갑자기 황성에 침입해 경비병을 뚫고 그의 호위 인력마저 모두 쓰러뜨린 괴한이니까 말이다.

“이종족이 침입했다더니, 그렇다면 너희의 정체는 군이 쫓던 흑마술 수색 특수군인가? 2황자 잔당과 연합했던? …잠깐, 설마.”

당황과 분노로 옅게 떨리던 황제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그때 그 국경방위군의 간부를 믿는 게 아니었어! 역시 이종족 전체가 협심하여 이런 일을 꾸민 거군. 국경 근처에서 마물을 유인하는 흑마술을 사용한 것부터가, 모두 계획되었던 거야!”

그는 이제야 진실에 도달한 것 같았다. 제 눈 앞을 가리고 있던 욕망을,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은 허구의 징표들을.

그러나 이미 우리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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