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44화 (217/233)

* * *

황성의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 검문소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공작성에 불이 났다는데?”

“큰불이래?”

“아니, 그건 아닌데 범인을 찾겠다고 병사를 지원 요청했어.”

“후, 어쩔 수 없지. 막내들 데리고 네가 가라!”

‘계획대로군.’

나는 달린과 눈을 마주치며 씨익 웃었다. 우리의 작전이 통한 모양이다.

패티의 아버님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두 명의 병사가 마차를 검문한다고 했지만, 우리가 소란을 일으킨 덕에 남아 있는 병사는 한 명뿐이었다.

그는 투리치 상단의 마크를 확인한 뒤 마차 안을 검문하지 않았다.

“저희는 지금 바쁘니까 빨리 지나가십쇼. 당연히 무기는 반입 안 되는 거 아시죠?”

“예, 예, 물론입죠.”

“어차피 자주 지나가셨으니까, 뭐. 들어가셔도 됩니다.”

통행증을 발급받는 게 이토록 쉽다니, 놀라운 일이다. 만일 패티가 전역하면 감사의 뜻으로 잘 대해줘야겠다.

우리가 탄 마차는 무사히 황성 안으로 들어갔다. 황성이라니, 왠지 공기의 분위기마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제부터는 다들 계획대로 하는 거 알고 계실 거라 믿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속삭이자 첫 번째 마차에 탄 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차는 황성에 있는 물품 보관소로 향하기로 되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투리치 상단에서 나온 물건들입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마차 밖에서 패티의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누군가가 천천히 마차의 입구를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차의 짐칸을 열자마자….

“흡!”

입구에 앉아 있던 윈터가 재빨리 관리복을 입은 남자를 기절시켰다.

“뭐야?!”

“누구야!”

마차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우르르 마차를 빠져나갔다.

물품 보관소에서 일하던 관리들 세 명이 보였다. 우리는 재빠르게 세 명의 남자들을 기절시켰다. 사람을 기절시키는 것쯤이야 우리에겐 아주 쉬운 일이었다.

이제 우리는 황제의 집무실이 있는 궁으로 이동할 것이다.

각자 몇 명의 병사들씩만 막아내면 우리 중 일부를 황제의 집무실까지 올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뒤 황제로부터 계약 마법을 해제하기 위한 정보를 캐내고, 황제를 인질로 잡아 성을 점령하면 계획은 완성된다.

브레이브와 레온은 관리들이 입고 있던 옷을 벗겨서 입고 기절한 그들을 구석에 잘 숨겨 두었다. 이제 그들은 완전히 평범한 관리처럼 보였다.

물론 그들만 변장하는 건 아니었다. 완벽한 잠입을 위해, 우리는 미리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왔다.

나는 마차 안에서 드레스를 꺼냈다. 달린과 베니도 자신의 드레스를 꺼내 들었다.

우리는 다행히도 전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외형을 가졌으니, 이 점을 이용해 황성 중앙을 가로지를 생각이었다.

마침 오늘 승전 기념 연회가 열리지 않는가. 우리는 그 연회에 참가한 귀족 중 일부인 척할 예정이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황제가 있는 집무실에 잠입하기로 한 인원도 귀족 남성의 옷을 입었다. 그 중에는 아퀼라와 윈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시나와 카론은 밖에서 병사들의 시선을 끄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그들은 대놓고 수상해 보이는 검은색 옷을 입고 복면을 둘렀다. 눈이 제대로 달린 병사들이라면 아마 그들을 쫓아갈 것이다.

“자, 이제 갈아입자.”

우리는 곧 물품 보관소의 뒤편으로 가, 물건으로 가려지는 위치에서 드레스를 갈아입었다.

물론 드레스를 입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귀족 영애들의 복잡한 드레스를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입는 건가?”

“사루비아 님,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내가 끙끙대고 있을 때, 놀랍게도 나를 도와준 건 달린이었다. 손재주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녀가 내 옷의 리본을 묶어주는 것을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자, 그녀가 멋쩍은 얼굴로 설명했다.

“예전에 공작성에서 일할 때 공작 영애의 드레스를 입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하.”

드레스를 입은 뒤, 나는 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며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을 확인해 보았다.

연분홍색이 섞인 크림색 드레스는 내게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거울이 없는 게 아쉬운 지경이었다.

베니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단정한 드레스를 입었고, 달린은 통통 튀는 분홍색의 드레스를 입었다.

나는 흘끗 물품 보관소의 바깥쪽을 쳐다봤다. 아직 새벽인지라 밖은 밝지 않았다.

오늘 승전 기원 연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열린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기다려야겠군.’

나는 부대원들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 드레스를 보며 아퀼라가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사루비아, 언제나 그렇지만 예뻐.”

“고맙… 아, 이게 아니지.”

옆에서 정말 듣기 싫다는 표정이 된 이시나를 보며, 나는 지금 내가 로맨스물 여주가 아니라 혁명물 여주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여튼, 해가 밝아오는 듯 밖에서 천천히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소란스러운 소리도 들려왔다.

연회가 곧 시작할 모양이었다.

이제 계획한 때가 된 것 같아,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의심을 사지 않도록 간격을 두고 천천히 나가는 일도 잊지 않았다.

곧 내 차례가 되어, 나는 드레스를 입은 달린과 베니와 함께 밖으로 나갔고.

“와….”

궁전의 모습을 보자마자 저절로 내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내 인생에서 이토록 화려한 건물은 처음이었다.

‘이런 건물을 자기들끼리만 독점하고 있었다고?’

나는 국경방위군 시절의 숙소를 떠올렸다. 병사들은 낡고 좁은 숙소에서 옹기종기 붙어 자야만 했지. 그나마 여자들은 인원이 적어서 사정이 약간 나았지만,

정말 혁명에 대한 의지가 더욱 불타오르는군. 황족의 시대는 이제 끝이다.

내가 어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베니가 헛기침을 하여 내게 눈치를 줬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우아하게 고개를 들며 귀족 영애인 척을 했다.

‘이제 곧….’

나는 우리보다 앞서 병사들이 사라진 방향을 흘끗 쳐다봤다. 다른 부대원들이 숨어들 시간을 벌기 위해, 이시나와 카론이 대놓고 수상한 사람처럼 행동하기로 했으니까.

‘잘하고 있겠지?’

나는 이시나와 카론을 믿지만, 이건 어려운 임무이니만큼 그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잡아라!”

“침입자가 발생했다!”

이시나와 카론이 병사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가자.”

그 틈에 우리는 얼른 연회가 열리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일단 지금은 빠르게 흩어져야 한다.

“저쪽인가?”

“음악이 저 방향에서 들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영락없는 귀족 영애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회장에 들어간다면 어떤 가문의 영애인지 묻는 과정부터 우리의 정체가 탄로 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연회장 근처 정원을 자연스럽게 지나 황궁 안으로 숨어들 계획이었다. 혹시 병사들에게 들킨다면 길을 잃었다고 하면 되겠지.

그때, 우리의 눈에 아퀼라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윈터 님이 귀족인 척 연회장에 잠입해서 살펴보셨는데 연회에는 아직 황제가 오지 않았다고 하셨어.”

“역시 그렇군.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원래 황제는 승전 기원 연회가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연회에 참석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아직 황제는 자신의 집무실, 혹은 침실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을 선포한 비상 상황이므로 집무실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황제가 지내는 궁 안으로 잠입해야 했다.

“궁의 경비를 파악한 결과, 남쪽 입구에 있는 경비가 제일 많고, 동쪽과 서쪽은 수가 적어. 윈터 님이 브레이브 님, 레온 님과 함께 서쪽 입구로 숨어들었어.”

“그래?”

나는 아퀼라와 함께 가겠다고 말하려다, 달린을 보며 잠시 침묵했다.

‘베니가 달린을 다룰 수 있을까?’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달린을 다룰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남쪽 입구는 경비가 많은 곳이었다. 검술이 뛰어나고 속성 오러를 쓸 수 있는 베니가 아퀼라와 함께 가는 게 현명한 결정이기는 했다. 다만….

“내가 달린과 함께 가야 한다니!”

“사루비아 님, 왜 그러십니까?”

“흑흑, 베니, 내 몫까지 부탁한다….”

평소라면 나를 위해 양보해 줬을 베니도 달린은 싫은 듯, 아퀼라와 함께 자리를 떠나버린 뒤였다.

한편 아퀼라는 나를 불쌍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그도 달린의 위대함을 알고 있는 것이다.

“헤헤, 사루비아 님, 그럼 저희는 동쪽으로 가면 됩니까?”

달린과 단둘이 남은 나는 좀 괴로워졌다. 내가 이 고문관을 데리고 이토록 중대한 임무를 해내야 한다니.

그러나 이미 상황은 닥쳤으므로, 나는 눈물을 삼키며 이동하기로 했다.

“그래, 가자.”

우리가 가는 길목은 연회장과 가까웠기에 연회장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연회가 시작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음악 소리를 들으며 부러운 눈을 했다.

로판 속에 빙의하면 기껏해야 이런 연회장에서 쓸 사교계 예법이나 춤 같은 걸 배우게 될 줄 알았지. 흙바닥에서 체력 단련을 하고 마물을 향해 총을 쏘고 레펠을 타다가 마침내 혁명 같은 걸 하게 될 줄 누가 알았냐고요, XX.

오랜만에 해묵은 불만을 짓씹으며 연회장 옆에 있는 정원을 따라 이동할 때, 반대편에서 갑작스럽게 인기척이 느껴져 왔다. 나는 손을 뻗어 달린이 걸음을 멈추도록 만들었다.

“앞에 누가 있다.”

“네? 누가… 앗.”

다가오는 사람들을 발견한 달린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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