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42화 (215/233)

그렇게 말하며 나는 묘한 눈빛으로 허공을 쳐다봤다.

‘황제를 죽여야 한다니….’

그건 정말….

‘가슴이 뛴다.’

황제를 암살하는 건 오래전부터 나의 숙원이었다. 그가 황태자 시절 국경방위군 순방을 돌았을 때부터 말이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청소를 했던 팔이 아려 온다.

한편 황제에게 원한이 있는 건 타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그의 눈빛은 생기를 띠고 빛나고 있었다. 불쌍한 타로….

그리고 이 모든 대화를 듣던 빅팀은 우리를 미친놈 보듯이 보고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지며 말을 더듬었다.

“다, 다들 미쳤어…. 여기서 나만 정상인 게 틀림없어….”

하지만 솔직히 이건 우리가 미친놈인 게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미친놈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 * *

『사루비아에게

자네의 말대로 전쟁이 시작되었네.

이제 우리는 플뢰르-로센 지방으로 이동하게 될 거야.

그 전에, 자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한 명 보내지.』

“뭐지?”

나는 의미심장한 가블의 편지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답을 알 수는 없었다. 대신 나는 현재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는 다가올 황성 진입 작전을 준비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차피 잘못하다 죽을지도 모르는 거, 돈이나 실컷 써야지.”

내가 길을 걸으며 그렇게 말하자 아퀼라가 몸을 움찔했다.

“사루비아, 그런 말은….”

“농담이야. 난 주인공이니까 안 죽지. 물론 간혹 주인공이 죽는 소설도 있지만, 노란집 전체 연령가에서는 웬만해서는 안 죽…. 이거 혹시 19금인가?”

나는 요즘 있었던 아퀼라와 있었던 19금 이벤트들을 떠올리며 고민하다가 입을 닫았다. 음, 고수위 19금 로판이었지.

우리는 지금 곧 다가올 혁명을 대비하며 잠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끼어드는 탓에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어야지.

그래도 오늘은 카론도 베니에게 맡겨 두고 나왔다. 사실은 이시나에게 맡겨 두려고 했지만, 베니가 히죽히죽 웃으며 두 분의 평안을 위해 자신이 맡겠다고 하길래 나는 그녀를 믿기로 했다. 역시 베니, 커플링에 누구보다 진심이군….

그렇게 말하며 황성 앞을 지나던 순간, 나는 익숙하고도 낯선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딱 멈췄다.

“아, 아퀼라. 저건….”

“…….”

황성 앞에는 여러 구의 시신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바로….

‘2황자군!’

내가 예전에 체포해서 내 손으로 감옥에 집어넣었던 2황자군의 일원이었다.

2황자군의 시신으로 인해 황성 앞에는 내내 피비린내가 감돌고 있었다. 시신에서 공포라는 전염병이 번져 나오기라도 하는 듯 황성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두려움에 젖어 있었다.

내 기억 속의 황태자는 물렁한 인간이었는데, 역시 한 나라의 황제가 되더니 그도 변한 거겠지.

그는 2황자군의 시신을 걸어 놓음으로써 나라에 반하는 사람들에 경고하고 있었다. 2황자군뿐 아니라 황실을 공격하려 하는 자는 그 누구든 이렇게 될 수 있다고.

‘공포 정치라….’

내부를 조이면서 외부로 관심을 돌리는 것, 황제는 상당히 효율적인 수를 쓰고 있었다.

처참한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관자놀이부터 찌릿한 고통이 두부를 관통해서 나는 머리를 감쌌다.

“아!”

“사루비아, 무슨 일이야?”

“아니, 머리가 너무 아파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았지만 나는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 냈다.

내 시야에 흐릿하게 걸려 있는 건 2황자군의 시신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무언가가 언뜻 비쳐 보이는 듯했다.

그래, 꼭 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자의 육신이 걸려 있는 듯한….

‘뭐지?’

무언가 흐릿한 그림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지만, 또 거대한 장벽에 막혀 있는 듯 기억이 불분명했다.

그 장벽을 깨기만 하면 이 막혀 있던 것들이 시원하게 터져 나올 것 같은데….

아퀼라가 나를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을 때, 다행히 두통은 조금 가라앉았다. 피가 낭자한 잔인한 현장을 봐서 일시적으로 그랬던 것도 같다.

나는 나를 부축하고 있던 아퀼라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왜일까.’

이상하게 이토록 머릿속이 답답한 순간이면 가장 먼저 아퀼라가 떠올랐다.

이전 세계에서의 기억이 그리울 때라든지, 지금처럼 뭔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라든지.

그럴 때면 나는 본능적으로 아퀼라와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고 느꼈다.

“아퀼라, 있잖아.”

그래서 나는 아퀼라에게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일이 끝나면 결혼하자.”

“콜록, 콜록!”

놀라서 사레가 들린 건지, 아퀼라가 요란하게 내뱉었다. 그렇지만 난 이제 우리가 슬슬 결혼 이야기를 꺼낼 때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현재의 우리는 상당히 오묘한 사이였다.

“우리 결혼하자!”, “그래!” 한 사이기는 했지만 이곳에 혼인신고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결혼식도 아직 올리지 않았다. 내가 혁명을 끝낸 뒤에 하자고 미뤄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결혼식 얘기를 하자, 아퀼라의 주황빛 눈에서 불꽃이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렇다면 결혼식…도 하겠다는 거지.”

“응, 완전 화려하게.”

나는 완전 화려한 로판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티아라를 쓰고 결혼을 할 것이다. 신랑 신부 둘 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 자리는 비워 두겠지. …이시나 님을 앉혀야 하나?

어쨌든, 우리는 아주 성대하고 화려한, 행복한 결혼식을 치를 것이다.

‘사실 이게 데드 플래그 대사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 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퀼라에게도 동기 부여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역시나 정답이었던 듯, 아퀼라는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 체력 단련이라도 할 기세였다.

“무슨 수를 써서든 혁명을 성공시키겠어. 황제를 암살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행복하게 웃어 보이다가, 아퀼라의 손을 마주 잡았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

정말로, 결혼 한번 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엔딩을 맞이하기까지 우리는 너무 많은 고생을 해야만 했지 않나.

“대신 약속할게. 우리는 곧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퀼라 또한 진지한 얼굴이 되어 나를 마주 보며 답했다.

“너를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 거라고 약속할게.”

단단한 진심이 담긴 그 말을 듣자 기쁨으로 배가 부를 정도의 느낌이 들었다. 예정된 행복을 가득 삼킨 기분이었다.

그래. 이 혁명만 끝나면, 나는 정말로 행복해질 것이다.

* * *

한편 그 시각, 알렉산더는 자신의 집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막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에 근심 걱정이 그의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혹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떡하지? 의외로 백성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면? 그는 무사히 이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물론 그의 병사들은 이길 것이다. 이종족의 압도적인 무력은 전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 것이다. 그러니….

“폐하, 폐하!”

“뭔가?”

또다시 시종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을 박차고 들어왔기에 알렉산더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시종은 개의치 않고 외쳤다.

“브테인 왕국에서 침입해 왔습니다!”

“그래, 그럼 침입을 하겠지, 안 하겠나?”

알렉산더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플뢰르-로센 지방에서 전투를 하며 그들이 미묘하게 국경을 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시종이 전하려 했던 건 그런 단순한 소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배에 힘을 주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북부 마수지대를 통해 브테인 왕국군이 쳐들어왔단 말입니다!”

“뭐? 어떻게….”

알렉산더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실을 전달받은 듯, 여러 명의 대신들과 국방부 장관도 집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폐하! 빨리 명령을 내리셔야 합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그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가, 국경방위군이 떠난 자리로 브테인 왕국군이 침입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곳은 마물이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 측에서도 감히 넘지 못했던 땅 아닌가?”

마물이 득실거리는 북부 마수지대는 평소 국경방위군이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국경방위군이 자리를 비웠지만, 마물이 있기에 타국에서 이 땅을 넘어 침범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브테인 왕국은 아돌브 제국의 동북부에 있는 플뢰르-로센 지방만을 맞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외에는 침략할 길이 없다고 믿었는데….

‘북부 마수지대 너머는 바다니까, 해로를 이용하면 그곳에 도달할 수는 있지. 하지만 어떻게?’

그는 브테인 왕국이 어떻게 마물들을 뚫고 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렉산더가 당황하자, 시종 한 명이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그, 그게…. 얼마 전 설산 대대에서 흑마술 아티팩트로 인한 사고로 마물들이 잠시 비어 있는 지역이 있었는데, 정확히 그곳을 통해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소식을 이제야 전해준 건가? 대체 왜 내가 심어 놓은 첩자는 그 정보를 전해 주지 않은 거지? 에잇!”

알렉산더는 들고 있던 만년필을 내던졌다가, 곧 흑마술 아티팩트를 사용한 자의 정체를 짐작하고는 외쳤다.

“내통자야!”

알렉산더의 눈의 노기가 담겼다.

누군가가 일부러 흑마술 아티팩트를 사용해 국경 너머 마물들을 제거하고, 그 정보를 팔아넘긴 것이다. 자신이 심어놓은 첩자는 어떻게 무력화한 건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그의 명령이 조금이라도 늦어졌다가는 제국이 완전히 점령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이종족도 믿기 어려운 지경이었지만, 일단 국경을 수호하도록 명을 내릴 대상은 그들밖에 없었다.

“당장 군인들을 제자리로 불러들여! 얼른!”

알렉산더가 버럭 호통쳤고, 대신들의 그의 말에 따라 바쁘게 움직였다.

* * *

“아하, 브테인 왕국군이 처들어왔다고?”

소식을 들은 내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모든 상황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걸로 아돌브 제국은 전쟁을 벌이지 않고도 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불필요한 전쟁을 벌인 죄, 어리석은 판단으로 국가를 위험에 빠뜨린 죄.

이 정도면 충분히 아돌브 제국민을 자극할 수 있을 거고, 쿠데타 명분으로 충분했다.

황실은 위기에 몰렸고, 계약 마법은 여전히 정지해 있다.

“아퀼라, 가자.”

나는 아퀼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퀼라는 사랑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그 손을 잡았다.

때가 왔다. 이제 황성으로 침입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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