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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41화 (214/233)

울부짖는 제이슨을 뒤로 하고 달린은 바삐 어딘가를 향했다.

곧 그녀는 기척을 죽이고 어떤 방에 몰래 들어갔다. 그곳에는 남자 한 명이 입구 쪽을 등진 채 서 있었다. 그는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을 두고 무언가를 바쁘게 적고 있었다.

『아직까지 수상한 행보는 없습니다. 다만 중대장이 마물을 끌어들이는 흑마술 아티팩트를 몰래 반입했는데, 실수로 그것을 국경 쪽에서 터뜨려서』

보자마자 어떤 내용인지 모두 파악했지만, 달린은 아무것도 모른 척하며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아는 체를 했다.

“엥?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주, 중대장님?”

뒤돌아본 이는 달린이 알고 지내던 설산 대대의 부사관이었다.

‘이 녀석은 예전에 사루비아 님께 경고받은 인물이지.’

사루비아는 설산 대대에 계약 마법의 진실을 알고 있는 자가 한 명 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가 언제 황실 쪽으로 전향할지 모르니, 그를 주의하라는 말도 함께였다.

그런데 저 수상한 편지를 어딘가로 쓰고 있는 걸 보면, 역시 그가 내통할지도 모른다는 사루비아의 말이 맞았던 모양이다.

“지금 마물이 몰려들었는데 자네는 안 가고 뭐 하나? 생각? 의욕? 아무튼 그런 게 좀 없는 것 같은데?”

“어, 얼른 가겠습니다!”

부사관은 편지를 자연스럽게 서랍에 쑤셔 넣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달린은 자신이 영창에 가기 전 설산 대대에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 부사관을 제거해야 했다! 그녀는 훌륭한 스파이니까.

그리고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건 달린의 전문이었다.

“부사관? 자네 혹시 스파이? 뭐 그런 건가?”

“히익! 아, 아닙니다! 스파이라니, 대체 제가 어디의 스파이겠습니까?”

“이 시점에 편지를 쓰고 있는 게 수상한 것 같은데? 혹시 브테인 왕국의 스파이? 그게 맞는 건가?”

“정말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억울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앞으로 편지를 제한해도 할 말이 없겠지?”

“예? 가, 갑자기 편지는 왜….”

“엥? 혹시 불만 있나? 역시 스파이군!”

“저는 정말 아닙니다!”

“우와! 스파이가 말을 한다! 암호일지도 몰라!”

“으아아악!”

달린 덕에 설산 대대에 또 한 명의 남자가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영창에 갈 때 가더라도, 이 스파이만큼은 온몸을 바쳐 막아 낼 것이다.

왜냐하면 설산 대대의 스파이는 오직 달린 한 명이어야 하니까!

* * *

“아마도 황제는 계약 마법을 일시적으로 정지했을 겁니다. 아르콘들을 전쟁에 활용하려면 북쪽을 떠나 동북부로 이동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내가 다른 대원들에게 전쟁 계획을 브리핑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국경을 벗어난 아르콘은 자유로워집니다. 그들은 언제라도 황실로 돌격할 수 있는 몸이 됩니다. 그전에 저희가 계약 마법을 완전히 해제해야겠지만.”

황실 마법사에 관한 정보는 기존의 혁명 조직으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그들이 황성에 관해 조사한 자료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플뢰르-로센 지방에서 브테인 왕국 병사들을 만나는 건 변하지 않잖아?”

엘이 다시 한번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고, 나는 이제 진실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나라의 정보를 팔아넘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래 세운 계획은 이것이었다. 국경방위군이 일부러 브테인 왕국과의 전쟁에서 지고, 그 틈을 타 우리가 민중을 선동해서 황궁으로 쳐들어가는 동시에 계약 마법을 완전히 파괴하기.

하지만 그런다면 필요 없는 인명 피해가 너무 커진다. 그래서 나는 계획을 바꿨다.

브테인 왕국의 적군은 플뢰르-로센 지방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미리 입수한 정보에 따라 배를 타고 제국의 북쪽과 맞닿은 땅으로 이동하여, 아돌브 제국을 침략할 것이다.

그래, 비어 있는 땅으로 말이다.

나는 며칠 전의 일을 회상하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좋아, 그러니까 누군가는 브테인 왕국에 가서 국가 기밀을 팔아넘겨야 한다는 거지? 국경방위군이 전쟁을 위해 국경을 비울 테니, 그 틈을 타 해당 국경으로 침략하라고.”

알타이르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국가 기밀을 팔아넘기다니, 이건 브테인 측에서도 이간계로 치부하고 첩자로 몰아 처형당할 수 있는 극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국경 너머에는 어차피 마물이 있어서 그쪽으로는 침입 못 하는 거 아니야?”

“아, 그건 해결됐습니다. 일시적으로 마물이 비어 있는 국경 지대가 있을 것입니다.”

그걸 위해 나는 달린에게 흑마술 아티팩트를 주었다.

달린은 흑마술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해당 지역의 국경 너머 마물들을 모두 국경 근처로 유인할 것이고, 브테인 왕국군은 그 지역을 통해 국경을 넘어오면 된다.

이제 남은 건 브테인 왕국에 기밀을 전하는 일밖에 없었는데, 난 그 일의 적임자가 알타이르라고 생각했다. 그는 특유의 꼰대력과 유들유들한 성격 덕에 고위직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에 능하므로.

“나보고 그 일을 맡으라고? 하….”

“제가 아는 분 중에는 알타이르 님이 그 일을 맡을 만큼 가장 능력 있는 분이십니다.”

내가 진지한 어조로 말하자, 알타이르는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 되더니 말을 이었다.

“사루비아, 이건 첩자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잖아.”

그의 말이 맞았다. 운 좋게 왕을 만나 기밀을 전달한다 해도, 브테인 왕국 측에서는 우리를 아돌브 제국의 첩자로 오해하고 알타이르를 처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알타이르 님께 맡긴 겁니다. 알타이르 님은 사람의 신뢰를 잘 이끌어 내니까 말입니다.”

“그것만 문제인 게 아니야. 브테인 왕국에 무사히 도착한다 쳐도, 무슨 수로 왕을 만나?”

“아, 물론 그걸 위한 조력자가 있습니다.”

알타이르가 타고 갈 배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농장주의 배였다.

그리고 그 농장주는 바로….

‘매티의 아버지!’

역시, 가끔씩은 패티와 매티도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아, 맞다, 베니. 너 혹시 패티와 매티의 아버님들이 누군지 알고 있니?”

“예? 예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건 왜….”

후임들과 잘 지내는 베니는 그들의 아버님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그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매티의 아버님께 연락을 넣었고, 그는 자신이 물건을 진상하는 왕실까지 무사히 알타이르를 데리고 가기로 약속했다.

그 후에 은밀히 브테인 왕국의 왕과 접선하는 일은 알타이르에게 달려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이 일을 해내야만 한다고….”

알타이르는 고민하는 얼굴이 되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긴, 너를 제외한다면 우리 중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알타이르는 비장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들었다.

“모두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너는 정말 내가 해낼 거라고 믿어?”

“예, 알타이르 님은 언제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임무를 완수하셨지 않습니까.”

“…훗.”

알타이르는 어쩐지 씁쓸하게 웃더니, 마침내 긍정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가기 전에 유서라도 쓰고 가야겠다.”

“그 유서는 평생 쓰일 일이 없을 겁니다, 알타이르 님.”

그렇게 해서 알타이르는 지금쯤 브테인 왕국에 도착해서 기밀을 팔아넘기고 있을 것이다.

‘에이프릴 님, 이쯤이면 충분합니까?’

나는 어디 있을지 모를 에이프릴에게 속으로 말을 건넸다.

나는 그녀의 생각보다 더욱 비열한 방향으로 계획을 바꿨고, 이쯤이면 그녀도 만족할 것이다.

“그럼 에이프릴 님, 그곳에서 평안하시기를….”

“…사루비아, 에이프릴 님은 돌아가시지 않았잖아?”

“조용히 하십시오, 이시나 님.”

이시나를 째릿 노려보고 난 뒤, 나는 다시 말을 꺼냈다.

“황제도 이미 국경 침략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저희도 최대한 빨리 황궁에 침입해야 하므로 삼….”

“삼 일 뒤?”

유리가 희망적인 목소리로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세 시간 뒤에 침입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왜 ‘세’가 ‘삼’이 됐냐고!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유리가 씩씩대던 그때, 윈터가 고개를 저으며 짧게 말했다.

“아니, 사루비아. 내일이 좋겠군. 새벽에 침입하는 게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

그럴듯한 말이었다. 환한 낮보다는 새벽에 침입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우리의 황성 침입은 내일로 정해졌고, 이제 우리는 계약 마법을 파기하기 위한 자세한 방법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황성을 통과하려면 검문이 필요합니다. 물론 제가 생각해 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상단에 숨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상단? 어떤 상단?”

누군가가 그렇게 질문했고, 내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저희에게 협력을 약속한 상단이 있습니다. 이 상단주는 아르콘은 아니지만, 아들이 운 나쁘게 계약 마법이 발현해 국경방위군에 있기 때문에 저희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패티의 아버지였다!

나에게 도움을 주기로 한 사람 중에는 매티의 아버지뿐 아니라 패티의 아버지도 계셨다. 역시, 모든 후임은 다 쓸 데가 있다니까.

“상단을 통해 황성에 잠입하면, 일부는 눈길을 끄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일명 미끼가 되는 겁니다. 그동안 나머지는 황제가 있는 방으로 잠입해 황제에게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협박하여 계약 마법의 매개체가 있는 곳을 알아냅니다.”

동료 모두가 내게 집중한 가운데, 나는 말을 이어 갔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 매개체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황제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황실에 침입해서 매개체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일 거고 말입니다.”

매개체가 어디 있는지는 기존의 혁명 조직 또한 모르고 있었다. 혁명 조직이 보낸 편지에는 황실의 구조와 함께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매년 황실에서 새로 뽑은 시종의 일부는 어딘가로 사라짐.

은퇴한 시종 한 명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본인은 지하실에서 근무했다는 발언을 한 것이 확인됨.

밖에서 측정한 건물의 높이와 안에서 측정한 건물의 높이가 같지 않음. 숨겨진 공간이 있다는 의미.

종합해 봤을 때 숨겨진 지하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

지금 가장 의심이 되는 건 바로 그 ‘숨겨진 지하실’이라는 장소였다.

지하실에 귀중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비밀 창고 같은 게 있고, 그 어딘가에 매개체도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일단은 지하실로 침입해서 지하실을 뒤지는 거야?”

“글쎄, 최선의 방법은….”

내가 눈을 내리깔며 천천히 말했다.

“사실 황제를 협박하는 건데….”

“풉, 콜록, 콜록!”

어딘가에서 놀란 듯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필요하다면, 황제를 죽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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