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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40화 (213/233)

집 안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나는 힘주어 다시 문을 닫고 버텼다. 저 안에 황실군이 있었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문을 닫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과 싸워야만 했다. 안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못해도 세 명 이상의 황실군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갈 때 에이프릴이 빠르게 나를 뒤로 밀어냈다.

억지로 밀려난 내가 떨리는 동공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에이프릴은 나를 돌아보지 않고 집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에이프릴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집 안에서 물건 하나가 이쪽으로 휙 날아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걸 붙잡았다.

“이건….”

폭탄 모양을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에이프릴이 찾던 그 흑마술 아티팩트가 분명했다.

내가 혼란 속에서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캄캄한 집 안에서 에이프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루비아, 가.”

“예?”

“네 얼굴까지 보게 만들어서는 안 돼. 지금 얼른 도망치라고!”

“예!”

여기서 “하, 하지만….”과 같은 멍청한 대사를 하며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난 에이프릴의 명령에 따라 충실하게 뒤돌아가 달려갈 준비를 했고, 그런 내 뒤에서 에이프릴이 다시 소리쳤다.

“앞으로 내 몫은 너에게 넘길게.”

“…예?”

꼭 돌아오지 못할 사람의 말 같았기에 나는 기어코 발걸음을 멈췄지만.

“빨리 안 가고 뭐 해? 이게 빠져 가지고.”

연이어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돌리고 다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네가 이 집의 주인인가? 잠복 끝에 드디어 잡았군!”

“덤벼.”

전투가 시작된 듯 칼을 거세게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에이프릴의 집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았다.

“허억, 헉….”

열심히 발을 놀리는 동안에도 머리가 죽도록 지끈거렸지만,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에이프릴은 무사할까?

앞으로도 계속 황실군이 그녀를 쫓을 텐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우리의 혁명은 어떻게 되는 거지?

리더를 잃고도 무사히 진행될 수 있나?

……모든 상황이 꼬이고 있었다.

* * *

사루비아가 떠난 걸 확인한 뒤 에이프릴은 검에 오러를 둘렀다. 그녀의 눈과 같은 녹색빛 기운이 주위를 감돌았다.

집 안에 있던 황실군은 총 세 명. 그녀 혼자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덤벼.”

무심한 목소리로 그렇게 내뱉고서, 에이프릴은 사루비아가 달려간 방향을 등지고 버티어 섰다.

그녀는 사루비아를 믿고 있었다.

그간 보아 온 사루비아는 에이프릴 자신보다도 더욱 혁명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에이프릴이 생각하지도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 내고는 했다. 그러니 그녀는 충분히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에이프릴은 혁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돌아가지 못할 거다.

물론 지금 황실군에게 패배하여 구속당할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후로도 황실군의 추적이 붙을 수 있으니, 이제 에이프릴은 흑마술 수색 특수군의 일원들과 접촉하지 않으면서 몸을 숨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혁명군의 리더는 사루비아가 되어야 했다.

“뭐 해? 덤비지 않고?”

에이프릴이 다시 한번 도발의 말을 던지자, 세 명이 함께 달려들었다.

동시에 에이프릴은 그들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내뿜었고, 초록색 넝쿨이 순식간에 그들을 단단하게 휘감았다.

넝쿨에 감긴 채 어떻게든 빠져나오기 위해 버둥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에이프릴은 피식 웃었다.

“못 이긴다니까.”

그녀는 흘끗 뒤를 돌아봤다. 이제 사루비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탁한다, 사루비아.’

* * *

“…그렇게 됐습니다.”

며칠 뒤, 나는 흑마술 수색 특수군의 일원들을 소집해 놓고, 에이프릴의 상황에 대해 전달했다.

참고로 소집 장소는 당연히 우리 집이었다. 대체 왜 우리 집이 혁명을 위한 본거지가 된 거지? 뭐야, 내 신혼집 돌려줘요.

어쨌든, 내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에이프릴과 비교적 친하게 지내던 루이즈나 브레이브, 레온은 더욱 그러했다.

“…에이프릴 님이 너에게 모든 걸 맡기셨다고.”

플라토가 침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쏠렸다.

…내가 혁명 주동자가 되었다고? 로판 주인공이 아니라 혁명 주인공?

나는 그 자리에 어색하게 서 있었고, 곧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루비아라면 그럴 만하지.”

“암, 에이프릴 님의 뒤를 이으려면 역시 사루비아밖에 없다.”

“동의한다.”

잇따르는 부대원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몹시 억울해졌다. 뭐야, 내 이미지도 돌려줘요. 심지어 이 상황에 아퀼라마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서 더욱 어이없었다.

“어쨌든 에이프릴 님이 당분간 오지 않으시더라도 계획에 변화가 생기진 않을 겁니다. 그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말을 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문 쪽을 흘끔거렸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쯤이면 일이 터졌을 것 같은데….’

황제가 선전포고하는 날이 언제인지 알아내기 위해 나는 에이프릴과 함께 그동안의 역사서를 펴 놓고 연구했었다.

우선 베니의 아버지가 황제에게 말을 흘리고 전쟁에 대한 확신을 심어 준 날은 바로 목요일이었다.

그리고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최소 일주일, 그리고 이동 시간까지 더해 9일이 걸릴 것이다. 왜냐하면 플뢰르-로센 지방으로 국경방위군 전원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틀 정도가 걸리니까.

그렇게 되면 일요일이 되는데, 아돌브 제국의 국교에 따르면 일요일은 ‘평화의 날’이기 때문에 전쟁을 벌일 수 없다. 그때 전쟁을 벌인다면 비겁한 자로 낙인찍히고, 황제는 더욱 비난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시기는 바로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월요일이었다. 나는 혹시나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싶어 계속해서 문 쪽을 쳐다봤고.

“사루비아 님, 사루비아 님!”

바로 그 순간, 카론이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나는 카론에게 광장에서 새로 나온 속보가 없는지 확인하는 일을 지시했었다. 카론은 머리색도 평범한 편이라 제국민과 구분이 가지 않아서 위장에 유리한 편이었다.

카론의 손에는 신문 한 부가 들려 있었다.

“속보입니다! 제국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역시나!”

내가 주먹을 쥐며 환호했고, 집 안에 있던 이들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의 계획대로 정말로 황제가 전쟁을 선포한 거니까.

그리고 황제는 절대로 전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의 핵심 전력인 아르콘이 절대로 그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테니까.

우리에게 걸린 계약 마법은 탈영을 금지했지, 하극상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그게 우리가 알아낸 계약 마법의 함정이었다.

내가 찬란한 승리의 미래를 상상하며 즐거워하던 그때, 엘이 의아한 얼굴이 되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찌 됐든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 군도 피해를 입는 거 아니야? 혁명으로 감수하기에는 피해자가 너무 많을 텐데. 우리가 조작했다는 걸 알면 역풍이 클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건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브테인 왕국으로 떠난 마지막 배가… 지금쯤 도착했을 거기 때문입니다.”

개전을 위해 황실은 며칠 전 브테인 왕국으로 향할 예정이었던 모든 선박의 출항을 금지했다.

브테인 왕국으로 떠난 마지막 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농사를 짓는 농장주의 배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국경방위군에서 나 다음으로 입을 잘 터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알타이르.’

알타이르는 브테인 왕국에 가서 제국의 기밀을 훌륭하게 팔아넘길 것이다.

* * *

“말년에 전쟁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야!”

제이슨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며 외쳤다.

단언컨대, 제이슨은 자신이 국경방위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휘사관이 되어 편하게 지내고 있었고, 약 반년 뒤면 제대였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제이슨, 왜 그래?”

“전쟁 때문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곧 집에 갈 거야!”

심지어 지휘사관으로서의 새로운 부대를 패티와 매티와 같은 곳으로 배정받았다는 것도 재앙이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지?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을 재미를 위해서 조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고작 말년에 전쟁이 터졌고, 패티와 매티와 같은 부대로 배정받은 정도가 그의 불행의 끝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그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악! 이 와중에 하늘에서는 또 쓰레기가 내리잖아!”

첫째로, 그는 설산 대대에 배정받았고.

“제이슨! 소식 들었니?”

둘째로, 달린이 그들의 새로운 중대장이었던 것이다!

전설의 고문관 후임이 중대장이 되다니, 제이슨은 정말 속이 부글부글 끓을 지경이었다. 참고로 그의 후임은 중대장이 되고 난 뒤에도 고문관이었다. 정말 그의 인생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얼마 전 제설 작업을 나갔을 때 달린이 사루비아를 만나는 것도 목격했는데, 그때 제이슨은 사루비아에게 인사하려는 패티와 매티의 입을 틀어막고 간신히 정체를 숨길 수 있었다.

사루비아를 다시 만나서는 안 된다. 그녀는 분명 제이슨을 ‘그냥 제이슨’이라고 부를 거고, 그럼 그는 다시 잊고 있었던 별명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어쨌든, 전쟁이라니 이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미친 황제! 암살이나 당해라!”

제이슨이 그렇게 저주를 하고 있던 그때, 가까이 다가온 달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이슨,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 전쟁은 우리가 질 거니까.”

“예, 감사… 뭐라고? 우리가 진다고?”

“어허! 말이 짧다!”

“…그냥 누가 탈영이나 시켜 주십쇼, 제발!”

“너무 걱정하지 마, 제이슨, 헤헤.”

달린은 제이슨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럴 때가 아니야. 제이슨, 얼른 가서 일해야지.”

“일? 무슨 일 말씀이십니까?”

모든 국경방위군은 방어하던 지역을 떠나 플뢰르-로센 지방으로 이동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런데 일분일초가 급한 이 상황에 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으응, 제이슨. 왜냐하면 내가 실수로 국경에서 마물들을 유인하는 흑마술 아티팩트를 터뜨렸거든.”

“자, 잘 못 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국경 너머에 있던 모든 마물들이 국경 지대로 몰려들었어! 얼른 가서 마물들을 죽여야 해!”

“이, 이게 무슨…?”

제이슨은 자신의 머리를 감싼 채 비틀거렸다.

도대체 지금 자기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어떻게 중대장씩이나 되어서 저런 사고를 치는 거지?

그러나 달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디선가 마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수십 마리의 마물들과 목숨을 걸고 전투해야 할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제이슨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하, 그럼 난 이제 가 볼게.”

“야! 이렇게 사고를 쳐 놓고 어딜 간다는 거야!”

결국 제이슨은 중대장인 달린에게 반말을 쓰고 말았다. 그러나 달린은 개의치 않는 듯 방긋방긋 웃으며 답했다.

“응, 난 영창에 가야 해.”

“뭐, 뭐?”

“이렇게 사고를 쳤으면 영창에 안 가는 게 이상하지. 난 영창에 갈 테니 너는 마물들과 싸우렴, 안녕!”

“차라리 나도 영창에 보내 줘!”

설산 대대의 허공에는 제이슨의 간절한 목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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