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39화 (212/233)

“전쟁!”

알렉산더가 박수를 딱 치며 외쳤다.

“그래,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예, 폐하.”

놀랍게도 제이든이라는 중장은 알렉산더와 동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는 반가움에 중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제이든은 손의 떨림을 애써 숨겼다. 그는 지금 제 앞에 있는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를 설득해내야만 했다. 그는 유혹하는 듯한 어조로 속삭였다.

“국경방위군 내부에서는 왜 전쟁을 하지 않는지 답답해하는 분위기입니다. 아무래도 다들 호전적이니까 말입니다.”

“정말 그런가? 다들 전쟁에 찬성한다고? 황실군 대장은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던데.”

알렉산더는 그의 말이 조금 의심스러워졌다. 국경방위군은 이전에 반역을 준비한 전적도 있고, 2황자군과 손을 잡은 역도들을 배출한 요주의 단체 아닌가. 하지만 일단 그는 중장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기로 했다.

“폐하, 지금까지 국경을 단단하게 지켜 왔던 게 누구입니까. 황실군이 제국의 소매치기 따위나 잡고 있을 때, 수많은 마물과 치열하게 싸우며 제국민을 지킨 것이 누구입니까.”

“그래, 국경방위군이지….”

중장의 말에 알렉산더는 자신의 계책이 맞아떨어질 것이라 생각하며 기쁨에 조용히 몸을 떨었다.

그렇다. 전쟁에 대해 의논하려면 국경방위군과 의논해야 한다. 전쟁에서 필승하는 방법은 마물과 싸우며 단련된 국경방위군의 힘을 이용하는 것일 테다.

“그럼 다른 국경방위군 간부들은 모두 전쟁에 동의한다는 건가?”

알렉산더는 의심 어린 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이종족들의 의견을 확실히 확인해야만 했다.

“예, 폐하. 대신 저희는….”

중장은 괜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저희가 큰 공을 세우는 대가로, 저희가 좀 더 다양한 곳에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곳이라면….”

“예를 들면 지금의 황실군이 일하는 곳과 같은 곳들 말입니다.”

알렉산더는 금세 그 말뜻을 파악했다.

그건 국경방위군이 좀 더 권력을 확보하고 이 국가의 중심에 서고 싶다는 말이었다. 즉 그들은 공적을 세우는 대가로 입지 개선을 원하는 것이었다.

당돌한 제안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알렉산더 그와 이종족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거래였다.

“다들 평소에 충분히 훈련하고 있는가? 당장 전쟁에 나가도 될 정도로 말이다.”

“예, 폐하께서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신다면 다들 사기가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그들은 폐하께 진실된 충성을 바칠 것입니다.”

‘진짜 충성이라….’

그 말을 들은 순간 알렉산더의 머릿속에 빛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국경방위군은 계약 마법이 있으니 어차피 황제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 수 없다. 하지만 제대한 이들이나 간부들이 종종 보인 불온한 태도를 보면 아직 그들은 역심을 품고 있을 터, 이에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국경방위군의 지위를 높여 주고 ‘진짜 충성’을 얻어 내는 건 좋은 해결 방법이었다! 만일 이번 기회를 통해 이종족들의 분노를 잠재우고 황제의 세력으로 완전히 회유할 수 있다면….

황제가 혹하는 표정을 짓자, 제이든은 마지막으로 이종족에 대한 황제의 환상을 한번 더 자극하기로 했다.

“저희는 싸워야 하는 종족입니다, 폐하. 저희를 싸움터로 보내십시오.”

제이든이 알현을 마치고 나간 뒤, 황제는 곧장 행동하기로 했다.

여전히 일부 대신들은 반대하겠지만, 어차피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자신이다. 대신들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계약 마법부터 일시적으로 정지해야겠군.’

그렇지만 그 전에 그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중장의 앞에서 알렉산더는 그를 완전히 신뢰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그는 당연히 이종족들을 믿지 않았다. 전쟁을 위해 계약 마법을 해제했을 때 그들이 단체 탈영을 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특히 그가 제일 의심스럽게 느끼는 곳은 설산 대대였다. 설산 대대는 최전방 부대로 예로부터 제일 고생해 온 만큼 불만으로 인한 잡음도 많았다.

‘설산 대대에 스파이를 보내야겠군.’

그러다가 그는 문득 이전에 황실 호위군의 간부로부터 들은 말을 떠올렸다.

“폐하, 국경방위군의 부사관 한 명이 자신은 이종족의 계약 마법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진급을 원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봤자 부사관 한 명이 뭘 하겠나. 무시하도록.”

돌이켜 보니 그는 설산 대대의 부사관이었다.

그에게 다시 연락해서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고 스파이로 심으면 설산 대대에서 수상한 행태를 보이지는 않는지 완전히 감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종 한 명을 시켜 부사관에게 하명하도록 한 뒤, 그는 또 다른 명을 내렸다.

“황실 마법사를 데려오라!”

그의 명에 따라 곧 황실 마법사가 그의 앞으로 후다닥 대령했다.

당연하지만 ‘마법사’와 ‘흑마술사’가 다를 건 없었다. 하지만 이종족의 계약 마법을 관리하고 유사시 활용할 흑마술사는 꼭 필요했으므로, 황실에서는 늘 ‘세대마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선한 마법사’라는 거짓된 정보를 퍼뜨려 황실 마법사를 한 명씩 고용하곤 했던 것이다.

다른 신하들과 시종들을 모두 방 밖으로 내보내고, 알렉산더는 은밀한 목소리로 황실 마법사에게 속삭였다.

“이종족에게 걸려 있던 계약 마법을 잠시 중단해야겠네. 전쟁을 위해 그들을 활용할 테니까.”

“아, 근무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도 탈영으로 간주되지 않게 처리하라는 말씀이 맞으십니까?

전쟁이라는 말에 황실 마법사는 내심 놀랐지만, 그는 그것을 티 내지 않고 차분한 태도로 물었다.

“그래. 그리고 거기다가 하나 더. 당분간 새로운 계약 대상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하네. 새로운 군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이상 국경에 마물이 생기면 안 되니 그렇게 말씀하신 게 맞으십니까?”

“그래, 자네는 역시 똑똑해.”

“헤헤, 폐하야말로 현명하십니다.”

황실 마법사는 알렉산더에게 아부를 하며 계약 마법을 조정했고.

그 순간, 계약 마법이 정지되었다.

* * *

“아.”

사루비아의 집 안에 있던 빅팀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더니,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처럼 거대한 마력의 흐름은 처음 느끼는데….”

“뭐야, 빅팀. 무슨 일 있어?”

내가 그렇게 묻자, 빅팀이 나를 보더니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예, 방금 거대한 마력의 파장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아돌브 제국에서 이 정도로 거대한 마력의 파장이 일어나려면 한 가지 경우밖에 없습니다.”

“혹시….”

“계약 마법과 관련된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황제가 계약 마법과 관련된 무언가를 한다면 뻔했다.

계약 마법의 정지.

왜냐하면 황제는….

“내부가 혼란스러울 때 민심을 다스리는 방법은 예로부터 하나였지.”

내가 한쪽 입꼬리만 올려 비웃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건 바로 전쟁이야.”

황제는 막 즉위했을 때 이웃 국가인 브테인 왕국과 전쟁을 하려 했다. 그건 그가 막 즉위한 이후 공적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브테인 왕국은 아돌브 제국의 북동부와 인접해 있는 플뢰르-로센 지방을 두고 매일 분쟁하는 국가였다. 플뢰르-로센 지방의 소유는 자주 바뀌었는데, 지금은 브테인 왕국의 소유였다.

황제가 2황자군을 상대하느라 전쟁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2황자군이 거의 진압되었을 때 내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가 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전쟁이었다.

특히 아돌브 제국민은 예로부터 호전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가끔씩 마물이 마을로 내려오는 일이 발생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 제국민들은 3, 4급 마물을 힘으로 때려잡기도 했다.

그 정도로 아돌브 제국민은 강하게 컸고, 그들은 그만큼 무를 숭상하는 기조를 가지고 있었다. 황제는 그러한 아돌브 제국민의 특성을 고려해 전쟁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다.

어떻게 해야 제국민을 가장 분노시킬 수 있을까? 나는 그 방법을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이 필요하다.

제국민이 황제의 무능에 가장 분노할 때는….

“전쟁에서 패배할 때다.”

만일 황제가 전쟁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제국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못하고 혁명을 벌일 것이다.

“빅팀, 그럼 너 지금 이 계약 마법과 관련된 마력의 파장을 느낄 수 있는 건가?”

“예….”

“그래, 그럼 너도 황성 침입 때 같이 가야겠다.”

“그, 그런 위험한 일에 제가요?!”

빅팀이 기겁하던 그때, 베니가 밝은 표정으로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빅팀은 베니를 보자마자 얼른 표정을 관리했다.

한편 베니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황제가 넘어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역시나, 황제가 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지금쯤 자신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게 함정인 줄도 모르고.

“그래? 잘됐다. 아, 맞다, 베니. 너 혹시 패티와 매티의 아버님들이 누군지 알고 있니?”

“예? 예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건 왜….”

“아, 그렇다면 그건 이따가 얘기하자. 일단 지금은….”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건 바로….

“이제 계약 마법의 근원을 완전히 파괴해야 해.”

에이프릴이 그렇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제 때가 됐습니다.”

제대하여 자유로워진 소수의 아르콘들만으로는 혁명은 성공하기 어렵다.

국경방위군 전체가 황성으로 진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즉 계약 마법이 반드시 먼저 파괴되어야 함을 뜻했다. 아르콘을 그 저주받을 땅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묶어 놓고 있는 족쇄가 계약 마법이었으니.

그리고 그 계약 마법의 매개체는 황성에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황성에 침입해야 매개체를 파괴하던지 훔쳐 와야 하는 것이다.

“기다려 봐. 여기 어디 열쇠가 있는데….”

에이프릴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지금 나는 에이프릴의 집에 따라온 상태였다. 현재 에이프릴은 신변 보호를 위해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급하게 피신할 당시 중요한 물건을 집에 두고 왔기에 그것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에이프릴이 놓고 온 것은 바로 사람의 정신을 현혹시키는 흑마술 아티팩트였다. 그 아티팩트를 이용하면 황제로부터 정보를 빼내는 데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에이프릴은 2황자군에게 이름을 말한 적이 있기에 우리 중 유일하게 위험한 사람이었지만, 그 아티팩트를 꼭 챙겨야 하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 집에서 에이프릴의 집으로 이동한 것이다.

참고로 이미 아퀼라와 나의 신혼집은 신혼집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다, XX. 내가 ‘대충 그렇게 됐다.’는 서술을 쓰지 못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혁명만 성공해 봐라, XX.’

매일매일 ‘대충 그렇게 됐다.’는 서술을 쓰고야 말 것이다.

나는 딴생각을 하며 에이프릴의 집 문 위에 손을 얹었다가, 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끼익-

음산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고, 나는 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에, 에이프릴 님….”

왜냐하면 에이프릴의 집 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의미는….

“드디어 왔군.”

황실군이 에이프릴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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