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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38화 (211/233)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안녕들 하십니까? 오늘 저는 안녕하지 못하여 펜을 들었습니다.

반복되는 기상 이변으로 농사는 흉년이 들고, 물가는 나날이 오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식탁을 채우기는 점점 더 힘든 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더 많은 세금을 걷어 가고, 이장들은 국민들이 도망가지 않는지 감시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대표자인 이장은 마을 사람들의 뜻을 대변할 게 아니라 우리의 의견을 묵살하고 있습니다.

나라에 어려운 시기가 닥쳤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그 누구도 백성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황실은 2황자군이니 이종족의 반란이니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마을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반란군이지, 굶주린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왜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배움이 짦은 저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알 수 있습니다.

황실은 우리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황실이 원하는 건 반란군을 잡아내고 그들의 기반을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유지입니다. 지금의 이 열악한 상황을 유지하는 일 말입니다.

과연 이 국가는 누구를 위한 국가입니까? 백성들이 굶어 죽어 가는 동안, 언제까지 이 상황을 유지할 것입니까?』

알렉산더가 그것을 보고 치받는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때, 시종이 몸을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더 있습니다, 폐하….”

그의 말대로, 대자보 종이는 여러 장이었다.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황제는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황위에 올랐다.

동생의 피를 묻히고 오른 자리에서, 과연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는 아직까지도 2황자군을 채 척결하지 못하고 이제는 망령뿐인 자들에게 끌려다니고 있다.

그가 즉위한 뒤로 한 일이 무엇이 있는가?

그는 브테인 왕국과 전쟁하여 플뢰르-로센 지방을 되찾아 올 것을 내세웠지만, 정작 지금은 전쟁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은 것처럼 굴고 있다.

이에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위대한 아돌브 제국의 명성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황제에게는 황제의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지금의 황제는 마땅한 책임을 조금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가 앞으로도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그를 황제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런 괘씸한!”

결국 알렉산더는 참지 못하고 대자보를 내팽개치고 말았다.

그가 바닥에 던져 버린 대자보의 내용을 흘끗 확인한 황실군의 대장도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폐,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이럴 때일수록 이 간악한 자들을 잡아내야 합니다!”

“맞습니다, 폐하! 남아 있는 2황자군의 수작이 틀림없습니다!”

“2황자군이라고…. 잡아도 잡아도 계속 나오는군!”

알렉산더가 분노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이 되어 외쳤다.

“제국에 남아 있는 2황자군 잔당을 전부 잡아내지 못한다면, 자네에게도 엄한 처벌을 내릴 것일세! 그러니 이제는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전부 색출하도록!”

“예, 폐하!”

황실군 대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으나, 곧 그는 무릎을 꿇고 명을 받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알렉산더는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흑마술 수색 특수군을 한 명도 검거하지 못했다고 했지.”

“…….”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대장의 모습을 보며, 알렉산더는 더욱 분노했다.

“어찌 그리도 무능할 수가 있는가! 자네야말로 2황자군의 세작 아닌가?!”

“아, 아닙니다, 폐하!”

황실군 대장은 바닥에 넙죽 엎드렸지만, 알렉산더는 계속해서 분노를 쏟아냈다.

“자네가 지금까지 한 게 뭔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다고 나에게 직접 말하지 그랬는가! 심지어 흑마술 수색 특수군이 전부 가명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니! 서류를 처리한 이들은 일을 어떻게 하는 건가?!”

“폐, 폐하.”

황실군 대장은 여기서 무엇이라도 대답해야 함을 느꼈다. 그가 정말 알아낸 게 하나도 없다면 황제는 자신의 옷을 벗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에게는 얼마 전 알아낸 정보가 있었다.

“어제 2황자군을 고문해 흑마술 수색 특수군 대원의 진명 하나를 알아냈습니다. 그 인물을 중심으로 추적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곧 검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자의 이름이 뭐지?”

알렉산더가 무심히 던진 질문에, 황실군 대장은 진지한 어조로 대답했다.

“에이프릴이라고 했습니다.”

* * *

“이게 뭐지?”

수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중년 여성, 마샤는 사람들이 벽에 모여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뭐가 붙었습니까?”

그러자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짤막하게 대꾸했다.

“대자보요. 드디어 침묵하지 않는 자들이 나타난 모양이요.”

대자보? 마샤는 일단 빠르게 눈으로 대자보의 내용을 흩었다.

대자보에서 주장하는 대로, 그들의 생활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거리에는 배고픈 아이들이 가득하고

그런 와중에 황실은 2황자군이 어쩌니, 하는 알 수 없는 정치 상황을 핑계로 제국민들을 더 거세게 압박할 뿐이었다. 그들을 숨겨 주는 자는 큰 벌을 받을 거라는 협박도 함께였다.

2황자군이니 뭐니 하는 것은 하나도 모르고 그저 먹고 살기에 급급한 백성들을 분노케 하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그녀와 같이 불만을 가진 누군가가 대자보를 붙인 모양이었다.

“이보세요! 다들 떨어지세요!”

수도의 경비병이 이쪽으로 다가오며 사람들을 해산시켰고, 벽에 붙은 대자보를 죽죽 뜯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샤의 머릿속에 오늘 그녀가 읽은 대자보의 내용은 똑똑히 남아 있었다.

“그래, 이 나라는 바뀌어야 해.”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천천히 제 집으로 돌아갔다.

“대자보는 어때?”

“경비병이 대자보를 모두 떼어 내고는 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 대자보는 밤에 또 몰래 붙이면 되니까 상관없어.”

카론의 대답을 들은 난 즐거운 얼굴로 대꾸해주었다. 내가 은신에 있어서는 또 전문가 아닌가. 밤에 몰래 대자보를 붙이는 정도야 쉬운 일이다.

“그나저나 정말 사람들이 동조하고 있다고?”

“음, 물론 아직은 중립적인 반응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사는 게 좀 힘들긴 하지만, 아직까지 뭔가 큰 사건이 터진 건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 정도는 괜찮아. 뭐, 관심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물론 고작 대자보 하나에 민심을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러면 2황자군도 계속 대자보나 붙였겠지.

하지만 대자보가 계속되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책들이 퍼져 나가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마음을 돌릴 결정적인 사건 하나가 터지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그때 비로소 혁명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돌릴 결정적인 사건….’

그래, ‘그 사건’이라면 충분할 것이다. 비록 ‘그 사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황제를 적절한 방법으로 자극해야만 하지만….

“베니.”

그걸 위해 우리가 준비해 놓은 카드가 있었다.

내가 베니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금 전 편지가 왔습니다. 준비되셨다고 합니다.”

황제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황제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 중 황제와 만날 것을 요청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

그건 한 명밖에 없었다.

국경방위군의 쓰리스타, 베니의 아버지였다.

* * *

지금 알렉산더는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경이었다.

대자보 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답시고 대신들이 공손한 척하며 그의 속을 긁는 말만을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폐하,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기관을 새로 운영해야 합니다. 백성들과 황실 간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의견을 수렴하는 부처를 신설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새로 기관을 만들어서 자신에게 한자리를 주라는 신하도 있었고.

“폐하, 백성들을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대자보를 붙인 이를 잡아내시고 본보기가 되도록 엄히 처벌하시옵소서!”

“폐하, 대자보를 붙인 걸로 의심이 가는 집단이 있는데 말입니다….”

대자보를 붙인 사람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정적을 지목하는 신하들도 있었다.

신하들의 온갖 요구로 인해 그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하아….”

그가 한숨을 푹 내쉬자, 신하들 중 한 명이 얼른 외쳤다.

“폐하! 현재 제국은 내부의 적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그럴 때는 역시 외부의 적이 필요합니다. 브테인 왕국과의 전쟁을 단행하시옵소서!”

…물론 신하들의 모든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전쟁. 그건 꽤 솔깃한 얘기였다.

비록 2황자군의 반란으로 인해 무산되긴 했지만, 그는 막 즉위했을 때부터 브테인 왕국과의 전쟁을 통해 공적을 쌓으려고 계획하지 않았는가. 승전한다면 민심과 정당성을 모두 드높일 수 있었다.

브테인 왕국은 예전부터 아돌브 제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였다. 그들은 번갈아 가며 영토를 뺏고 빼앗기를 반복해 왔다.

내부가 혼란스러울 때 외부로 관심을 돌리는 건 기본적인 통치 방식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는 진지하게 전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쟁에서의 승률부터 계산해 봐야겠군. 우리는 이종족을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순종적인 태도로 나올지는 아직 불확실한 일이니.’

그는 문득 국경방위군의 대장을 만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들과의 회의가 끝난 후, 그는 시종을 불러 국경방위군 대장을 부를 것을 지시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시종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폐하, 국경방위군의 중장 한 명이 알현 신청을 했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오! 그래!”

비록 그가 만나려던 국경방위군을 총괄하는 대장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국경방위군의 고위 간부가 이 시점에 알현 신청을 넣다니 정말 대단한 우연이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알현을 신청한 당사자가 응접실 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걸어 들어왔다.

“폐하, 알현 신청을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폐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편, 베니로 딸로 둔 남자, 제이든은 잔뜩 긴장한 채였다.

황제는 지고지상의 존재, 아무리 쓰리스타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이건 그에게도 상당히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했지?”

“예, 폐하. 다름이 아니라 대자보와 관련된….”

“대자보! 그놈의 대자보!”

대자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마자 알렉산더는 머리를 싸맸다. 조금 전까지 대신들이 실컷 떠들어댄 덕분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던 것이다.

분노하는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제이든은 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에게 대자보로 인해 떨어진 민심을 수습할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관자놀이를 누르던 알렉산더는 그 말에 조금 정신을 되찾고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그 방법이 뭐지?”

“폐하, 대자보의 내용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 공적을 세우시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지. 그래서 좋은 생각이 있는 건가?”

“예, 사실 지금 백성들은 그리 살기 어려운 것도 아닌데 얕은 대자보에 선동되어 투정을 부리는 거라고 보입니다. 그러니 세간의 화제가 될 만한 위대한 공적을 세우신다면, 그들은 금방 대자보의 내용을 잊고 폐하를 칭송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예, 그건 간단합니다.”

마침내 때가 왔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제이든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브테인 왕국과의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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