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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37화 (210/233)

여기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의 얼굴을 본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사, 사루비아 님? 사루비아 님이 여기 왜 계십니까?”

“그, 그러는 너는…?”

설마 베니가 탈영을 했나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었다가, 그러고 보니 이제 베니도 제대했을 시기라는 걸 깨달았다. 변경된 군 복무 기간에 의하면 베니도 며칠 전 제대를 했을 거다. 시간 참 빠르군.

“아, 제대했구나. 그런데 네가 왜 여기…?”

“저는 근처에 이사 와서 이사 빵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슬슬 독립하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이 마을에 이종족들이 많이 모여 살고 차별도 적은 편이라 살기 좋다고 들어서….”

“이사 빵?”

그 말대로, 베니가 든 접시에는 빵이 담겨 있었다. 여기는 이사 떡이 아니라 그런 문화가 있나 보다. 정말 이상한 세계다.

“설마 여기가 사루비아 님의 집입니까?”

내가 이곳에 산다는 사실을 깨닫자, 베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가 열심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아퀼라 님, 아퀼라 님은 어디 계십니까?”

“아, 잠깐 장 보러 갔어. 같이 살거든.”

“꺄아아아악!”

베니는 신나서 그만 빵을 허공에 내던졌지만 빠르게 접시로 다시 받아냈다. 나는 그 묘기 같은 모습을 보며 잠시 감탄했다. 정말 대단한 애야.

“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래.”

흥분한 얼굴의 베니를 집으로 들이고 나서, 나는 베니가 어색한 눈으로 에이프릴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둘은 인연이 없었구나!

“에이프릴 님, 이쪽은 클레도어 산악대대 시절 제 후임입니다. 쓰리스타의 딸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베니, 이쪽은 내 옛 선임이셔. 내 스승님… 같은 분이지.”

“쓰리스타의 딸이라….”

“사, 사루비아 님의 스승님?”

에이프릴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고, 베니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더니 둘이 서로를 쳐다보는 게, 꼭 무협 고수들끼리 상대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것 같았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둘은 눈싸움을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서로의 수준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싸움을 포기한 것 같았다.

‘저 정도는 되어야 수준이 맞는구나….’

에잇, 어디 있을지 모를 내 아버지가 쓰리스타라면 나도 에이프릴과 맞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가 내 꿈을 방해했어!

“카론 님, 오랜만입니다.”

“안녕, 베니! 나는 옆집에 살아.”

카론과 베니도 재회의 인사를 나누고 나서, 나는 저 멀리 멀뚱멀뚱 서 있는 빅팀을 발견했다. 빅팀은 오늘도 감시를 위해 우리 집에 끌려와 있던 상태였다.

‘잠깐만, 베니라면 분명….’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빅팀에게 손짓했다. 내 미소를 본 빅팀은 불안한 얼굴이 되었지만 고분고분 이쪽으로 다가왔다.

“베니, 이쪽은 흑마술사 빅팀이야. 타로술사기도 하지. 그런데 타로는 잘 못 봐. 어쨌든 우리 편이 되어서 도움을 주고 있어.”

“흐, 흑마술사 말씀이십니까? 흑마술사가 저희 편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그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베니의 의문에 찬 목소리는 넘기고, 나는 일단 지금 가장 중요한 것부터 설명해 주기로 했다.

“빅팀, 이쪽은 베니라고 내 옛 후임인데. 산체스의 맞선임이자 산체스가 스승님으로 모시는 분이지.”

“히익…! 주, 주인님의 스승님?!”

빅팀이 개구리처럼 자리에서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났고, 베니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산체스가 제 제자인 게 왜… 아, 혹시 산체스랑 아시는 분입니까?”

“저, 정말 주인님의 스승님이라니!”

빅팀은 다리에 힘을 잃은 듯 스르르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더니 그는 베니의 눈치를 보며 이상한 자세를 취했다. 양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은 자세였는데… 그래, 꼭 “보스”라고 부를 듯한 자세였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어? 으응….”

베니는 빅팀의 태도에 당황했지만 곧 무슨 상황인지 대략 파악한 듯했다. 클레도어 산악대대에 있을 때도 베니에게 깍듯한 산체스의 모습을 보고 신병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호.”

한편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기쁨에 젖어 웃었다.

요즘 빅팀이 내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던데, 베니가 온 덕에 다시 기강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맙다, 베니!

“사루비아, 넌 정말 나를 닮아 간다니까.”

사악하게 웃는 내 모습을 보며 에이프릴이 그렇게 말했지만, 난 그 말을 가뿐히 무시했다. 암, 내가 그럴 리 없지!

* * *

나는 베니에게 국경방위군의 비밀과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내 설명을 들은 베니의 얼굴이 충격에 질렸다.

“세상에, 지금까지 그런 부당한 일이 있었다니…. 게다가 지금 다들 쫓기는 상태라니….”

“그래, 정말 부당하지.”

“그런 일은 시정되어야 합니다! 저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역시나 정의로운 베니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건 아주 쉬웠다. 따지고 보면 그녀도 좀 윈터과니까.

“산체스가 제대하면 제가 산체스도 저희 편으로 데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히이익!”

산체스의 이름을 듣자마자 빅팀은 발작하며 펄쩍 뛰었지만 말이다.

베니가 산체스도 끌어들이겠다고 약속해준 덕에, 우리는 큰 인재를 하나 더 얻었다. 음, 내 후임들이 제대하면 제대할수록 우리 편도 늘고 있군. 아주 바람직한 일….

‘잠깐, 패티랑 매티도 제대하면 어떡하지?’

…얼른 그 전에 혁명을 마쳐야겠다. 이로써 혁명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때, 시장에 다녀온 아퀼라가 돌아왔다. 아퀼라를 본 베니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아퀼라 님!”

“베니?”

“제대하고 얼마 전 근처로 이사 왔습니다!”

“그랬군.”

아퀼라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 옆 소파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난 쟤가 어떻게든 제대 후의 우리를 보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베니가 아퀼라와 나를 지지하는 게 좀 많이 티 났나 보다. 아퀼라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아퀼라까지 모이자, 나는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지금 2황자군의 상황이 어려워서 연합은 힘들 것 같지 말입니다. 2황자군의 손을 잡을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에이프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힘든 정도가 아니지. 그동안 너는 북부에 있었어서 잘 모르겠지만, 황실이 눈에 불을 켜고 2황자군 잔당을 추적하고 있어. 매일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잡혀 들어가고 있지.”

“그렇다면 에이프릴 님은 새로운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흐음, 나는 2황자군의 도움 없이 우리가 황궁에 침입하여 독립된 땅을 얻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한테 또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바로 귀족들이 아닌 평민들의 힘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부르주아가 아닌 하층민 말입니다.”

“뭐? 그들에게 과연 힘이 있을까?”

“제가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활동하며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내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는 그동안 2황자군과 흑마술사 진압에만 관심을 두느라 백성들의 삶은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층민들의 삶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아르콘뿐만이 아니겠지. 나는 내가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활동하며 만난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이장이 흑마술 아티팩트를 이용해 잘 먹고 잘 사는 동안, 길에 내몰려 있던 어린 남매.

마녀로 오해받았기 때문에 산속에 숨어들어야 했던 젊은 약제사 여인.

우리는 이 제국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했다.

“아르콘의 윗세대에 존재하던 혁명 조직은 시민들의 힘으로 굴러가는 자치 국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해당 서적을 제작하여 반포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깐만 말입니다, 그건….”

눈알을 굴리던 베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국가에서 지정한 불온서적이 아닙니까?”

…불온서적이었구나. 어쩐지, 아닌 게 더 이상했다.

“어두운 세계에서 알음알음 읽힌다고 들었는데….”

“그, 그렇구나. 어쨌든, 저희가 원하던 혁명에는 그 방향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귀족들이나 부르주아의 힘을 빌려서 그들을 위한 공화국을 세워봤자 저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 입장에서 그건 내가 원하던 붉은 맛이라 할 수 없었다.

“그 공화국에서 저희가 권력을 얻는다 해도, 그건 귀족들이 저희에게 시혜를 베풀어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을 부리고 이용하는 데 천성적으로 익숙한 그들이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릅니다.”

“그건 그렇지. 2황자군도 이번 일로 많이 체포되었다고 들었고. 사실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는 집단이야.”

2황자군에 있는 흑마술사들도 많이 잃었고,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과 손을 잡을 이유는 없었다.

“대신 시민들을 선동하여 혁명을 일으키도록 만들고, 시민들이 운영하는 자치 국가를 만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의회에서 협상해 아르콘을 위한 영지를 떼어주도록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귀족들로부터 영토를 몰수할 테니까.”

“귀, 귀족들의 영토를 몰수하시겠다는 겁니까?”

생각보다 급진적인 이야기였는지, 베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긴, 그녀는 아르콘이었지만 사실 부르주아에 가까웠기에 나와는 좀 입장이 다를 수도 있겠다.

“우와, 예전에 사루비아 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반면 카론은 예전에 나로부터 들은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는지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음, 내가 혁명 꿈나무로 잘 키웠군.

“상당히 이상적인 생각이야. 그런데….”

에이프릴은 고심하는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그 방법이 정말 최선이라고 생각해?”

“예, 더 이상 황제와 같은 한 명의 권력자에게 이 나라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는 우리가 직접 꾸려 나가야만 합니다.”

내가 힘주어 말했다.

“과거에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이 세계에는 이미 그런 자치 도시들이 있었다. 몇백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그건 작은 도시였잖아. 이 넓은 제국이 그런 식으로 운영되기는 힘들 거야.”

“맞습니다. 사실 다시 왕정으로 복귀하거나 공화정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도….”

“시도는 해볼 가치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만약 우리를 위한 땅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 왕정으로 복귀해 황실군이 쳐들어오더라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우리는 땅을 지켜내는 데 그 누구보다 뛰어나도록 훈련받았으니까.

그 말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곧 에이프릴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만 결정할 문제는 아니지. 다른 부대원들과 연락해서 의견을 들어볼게.”

“알겠습니다.”

문득 에이프릴의 의견이 궁금해져 나는 눈을 굴렸다. 그녀가 내 편을 들어주기만 한다면 많은 부대원들이 찬성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에이프릴 님은 어떤 쪽….”

“나?”

그녀가 씨익 웃더니 말했다.

“가장 급진적인 쪽.”

그 말에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역시, 에이프릴도 나와 같은 의견이었던 것이다!

그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베니도 거들었다.

“사루비아 님, 저도 찬성입니다.”

“뭐? 너도?”

“예, 저는 어찌 됐든 하층민들에게 가장 많은 것이 돌아가는 쪽이 좋습니다.”

‘역시베니’, 가장 정의로운 쪽을 고려하는군.

“사루비아, 나는 네 생각이 좋아.”

“저도 그렇습니다, 헤헤!”

내 말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는 저 두 남자들의 의견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뭐.

어쨌든 그렇게 그날의 자리는 파했다.

그리고 며칠 뒤….

『사루비아.

네가 말한 계획을 더 구체화해놓도록.

다수결에 의해 네 의견이 통과되었어.』

에이프릴답게 용건만 적힌 짤막한 편지를 보며 나는 활짝 웃었다.

* * *

“폐하, 폐하!”

알렉산더는 막 문을 열고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들어온 시종을 거슬리는 눈으로 쏘아보았다.

“감히 어떤 안전이라고 이리 소란스럽게 구느냐!”

황제와 2황자군의 처리에 대해 논의하고 있던 황실군 대장이 호통을 쳤지만, 시종은 손에 종이 여러 장을 들고 황제에게로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폐하. 하지만 요즘 거리에 이런 종이가 붙어 있기에, 폐하께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는 평소 눈치 빠르게 행동하여 황제의 신임을 받던 시종이었기에, 알렉산더는 그를 나무라지 않고 먼저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가 이리도 급히 행동할 정도면 뭔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곧 종이의 내용을 읽은 알렉산더는 버럭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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