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네 명의 미친놈들이 나한테 집착한다』 원작의 비밀
“모두 잘 처리됐군.”
황제는 느긋하게 옥좌에 몸을 기댔다.
황위 쟁탈에서 밀려난 2황자군의 반란은 수도에 올라온 즉시 진압되었다.
그 후 아르콘이 주축이 된 흑마술 수색 특수군도 연이어 폭동을 일으켰으나, 황실에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하고 진압되어 황성 앞에 목이 걸렸다.
설산 대대를 중심으로 국경방위군에 퍼진 반 제국 조직이 불온서적을 퍼뜨리고 있는 것도 적발하여 체포했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분란을 일으킨 집단들을 무사히 처리하니 속이 시원한 기분이었다.
다만 그는 집권 초기에 벌어진 일련의 반역 사태들에 무거운 경각심을 느꼈다.
‘역시 이종족 놈들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단 말이지.’
하긴, 지금까지 제국이 긴 시간에 걸쳐 이종족을 박해해 왔으니, 그들도 점차 불만이 쌓일 법했다.
이번 진압은 일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도록 무마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앞으로도 반란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만큼 그러한 역도의 기미를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황제는 느긋하게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다가, 문득 어떤 발상을 해내고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쯤이면 이종족의 피도 충분히 희석되었겠지.”
이종족의 의무 복무가 시작된 뒤로 순혈 이종족의 수는 계속 줄어들었다. 지금에 와서는 국경방위군으로 끌려가는 ‘이종족’의 절반 이상이 아돌브 제국민의 피가 더 강하게 섞인 실정이었다.
“그러니 이제 국경방위군 제도 자체를 없애 버리는 거야.”
황명에 의해 흑마술도 완전히 금지되었으니, 현재 황성 내에서 계속하여 작동하는 중인 계약 마법만 중지한다면 더 이상 국경 너머에는 마물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경방위군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들을 박해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반란을 일으키려 들지 않겠지! 정말 완벽한 계획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처리가 더 필요했지만 말이다.
“이미 국경방위군으로 복무했던 자들은 불만을 품을 수 있겠지.”
더 이상의 강제 징병을 중단한다 해도 그들이 힘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려 들지도 모른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지금까지 국경방위군으로 근무했던 놈들을 전부 죽여 버리면 되겠군.”
황제는 다시 한번 미소 지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그와 그의 제국에 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다.
* * *
사루비아는 아퀼라와 손을 잡고 달렸다.
그들은 계약 마법을 발동하기 위한 조건, 에이프릴의 피를 무사히 확보했다.
그러나 황실군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그들을 쫓고 있어, 마법을 발동할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제국에 존재하는 모든 이종족을 없애 버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격렬하게 진압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마침내 안전한 곳에 도착한 그들은 빠르게 흑마법을 발동시킬 준비를 시작했다.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지고 그 위로 에이프릴의 피가 흩뿌려지는 가운데, 사루비아가 입을 열었다.
“아퀼라, 기억하지? 돌아가면 네가 뭘 해야 하는지.”
“너를 사랑하는 것.”
“응, 너는 그것만 해주면 돼. 나머지는 다 내가 할게.”
그렇게 말하며 사루비아는 옆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인기척이 있었다. 보나 마나 그들을 쫓던 황실군일 터였다.
담담히 곧 발동될 마법을 기다리다가, 사루비아는 문득 억울해졌다.
“내가 왜 이 세계 전체를 버려야 하지?”
“뭐?”
“너와 함께했던 기억까지 잊어버리는 건, 정말 너무 억울해.”
그녀가 아퀼라와 함께했던 수년의 소중한 시간을 잊는다고 생각하니 통탄스러웠다.
‘돌아갔을 때 정말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걸까?’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문득 의아해졌다.
사루비아의 시간이 다시 돌아간다면 이 세계의 사루비아는 죽은 것이 될까?
아니면 아예 이 세계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될까?
만일, 만에 하나.
이 세계의 사루비아가 죽은 것으로 처리되는 거라면.
그래서 사루비아가 과거로 돌아감과 동시에 소원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마침내 그들을 발견한 황실군이 막 발동하기 시작한 마법진을 향해 달려오던 짧은 찰나, 사루비아는 간절히 빌었다.
‘이 세계에서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기억을 되찾기 위한 조건으로는….
“아퀼라, 부탁이 있어.”
“응.”
“돌아가면, 꼭 내 이름을 찾아줘.”
다시 돌아간 세계에서의 사루비아는 원래 이름을 잃어버리는 대가로 원작의 기억을 획득할 거다.
그 후에 사루비아가 우연이든 운명이든 이름을 되찾는다면, 이 과거 세계에서의 기억도 되돌아오는 걸로 하자.
어느 정도 조건이 걸린 소원이라면 충분히 이뤄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법이 발동되며 뿜어져 나오는 환한 빛 너머로 아퀼라가 은은히 웃어 보였다.
“걱정 마, 사루비아.”
사루비아는 자신에게 다가올 새로운 세계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거세게 요동치는 마력의 흐름 사이로 아퀼라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해.”
#23. 이세계에서 대자보를 붙이는 건에 대하여
눈부신 금발의 소년이 천천히 연병장을 걸었다. 그는 연병장의 상태를 살피는 듯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저건 뭐지?”
“아, 창고입니다, 전하!”
“관리가 잘 되어 있군. 훌륭하다.”
그는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부대의 상태를 평가했다.
그 후 그는 부대의 병사들과 식사를 하기도 했고, 병사들에게 덕담도 건넸다.
“그럼, 다들 수고가 많았네. 덕분에 내가 앞으로 다스리게 될 이 나라를 다시 돌아보고, 앞으로의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좋은 대련도 했고.”
소년의 눈빛은 호기로 빛나고 있었다.
앞으로 이 나라를 끌어갈 주인의 얼굴이었다.
“그래, 그땐 그랬었지….”
그는 어느 날의 일을 떠올리며 은은히 미소 지었다.
그가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황태자이던 그날, 열의가 불타는 채로 국경방위군을 순방한 날. 그에게 있어 좋은 추억이 된 날이었다.
그러나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을 떠올리자마자,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며 차갑게 굳었다. 어린 날의 호기는 그 얼굴에서 이미 자취를 감추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그는 변했다. 이제 그는 너무나도 많은 책임을 지고 있었다.
황제, 알렉산더 뢰피유 아블란은 고개를 들었다.
원하는 걸 모두 할 수 있었던 순수하고 철없던 황태자 시절은 지났다. 이제 그는 이 제국을 지탱하는 음험한 비밀들을 마주했고, 그 비밀을 홀로 감당해야만 했다.
그는 이성적이고 차가운 성격으로 변했으며,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죽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가 이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흘린 피가 얼마나 되는가.
특히 2황자군을 진압하는 데 그는 많은 시간과 돈을 써야 했다. 귀족들 간 이익이 얽히고 얽힌 결과 그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웠던 탓이었다.
‘그 일로 입지를 너무 잃었어.’
벌써부터 대신들은 그를 은근슬쩍 무능한 사람 취급하며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방어를 해왔다지만, 오래는 못 버틸 것이다. 권력 기반을 튼튼히 다져야 했다.
‘무슨 방도를 쓸 수 있지?’
알렉산더는 천천히 생각해봤다. 2황자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세력이 누가 있었지?
‘국경방위군.’
문득 그의 머릿속에 국경방위군이 떠올랐으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믿을 수 없는 조직이다.’
국경방위군이 2황자군을 진압하는 데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또 제대한 이들 중 일부는 흑마술 수색 특수군이 되어 2황자군과 손을 잡았다. 이종족으로 이루어진 집단인 이상 그들은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조직이었다.
‘게다가 오래 전에는 그곳에 반역을 준비하는 조직이 있었다지.’
알렉산더가 즉위하기 전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사실에 따르면, 국경방위군에서도 무력이 제일 강하기로 유명한 설산 대대에서 불온한 단체가 조직되었다고 했다.
물론 부황은 그곳에 부사관을 첩자로 보내 중대장 한 명을 경고용으로 살해했다. 그 이후로 설산 대대에서는 더 이상 수상한 움직임이 없었다.
어쨌든, 이종족은 알 수 없는 이들이었다. 알렉산더는 이종족을 이용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권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내 권력을 강화할 방법이라면 역시….’
알렉산더는 눈을 번쩍 떴다.
‘전쟁인가.’
* * *
우리는 더 이상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활동하던 본부는 수색의 흔적으로 엉망이 되었고, 황실에서는 우리에게 수배령을 내렸다.
『현상수배서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활동했던 자들을 고발하는 자에게는 100마크네의 포상을 내리겠다.
-아돌브 제국 황실군-』
거리에만 나가도 이런 벽보가 붙어 있었기에 심장이 쫄려서 제대로 외출을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혁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수색군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연락망을 바탕으로 편지를 보내며 연락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설산 대대의 대대장에게서 배워 온 편지 암호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 참고로 아퀼라와 나는 원래의 집으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빅팀의 집에서는 XX을 못 하… 아니, 이제 더 이상 추적의 위험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대원들이 가장 자주 찾아오는 집은 바로 아퀼라와 내 신혼집이 되었다…. 그들에게 익숙했던 공간인 본부와 가장 가까우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루비아, 내가 보기 싫은 거니?”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늘도 나는 집들이 선물을 들고 찾아온 에이프릴을 떫은 표정으로 반겨 주어야 했다.
우리 중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바로 에이프릴이었다.
왜냐하면 에이프릴은 2황자군에게 자신의 진명을 말했으니까.
“그래서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있어.”
에이프릴이 요즘 자신의 사정에 대해 찬찬히 설명했다.
“지금은 루이즈의 집에서 지내고 있어.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거처를 옮길 생각이야.”
“아하.”
내가 성의 없이 대답하던 그때, 누군가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아침부터 우리 집에 와 있던 카론이 부리나케 달려가 문을 열었다.
“조심해. 혹시나 우리를 잡으러 온 사람일 수도 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카론이 한 손으로 문을 열면서 다른 손으로는 옆에 있던 화분을 집어 들었다. 여차하면 침입자의 머리를 깰 기세였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