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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35화 (208/233)

마차에 탑승하고서 나는 윈터의 부모님과 릴리를 향해 외쳤다.

“그동안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사루비아 님! 흑흑….”

“잘 가도록.”

“무사히 돌아가렴.”

각자 자신의 성격다운 말투로 인사를 건네고, 마차가 출발했다. 윈터 가의 모습이 점점 차가운 안개 속으로 멀어져 갔다.

“윈터 님!”

“그래.”

마부석에 앉은 윈터를 부르자 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데리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것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이 너에게 검술 훈련을 시킬까 걱정돼서 빨리 왔을 뿐이다. 너는 추운 걸 싫어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 검술 훈련은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추운 것도 이젠 괜찮아졌지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있습니까?”

“그래, 들키지 않고 잘 숨어 있다. 우리의 주소는 넘어가지 않은 모양이라 네 집으로 돌아가면 돼.”

역시. 내가 있던 21세기 한국처럼 국가가 개인의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아, 그리고….”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윈터가 말을 덧붙였다.

“돌아가면 곧장 아퀼라와 이시나부터 만나도록.”

“예? 그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이 너를 무척 걱정하고 있는 것 같더군.”

윈터의 말에 나는 다소 불안해졌다.

본래 로판에서 여주가 떠나면 남주는 미쳐 버리는 법이다.

설마 내가 그들을 잠시 떠나 있었던 게 ‘도망 여주’, 뭐 그런 걸로 간주되고 남주들이 미쳐 가지고 나에게 집착하려 들면 어떡하지?

-사루비아, 넌 절대 내 곁을 떠날 수 없어.

-다시는 도망갈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어 줄게.

내가 얼마 전 빅팀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 그들이 집착 남주가 되어 꼴값을 떠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내 인생이 조금 결이 다른 19금 로판으로 바뀌면 어떡하지? 그건 안 된다! 내 인생은 노란집 전체 연령가 로판이어야 한단 말이다!

내가 불안감에 젖어 있는 동안, 마차는 달렸다.

중간중간 우리는 윈터가 가져온 식량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는 지치지도 않고 말을 몰았다. 정말 경이로운 체력과 능력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해가 저물면서 밤이 찾아왔고, 마차가 멈춰야 할 때가 왔다.

마차가 정차한 곳은 숲이었다. 이전에는 마차 짐칸에 숨어서 몰래 몸을 웅크리고 잤기에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윈터가 내게 다가왔다.

“사루비아, 너는 거기서 자도록.”

“윈터 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밤에 짐승이 나올지도 모르니 망을 보겠다.”

그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음, 숲에서 묵게 됐을 때 여주는 잠을 자고 남주는 밤을 새우기. 로판에서 자주 본 장면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국경방위군으로서의 내 가오가 허락하지 않는다.

“윈터 님, 번갈아 가면서 불침번을 서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듯하군.”

결국 윈터도 내 말에 넘어왔고, 우리는 함께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참 국경방위군 출신다운 하루였다.

* * *

며칠 뒤, 마침내 윈터의 마차는 처음 보는 집 앞에 멈춰 섰다.

“흑마술사 빅팀의 집이다. 우리는 여기서 몸을 피하고 있지.”

불쌍한 빅팀…. 이젠 집까지 뺏겼구나.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나를 반겼다.

“사루비아 님!”

날 발견한 카론이 곧바로 내게 돌진해 안기는 바람에 나는 거의 카론의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내가 힘을 주어 가까스로 카론의 무게를 버티고 있을 때, 누군가가 카론을 옆으로 치우고 내 얼굴을 마주 보았다.

“사루비아.”

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가까스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퀼라.”

내가 감동에 젖어 울먹거리고만 있자, 아퀼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네가 돌아올 줄 알았어.”

“응. 신문에 광고는 네가 실었던 거야?”

“그래, 네가 그걸 봤다니 다행이야.”

아퀼라가 다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사루비아, 떠나기 전에 성공하겠다고 약속했잖아.”

“…응.”

아퀼라가 나를 마차에 태웠을 때,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아퀼라, 내가 꼭… 꼭 성공할게.”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나는 아퀼라에게 전부 해내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혁명 조직과의 연대에 관한 떡밥이었지만.

“그래서, 성공했어?”

“응, 나 전부 해냈어….”

설산 대대의 대대장과 연락하는 일도, 그리고 내 트라우마를 이겨 내는 일도.

혼자 북부에 머무르던 사이에 나는 많이 성장했다.

그대로 나는 아퀼라의 품에 덥석 안겨 한참을 포옹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건 지휘사관 시절 이후로 처음이어서 가슴이 아릿한 기분이 들었다.

“아퀼라 너는? 너는 어떻게 지냈는데?”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해냈지. 모두 무사히 대피했어.”

그 순간 아퀼라가 팔에 두르고 있던 붕대가 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다쳤어?”

“조금. 심한 건 아니야.”

“넌 뭐든지 조금이라고 하잖아! 언제 다쳤는데?”

“그날 널 보내고 황실군과 싸우다가.”

덤덤한 그의 대답에 내 마음이 더 아픈 것 같아서, 나는 말없이 아퀼라를 품에 꼭 껴안았다.

그에게 뭐라 잔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게 그의 최선이었다는 건 알았으니까.

대신 나는 아퀼라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그래, 수고했어….”

“사루비아 너도.”

“그리고 사랑해.”

마지막 말에 아퀼라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음,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안 하기는 했지.

하지만 난 진심으로 아퀼라를 사랑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가, 주위의 눈빛이 따가워지는 기분이라 몸을 떼어 냈다. 나는 아퀼라의 눈을 마주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다음으로 내게 다가온 건 이시나였다.

“이시나 님….”

“사루비아, 다치진 않았고?”

“예, 저 그곳에서 진짜 잘 지냈습니다. 오히려 여기 있을 때보다 더 잘 먹었습니다.”

“그래, 다행이야.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 신경 쓸게.”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감동의 재회를 나누고 나서, 나는 현재 흑마술 수색 특수군의 상황에 대해 전달받았다.

다들 각자 몸을 숨긴 상태라고 했는데, 그들이 원래 살던 집에 있더라도 가짜 인적 사항을 올려둔 덕에 추적이 붙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퀼라와 윈터, 카론, 이시나의 경우에는 혹시 모르니 추가적인 안전성 확보를 위해 빅팀의 집에 있었지만.

거기다가 국가는 우리보다는 2황자군을 추적하는 데 중점을 둔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는 무사히 수도로 돌아왔고, 그렇게 내 북부 생활기도 끝이 났다.

물론 내 인생에서 최악이라 꼽아도 될 정도로 마음이 불안했지만, 그래도 정말 그 어느 때보다 얻은 게 많았던 나날이었다.

그 시기 동안 나는 추위를 이겨 낼 수 있게 되었고, 다른 혁명 조직의 협력을 얻어 냈고, 혁명의 방향도 새로이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인민의 맛을 보여 주마.’

앞으로 국가에 보여 줄 뜨거운 인민의 맛을 기대하며 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맞다, 아퀼라.”

“응?”

내 옆 소파에 앉아 있던 아퀼라가 고개를 들었다.

“이따가 밤에 잠깐 우리 집에 갔다 올래?”

“집?”

“놓고 온 게 있는 것 같아서.”

* * *

그날 밤, 아퀼라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부부 침실로 향했다. 그러고는 침대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자, 오늘은 여기서 자자.”

“…여기서?”

“너한테 들려 줄 얘기가 많아.”

내가 북부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에게 얘기해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가짜 인적 사항 덕에 추적이 붙지 않았다고 했으니, 오늘 밤은 여기서 자도 괜찮겠지.

나는 아퀼라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 주었고, 아퀼라는 내 옆에 기대어 앉아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이야기가 끝나 갈 무렵 아퀼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있잖아, 사루비아.”

아퀼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내가 예전에 말했던 3개월이 됐거든.”

“무슨 3개월? …아.”

“나는 네가 3개월 안에 마음의 준비가 끝날 거라는 데 걸게.”

…맞다, 그… 그의 남주력과 관련된 그런 일이 있었지.

“그래서 마음의 준비는 됐어?”

나는 그 말에 허공을 보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으음….”

북부에서 홀로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나는 아퀼라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마음의 준비가 안 됐으면, 너한테 단둘이 자고 가자고 했겠어? 눈치 없어?”

그 이후로는 대충 전체 연령가에 걸맞지 않은 일이 있었다.

어쨌든 대충 그렇게 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콜록콜록, 물!”

잠에서 제일 먼저 깬 내가 찾은 건 바로 물이었다.

국경방위군은 우리의 신체를 단련시켜 주는 데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내 성대까지 단련시켜 주지는 못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예상외로 내 신체가 더 튼튼해서 좀 빡쳤다. ‘안 될 것 같은데 자꾸 이게 되네’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전체 연령가에 걸맞지 않은 묘사는 여기까지만 하고.

나는 아퀼라가 건네준 물을 꿀꺽꿀꺽 마시며 그를 노려보았다.

“야….”

“응, 사루비아.”

아퀼라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양심이 없냐?”

나는 다시 억울해졌다.

왜 남주들은 처음 하는 모든 일을 잘하는 걸까? 그게 바로 남주 특성인 걸까?

물론 당연히 처음 하는 모든 일을 잘하는 남주가 메이저겠지만, 그래도 아퀼라의 남주력이 예상보다도 훨씬 높은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에 나는 왠지 그가 얄미웠다.

물론 지난밤의 일로 나는 그의 남주력 점수를 엄청나게 올려 주기로 결심했지만. 남주들 중 유일하게 양수를 달리게 됐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가 정말 얄미웠다!

“예뻐.”

내가 열받아 하고 있을 때, 아퀼라는 사람을 더 빡치게 만들려는 건지 내 콧잔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어떻게든 나를 달래 보려는 태도였다.

“예쁘다, 사루비아.”

“음….”

나는 잠시 시계를 보며 고민했다. 음, 제대한 이후로 신체 단련을 좀 게을리한 것 같은데 아침 운동을 추가로 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대충 그렇게 됐다. 더 이상은 생략하겠다.

* * *

그러나 모두의 일이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그 시각, 설산 대대의 달린은 대대장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뭔가 나만 모르는 단체가 있나 봐….”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달린은 그곳에 가입하고 싶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루비아도 그곳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달린은 사루비아가 하는 거라면 뭐든 다 따라 하고 싶었다.

똑똑똑-

달린은 대대장실의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음, 실례합니다~.”

주인이 없는 대대장실인데도 불구하고, 달린은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뒷일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 달린다운 행동이었다.

“뭐가 없나…?”

달린은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대대장의 책상을 살폈다. 사루비아가 관심을 가진 ‘그 단체’에 관한 것이 없는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이 들어왔다.

그건 붉은 표지를 가진 책이었는데, 달린은 저도 모르게 홀린 듯이 그 책을 뽑아들었다.

책의 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코뮌 운동이란 무엇인가』

“이게 뭐지?”

생소한 제목과 어려운 단어에 달린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일단 책장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대장이 돌아왔을 때….

“허, 헉! 중대장!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대대장님!!”

“무, 무슨 일이지?”

“이 책, 정말 엄청난 것 같습니다!”

“뭐?! 잠깐, 지금 뭘 읽은 거야?!”

“이런 책은 어디서 더 읽을 수 있는 겁니까?”

“그 책의 가치를 알아봐 주다니, 자네 생각보다…. 아니, 잠깐! 이럴 때가 아니야!”

잠시 흐뭇해하던 가블은 자신이 대대장실로 급히 뛰어온 이유를 떠올리고는 달린에게 외쳤다.

“지금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네! 얼른 나가서 병사들을 준비시켜야 해!”

“예? 무슨 준비 말씀이십니까?”

“전쟁! 전쟁이 터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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