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하….”
아퀼라는 파리한 안색으로 토해내듯 숨을 내뱉었다.
‘어디 있는 거야.’
분명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건만 아직까지도 그는 사루비아를 찾지 못했다.
사루비아를 찾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도무지 어디서도 사루비아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사루비아가 답장을 보내지 않을까 매일 신문을 펼쳐 봤지만 별다른 기별은 없었다. 사루비아가 신문을 보지 못했거나, 신문사가 없는 외딴 지역에 있다는 의미였다.
사루비아를 보지 못한 채로 거의 2주일이 되어 가니 완전히 미칠 것 같았다.
“사루비아….”
물론 지금 미쳐 있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퀼라는 오히려 너무 멀쩡해 보여서 무서울 지경인 이시나를 바라보았다.
사루비아가 사라진 뒤에도 이시나는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바쁘게 무언가를 할 뿐이었는데, 아마도 사루비아의 행적을 조사하는 것 같다고 아퀼라는 생각했다.
카론의 경우에는 자꾸 안절부절못하며 주위를 돌아다녔는데 그게 굉장히 정신 사나웠기 때문에 아퀼라는 카론을 진정시키는 데 많은 힘을 쏟아야만 했다.
그들은 지금 빅팀의 집에 대피해 있었다. 흑마술 수색 특수군의 일원이 아니어서 추적당할 걱정이 없는 동시에 그들의 편인 사람은 현재 빅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빅팀의 집 문을 노크했다. 물론 아퀼라는 그게 사루비아의 노크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윈터 님.’
그 정갈한 노크 소리는 윈터의 것을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 싸늘한 얼굴의 윈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윈터의 싸늘한 얼굴은 요즈음 더욱 차갑게 얼어붙어서 이제 존재만으로도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알타이르가 춥다며 윈터 곁을 피할 정도였다.
현재 흑마술 수색 특수군의 일원들은 각자의 은신처에 숨어 가까스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빅팀의 집에 모인 이들만이 사루비아를 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밖에서 활동하는 상태였다.
윈터는 다른 부대원들 전체와 연락하는 일을 도맡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움직이는 모습은 지극히 윈터다웠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이시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알아냈어.”
“예?”
“그게 정말인가?”
윈터와 아퀼라가 곧장 이시나의 옆으로 달려들었다. 이시나가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해당 날짜에 수도에서 이동했을 법한 모든 마차의 목록을 지금까지 조사해 봤습니다. 이미 확인을 마친 것들을 제외하면 딱 한 가지가 남습니다.”
이시나가 윈터와 눈을 마주쳤다.
“국경방위군이 있던 북부로 식료품을 싣고 가는 마차.”
“북부….”
아퀼라가 탄식했다. 사루비아가 얼마나 추위를 싫어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다른 곳이 아니라 북부라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시나는 아퀼라와 상반되는 태도를 보였다.
“운이 좋다면 사루비아가 국경방위군의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보다는 북부의 지형을 잘 파악하고 있을 테고요.”
“확실히 그렇겠군.”
윈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가 사루비아에게 주었던 금고 열쇠였다. 윈터는 부디 사루비아가 그것을 계속 지니고 있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의 돈을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 무사히 지내기만 한다면….
“아퀼라, 그래서 어떻게 할래. 사루비아한테 약속한 한 달은 아직 남았는데.”
이시나가 아퀼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데리러 갈까?”
아퀼라가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를 마주 응시했다.
“지금 바로 데리러 가겠습니다.”
“그래? 아직 수도는 분위기가 좀 뒤숭숭한데. 위험하지 않겠어?”
하지만 아퀼라는 겉옷을 입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번에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뭘?”
“사루비아랑 함께라면 감옥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루비아도 틀림없이 분명 그럴 겁니다. 저희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합니다.”
“…둘만의 세상이 또 시작됐군.”
이시나가 질린 얼굴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 * *
“달린, 그래서 뭐 성과가 있었어?!”
얼마 뒤, 눈이 내리고 달린이 몇 번째일지 모를 제설을 위해 마을로 내려왔을 때 내가 달린을 반기며 한 말이었다.
나는 달린에게 대대장을 통해 혁명 조직의 구성원이 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과연 달린은 그것에 성공했을까?
그러나 달린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실패했습니다….”
“오….”
“제가 너무 멍청해서 안 된답니다….”
“사람이 좀 멍청할 수도 있지!”
내가 달린을 대신해 격분해 주자, 달린이 갑자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예, 그래서 저를 그 이름 모를 조직에 넣어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사고를 더 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너 중대장이 되고도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였어?!”
사고를 치고 다니는 중대장이라니, 역시 달린은 오늘도 내 예상을 한 수 뛰어넘었다.
“그랬더니 대대장님이 그건 안 된다면서, 대신 이거나 받고 떨어지라면서 사루비아 님께 이 편지를 전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나한테?”
나는 긴장감 어린 얼굴로 달린에게서 편지를 받아 들었다.
내일이 바로 식료품 마차가 도착하는 날이다.
만일 오늘 이 편지에 확실한 답이 없는 이상, 나는 일단 수도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 나를 걱정하며 기다리는 동료들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 편지에 확답이 쓰여 있다면, 여기에 남아서 대대장과 더 이야기를 나눠 볼 법 하겠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사루비아 양에게
사루비아 양의 의견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기로 했다.
내일 휴가를 써서 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우리 중대장이 제설을 위해 처음 내려갔던 그 장소에서 만나도록 하지.
그러니 중대장에게는 제발 사고를 그만 치라고 잘 타이르도록.
가블 보냄』
“성공이다!”
내 의견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공은 달린에게 돌려야 하는 건가? 대체 그곳에서도 얼마나 사고를 치고 다닌 거야?
하여튼 나는 기쁨에 겨워 달린을 꼭 끌어안으며 외쳤다.
“달린, 네가 도움이 됐어!”
“정말입니까? 제가 도움이 됐습니까?”
“그래!”
그 말에 달린 또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사루비아 님, 앞으로 기대하십시오! 그 조직에 저도 들어갈 수 있도록 이제부터 노력해보겠습니다!”
음, 어쩐지 달린의 승부욕 같은 걸 자극한 느낌인데….
눈에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달린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저 미친X이 또 무슨 기행을 벌이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
* * *
다음 날, 나는 긴장한 얼굴로 약속 장소에 서 있었다.
요즈음 내가 자주 외출하자 릴리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면서도 내게 예쁜 드레스를 입혀 주겠다며 신이 났다. 그 덕에 오늘의 나는 거의 귀족 영애와도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대대장을 만나기 적합한 복장은 아니었다.
내가 모피 망토를 만지작거리며 자리에서 대대장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 멀리 대대장 가블의 모습이 보였다.
“…사루비아 양?”
가까이 다가온 그가 조금 당황한 눈으로 나를 봐서, 내가 인사하는 동시에 변명했다.
“예, 그 사루비아가 맞습니다. 이 복장은 제가 고른 게 아닙니다….”
“설마 귀족이라도 됐었나? 드물게 귀족 중에 이종족의 피가 섞여서 끌려온 그런 케이스인가….”
“그런 거 아닙니다…. 어쨌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가블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진 눈초리로 내 얼굴을 탐색하듯 훑었다.
“이전부터 느꼈지만, 정말 진심인가 보군. 정말 겁이 없어.”
“예, 그런 말 자주 듣습니다.”
“밖에서는 사루비아 양과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났나?”
“예, 심지어 저보다 더한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에이프릴을 떠올리며 잠시 몸을 부르르 떠니, 그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나는 힘주어 말했다.
“저희는 새로운 아르콘, 젊은 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블이 흥미가 담긴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그렇지만 저희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저희에게는 윗세대의 지혜 또한 필요합니다.”
“윗세대의 지혜라….”
그가 옛날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예전에는 우리도 그런 열정이 있던 때가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불꽃은 사라지고, 우리에게는 신중함이라 포장된 우유부단만이 남아 있어.”
하긴 카론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떠올려 보면 그 단체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 아무런 일이 없었던 걸 보면 진행 상황이 꽤 더디긴 했다.
하다못해 아르콘의 인권을 개선하자는 운동이나 현 황실을 비판하는 운동이 일어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불꽃이 필요하긴 하지, 그래….”
호의적인 분위기에, 내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잠깐의 침묵 끝에, 마침내 가블은 내가 기다리던 말을 했다.
“다른 동료들과 연락을 마쳤다. 협력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
“대, 대대장님! 감사합니다!”
“이제 자네의 대대장도 아닌데, 뭘.”
그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가블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네.”
“네, 가블 님. 그럼 만남은 어디에서 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다른 조직원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아니, 그건 위험해.”
그가 엄한 눈빛을 했다.
“이미 서로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현장에서 만날 필요는 없지. 편지로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편지가 중간에 빼돌려지면….”
“걱정 말게. 우리가 사용하는 암호가 있으니. 그 암호를 가르쳐 주도록 하지. 현장에서 직접 만났다가는 오히려 내부 고발자에 의해 함께 발각당할 위험이 있어. 서로가 서로의 조직원을 전부 알지는 못하도록 하는 편이 안전하지.”
그의 말에, 나는 우리의 뼈아픈 실책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멍청하게도 2황자군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접선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 바람에 이렇게 위기에 빠져 버린 것이다.
역시 오래된 조직인 만큼 연륜이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루비아 양이 속한 단체는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지?”
“음….”
그렇게 묻는다면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들켰습니다.”
“…뭐?”
“저희가 흑마술 수색 특수군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단체 전체가 발각되었습니다. 대신 단체에 속한 구성원은 들키지 않아서 각자 흩어졌습니다.”
“그게 무슨….”
가블이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하긴 비장하게 연대를 요청해 놓고 사실 우리 조직은 이미 거의 망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겠지.
“원래는 뭘 기획하고 있었던 거지?”
“2황자군과 협력하여 황성에 침입해서, 계약 마법을 깨고 공화정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2황자군 측에 숨어 있던 스파이로 인해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런….”
가블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는 그가 잠시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
곧 그가 머리에서 손을 떼며 천천히 말했다.
“…이렇게 된 김에,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거 어떤가?”
“예? 같이하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닐세. 더 본격적으로 하나가 되자는 말이지.”
갑자기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귀족이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 시민이 주체가 되는 나라를 세우는 거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