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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27화 (200/233)

#22. 마님이 오신 뒤로 북부에도 봄이 온 것 같아요!

“하아, 하아….”

낯선 북부에 나 혼자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니 숨이 턱턱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눈물 한줄기가 뺨을 타고 흘렀다.

입고 있던 옷을 내려다보니 내가 좋아하던 흰 드레스는 급하게 마차를 타며 모서리에 걸려 엉망으로 찢어져 있는 상태였다.

“흐윽….”

춥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나는 추운 장소에 홀로 있는 게 지독히도 싫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나를 도와줄 아퀼라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어떻게, 어디로….”

길거리에서 혼자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다가, 나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디로 가면 좋을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돌아가자….”

진정하자, 사루비아. 다시 마차를 타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된다.

비록 너는 여기에 혼자 있지만 혼자 해낼 수 있다.

북부에서 너는 네 동기들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너는 혼자 해낼 수 있다.

이렇게 추웠을 때 네 동기들이 엉망으로 죽는 모습을 너는 똑똑히 봤지만, 해낼 수 있….

“못 해….”

나는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내가 가진 문제점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조금만 불안함을 느껴도 추워지고, 그 반대로 추워져도 또 불안감을 느끼고.

언젠가 이겨내야 할 문제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관문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설상가상으로 아마 황실에 의해 반란군 수배령이 내려져 있을 것이다. 설마 황실이 우리의 초상화를 하나하나 자세히 그려서 수배령을 내린 건 아닐까?

내가 길바닥에서 혼자서 훌쩍이고 있으니, 사람들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한 듯 피해 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 싫어….”

그렇게 혼자 웅얼거리면서도, 본능적으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난 우선 돈을 찾았다. 돈이 있어야 돌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드레스의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도 동전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건 돈을 넣어둘 만한 공간이 없는 드레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로판 영애들은 어떻게 이런 드레스를 입는 거야….’

드레스의 불편성에 대해 투덜거리다가, 나는 주머니 안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촉에 동작을 멈췄다.

잠깐만, 그러니까…. 이건 설마….

나는 조심스럽게 주머니 안에 있던 것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건 윈터가 내게 주었던 은행 금고 열쇠였다.

‘살았다!’

윈터의 열쇠가 나한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이건 정말로 기사회생이었다! 그 덕에 나는 어두운 생각을 하던 걸 멈출 수 있었다.

‘윈터 님, 감사합니다!’

역시, 내가 늘 윈터를 신뢰하고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윈터가 준 열쇠의 은행은 각 지역에 지부가 있었고, 금고 안에 있는 만큼의 돈을 어떤 지역에서든 수표로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이곳은 윈터의 고향인 만큼 이곳에도 지부가 있었다. 그곳에서 돈을 대출받고 나중에 윈터에게 갚으면 되는 거다!

“아직 방법이 있어.”

다시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는 기분에, 나는 눈물을 슥슥 닦아내고 다리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고, 나는 이 낯선 곳이 두려웠고 그래서 우울했다.

그렇지만 계속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그걸 스스로 해내.”

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걸 하기로 했다.

* * *

한 가지 걱정이 되는 부분은, 우리가 반란을 모의했다는 사실이 들켰는데도 윈터의 계좌를 써도 되는가였다.

그나마 믿고 있는 구석은 이 변방까지 소식이 전해지기에는 시간이 좀 필요하리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긴한 소식이라 하더라도 이곳까지 전해지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내가 국경방위군에 있던 시절에도 중요한 전보가 뒤늦게야 전해지고는 했으니까.

그러니 에고트 마을에까지 병사들이 들이닥치기에 빨리 돈을 찾아서 숨어있을 만한 곳을 구해야 했다.

“여긴가?”

한참 뒤, 나는 가까스로 이 낯선 마을에서 작은 은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무로 된 문에 달려 있던 종이 딸랑 소리를 내며 내가 왔음을 알렸다. 수납처에 있던 직원이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썩 밝지 않았고 의욕이 없어 보였다. 직원은 엉망으로 찢어진 내 드레스를 위아래로 훑더니, 다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돈을 좀 찾으러 왔는데요.”

나는 최대한 당당한 태도로 데스크 위에 열쇠를 탁 올려놓았다. 직원이 미심쩍은 눈으로 열쇠를 받아들고 그것을 살폈다.

“혹시 성함이….”

“윈터를 대신하여 찾으러 왔습니다.”

“윈터… 잠깐, 북쪽 성에 있는 그 집안의 아들?!”

윈터의 존재는 이 마을에서도 유명했던 듯, 그 이름을 듣자마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내가 건넨 열쇠가 진짜가 맞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열쇠를 빛에 이리저리 비추어 보고도 잘못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당연하지, 그건 진짜 열쇠니까.

“열쇠를 분실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혹시 윈터 님과 무슨 관계이십니까?”

“동료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낱 동료한테 어떻게….”

그의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로판 남주처럼 오만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돈이나 꺼내 주시죠? 5마크네만 꺼내 주세요.”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데스크 뒤 어딘가로 후다닥 사라졌다. 나는 데스크의 앞에 있던 의자에서 도도하게 다리를 꼰 채 로판 영애들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안타깝게도 부채가 없어서 부채 짓을 하지는 못했지만.

조금 뒤, 남자는 1마크네의 지폐 5장을 들고 나타났다.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윈터 님과는 무슨 관계….”

“막역한 전우라니까요.”

나는 그의 손에서 빼앗듯이 지폐와 열쇠를 받아든 뒤 은행을 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나서려 했다.

은행으로 막 들어온 사람들과 정면으로 마주치지만 않았다면.

“아, 안녕하세요….”

나보다 키가 큰 두 명의 남녀를 보며 내가 어색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들이 딱딱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저번에 윈터가 데려왔던 후임이군.”

윈터의 가문 금고에서 돈을 빼내다가 윈터의 부모님과 마주쳐 버린 것이다, 제길.

* * *

은행 직원은 나를 계속 도둑으로 의심했는지 윈터의 부모님에게 나를 가리키며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다행히도 그분들은 나를 모른 체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가 예전에 정보를 얻으러 윈터를 따라 성으로 갔을 때, 내 얼굴을 기억하셨던 것이었다.

“이 애에게 열쇠가 있다고 하셨습니까? …아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더니 그들은 은행에서 자신의 볼일을 보고, 여전히 입구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내게 물었다.

“윈터가 네게 열쇠를 줬다면, 정말로 소중한 후임인가 보군.”

“예, 아마 윈터 님도 저를 소중하게 여기실 겁니다…. 생사를 함께한 전우, 뭐 그런 거랍니다, 하하하.”

“흠.”

그들이 표정 변화 없는 냉철한 표정으로 내 차림새를 훑었다.

“제대한 것 같은데, 왜 여기 있는 거지? 윈터는 지금 수도에 있는 걸로 아는데.”

“그게 말입니다….”

그걸 설명하려니 왠지 눈물이 나오는 기분이어서, 나는 말끝을 흐렸다. 정말로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도 같았다.

“이런 곳에서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닌데….”

내가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그들이 나를 달래듯 나를 감싸고 섰다. 그제야 좀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심각한 문제여서 저어되기는 했지만, 윈터의 부모님은 사실을 아셔야 할 테니까.

“반역을 모의하다가, 발각되었습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들으신 그대로가 맞습니다. 그래서 다들 황실군을 피해 흩어졌고, 저는 몸을 숨기려 마차 하나에 탔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목이 메어 말하자, 윈터의 어머니가 하얀 손을 내 어깨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녀가 손을 대기가 무섭게 냉기가 전해져 와서 나는 몸을 움찔 떨었다. 수족냉증이신가?

“저런, 많이 힘들었겠구나.”

조금도 나를 염려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들이 원래 저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괘, 괜찮습니다…. 빌린 돈은 다시 윈터 님께 돌려드릴 거고, 이제 수도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수도로 돌아간다고?”

윈터의 아버지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씀하셨다.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싶어 나는 그들의 눈치를 봤다.

그들끼리 아는 무언가가 있는 듯, 윈터의 부모님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주고받다가 입을 여셨다.

“수도에서 이곳까지 물자를 싣고 오는 마차는 이 주에 한 번씩 도착한다. 네가 탈 수 있는 마차는 그것밖에 없어.”

“그리고 그 마차가 조금 전 마을을 떠나는 걸 우리가 봤다.”

“무엇보다도 정말 반역이 들킨 거라면,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데 다시 수도로 돌아가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야.”

“그렇다면….”

내가 다시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주 동안 수도로 돌아가지 못한단 말인가? 그럼 난 그동안 이곳에서 혼자 뭘 한단 말인가? 잘 곳도 없는데, 윈터의 돈을 더 빌려야 하나? 아니, 애초에 여관은 있나? 아퀼라도 날 엄청 찾고 있을 텐데….

내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던 그때, 윈터의 어머니께서 말을 떼셨다.

“아가.”

“네, 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호칭에 내가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세계의 그 어떤 어른도 나를 저런 따뜻한 호칭으로 불러준 적이 없었는데.

“갈 곳이 없니?”

“네. 혹시 이 마을에 여관이 있나요? 돌아가서 갚을 테니, 돈을 조금만 더 빌려 가면….”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윈터의 어머니가 딱딱한 어조로 내 말을 끊어내시기에 나는 몸을 움찔했다.

역시 내가 그들 집안의 돈을 마음대로 빌리는 게 마음에 안 든 거겠지? 그냥 노숙해야 하나? 국경방위군에서의 짬밥이 있으니 노숙도 자신 있긴 했다.

그러나 그녀가 꺼낸 것은 내 예상을 벗어나는 말이었다.

“우리 집에서 머물거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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