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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26화 (199/233)

* * *

2황자군과 대면하기로 한 당일, 수색군들은 모두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퇴근 이후 우리는 이목을 피하기 위해 각자 사복을 입기로 했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좋아하는 흰 드레스를 입었고, 아퀼라는 내가 골라 준 정장을 입었으며.

이시나는 자주 입는 셔츠를 입었고, 윈터는 북부 대공스러운 검은 옷을 입었고, 카론 또한 내가 골라 준 옷을 입었다. 스스로를 트렌디하다고 생각하는 자답게 알타이르는 유행하는 디자인의 셔츠를 입었고, 유리는 우리 중에 가장 평범한 기다란 원피스를 입었다.

한편 에이프릴은 발랄한 원피스를 입었는데, 그게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소름이 돋았다.

어쨌든, 당일 저녁까지만 해도 우리는 긴장하긴 했지만 약간의 설렘 또한 가지고 있던 상태였다.

그들과 접선하기로 한 장소는 흑마술 수색 특수군 본거지 부근에 있는 바였다.

그 바에 들어갈 무렵부터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잠깐, 바라면 혹시….’

진짜 로판 여주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건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복숭아 마티니로 주시죠.”, “…잠시만 기다리시죠.” 하고 암구호를 주고받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건가?

내가 설렘을 참지 못하고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자 앞에서 걷던 이시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루비아, 우리 진짜 술 마시러 가는 거 아니야. 알지?”

“…압니다. 그리고 저 술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런 것치고는 저번에 네가 폭탄주? 그런 걸 말길래….”

“…….”

저번에 피곤한 임무가 끝난 뒤 우리 집에 부대원들이 뒤풀이 겸 놀러 왔을 때, 그들에게 폭탄주를 말아 먹인 전적이 있었기에 나는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이건 8년 동안 술 한 방울 못 마시게 한 이 세계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그렇게 들어가게 된 바는 평범한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좁은 바였고 손님이 한 명도 없긴 했지만 이곳이 워낙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걸 고려하면 그럴 만했다.

에이프릴은 우리를 이끌고 당당히 바텐더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요.”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좋아, 이제 여기서 암구호를 말하겠지? 과연 암구호는 뭘까? 너무너무 설렌다!

“아뇨, 주문이 아니라 여기서 만남이 있어서요.”

“아,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암구호를 말하지 않는다고? 에이프릴, 남주력 –100.

나는 실망한 표정으로 에이프릴의 뒤를 따라 바텐더가 안내해 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와.”

방 안은 밖에서 보기와 다르게 아주 넓어 보였다. 몇십 명도 족히 수용할 수 있을 크기였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2황자군의 일부와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생겼을까….’

혁명군답게 한쪽 눈에 상처가 난 사람도 오려나….

아. 그런 사람은 이미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지.

괜히 우울한 기억에까지 가닿은 나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대신 내 옆에 있던 아퀼라의 손을 괜히 붙잡았다.

“아퀼라.”

“응.”

기분이 울적해지니 변덕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나는 평소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말을 해 보기로 했다.

이전에 아퀼라가 내게 그 말을 하려던 것을 억지로 막았던 적이 있으니, 내가 먼저 말해주면 그도 기뻐하지 않을까.

“우리 이 일이 끝나면.”

“응.”

“결혼하….”

쾅-!

그 순간 누군가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윈터가 빠르게 문 쪽을 향해 검을 겨눴고.

“허억, 허억…!”

등에 상처를 입은 듯한 남자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빨리 도망쳐!”

“당신은 누구지?”

에이프릴이 침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는 2황자군 소속, 허억…! 우리 측에 숨어 있던 스파이로 인해 황실에 발각당했다, 빨리 도망쳐!”

“뭐?!”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저 안으로 들어갔다!”

“잡아!”

그제야 우리는 우리가 제대로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도망가야 해!”

우리에게 소식을 전했던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빠르게 그의 손목으로 맥을 짚어 본 루이즈가 고개를 저었다.

“죽었다.”

“저희도 빨리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바에 입구라곤 우리가 들어왔던 문 하나밖에 없었고, 지금 그곳으로 황실군이 들어오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역시 싸워야 하나.”

내가 비장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린 그 순간 뒤에서 굉음이 들렸다.

쾅-! 쾅-!

“브레이브 님!”

국경방위군 시절부터 도끼를 주 무기로 쓰던 브레이브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도끼로 나무벽을 내리찍고 있던 것이었다.

그의 도끼질 몇 번에 벽은 금방 갈라졌다. 그가 그 틈을 가리키며 외쳤다.

“얼른 가자!”

우리는 재빨리 갈라진 벽 사이로 빠져나왔다.

그러나 바를 탈출해 조금 달리자마자 인근을 포위하고 있던 황실군과 마주하고 말았다.

“잡아!”

“XX!”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물론 혁명을 결심하면서 언젠가 위험한 순간을 마주할 거라고 각오는 했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위기가 닥친다고?

여전히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우리는 달렸다.

그러나 황실군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져 왔다. 상황 판단을 마친 에이프릴이 빠르게 소리쳤다.

“흩어져! 흩어져서, 나중에 만나!”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지금 저 포위망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흩어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어디로 가야 선임들과 길이 겹치지 않으면서 황실군을 피할 수 있지?

내가 잠시 방황하고 있던 그때, 아퀼라가 내 손을 턱 붙잡았다.

“달려.”

“…응!”

나는 그의 손을 잡고 함께 달렸다. 우리를 쫓는 황실군보다 우리의 신체 능력이 월등히 좋은지라 그들은 우리의 속도를 앞서지는 못했다.

어딘지 모를 방향으로 힘껏 달리다, 나는 문득 이곳이 흑마술 수색 특수군의 본부 쪽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갑자기 아퀼라의 걸음이 현저히 느려졌다. 덩달아 발걸음을 멈춘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사루비아.”

“응.”

“난 사람들한테 알려야 해.”

그 말에 나는 숨을 멈췄다.

오늘 있었을 2황자군과의 회담에 수색군 모두가 참여한 것은 아니다. 우리 중 일부만이 가기로 했기에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니 아퀼라는 그들에게도 도망치라고 알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대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걸음을 늦췄다가는 우리가 잡힐 것 같았다.

내가 망설이고 있던 그때, 아퀼라는 내 손을 잡고 있던 힘을 풀더니 대신 내 어깨를 감쌌다.

그러고는 옆에 주차되어 있던 짐마차 안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는 내 모습이 들키지 않도록 내 위에 천을 덮어 주었다.

“사루비아.”

천을 덮기 전, 아퀼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로 다시 돌아와. 돌아오지 못하겠으면, 내가 널 찾으러 갈게.”

“안 돼….”

“도망쳐, 사루비아.”

“아퀼라, 내가 꼭… 꼭 성공할게.”

그가 말리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결국 나는 손을 놓았지만 눈을 부릅뜨고 약속했다. 그건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도 지금 내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 건진 알 수 없었지만, 이 혁명도, 그리고 아퀼라와의 재회도. 모두 내가 해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아퀼라는 나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시야가 캄캄해졌고.

여기서 바보같이 행동하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으므로, 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리는 황실에 발각당했다.

그리고 아퀼라는 오늘 붙잡히게 될지 도망칠지 나는 모른다.

여기까지가 지금의 이야기이다.

* * *

잠시 뒤 짐마차가 덜컹거리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숨을 죽인 채 짐 속에 파묻혀 있을 뿐이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이 짐마차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몰랐다. 잘못하다가는 이 나라 밖으로 나가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슬슬 황실군을 따돌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나라도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리기는 무리였다. 이 마차가 멈추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덜컹-

몇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마차가 정지했다.

마부가 내려 어딘가로 사라지는 기척이 느껴졌고, 나는 그 틈에 얼른 천을 걷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인 광경은….

“으음….”

어딜 봐도 인가라고는 없는 숲속을 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내리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 적어도 인가가 있는 곳에 내려야 다른 마차를 이용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보니 마부는 숲 한구석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멈춘 거였군.’

나는 고개를 돌려 아무것도 못 본 척해 주었다.

어쨌든 나는 인가가 있는 곳이 나올 때까지 이 마차에 계속 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다시 천을 덮고 아무도 없는 척을 했고….

“또 숲이야?”

“젠장, 또 숲이야?”

“아오, 이런 XX!”

마차가 정지할 때마다 인적 없는 한산한 길이 나오는 게 반복됐기에 나는 슬슬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나는 낯선 곳으로 가고 있고,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른다. 이 마차에서 언제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짐 속에 있던 음식을 훔쳐 먹기는 했지만 내 머릿속은 공허했다.

‘아퀼라는 어떻게 됐을까.’

아퀼라뿐 아니라 뿔뿔이 흩어진 다른 부대원들 또한 어떻게 됐는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카론, 이시나, 윈터, 에이프릴, 알타이르, 유리, 타로….

마차 속에서 한참을 달리며 나는 간간이 눈물을 흘렸다. 행복했던 잠깐의 시절은 먼 과거처럼 느껴졌고 내 안에는 공포의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하아, 하아….”

기분 탓인지 점점 추워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아마도 내가 불안해지면 추위를 느끼는 경향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마차는 한참 동안을 달렸고….

덜커덩-

마차가 멈췄을 때, 나는 이번만큼은 그 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인적 없는 길의 서늘한 바람이 아니라, 마을이 가지고 있는 생기 넘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마부의 눈을 피해 슬쩍 마차에서 내렸고.

“아….”

내리자마자 훅 몰려오는 추위에 몸을 벌벌 떨었다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탄식했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추위를 느낀 것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마을은 나도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이전에 첫 번째 흑마술사를 잡았던 장소.

국경방위군과 밀접해 있던 곳.

북부, 에고트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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