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23화 (196/233)

* * *

‘그래, 알타이르 님이 우리를 구하러 오실 거야.’

그가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안다면 금방 자신이 실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를 구하러 오겠지?

…그래,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안다면 말이다….

‘그 인간 요즘 생각 없는 것 같던데!’

안타깝게도 알타이르는 국경방위군을 제대했다는 기쁨에 취해 요즘 다소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만 해도 내가 알타이르에게 왜 그렇게 생각이 없냐고 놀렸으니까 말이다.

XX,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여기서 자력으로 탈출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실핀도 없이 말이다.

‘흑마술사의 이송은 이틀 뒤라고 했지.’

그 전에 빨리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 내일은 흑마술사의 이송을 위해 감옥이 시끌벅적해질 것 같으니, 이왕이면 오늘!

“역시 숟가락으로 벽을 파야 하나….”

내가 흙으로 된 벽을 보며 진지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카론이 자신의 손을 숟가락처럼 둥글게 말아 보였다.

“사루비아 님, 숟가락이 없으니 제 손가락으로 파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아냐, 아냐! 가만히 있어!”

다행히도 카론은 즉시 행동을 멈췄다. 휴, 저 자식, 정말 머릿속에 내 말을 그대로 따를 생각밖에 없군.

‘다른 집 애들은 그렇게 똑똑하던… 똑똑하지는 않지.’

나는 카론과 동갑인 산체스를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음, 그래도 산체스보다는 카론이 더 훌륭하게 성장… 아니, 이게 아니잖아!

자꾸 주제를 벗어나는데 이제는 정말로 여기서 어떻게 탈옥할지를 고민해 봐야 할 시간이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지구의 생에서 봤던 영화들을 떠올렸다.

숟가락으로 벽 파기, 머리카락과 신문지를 이용해서 가짜 사람 만들기, 바닷속으로 헤엄치기….

전부 긴 시간이 필요한 방법이었다. 그런 방법으론 하루 만에 탈옥은 절대 불가능했다!

“카론, 의견 있나?”

“전 사루비아 님의 의견이 좋습니다!”

“그래, 너한테 의견이 있을 리가 없지….”

그렇다면 나 혼자서 의견을 내 보도록 하자.

하나, 간수를 불러서 기절시키고 열쇠 뺏기.

‘이건 불가능하지.’

우리가 처음부터 이 방법을 배제한 이유는 간수가 요란한 소리를 내는 호루라기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불면 근처에 있는 경비대까지 소리가 들리고, 그렇게 된다면 경비대가 온통 출동해 소란스러워질 거다. 그렇게 일을 키우는 건 우리의 은밀한 임무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현실은 영화와 달라서, 간수의 허리춤에 무조건 열쇠 뭉텅이가 걸려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간수는 ‘이거 훔쳐 가쇼.’ 하고 열쇠를 떡하니 보여 주고 다닐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둘, 창살을 빼내기.

‘이건 잘 하면 가능하겠는데?’

카론은 나이를 먹고 성장하면서 힘도 많이 세진 상태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산체스와 거의 비등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 창살도 힘으로 뜯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열심히 창살을 노려보다가 좀 헐거워 보이는 부분 한 곳을 발견했다.

“카론, 한번 이걸 뜯어봐 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카론은 이번에도 아무 반문 없이 그대로 벌떡 일어나 창살을 힘으로 잡아당겼다.

징- 징-

기분 나쁜 쇳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간수가 달려올 만큼은 아니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창살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좋아, 가망이 있어!”

내 응원을 들은 카론의 팔에 힘줄이 올라오며 더욱 힘이 들어간 순간.

“으악!”

창살은 뜯어지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한 카론만 그대로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아이고! 괘, 괜찮아?”

나는 당황하여 카론을 일으켜 주며 두 번째 계획을 폐기했다. 그래, 카론이 아무리 강해도 나무도 아니고 쇠로 된 창살을 뜯어내는 건 무리지. 이러다 애 잡겠다.

‘XX,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데….’

내가 머리를 감싸 쥐고 다시 고민을 시작했을 때, 카론이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사루비아 님, 그런데 실핀이 있으면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겁니까?”

“그래! 너한테도 알려 줬잖아!”

“아하, 그럼 사루비아 님한테 실핀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거 알타이르 님한테 있다니까.”

“아니, 사루비아 님 머리에….”

“내 머리?”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 머리를 만져 보았다가….

“이, 이게 뭐야!”

내 손에 걸리는 실핀의 감촉에 놀라 손을 뗐다. 단정하게 묶인 머리카락 어딘가에 실핀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머리에 왜 실핀이… 이시나 님!”

“사루비아, 잠깐만. 좀 더 단정하게 하고 가야지.”

그때 실핀까지 써서 묶어 준 거구나! 어쩐지 내가 묶을 때랑은 비교할 수 없이 깔끔하다 했다.

“역시 이시나 님이야….”

나는 진심으로 감동받아 눈물을 글썽거렸다. 역시 남주진들 중 내가 의지할 사람은 이시나밖에 없는 거 아닐까?

그 후 나는 연습한 대로 손쉽게 자물쇠를 땄다. 우리가 그토록 나가려고 애를 쓰던 감옥의 자물쇠는, 실핀을 쑤셔넣은 지 3초 만에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하아….”

나는 열린 문을 보며 허망한 목소리로 한숨을 쉰 후, 카론에게 손짓했다. 짚으로 대충 사람 형상을 만들어 놓으라는 의미였다. 흑마술사와 대화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어야 하니까 말이다.

“사루비아 님, 이 정도면 됐습니까?”

“음, 아주 좋아.”

카론이 만들어 놓은 사람 모양의 짚을 보며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가 기른 애답게 온갖 잡기술에 능하고 손재주가 뛰어나군.

“자, 이제 나가자.”

“네!”

작은 목소리로 속닥이며, 우리는 슬쩍 감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도로 자물쇠를 잠갔다.

우리는 감옥의 비교적 입구 부분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더 깊은 감옥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통로였다. 음산한 분위기라도 조성하고 싶었던 건지 복도에는 조명조차 걸려 있지 않았다.

우리는 이 작전에 착수하기 전에 임시 구치소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입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흑마술사가 갇혀 있는 위치를 알아내는 데엔 실패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우리가 직접 알아내야 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흑마술사는 검은 로브를 쓰고 있었어.”

숨죽여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는 어두웠지만 우리는 차차 그 어둠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깊은 산 속에서도 근무를 선 적이 있는 우리다. 산에서 살다 보면 밤눈이 밝아질 수밖에 없고.

나는 카론에게 손짓해 내 뒤를 따라오게 만들었다. 설산 대대에서 중대장과 술래잡기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림자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우리는 흑마술사를 찾아 점점 더 깊은 복도 안으로 들어갔고.

마침내 마지막 감방에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누워 있는 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나는 얼른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조심스럽게 흑마술사를 불렀다.

“거기 너, 고개 들어 봐.”

“에잇, 무슨….”

내가 이미 들어 봤던 목소리가 귀찮다는 투로 무어라 중얼거리다가, 순간 뚝 끊겼다. 흑마술사는 고개를 들고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당신은 저번에 그… 이종족? 흑마술 수색 특수군?”

상황을 파악한 그가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를 잡아넣은 게 뻔뻔하게 어딜…!”

“쉬잇! 조용히 해!”

혹시 간수가 오지 않을까 눈치를 보며, 나는 카론에게 망을 보라고 손짓했다. 카론은 내 말을 듣고 쪼르르 달려가 망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일을 꾸밀 때면 늘 망을 봐서인지 아주 익숙한 자세였다.

“나는 너를 도와주려고 이곳에 왔어.”

“뭐라고요? 저를요? …설마 2황자군에 협력하려는 겁니까?!”

“으음, 그럴 의사가 좀 있어서. 일단 네 얘기를 들어 보려고.”

그러자 생기 없던 흑마술사의 눈에 빛이 감돌았다.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의 눈은 열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금이 그를 이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에, 나는 이전에 들었던 사기꾼 흑마술사의 어조를 흉내 내며 말했다.

“이봐, 그거 알아? 너는 내일이면 흑마술사들만 모아 두는 감옥으로 끌려갈 예정이야. 너도 그곳이라면 들어 본 적 있지?”

“히익…! 그곳은…!”

“그래, 빛 한 점 들어오지 않고 대화할 사람도 없게 독방에 가둬 두는 지옥 같은 곳이라고.”

“안 됩니다, 그곳만은 안 돼요!”

“그래, 그러니까 나한테 협력하는 거야.”

나는 예쁘게 웃어 보이며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마치 친절한 상담원 같은 그런 미소 말이다.

“물론 이종족도 이 나라에 불만이 있지. 하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 나라를 바꾸기 어렵단 말이야.”

“그렇다면 2황자군과 협력하려는 게 맞군요! 잘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얼른 이곳에서….”

“응, 네 말을 듣고 확신이 생기면 너를 이곳에서 꺼내 줄게.”

그렇게 말하며 나는 들고 있던 실핀을 흔들어 보였다. 실핀을 보는 그의 눈이 꼭 다이아몬드라도 보는 듯했다.

“밖에서 자물쇠를 따는 것 정도야 쉽지. 네가 우리 계획에 필요해진다면 너를 데리고 나갈게.”

“네, 네!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그가 갑자기 무릎을 털썩 꿇고 예의 바른 자세를 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걸 보면 이곳에 갇혀 있던 지난날이 몹시 힘들었나 보다.

“2황자군에 흑마술사는 어느 정도 있지?”

“몇몇 일을 거치며 희생한 흑마술사를 제외하면, 스무 명은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사병은?”

“현재 남아 있는 수는 오백 명이 넘습니다!”

“귀족은 얼마나 있고?”

“함께 도망 다니고 있는 귀족도 한 명 있고, 무엇보다도 뒤에서 돕고 있는 귀족들이 꽤 있습니다. 큰 힘이 될 겁니다!”

“귀족이라….”

나는 그렇게 읊조리며 눈을 반짝였다.

황제가 다스리고 있는 나라를 바꾸기 위해서 귀족들의 힘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동안의 귀족들과 아르콘의 관계를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무관심’이라 할 수 있었다. 귀족들에게 하층민은 아예 관심의 대상도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 대해서도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보통 아르콘들은 군 복무를 하느라 북부 지방에 몰려 있어서 중앙의 귀족들과 접점이 적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잘하면 아르콘에 대한 귀족들의 관심을 자극할 수 있을 거다. 왜냐하면 순혈 아르콘의 수가 부족해지고 이제는 아르콘의 피가 아주 미세하게 섞인 사람들도 운 없게 동원되면서, 부르주아들도 끌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윈터나 베니였다.

‘겉으로는 그렇게 안 보여도 패티랑 매티도 부르주아고 말이지.’

어쩌면 운 없는 귀족들이 끌려오는 일도 곧 발생할지 모른다. 아니면 이미 끌려온 선례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니 귀족들에게 이 사실을 강조한다면 그들도 아르콘에 대한 기존의 정책을 바꾸려 들 것이다.

현재 귀족들은 현 황제를 지지하는 파와 기존의 2황자를 지지하여 척결의 대상이 된 파로 나뉘는데, 2황자를 지지하던 무리가 워낙 컸기에 그들을 모두 완전히 처단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 그중 대부분은 보석금을 받고 사면해 주는 데에서 그치고 있다고.

그러니 아직 현 정계에는 한때 2황자를 지지했던 무리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들은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아마도 우리가 이 나라를 바꾸는 데에는 틀림없이 이들 귀족들의 도움도 필요할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 얘기는 나중의 일로 미뤄 두고, 일단은 그들과 연락하는 방법을 알아야겠지. 이 흑마술사는 잔챙이고, 2황자군의 리더는 따로 있을 테니까.

“흩어진 2황자군끼리 모두 연락이 되고 있는 건가?”

“그래서 일부러 흑마술사 한 명씩과 함께 찢어진 겁니다! 저희는 흑마술 통신구를 통해 연락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지금 그 통신구는….”

“들어올 때 압류된 상태니까,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아! 저를 데리고 나가실 때 그것도 함께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나는 계속해서 물었다.

“현재 너희 측의 리더는 누구지? 그쪽과도 연락이 되나?”

“아, 슈비드 백작이란 귀족인데 지금 그분은 국가에서 수배령이 내려지셔서 저희와 함께 도망 다니는 중입니다.”

당연하지만 2황자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사람은 추적의 대상이 되었고, 슈비드 백작도 그중 한 명인가 보다.

“역시 귀족이 수장이군…. 좋아, 알았어.”

이로써 그에게서 빼낼 수 있는 정보는 모두 빼낸 것 같았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슈비드 백작과 대화를 나누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할 일은….

“좋아, 이제 잘 있어라.”

“예?! 그게 무슨…!”

“그럼 우린 간다, 이만.”

그에게 멋있게 손짓하며 카론을 데리고 떠나려 한 순간, 복도 너머에서 갑작스러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삐익-! 삐익-!

“탈옥자들이 발생했다!”

XX,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다!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은 몰랐는데!

간수가 혼자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어쩐지, 그 성질머리 더러운 여자가 웬일로 조용하다 했더니!”

…XX! 내가 아까 너무 깽판을 쳤구나! 적당히 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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