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이지?”
계속 입을 닫고 일만 하고 있던 윈터가 놀란 듯 끼어들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설명했다.
“저희가 빅팀에게 사기를 쳐서, 저희에게 협조하는 쪽이 이득이 크다고 믿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예, 예전에 사기를 어떻게 치는지 배웠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지…? 정말 다양한 곳에 재능이 있군.”
윈터가 어떻게든 나를 ‘재능 있다’라고 칭찬해주는 걸 무시한 채,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다.
빅팀 이 자식, 내 화려한 말빨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어디, 시킨 일은 다 했나? 오호홋!”
빅팀이 계모처럼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오던 그 순간, 나는 부리나케 빅팀에게 달려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빅팀 씨, 지금부터 저희의 오퍼를 꼭 수락해야 하는 이유를 피티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뭐?!”
“자, 먼저 이곳에 앉으시고, 지금부터 피티 시작하겠습니다!”
빅팀을 잡아끌어 깨끗하게 청소된 소파에 앉힌 후 나는 회사의 신입 사원처럼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와 파트너쉽 관계를 맺으면, 다음과 같은 베네핏들이 있습니다. 첫째, 새로운 국가에서 코어 자리에 올라 베네핏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종족이 정치에 참여하여 새롭게 링크된 국가는 빅팀 씨에게 충분한 베네핏을 제공할 것입니다.”
“흐음, 그렇군.”
“둘째, 흑마술사의 포지션이 이전과 다르게 체인지될 것입니다. 흑마술사가 탄압받던 세상, 이제는 오지 않습니다. 흑마술이 진정한 마법으로 인정받는 세상, 이제 당신의 앞에 놓여 있습니다.”
“호오, 솔깃한데?”
아아, 정말 선거 유세를 하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마법사에 대한 서포트 펀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국가는 마법사들의 복지를 위해 충분한 펀드를 지급할 것입니다.”
“흐응, 돈 좋지.”
‘통한 것 같다…!’
예전에 북부의 3대 흑마술사인가 뭔가 하는 놈을 잡을 때 사기를 쓰는 놈을 만났었는데, 그놈으로부터 배운 말투가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내가 뿌듯한 얼굴로 빅팀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어디에선가 꺼낸 부채를 펄럭이며 말했다….
“오호호, 하지만 그 정도로는 나한테 못 미치지. 내 니즈를 맞추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어~.”
‘XX, 당했다.’
저놈도 흑마술사라는 걸 잊었다. 역시 흑마술사답게 빅팀은 흑마술사식 화법에 아주 능하며 그런 술수에 넘어가지도 않는 것이다.
“한가한 듯하니 두 번째 시련을 내리겠어요. 두 번째 시련은 바로 무화과를 구해 오는 겁니다.”
“아돌브 제국에서는 무화과가 안 나잖아!”
“맞아요. 어쨌든 알아서 구해 오세요, 호호호.”
…흑마술사의 자발적 도움이고 뭐고, 더 이상은 못 참겠다.
그렇다면 이제 결론은 한 가지밖에 없다!
“폭력과 공포다, 이 XX야!”
“아악!”
나는 기습적으로 달려가 팔꿈치로 그를 내리찍으며 몸통 박치기를 했다. 비실비실한 그는 그대로 부채를 놓치며 풀썩 엎어졌다.
나는 그를 바닥에 쓰러뜨린 채로 전체 연령가에 적합하지 않은 폭력성을 선보였다.
잠시 후 그가 항복을 외치며 손을 번쩍 들었다.
“자, 잠깐! 이제 그만! 주, 주인님!”
‘주인님…?’
“산체스 님! 이제 제발 그만해 주세요!”
“뭐? 산체스?”
여기서 그의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인가?
빅팀은 지금 전체 연령가에 적합하지 않은 폭력성 때문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몽사몽한 걸로 보였다. 그러니까 그 말은 무의식중에 나온 말인 것이다.
‘잠깐, 설마…!’
빅팀이 지금까지 했던 말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예, 저는 살인도 안 했고! 이종족이나 고아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부려 먹은 적도 없었고! 사람의 장기를 빼서 쓰지도 않았고! 사람을 가두려 시도…를 한 번 하긴 했는데 실패했으니까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자, 잠시만요! 그런데 그 사람이 먼저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잠깐 가두려고 시도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저는 그 이후로도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고요!”
가두려고 시도했던 그놈이 산체스였구나!
‘맞아, 산체스도 그랬어!’
예전에 우리가 흑마술 아공간에 갇혔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예, 예전에 흑마술사가 이런 아공간에 저를 가두려 했지만 제가 그의 팔을 꺾어서 뒤로 넘긴 뒤….”
그렇다면 산체스가 몇 번이나 말했던, 그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흑마술사!
그 사람이 바로 이 빅팀이었던 거다!
‘어쩐지 불쌍하게 생겼더라니….’
산체스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 상황에서 산체스의 이름부터 튀어나오지? 심지어 산체스를 주인님이라고 불렀단 말이야?
왠지 빅팀으로 인해 고생하면서 빡쳤던 게 좀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빅팀이 진정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는 산체스의 악몽 속에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으니까.
잠시 후, 빅팀은 곧바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외쳤다.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저는 산체스가 아닌데요?”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절대로 제 주인님, 아, 아니, 산체스 님이 아니지요….”
…산체스는 흑마술사가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도록 내버려 뒀던 거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산체스는 정말 미친놈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 저는 당신도 제 주인님으로 모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예?”
어쩐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하지만 내가 빅팀에게 반문했을 때 되돌아온 건 황당무계한 답변뿐이었다.
“저는 당신으로부터 산체스 님의 흔적을 느꼈습니다….”
“뭐라고요?”
“그러니까 당신은 제 주인님입니다….”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는 아직 별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산체스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는 듯했다. 게다가 나에게 산체스를 덧씌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나에게 이득 아닌가? 산체스가 빅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고 알고 싶지는 않지만, 그는 나를 산체스와 비슷한 존재로 여기고 산체스뿐만 아니라 내게도 절대복종할 것 같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그의 도움을 얻으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폭력과 공포에 이렇게 쉽게 굴복해버리다니.
역시, 폭력과 공포가 또다시 모두를 구원했구나….
하여튼 나는 빅팀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내가 다리까지 꼬며 한껏 오만한 태도를 보이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더욱 벌벌 떨었다.
‘흠, 아무래도 폭력과 공포에 반응하는 것 같은데.’
며칠 동안 보았던 계모 같은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완전히 불쌍한 남자 한 명만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걸 보면 내 추측이 맞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잠시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저기요, 혹시 저를 위해 흑마술을 하나만 써 주실 수 있나요?”
나름대로 공손한 그 말에 빅팀의 얼굴 표정이 갑자기 홱 변했다.
“흥, 내가 왜….”
“좋은 말로 할 때 흑마술 써라, 이 XX야.”
“헉! 주인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빅팀을 어떻게 관리하면 되는 건지 완전히 파악하게 되었다.
나는 뻘쭘한 얼굴로 윈터를 보며 말했다.
“윈터 님, 혹시 브레이브 님과 레온 님께 빅팀을 맡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성향상 두 분이라면 잘 관리해 주실 것 같습니다.”
“아니, 사루비아 네가 하는 게 좋겠군.”
“예? 하지만 저는….”
“아니, 너는 충분한 자격이 있어.”
“…예?”
“그래, 사루비아. 너는 할 수 있어.”
“맞습니다! 사루비아 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퀼라와 카론마저 나를 그렇게 응원해 주었기에 나는 몹시 떨떠름해졌다. 아니, 내가 산체스랑 비슷할 리가 없잖아요….
하여튼 우리는 그렇게 흑마술사 한 명을 조력자로 얻게 되었다….
* * *
그를 확보한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흑마술사들의 상황에 대해 묻는 일이었다.
저번에 보니 북부의 3대 흑마술사들끼리는 저들끼리 연락하던 모양이었는데, 그럼 다른 흑마술사들 간에도 어떤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너 아는 흑마술사 있냐?”
“이, 있긴 있었는데 전부 체포당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친구가 없습니다….”
“그렇군.”
이상하다, 지금 보니까 왜 이렇게 불쌍하게 느껴지는 거지.
“그럼 2황자군에 대한 소식은 뭐 아는 거 있어?”
내가 정말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2황자군에 대한 일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수도로 진군했고, 그들을 막기 위해 우리가 개고생을 하기까지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수도에서 황실군과 맞서 싸웠다는 소식 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면 2황자군은 대체 어디로 간 거란 말인가?
나는 빅팀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다가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넌 아는 게 뭐냐?”
어쨌든 뽑아먹을 건 뽑아먹어야지.
“아는 거요? 그러게요…. 저는 뭘 알까요…. 나는 뭐지? 뭘 위해 태어난 거지?”
그러나 내 질문을 받은 빅팀이 정신을 놓다 못해 자신의 존재 의의까지 헷갈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산체스, 대체 저 불쌍한 흑마술사를 대상으로 무슨 짓을 한 거냐….
나는 그에게 더 물어볼 만한 것이 없는지 궁리하다가 문득 2황자군 측과 함께 하던 흑마술사를 떠올려냈다.
‘한 명은 내가 체포했지.’
그렇지만 2황자군은 여전히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그들은 영 가망이 없어 보이는 블랙 드래곤의 심장 찾기 따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 데 시간을 쓸 게 아니라 그들이 황성으로 쳐들어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도록 만들면 좋을 텐데.
“빅팀, 너 이번에 2황자군 측에 붙은 흑마술사 중에 아는 사람 있냐?”
“2황자군이요? 반란군 말씀이신가요?”
“그래, 그렇게도 부르지.”
그 말에 빅팀의 눈이 빛났다.
“맞아요! 그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드디어 제 존재 가치를 증명했군요!”
“아니, 네 존재 가치가 그런 걸로 결정되지는 않아….”
“뭐가 궁금하신가요? 제가 뭐든지 알려 드릴게요!”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하다가 질문을 꺼냈다.
“거기 있는 흑마술사들은 다 범죄를 저지른 거야? 그러니까 너같이 멍청하고 무해한 놈들은 없어?”
그들의 범죄 여부에 따라 그들을 어떻게 다룰지 결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뇨, 거기에는 단지 흑마술사에 대한 제국의 취급에 불만을 가진 놈들이 모두 몰려간 거라서…. 평소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던 흑마술사도 있고, 악명이 높은 흑마술사도 모두 있어요!”
“그렇단 얘기지….”
나는 의자에 다시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렇다면 그들 중에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인데.
“결심했다.”
내가 비록 이번에 2황자군 측의 흑마술사 한 명을 감옥에 넣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2황자군을 체포한 건 아니니 우리에 대한 적개심이 조직 전체에서 그렇게 깊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그들을 만나 보고 쓸 만한 놈이 있다면 협력을 제안하는 거다.
지금 우리의 세력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고작 흑마술사 한 명 더 추가됐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렇다면 2황자군과 어떻게 연락하지?’
그게 내 새로운 고민이었다. 그들을 찾기 위해 산을 모두 뒤지고 다녀야 하나? 연락할 방법이 있는 2황자군이….
“…아.”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내가 탄성을 내뱉었다.
내가 행방을 알고 있는 2황자군, 한 명 있지 않는가.
내 손으로 감옥에 집어넣었던 바로 그 흑마술사 말이다….
비록 범죄를 저지른 전적이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가 꺼려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다른 2황자군과 연락하는 데 도움을 줄 가능성은 있겠지.
‘잠깐만, 그 얘기는….’
이미 감옥에 있는 놈과 접선해야 한다는 건….
이제는 감옥까지 쳐들어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정말 안 가는 곳이 없군.’
하다 하다 이제는 감옥까지 털어야 한다니. 내 인생, 이게 말이 되냐, 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