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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20화 (194/233)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마침내 그녀가 흑마술사임을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부엌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거대한 솥, 테이블 한 곳에 놓여 있는 말린 개구리와 벌레들, 벽에 전시되어 있는 새빨간 뱀, 집 안을 가득 메우는 약재 냄새….

우리가 집 한가운데에 어정쩡하게 서 있으니, 그녀가 테이블 위로 찻잔 세 개를 내왔다. 그 안에는 수상한 검은색 물이 담겨 있었다.

“드세요.”

그녀가 우리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귀한 거랍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나?’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찻잔 안에 담긴 내용물을 노려보았다.

검은색의 빛깔에 이상한 냄새까지. 과연 이게 우리를 죽이려는 독극물은 아닌 건지 의심이 됐다. 아니, 애초에 흑마술사가 주는 걸 믿고 먹어도 되는 건가?

“이거 안전한 거 맞나요?”

“네, 오히려 몸에 아주 좋을 거랍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또 몸에 엄청나게 좋을 것 같기는 했다. 다만 안 좋은 재료들을 이용해서 몸을 좋게 만들어 줄 느낌이라 문제지….

“대체 이게 뭐죠?”

“그 안에 들어간 거라, 흐음….”

여자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음흉하게 웃었다.

“흑염소랑 지렁이?”

“풉!”

나보다 앞서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댔던 카론이 차를 뿜더니 격하게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아휴, 이게 뭐야. 칠칠맞지 못하게 다 흘리고.”

“자, 휴지.”

아퀼라는 내게 휴지를 가져다주었고, 나는 그 휴지로 테이블을 닦다가, 어쩐지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는 관뒀다…. 음, 정말 육아를 하는 기분인데. 아니,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그래서 무엇이 필요하신 거죠?”

여자가 그렇게 물었기에, 내가 최대한 딱딱해 보이는 얼굴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저희는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흠, 어떤 약제가 필요하시죠?”

“예? 갑자기 무슨 약제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흑마술사가 아니세요?”

“네? 저는 약제사인데요?”

…젠장!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매며 절규했고, 함께 이 산을 오르느라 고생했던 아퀼라와 카론의 얼굴도 조금 어두워졌다. 틀림없이 흑마술사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하지만 그제야 이 안에 있던 이상한 약재들과 말린 개구리, 벌레, 뱀, 거대한 단지 같은 것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평범한 약제사였구나! 검은 고양이는 그냥 키우는 거고, 검은 모자와 옷과 해골 귀걸이도 그냥 본인의 취향이었던 거였어!

“잠깐만, 왜 이 근처 풀은 시들어 있는 건데요?”

“아, 제가 실패한 약재를 그곳에 부어 버려서….”

그런 거였군!

그래, 게다가 흑염소와 지렁이를 달인 물. 그건 흑마술사가 만들어 낸 물 같은 게 아니라 약재였을 뿐이었다. 돌이켜 보면 지구에도 흑염소탕이나 토룡탕 같은 게 있었다.

나는 씁쓸한 얼굴로 내 앞에 놓인 흑염소와 지렁이를 달인 물을 쳐다봤다. 지금 이걸 마시면 지구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걸까?

‘로판 속에 나오는 고향의 맛은 김치나 떡볶이 같은 건 줄 알았는데….’

토룡탕을 통해 고향의 맛을 느끼게 되다니….

내가 좌절하고 있었을 때, 여자가 입을 열었다.

“흑마술사를 찾고 계신 건가요?”

“…그, 저희가 흑마술사의 힘을 이용하려는 반동분자는 아니고요, 하하. 그저 흑마술사를 신고하려는 애국자….”

그녀가 우리를 신고할 것을 걱정한 내가 뒤늦게 변명을 했지만, 여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얼마 전에 흑마술사가 이곳을 찾아왔답니다.”

“예? 흑마술사가요?!”

내 눈이 휘둥그레지자, 여자가 설명을 이어갔다.

“원래 흑마술 포션을 만드는 데는 약제가 쓰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흑마술사들과 연이 꽤 깊죠.”

잘못 찾아온 줄 알았더니,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그래, 어쩐지 이 집이 산속 깊은 곳에 있더라!’

흑마술사와 몰래 접선하기에는 이쪽이 편했겠지!

“얼마 전만 해도 흑마술사 한 명이 이곳을 다녀갔죠. 저도 흑마술사들과 나름 인맥이 있답니다. 예를 들어….”

“정보가 꼭 필요해요!”

그녀자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려는 것 같기에, 나는 그녀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퀼라가 당황하여 나를 불쑥 들어 그대로 소파에 앉혀 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제가 찾고 있는 흑마술사가 있어요! 빅팀이라고 하는데, 혹시 그를 아세요?!”

내가 간절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여자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빅팀이요?”

그를 알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빅팀 씨라면… 제가 말한 얼마 전에 이곳을 다녀간 그 흑마술사인데….”

그 순간 내 눈빛은 변했다.

나는 오만하게 다리를 꼬고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서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피식, 찾았군.”

“예?”

갑자기 변한 내 태도에 약제사는 당황한 듯했지만 나는 집착 사루비아 모드를 멈추지 않았다.

“후훗, 이렇게 금방 꼬리를 잡힐 거면서 도망치다니…. 아주 귀여워.”

“예…?”

이제 약제사는 아까의 당당하던 태도는 잃고 멍청한 눈빛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아기 고양이는 어디로 갔지?”

내가 그렇게 묻기까지 하자 약제사는 완전히 내 페이스에 휘말린 듯했다. 순순히 정보를 분 걸 보면.

“그, 어제 여기 왔다 갔는데요. 수도에 있는 전당포로 갔을 거예요. 그곳에 가지고 있는 물건을 좀 맡기고 돈을 얻겠다고 들었어요.”

“전당포라, 피식.”

“그런데 왜 자꾸 ‘피식’을 입으로 발음하시는 건가요?”

“피식.”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 비서!”

“예!”

“준비해! 지금부터 수도에 있는 모든 전당포를 뒤진다.”

* * *

“그 미친X은 완전히 따돌렸겠지?”

타로술사이자 흑마술사, 빅팀이 사루비아로부터 도망 다닌 지 며칠이 지났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제대로 된 돈도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빅팀은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기로 했다. 그래도 얼마 전에 약제사에게서 재료를 사 왔으니 흑마술 아티팩트를 좀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미친 이종족이 많은 거야?”

그가 질린 표정을 했다. 그는 과거에 만난 미친 이종족 탓에 이종족 공포증이 있었는데, 요즘 자신을 추적하는 녀석도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전당포를 나가기 위해 뒤를 돈 순간….

“찾았다.”

“으아아악!”

누군가가 자신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바람에 빅팀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가 지금까지 피해 다녔던 미친X, 사루비아가 그곳에 서 있었다!

“여, 여긴 어떻게!”

“네가 나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해?”

어쩐지 이상한 데다 광기마저 어린 말투였다. 그 말투가 그녀를 더욱 무시무시해 보이게 만들어서 빅팀은 몸을 오소소 떨었다.

“넌 절대 나에게서 못 벗어나.”

“으아아악!”

“이제 가출을 끝내고 돌아올 시간이야, 피식.”

“흐엥, 아, 안 돼!”

결국 그는 일말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아방한 자세로 쓰러지고 말았다.

* * *

우리는 빅팀을 잡는 데 성공했다!

카론과 아퀼라는 빅팀을 단단히 붙들었고, 그 후 나는 그를 근처에 있던 아퀼라와 내 집으로 데리고 왔다. 본인 집에서 쉬고 있던 윈터까지 심문을 도우러 우리 집에 왔다.

우리는 일제히 빅팀을 둘러싸고 섰다.

싸늘하게 생긴 윈터와 날카롭게 생긴 아퀼라가 그의 양옆에 삼엄한 태도로 서 있으니 빅팀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빅팀 씨는 그래서 흑마술사가 맞나?”

“예, 예! 맞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정말 나쁜 짓이라곤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디 선처를…!”

“나쁜 짓을 안 했다는 걸 어떻게 믿지? 살인도 안 했나?”

“예, 저는 살인도 안 했고! 이종족이나 고아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부려 먹은 적도 없었고! 사람의 장기를 빼서 쓰지도 않았고! 사람을 가두려 시도…를 한 번 하긴 했는데 실패했으니까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가두려 시도했다고? 아, 이 자식 안 되겠네.”

내가 카론 쪽을 바라보며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가서 연장 좀….”

“자, 잠시만요! 하지만 그 사람이 먼저 저를 괴롭혔던 겁니다! 그래서 잠깐 가둬 보려고 시도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저는 그 이후로도 괴롭힘에 엄청 시달려야 했다고요!”

“아, 보복성이었던 거군.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만 실패했고.”

“네, 네! 그런 겁니다!”

“좋아, 그 말은 틀림없는 진실이겠지?”

“네, 진실입니다!”

사실 이 심문은 형식적인 것일 뿐, 나는 빅팀이 나쁜 일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봐 온 빅팀은 나쁜 일을 하기에는 너무 심약한 사람이었으니까.

심지어 윈터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내 추측에 확신을 더해 주기까지 했다.

“심장 박동이 일반적이군.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아.”

‘…뭐지? 인간 거짓말 탐지기?’

윈터의 대단함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니…. 윈터, 남주력 +45.

어쨌든, 나는 이제 빅팀의 말을 믿기로 했다.

“정말 아무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예! …탈세 빼고는.”

“…아돌브 제국은 탈세 좀 당해도 싸지.”

좋아, 이제부터 본론을 꺼낼 때다.

“보다시피 우리는 이종족이고, 이 제국에 변화를 불러올 준비를 하고 있다.”

“예, 예! 그러시군요!”

“변화를 바라는 건 너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탄압받던 게 지긋지긋하시지 않나?”

“음, 그거야 그렇지만….”

“그러니 앞으로의 여정에 함께해 주지 않겠어? 우리는 조력자가 필요해.”

그제야 빅팀은 우리가 자신을 붙들어 놓은 이유를 깨달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의 얼굴은 의기양양해졌다.

“아하,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는 거군요!”

“그래.”

“그럼 입장이 바뀌어야죠, 호호!”

그가 갑자기 턱을 높이 쳐들더니 아퀼라와 윈터 보고 비키라는 손짓을 했다.

그들이 어쩌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에 나는 빅팀의 말을 들어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우리가 빅팀이 필요하고, 그에게 잘 보여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제 도움을 구하는 건 쉽지 않을 거랍니다.”

“훗, 그 어떤 시련이라도 이겨내 주지.”

“사루비아, 아까부터 말투가 왜 그래…?”

“아차, 나도 모르게.”

한편 빅팀은 뜸을 들이더니, 우리에게 과업을 내렸다.

“세 가지 시련을 내리겠어요. 첫 번째 시련은….”

나는 긴장한 얼굴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뭘로 우리의 능력을 증명하게 될까? 마물 소탕? 아니면 대련?

“하~, 누구 때문에 급하게 도망치느라 저희 집이 요즘 엉망이어서요. 누가 청소 좀 해 주고 빨래랑 설거지도 해 주면 좋겠는데…. 호호호!”

“하하, 등은흐 흐드르으즈….”

어금니에 힘을 꽉 주고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잠시 폭력과 공포로 그를 길들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 그 방법으로는 진정한 도움을 얻을 수 없겠지, XX.

나와 아퀼라, 카론과 윈터의 흑마술사 집 대청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흐음, 뭐죠? 마룻바닥 틈에 먼지가 있는데.”

“XX, 저거 원래 내 대사였는데….”

“스물두 번째로 말하는 사실이지만, 나에게 들리게 불평하는 일은 금지랍니다. 흥, 예의 없기는!”

“저건 윈터 님 대사였는데….”

빅팀의 집에서 열심히 청소를 하며 내가 한 넋두리였다.

물론 불행 중 다행인 건, 나 혼자만 청소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 곁에는 그날 함께 있었던 아퀼라와 카론 그리고 윈터가 있었다.

우리의 집이 빅팀의 집과 가까웠던 탓에, 우리는 빅팀의 마음을 사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빅팀 XX는 아주 까다로웠다. 그는 꼭 군대 시절 선임들처럼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흥! 오늘은 빨래를 해 놓고 집 청소와 설거지, 그리고 시장에서 장 좀 봐 오세요!”

“어, 어제도 청소했는데…!”

“원래 청소는 매일 하는 거 아닌가요?! 평소에 정말 더럽게 사시는군요! 아, 이 김에 화장실과 지하실 청소도 부탁해요!”

“젠장…!”

그가 마치 동화 속 계모처럼 집을 나서고 나서, 나는 신데렐라가 된 기분으로 울부짖었다.

신데렐라는 무도회라도 가지, 나는 로판에 빙의했는데 그 흔하다는 무도회도 한번 못 가고 이게 뭐람? 일을 다 끝내 봤자 내가 가야 하는 건 무도회가 아니라 군대로의 출근이었다!

내가 절규하고 있는 동안 아퀼라와 윈터는 묵묵히 청소를 했다. 그들은 정말 특급 병사답게 소처럼 일하고 있었다.

“사루비아 님, 괜찮으십니까?”

언제나 그렇듯 카론은 내 옆을 계속 기웃거렸고 말이다.

나는 곧 청소가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했지만, 해도 해도 청소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흑마술사가 자꾸 새로운 일거리를 내리니 당연한 일이었다.

“…안 되겠다.”

마침내 나는 이놈의 청소를 포기하기로 했다.

내 생각에 빅팀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우리를 도와줄 게 아니라, 우리를 평생 노예처럼 부려 먹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우리가 빅팀에게 사기를 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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