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론에게 커다란 배신감을 느끼고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내가 카론을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우리 애가 그렇게 배은망덕할 리 없어!
“카론, 사실 이미 아퀼라와 나는 재입대를 했어. 그곳에는 쿨민트아이스프로즌 78기도 있고, 인성 파탄 85기… 아니, 아니. 에이프릴 님… 아니, 이것도 아니고. 이시나 님도 있고, 플라토 님도 있고, 타로 님도 있고….”
휴, 하마터면 영입에 도움이 안 될 사람들의 이름을 말할 뻔했네.
“어쨌든 카론 네가 안 온다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카론 너만 빼고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아야겠다~.”
“저… 정말입니까? 그럼 저도! 저도 하겠습니다!”
“그래? 호호호!”
역시, 카론을 꼬시는 건 참 쉬운 일이라니까!
내가 악랄하게 웃자 옆에서 아퀼라가 팔꿈치로 나를 가볍게 찌르며 속삭였다.
“사루비아, 애 좀 놀리지 마….”
“재미있잖아, 호호호!”
* * *
“그래, 밝은 옷을 입으니까 인물이 훤히 살잖아.”
복무 첫날, 흑마술 수색 특수군의 하얀 제복을 입은 카론의 모습을 보며 내가 한 말이었다.
내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유리가 미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루비아 네가 낳았니…?”
“마음으로 낳았습니다.”
카론이 이렇게까지 성장했다니, 나는 정말로 뿌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카론의 헌칠한 모습을 보며 마냥 즐거워하고 있던 그때 아퀼라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카론도 들어갈 팀이 필요하겠군.”
“아, 그렇네. 그럼 아퀼라 너희 팀으로 보내는 건 어때?”
그러자 아퀼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너와 나의 수습 기간도 끝났으니까.”
“응.”
“우리가 카론과 한 팀이 되자.”
“오, 좋은 생각이네.”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카론과 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건 곤란할 텐데.”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윈터가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왜입니까?”
혹시 다시 나를 두고 남주 경쟁 어쩌고가 펼쳐질까 봐 내가 긴장했을 때, 윈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왠지 사고를 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차마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를 지켜보던 이시나 또한 윈터의 말이 맞다는 듯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제가 잘 감당하겠습니다.”
아퀼라가 그렇게 말했지만, 여전히 윈터는 불신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너 하나만으로 두 명을 케어하는 건 어려울 텐데.”
…왜 두 명이지? 카론만 케어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내가 대체 뭘 했다고 그러지?
아퀼라는 윈터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침묵하고 있다가, 갑자기 카론을 돌아보며 외쳤다.
“카론, 내가 좋아, 사루비아가 좋아?”
뭐지? 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같은 질문은?
그러나 카론은 그 질문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그거야 당연히 사루비아 님이 좋습니다!”
…쟤도 가끔 보면 좀 너무하다니까? 아퀼라 상처받겠다.
한편 아퀼라는 다시 윈터를 보며 말했다.
“보십시오. 카론은 어떻게든 사루비아와 한 팀이 되려 할 텐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 없이 둘만 붙여 놓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일리가 있는 얘기군.”
아니, 이 자식들이 왜 나를 사고 치는 놈 취급하냐고, 이 XX들아! 내가 달린이냐?!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퀼라의 설득은 받아들여졌고, 나는 아퀼라와 카론과 한 팀이 되었다….
* * *
나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빅팀의 행적을 조사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를 끝내 못 찾을 상황을 대비해 우리는 다른 흑마술사들도 찾아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흑마술의 영향이라 의심된다며 들어온 제보들을 확인해 보아야 했다.
그중에서 무해한 흑마술의 흔적을 발견하면, 그곳에 찾아가 도움을 구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제보글을 읽어 보고 있었는데….
『살이 쪘습니다.
흑마술 아닐까요?』
“이게 지금 장난하나?”
『제 첫째 아들놈이 멍청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둘째 아들놈도, 셋째 아들놈도 전부 학교 성적이 엉망입니다.
아들 세 명이 모두 멍청한 건 이상한 일입니다.
주위에 흑마술사가 살고 있어서 악한 영향을 받은 게 아닌지 의심됩니다.』
“그건 그냥 멍청한 거잖아, XX!”
나는 진짜 흑마술사의 소행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XX, 저런 걸 흑마술 때문이라고 제보하다니.
그러다가 마침내 나는 좀 주목할 만한 제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얼마 전 산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그 외딴곳에 집 한 채가 있는 걸 봤습니다.
굴뚝에서는 수상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그 근처의 식물들이 모두 시들어 죽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꼭 생명력을 빼앗긴 것처럼.』
지금까지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서 구른 내 판단에 의하면 충분히 흑마술사라고 의심해볼 수 있는 경우였다. 게다가 외딴곳에서 혼자 살고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을 가능성도 낮지 않은가?
나는 아퀼라와 카론을 향해 그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자, 너희 생각은 어떤 것 같아?”
“전 사루비아 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내가 뭐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음, 어쨌든 저랑 일치하는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카론에게 의견을 묻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었군.
한편 아퀼라는 조금 한심하다는 눈으로 카론을 보더니, 진지한 태도로 답해 주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듯해. 제보받은 곳으로 한번 가 보자.”
그리하여 우리는 첫 번째 후보지를 향해 수사를 떠나게 되었다.
* * *
“아우, 이놈의 산.”
산을 오르며 내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물론 우리는 클레도어 산악 대대 출신인 만큼 산을 타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었지만, 그만큼 산을 타는 건 우리에게 지겨운 일이다.
게다가 내 능력을 믿고 배낭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단신으로 산을 올랐더니,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낭패였다.
“허억, 목말라….”
그 순간, 내 앞으로 물병 하나가 쑤욱 들이밀어졌다. 유일하게 배낭을 메고 왔던 아퀼라가 그 안에서 물병을 꺼내 내민 것이었다.
“와! 물 갖고 왔네!”
“응, 보나 마나 사루비아 네가 챙기지 않을 것 같아서.”
“하하.”
내가 반가운 마음으로 그대로 물을 들이켜고 있을 때, 이번에는 카론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산을 타다 보면 오늘 점심도 못 먹겠습니다.”
그러자, 다시 우리의 앞으로 무언가가 불쑥 들이밀어졌다.
아퀼라가 양손에 하나씩 들고 내민 것은 샌드위치였다.
“샌드위치까지 챙겨 온 거야?”
“보나 마나 너희가 챙겨오지 않고선 배고프다고 할 것 같아서.”
“헤헤.”
우리는 얌전히 샌드위치를 하나씩 받아들고 먹은 뒤 다시 산을 올랐다.
“허억, 왜 이렇게 힘들지?”
“그건 사루비아 네 신발 끈이 풀려서 그래. 묶어 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왠지 몸이 가려운 것 같습니다.”
“그건 카론 네 뒷목에 벌레가 붙어 있어서 그래. 잡아 줄 테니까 움직이지 마.”
“아퀼라, 그런데 이 길 맞나?”
“응, 맞게 가고 있어.”
나는 오늘로써 아퀼라의 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음, 그는 좋은 아빠가 될 게 틀림없다.
“아, 그런데 내가 가방 들어 줄까? 너 무거울 텐데, 번갈아 가며 드는 게 낫지 않겠어?”
아퀼라만 너무 많은 것들을 챙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내가 그렇게 물으니, 그가 고개를 저어 보이며 답했다.
“아니, 무거운 걸 버텨야지, 뭐.”
“뭐?”
“가장의 무게야.”
“…….”
* * *
우리가 고생을 하며 산을 오른 보람이 있는지, 마침내 제보받은 집이 저 멀리 보였다.
확실히 누가 봐도 흑마술사가 살 것 같은 수상한 집이었다. 꼭 동화 속에 나오는 마녀의 집 같기도 했다.
“앗, 저것 봐 봐!”
무언가를 발견한 내가 손가락을 쭉 뻗으며 외쳤다.
집 입구에 누워 있던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보더니 고양이용 문을 통해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검은 고양이라니, 왠지 점점 더 마녀가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두들겨 보자.”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아퀼라와 카론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탕탕 두드렸다.
“여기요, 계세요?!”
그러자, 문 안에서 누군가가 입구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뿐만 아니라 그 소리를 들은 아퀼라와 카론도 모두 긴장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리고 드러난 건….
‘뭐지? 마녀가 맞는 건가?’
나이 든 여성으로 보이는 그녀는 검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검은 로브를 두르고 있었고, 귓가에는 해골 귀걸이가 달려 있었다. 아까 집 안으로 들어갔던 검은 고양이는 그녀의 발목 부근에서 몸을 비비고 있었고.
어딜 보더라도 마녀 같은 모습에, 나는 잠시 이 세계관에 마녀도 있나 해서 혼란스러워졌다.
그렇지만 일단 우리가 먼저 그녀를 불렀으니 말은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용건을 꺼내기로 했다.
“저… 저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 싶어서요.”
여기서 흑마술사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봤다가는 그녀를 붙잡으러 온 사람으로 오인하고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나는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기로 했다.
“흐음.”
여자는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말했다.
“아하, 고객님이시구나.”
“네….”
“여기까지 찾아온 고객님은 처음인데.”
‘흑마술사가 맞는 거겠지?’
우리를 ‘고객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왠지 흑마술사의 특징인 것 같았다. 예전에 사기를 잘 치던 한 흑마술사가 나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는가.
“우선 어떤 도움이 필요한 건지는,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지.”
“네, 저도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요.”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그녀가 사람에게 해로운 흑마술을 쓴 적이 있는지 알아보고, 그런 전적이 없다면 우리의 상황을 얘기하며 도움을 청할 계획이었다.
“내 얘기라… 뭐,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고객님이니까.”
그녀는 우리를 빤히 바라보더니, 따라 들어오라는 듯 문을 열어 둔 채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지?”
내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으니, 카론이 자신만만한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혹시 모르니 제가 먼저 앞장서겠습니다!”
그러더니 카론은 망설임도 없이 아마도 흑마술사의 집일 공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퀼라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내 몸을 감쌌고, 결국 나는 카론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