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우리가 흑마술사와 잘 연대할 자신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고, 그건 그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쩔 때는 감정의 앙금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는 서로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안이 통했다는 생각에 내가 뿌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외친 순간, 에이프릴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럼 그 일은 사루비아 네가 전담하도록 하자.”
“…네?”
“좋은 아이디어를 냈잖아? 그러니까 그 공도 너에게 돌릴게, 호호.”
아니, 왜 그런 귀찮은 일을 내가 해야 하는 거지? 내 짬밥에….
…아, 여기서는 내 짬밥이 좀 부족하긴 하군.
에이프릴의 말대로 그 일을 도맡을 당사자가 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난 뒤, 나는 울상이 되었다. 젠장, 역시 카론을 빨리 이곳으로 끌고 와야겠다.
“사루비아, 잘할 수 있지?”
“무, 물론입니다….”
그녀의 말에 울먹이며 대답하며, 나는 속으로 열심히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XX, 내 스스로 일을 늘리는 재앙을 자초하다니….
내가 괴로워하고 있던 그때, 에이프릴이 내 옆으로 슥 스쳐 지나가며 속삭였다.
“얼굴 표정이 밝다? 고민 해결은 잘된 모양인데?”
…역시 예리하군. 남주력 +30.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래, 잘했어.”
에이프릴이 나를 향해 찡긋 윙크해 보이며 말했다.
“그러니 흑마술사를 물색하는 일도 잘할 거라고 믿어.”
…젠장!
* * *
비록 새롭게 업무가 늘어났다는 불행한 일이 생겼지만, 그래도 나는 남주들과의 관계를 확정하고 흑마술사를 기용하자는 내 제안을 선임들이 받아들인 것이 뿌듯했다.
그래서 나는 타로집에 한 번 더 방문하기로 했다.
“빅팀 씨 말이 정말로 맞았어요!”
내가 타로집으로 들어가며 외친 말이었다. 기뻐하는 내 얼굴을 보며 빅팀은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역시 제 말이 딱 들어맞았죠?”
“네, 정말요!”
빅팀의 말대로, 앞으로 남주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스스로의 답을 찾아냈다. 정말 그의 타로술이 들어맞은 것이다.
게다가 추위로 인해 위기에 처할 거라는 말도 들어맞았고 말이다.
내가 이제 감탄의 시선으로 빅팀을 보고 있자,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호호, 저는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니까요? 고민이 아주 시원하게 풀린 얼굴이네요.”
그와 즐겁게 대화를 주고받다가, 나는 여기에 찾아온 이유를 꺼내기로 했다.
내가 오늘 빅팀을 찾아온 것은 그의 타로점이 맞았음을 알리기 위함도 있지만, 또 다른 질문을 하고 싶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빅팀 씨, 제가 또 질문이 있는데요.”
“흐음, 어디 보자….”
그가 손깍지를 낀 팔을 테이블 위로 올리며 몸을 기울였다.
“기다려 봐요, 제가 이번에도 고민을 맞혀 볼 테니까.”
“흐음….”
솔직히 빅팀이 타로술에 능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고민이 뭔지 맞히는 부문에서는 별로 정확한 것 같진 않다. 이전에 그는 내가 고민을 적도록 시킨 후 그 종이를 강탈하는 미친 짓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그는 내 앞에 조각상 하나를 내려놓았다. 새하얀 남자의 조각상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신성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분은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성인, 성 세리피우스입니다.”
“오….”
“이분께 고민을 털어놓으면, 제가 고민을 해결해 드리는 데 있어 계시를 받게 되지요.”
“그거 사기 아니에요?”
내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조각상을 노려보았다. 결국에는 또 내 입으로 고민을 말하게 하려는 속셈 아닌가?
그러나 빅팀은 정말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로 조각상을 내밀었다.
“자, 그 조각상에 대고 고민을 속삭여 보세요. 저에게 들리지 않는 크기라도 괜찮답니다.”
여전히 사기 같기는 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므로 나는 일단 그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나는 조각상을 내 입가에 갖다 대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흠, 사람을 찾고 있군요?”
“예?”
정말로 고민을 맞혔다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었고….
“이, 이 사기꾼아!”
석상과 연결되어 있는 실과, 그 실 너머에 달린 종이컵을 귀에 대고 있는 빅팀을 보며 뒷목을 잡았다.
다시 보니, 조각상의 배 부분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석상은 마치 종이컵 수화기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이거 미친놈 아닌가?’
감히 나를 대상으로 이렇게 사기를 쳐?
평소의 나였다면 진작 테이블을 뒤엎어 버렸겠지만, 어쨌든 빅팀 이 자식의 점술이 내게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니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찾는 사람이 계신다고요. 더 자세히 설명해 보시죠?”
“으으…. 제가 저번에 누군가를 끌어들일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했죠. 결국 그 사람을 끌어들이는 결로 결론이 났는데, 이제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예요.”
“아아, 그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집착이 아주 강하다는 뜻이랍니다! 절대 놓아줄 일 없겠군요!”
“이 사람은 당신을 아주 두려워하고 있어요. 당신의 집착이 너무 강한 모양이군요.”
“당신의 동료들이 반대하더라도, 당신은 결국 그 남자를 붙잡을 운명이랍니다! 가요! 가서 얼른 그 남자를 당신의 것으로 만드세요!”
저번의 타로점에서 빅팀은 이런 답을 내놓았다. 치정관계로 착각하긴 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흑마술사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예언이겠지.
“에이, 어차피 지난 번에 당신 편이 될 거라는 결과가 나왔잖아요, 호호? 어차피 당신은 그를 손에 넣게 될 거랍니다.”
“그래도 정확히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알고 싶어요. 많이 답답해서 말이죠.”
빅팀이 심드렁한 기색이었기에, 나는 내가 찾는 그 사람이 나에게 중요한 인물이라는 걸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자 빅팀도 조금 더 흥미를 가진 듯 내게로 몸을 기울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는 말해 주지 않을 거예요? 제가 도움을 줄지도 모르는데?”
“음….”
나는 빅팀에게 진실을 말해도 될까 잠시 고민했다.
그동안 우리는 어느 정도 친밀감을 쌓긴 했지만, 내가 흑마술사를 찾는다고 해도 그가 나를 신고하지 않을까?
‘…잠깐만, 나는 흑마술 수색 특수군이잖아?’
그래,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흑마술 수색 특수군인데 흑마술사를 찾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나중에 빅팀이 나를 신고하고 왜 흑마술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 했냐고 묻는다면, 둘이 다른 인물인데 잘못 알아들은 거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그래서 나는 빅팀에게 진실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저는… 흑마술사를 찾고 있어요.”
바로 그 순간, 빅팀의 손에서 카드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단단히 놀란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무슨 이유로….”
“으음, 그냥. 뭐 제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면 설마 당신이 집착하고 단단히 붙잡을 거라는 게….”
“아, 아뇨. 그렇다고 제가 국가의 뜻을 어기고 흑마술사의 도움을 받겠다는 건 아니고요!”
난 그런 적 없다는 것처럼 발뺌을 했지만 여전히 빅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가 흑마술사를 찾는다는 게 그렇게 두려웠나?
바로 그때, 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나가! 당장 나가요!”
“네? 왜요?!”
“…지금 이 천막에 마가 껴서, 정화를 해야 해!”
이젠 ‘마가 낀다’는 표현까지? 대체 이 세계의 타로집 설정은 뭘 얼마나 섞어 놓은 거지?
“아니,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갔지만, 그는 나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꼭 나를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대체 갑자기 왜… 아이고, 괜찮으세요?”
콰당.
나에게서 뒷걸음질 치던 빅팀이 발을 헛디디며 뒤로 자빠졌기에 나는 그를 일으켜 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서슬에 그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졌기에 나는 그것 또한 주섬주섬 주워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뭘 이리 칠칠맞지 못하게… 어?”
물건을 줍던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이 검은색 수정구슬. 분명히 예전에 이걸 본 적이 있다.
내가 국경방위군이던 시절, 흑마술사의 집에서 말이다.
내가 알기로 이건 흑마술사들이 사용하는 물건인데, 그렇다는 얘기는….
“…빅팀 씨, 흑마술사였어요?”
타로술사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이 남자가 흑마술사였다고?
그래! 그래서 나를 무서워하면서 내쫓으려고 했던 거구나! 내가 흑마술사를 찾고 있으니까!
모든 사실을 깨달은 내가 눈이 동그래져서 그를 쳐다보자, 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미, 미친X….”
“아니, 갑자기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안 돼! 다시는 이용당할 수 없어~!”
빅팀은 몸을 바르르 떨며 그렇게 외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책상 위에 있던 물건들 중 하나를 휙 집어 들었다. 꼭 거대한 알약 캡슐과도 같은 모양의 물건이었다.
“그게 뭐… 꺄악!”
팡-!
빅팀이 캡슐을 열자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기가 뭉게뭉게 피었다. 순식간에 눈이 따가워져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절로 나온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콜록, 콜록! 이 미친 XX가!”
“저는 자유를 찾아 도망칩니다~! 안녕히 계세요~!”
빅팀이 후다닥 도망가는 게 느껴졌지만, 연기는 이미 시야를 잔뜩 가리고 있었고 눈코입이 전부 따가웠기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XX, 화생방이라니!’
이 세계 군대에 온 뒤 적어도 화생방 체험만큼은 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화생방 체험마저 하게 되다니!
잠시 후, 연기가 다 가라앉고 나서 나는 새빨개진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연하지만 빅팀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콜록! 이런 XX….”
줄줄 흐르는 콧물과 침을 닦아 내며, 나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빅팀 이 XX, 네가 흑마술사인 걸 알게 됐는데도 내가 이대로 포기할 줄 알아?
“이제부터 로판 여주는 임시 중단한다…,”
제가 로판 여주로 보이시나요? 이제부터 저는 로판 여주가 아닙니다.
나는 이제부터 집착 사루비아다!
빅팀 저 XX, 무조건 잡는다! 얼마나 멀리 도망치든, 무조건 잡아서 내 품으로 데리고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