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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15화 (189/233)

남매로 보이는 그들의 뒤로는 낡은 집이 보였는데, 눈이 많이 내린지라 집은 폭삭 무너져 있었다.

“세상에….”

나는 황급히 남매에게 다가가 그들의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얘들아, 괜찮니? 부모님은 어디 계시고?”

“부모님은 안 계시는데요….”

제복을 입은 나를 보는 아이들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담겨 있었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실히 대답해 줬다. 우리가 나라에서 나온 사람이니까 협조를 해 줘야 한다고 생각이라도 한 걸까?

“갈 곳이 없는 거야? 여기서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

“어제부터요….”

일단 아이들을 따뜻한 곳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퀼라와 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었다. 이곳은 낯선 마을이지 않는가.

“마을 이장님은 어디 계셔? 우선 거기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장님은….”

그 단어를 입에 담는 여자아이의 눈에 미미한 경멸이 비쳐 보였다.

“이장님은 저희 같은 건 신경도 안 쓰세요.”

“응?”

“이장님은 부자거든요.”

어린아이가 맥락 없이 웅얼대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의 말을 대강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마을 이장에게는 마을 사람들의 삶을 돌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국가에 보고할 책임이 있었다. 국가에 보고할 경우, 그들은 국가로부터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일을 위해 마을 이장에게 지원금도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자신의 책무를 게을리해 왔단 말인가?

부모님 없이 자신들끼리 살던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들은 원래부터 방치당하던 것에 익숙한 듯 보였다.

“안 되겠어. 우리가 이장의 집으로 쳐들어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눈을 치켜뜨고 말하자, 아퀼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아퀼라의 눈빛을 보아….

‘아이들을 동정하고 있군.’

남들은 무섭다고 생각할 표정이지만, 저건 지나친 동정심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다. 내가 그 정도는 잘 알지.

우리는 아이들에게 제복 외투를 둘러 준 후, 아이들을 데리고 이장의 집으로 갔다. 내가 가서 이장이랑 담판이라도 지을 생각이었다.

똑똑똑-

“누구시죠?”

“정부에서 나왔습니다.”

정부의 어느 부처에서 나왔는지 제대로 알려 주지 않고 얼버무렸는데도 그 말에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이장은 머리카락이 반만 남아 있는 아저씨였다. 우리의 제복을 본 그가 얼른 얼굴에 웃음을 띠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 제복을 입고 활동하는 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예, 다름이 아니라 감찰 때문에 나왔습니다.”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지만, 아퀼라도 내 거짓말에 놀라는 기색은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무덤덤한 얼굴로 내 옆에 서서 위압감을 조성할 뿐이었다.

“예? 감찰이요?”

“국가 지원금 사용처 관련 조사를 나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난 팔짱을 끼고 최대한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일전에 방문했던 타로집의 빅팀이 즐겨 짓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장은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보고할 책무가 있는데, 무얼 하신 거죠? 이번 이상 기후에 대해 마을 주민들 중 한 명으로부터 신고도 받아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게다가 그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더군요.”

내가 아이들에게 턱짓하자 이장은 낭패라는 얼굴이 되었다.

열린 문 틈 너머로 나는 그의 집 안에 있는 것들을 살폈다. 혼자서 잘살고 있나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역시나 그의 집 너머에 있는 가구들은 꽤나 고가의 것들이었다. 아퀼라와 함께 살 집 가구를 열심히 골랐기 때문에 최근 가구 트렌드는 모두 파악하고 있지.

“그, 보고는… 제가 하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더 빨리 신고해 버렸나 보네요…. 마을 사람들은… 아이쿠,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애들이 있었네!”

그가 자신의 머리를 콩 하며 애교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만화 속 미소녀가 할 법한 그 행동에 나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XX,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건 로판 여주인 나뿐이라고!

“우선 들어가서 얘기하죠. 애들이 추우니까요.”

“아이고, 당연히 들어와서 얘기하셔야죠! 제가 귀하신 분들을 이렇게 밖에 세워 뒀네요.”

이장은 굽신거리며 우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소파에 앉힌 뒤 따뜻한 담요를 둘러 주었다. 그리고 이장이 얼른 대령한 따뜻한 수프 또한 아이들의 앞에 두었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집안을 살폈다. 아까는 아이들이 추워하는 게 못마땅해서 이장을 타박한 거였지만, 지금 와서 보니 정말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금을 착복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잘살 수 있나?’

아까 언뜻 확인한 마을의 다른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별로 높지 않았다. 이장의 생활 수준만이 혼자 평균을 까마득하게 벗어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지원금 착복 외에도 다른 비리를 저지른 게 아닐까? 흑마술의 부작용을 멈추는 일과는 상관이 없더라도, 우리가 이 비리를 밝혀내 신고한다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지도 모른다!

‘여름용 드레스를 살 때가 됐지.’

포상금을 떠올리는 내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나는 돈에 아주 예민하단 말이다.

“이장님은 뭘 하면서 사세요? 농사를 짓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 저는 의류를 판매한답니다. 저희 조부모님 때부터 기술을 배워 왔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집 곳곳에 걸려 있던 고급 의류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저런 종류를 판매하는 모양이다.

“최근에는 따뜻한 옷이 아주 잘 팔려요. 날씨가 추우니까요.”

묻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설명을 늘어놓으며, 남자가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옷 판매라는 정당한 방법을 통해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었죠.”

…본인이 지원금을 착복한 게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는 거구나.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서 그의 횡령에 대한 의심은 그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집을 좀 수색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게 무슨…. 아무리 관리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예, 저희는 관리니까요.”

물론 영장도 없이 이렇게 집을 수색하는 건 21세기 한국이었다면 뒤로 넘어갈 얘기다.

하지만 여기는 아돌브 제국. 국가의 힘이 훨씬 강한 곳이다. 아퀼라와 나에게 집을 수색할 권한이 있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그의 허락이 떨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일어나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옷장이나 서랍 따위를 열심히 뒤지자, 그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걸 그렇게 함부로 보시면….”

“예, 곧 끝납….”

태연하게 대답하려던 나는 순간 말을 멈췄다. 왜냐하면 그의 서랍 속에 아주 수상한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뭐지? 폭죽?’

그건 21세기 한국에서 쓰던 폭죽과도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하지만 진짜 폭죽이 여기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서의 내 감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흑마술 아티팩트!’

보통 이렇게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모양의 물건은 흑마술 아티팩트인 경우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흑마술 아티팩트가 여기 왜 있지?’

로판 여주로서의 감, 발동!

“아, 저는 의류를 판매한답니다. 저희 조부모님 때부터 기술을 배워 왔죠.”

그는 의류를 판매하고, 그 덕분에 이상 기후가 발생한 이후 떼돈을 벌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다면?

이 이상기후가 흑마술의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 흑마술 그 자체였다면?

‘날씨를 춥게 만드는 흑마술을 사용한 거야!’

흑마술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으니, 아마 이장이 흑마술사인 건 아니고 흑마술사로부터 아티팩트를 구매했을 것이다. 자신의 부를 위해서!

내가 서랍 안에 있는 폭죽을 노려보며 침묵하고 있자, 갑자기 이장의 표정이 돌변해서는 폭죽을 탁 집었다.

“…아이고, 이걸 왜 이렇게 오래 보시나요?”

“…그냥요.”

그렇게 우리 사이에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장의 표정이 완전히 사나워진 순간….

삐이익-!

나는 호루라기를 거세게 불었다.

그렇지만 실내에서 호루라기를 불었기 때문에 소리가 바깥까지 울려 퍼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몇 번 더 호루라기를 불다가 결국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호루라기는 왜 부시는 겁니까?”

“뭔가를 알리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다시 우리 사이에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갔고, 다른 방에 있던 아퀼라는 어느새 내 옆에 서 있었다.

“사루비아, 아이들은 내보냈어.”

“잘했어.”

그건 이 집 안에서 전투가 벌어질 거라는 의미였다.

이장 또한 그 말을 알아들은 듯, 우리를 향해 폭죽을 당겼다.

팡-!

우리는 간신히 폭죽이 터지는 위치를 피하는 데 성공했고, 방금까지 우리가 있던 자리에는 꽁꽁 언 서랍만이 남아 있었다.

“으악!”

폭발 효과를 보며 내가 질겁했다. 저렇게 강한 아티팩트가 있다고?

저게 이 마을에 추위를 불러온 주범 같은데, 잘못해서 한번 몸에 맞기라도 하면 평생 얼어있을 수도 있을 비주얼이었다!

내가 몸을 부르르 떨자 아퀼라가 자연스럽게 나를 옆쪽으로 떠밀었다.

“사루비아, 빠져 있어. 내가 싸울게.”

아퀼라는 내 전투력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기에 평소 전시에 나를 애써 보호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내가 추운 걸 싫어하니까.’

난 추운 게 정말 싫다. 추위가 느껴지면, 추운 강물에 빠져서 죽음을 결심하고 힘없이 아래로 떨어지던 그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나는 바보같이 아무것도 못 했는데, 여섯 명의 동기들이 목숨을 잃었던 그날이 자꾸만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추운 게 싫었고, 추위가 느껴지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추위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너무 오랜 시간 트라우마에 잠식되어 있었다. 이제는 나 스스로 추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아니, 괜찮아.”

그래서 아퀼라의 말에 그렇게 답하며 나는 매고 있던 총을 거칠게 손에 들었다.

내가 총을 잡자마자 이장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총을 겨눈 상황은 처음일 테니 당연한 일이다.

“들고 있던 아티팩트 내려놔.”

내가 고압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 그 총부터 먼저 내려놔!”

“아니, 내려놓지 않으면 쏘겠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 팽팽한 대치가 오가다가…,

팡-!

다시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몸을 움찔하며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무서워하는 모양이지?”

XX, 아무래도 이장도 내가 저 얼음 폭죽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다.

그러자 아퀼라가 얼른 검에 오러를 둘렀고, 화려한 불꽃이 방 안을 밝혔다. 그 불을 보자 이제 이장은 더욱 겁을 먹은 얼굴이 됐지만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죽는다면 같이 죽어!”

팡-!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방 안에 요란한 폭죽 소리가 터졌고.

나는 따뜻한 체온이 나를 끌어안는 감각과 함께 옆으로 떠밀렸다.

아퀼라가 나를 얼음 폭죽으로부터 멀리 떠밀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설마 나를 밀어내느라 그가 다친 건 아니겠지?

그런데 내 앞에 있는 건 예상치도 못한 광경이었다.

“윈터 님!”

윈터가 얼음을 두른 검으로 이장의 앞에서 폭죽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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