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이, 로판 세계는 무슨!
내 인생이 로판이었던 적이 몇 번 없었다는 걸 간과한 내 잘못이다. 이 타로 카드는 로판 세계의 점술이 아니라 그냥 현실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성을 내려 하자, 빅팀이 황급히 내 앞에 타로 카드를 촤르르 펼쳤다.
“자, 잠시만요! 일단 이걸 보시죠! 앞으로 며칠 안에 알게 되는지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흠….”
만약 그걸 맞히면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겠지.
나는 미심쩍은 눈을 하면서도 타로 카드를 뽑았고….
“오! 숫자 7!”
“무슨 뜻이죠?”
“일주일 안에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니, 이딴 해석은 나도 하겠다!”
다시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아오, 결국에 도움이 된 건 하나도 없어!
내가 그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빅팀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를 만류했다.
“잠시만요! 그렇다면 고민 한 가지를 무료로 더 봐 드리죠!”
“안 속아, 이 미친놈아!”
“무료랍니다, 무료! 진짜예요!”
…무료면 손해를 보는 건 없나?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힌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빅팀이 안도의 한숨을 후우 내쉬었다.
“그래서 이번 고민은 무엇이신가요?”
“음, 일단 궁금한 건….”
내가 그에게 의자를 바싹 당겨 앉으며 속삭였다.
“우선 제가 어떤 사람을 제 편으로 만들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이번 임무 이후 흑마술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흑마술사를 내 세력으로 끌어들이면 다른 사람들의 반대도 심할 테니, 그걸 설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테다.
빅팀은 내 말에 천천히 눈을 깜빡이더니, 오만하게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이 빅팀이 정확한 답을 내려 줄 거랍니다. 걱정하지 마시죠.”
“그래요….”
“먼저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을 당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을 때의 장점은 뭐죠?”
점을 보기 위해서는 역시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 하는 모양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음, 완전 강하죠. 아주 큰 전력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단점은요?”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반대할 것 같아요.”
“하아, 낭만적이야….”
“…예?”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엉뚱한 말에, 내가 미심쩍은 얼굴을 했다.
그러나 빅팀은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듯 두 손을 꼭 모은 채 중얼거렸다.
“당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두렵다…. 낭만적이네요!”
“음….”
글쎄, 별로 낭만적이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침묵하고 있자, 빅팀은 신나서 혼자서 타로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사랑의 타로 카드, 흐흥~. 자, 이제 골라 보시죠!”
“예, 예….”
“총 세 장을 고르시면 됩니다!”
그의 말대로, 나는 세 장의 타로 카드를 골랐다. 빅팀은 가장 먼저 내가 뽑은 카드를 보더니 반색하는 얼굴이 되었다.
“오! 이건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마음인데요!”
“이게요…?”
그 카드에는 개 한 마리가 목줄에 묶인 채 인간에게 붙잡혀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집착이 아주 강하다는 뜻이랍니다! 절대 놓아줄 일 없겠군요!”
…만일 환상 속 동물 같은 존재인 ‘착한 흑마술사’를 만난다면 절대 놓아줄 생각이 없긴 하지, 정확하군.
두 번째 카드는, 귀신의 앞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남자의 그림이었다. 그 카드를 본 빅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 이거는요…. 쌍방이 아닌데요….”
“그거야 당연히 쌍방이 아니겠죠….”
“이 사람은 당신을 아주 두려워하고 있어요. 당신의 집착이 너무 강한 모양이군요.”
…정확한데?
세 번째 카드에는 인간이 거대한 구렁이에게 칭칭 감겨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왠지 의미가 짐작이 가는 카드였다.
“오! 하지만 결국 당신에게 붙잡혔군요!”
“아싸!”
역시, 내 집념이 승리를 발할 예정이구나!
“당신의 동료들이 반대하더라도, 당신은 결국 그 남자를 붙잡을 운명이랍니다! 가요! 가서 얼른 그 남자를 당신의 것으로 만드세요!”
“그렇게 할게요, 호호.”
‘착한 흑마술사’, 내 눈에 들어오기만 해 봐라. 아주 노동력을 착취해 주겠어.
나는 마음에 드는 타로 점 결과에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도 완전 엉터리는 아닌가 보다.
“그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 청첩장도 보내 주시고요~.”
“결혼은 할 일 없는데요.”
“앗, 네? 왜죠?”
“그거야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니까요…?”
빅팀이 멍청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며, 나는 그가 나와 흑마술사의 사이를 연인 관계로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냥 내가 혼자서 타로 카드를 사다가 점을 보는 게 차라리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타로 카드에 적힌 그림을 그대로 읊는 것도 이상했다. 역시 이 XX, 사기꾼이 분명했다.
“에휴….”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푹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빅팀이 당황하여 나를 붙잡았다.
“아, 아직 일어나지 마세요! 이번에는 조만간 일어날 위기가 무엇인지 무료로 봐 드리겠습니다!”
“위기요….”
그래도 공짜로 봐 주는데 나쁠 건 없으니,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 삶은 매일매일이 위기투성이였으니까.
이번에 내가 뽑은 건 얼음이 그려져 있는 카드였다. 그리고 얼음 카드를 보자마자, 빅팀은 단번에 외쳤다.
“당신에게 추위가 찾아옵니다!”
“에라이, 이 사기꾼아!”
결국 빅팀은 내 안에서 다시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냥 집에 가는 길에 타로 카드를 내가 따로 사 가야겠다.
* * *
그러나 놀랍게도, 그리고 나에게는 불행히도 빅팀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 아퀼라와 윈터네 팀과 함께하는 공동 협력 임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시나가 읽어 주는 오늘의 임무 또한 내 미래를 분명히 암시하고 있었다.
“늘 따뜻한 마을이었는데 극도로 추워지며 이상 기후가 발생하고 있음. 이로 인해 얼어 죽은 마을 사람들까지 발생.”
…진짜 말 그대로 ‘추위’라.
벌써부터 내 미래가 뻔하군. 역시 로판 여주인공다운 삶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흑마술사의 예언대로 추위 때문에 위기를 겪을 거고, 나 스스로 이 삼각관계에 대한 뭔가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 틀림없다.
그나저나 얼어 죽은 사람들까지 나왔다니, 흑마술의 부작용이 상당히 강력한가 보다.
이상 기후가 나타나는 것은 흑마술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였다. 그러니 누군가가 해당 마을에서 흑마술을 사용한 거겠지.
“흑마술사도 저희가 잡아야 하는 겁니까?”
“발견한다면 잡겠지만, 이미 마을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이번 임무에는 나와 이시나뿐만 아니라 아퀼라랑 윈터라는 강력한 전력까지 더해졌지만, 나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었다. 오늘따라 임무에 가기 싫어서 본부에서 뭉그적대며 출발을 미루게 되었다. 물론 그 이유가 뭔지는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추위가 싫었다. 설산 대대에서도 그것만큼은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다.
“으으음….”
내가 괜히 소파를 붙들고 떠나질 않자, 이시나가 내게로 손을 뻗었다.
“잡고 일어나. 이제 출발해야지, 응?”
“예….”
그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한 그 순간.
“일어나자.”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붙들어 그대로 일으켜 세웠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왔기에 나는 배시시 웃었다.
“그래, 가자.”
아퀼라가 나를 안았을 때, 나는 조금 불안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솔직히 오늘 내가 전력을 다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나는 추워지면 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허둥지둥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때, 머릿속에 에이프릴의 말이 떠올랐다.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그걸 스스로 해내.”
“그래.”
그 조언을 다시 읊조리며, 나는 기운을 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해내기. 그게 오늘의 내 목표였다.
설산 대대에 있었을 때 나는 늘 예민했다.
물론 나는 객관적으로 평소에도 예민한 편이지만, 그곳에 있을 때는 정말 더했다. 사소한 소리마저 내 신경을 건드렸기에 늘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잠을 자며 지냈다. 최대한 오래 자야만 추운 곳에 있다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불을 대신하여 내게 아퀼라가 있었다.
“가자.”
우리가 도착한 마을에는 짙은 구름이 껴 있었고, 눈이 내려 시야가 뿌옇게 보였다. 땅에는 이미 눈이 두텁게 쌓여 있어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설산 대대에 있었을 때 제설을 참 많이 했었는데. 아, 떠오른다…. 제설의 기억이….
“아악! 하늘에서 쓰레기가 빗발치다니!”
“사루비아, 무슨 일인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윈터의 제지 덕에 난 다시 정신을 차렸고, 우리는 마을 안으로 발을 디뎠다.
마을의 경계를 넘자마자 신기할 정도로 급격하게 기온이 바뀌었는데,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게 마치 거대한 냉장고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이게 흑마술의 부작용이라면, 역시 지금도 흑마술이 어딘가에서 가동되고 있는 겁니까?”
“글쎄, 그게 아닐 수도 있다.”
“그 말씀은….”
“만일 이게 이미 끝난 흑마술의 부작용이라면, 우리는 손쓸 방법이 없겠지.”
윈터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 흑마술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 현상은 ‘현재 가동되고 있는 흑마술’의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이미 끝난 흑마술’의 부작용일 수도 있다.
만일 현재 가동되고 있는 흑마술의 부작용이라면 그 흑마술을 강제로 중단하면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문제가 생긴다.
이미 끝난 흑마술의 부작용일 경우, 우리는 그냥 이 부작용이 자연적으로 중단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에게는 일을 조사할 의무가 있으므로 여기 와 있지만.
“그럼 조를 나눠서 마을 사람들에게 최근에 수상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묻고 다니자.”
“알겠습니다.”
‘조를 나눈다’라는 말을 하자마자, 아퀼라와 윈터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모습을 본 이시나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또 시작인가….’
내가 담담히 내게 다가올 삼각관계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던 그 순간.
“아퀼라, 네가 사루비아와 가도록.”
놀랍게도 윈터는 아퀼라에게 나와 함께 가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한 말이 효과가 있었나? 나는 얼떨떨해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루비아는 추위에 약하니까.”
“…예.”
어쩐지 아퀼라의 표정이 나와 함께하게 됐으면서도 윈터에게 진 기분이 된 듯했다.
“서로 부를 일이 생기면 호루라기를 불도록.”
윈터가 말한 호루라기란 흑마술 수색 특수군 소속에게 하나씩 제공되는 물건이었다. 그가 내 목에 호루라기가 잘 걸려 있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아퀼라와의 수색을 시작했다. 싸늘한 공기 때문에 내가 몸을 덜덜 떨자 아퀼라가 내 손을 꼭 붙들어 주었다.
“우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그래. …아.”
문득 어딘가를 바라본 아퀼라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물론 그의 표정은 늘 날카롭지만 나는 아퀼라의 진짜 표정을 읽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지금 그의 얼굴에 담겨 있는 건 분노였다.
그리고 아퀼라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그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깨달았다.
그곳에는 어린아이 두 명이 서로를 꼭 끌어안고 덜덜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