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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13화 (187/233)

“그럼 옛날에는 마술이 있었던 겁니까?”

모든 정보에 박식한 윈터를 향해 내가 그렇게 물으니, 윈터 대신 흑마술사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응수했다.

“하여튼 요즘 청년들은 역사 공부를 안 해서! 예전에는 흑마술 중에 나쁜 것만 흑마술이었고, 멀쩡한 건 마술이었다고요! 하지만 이제는 다 흑마술이지 않습니까!”

내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윈터를 보니, 차분한 얼굴로 서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아돌브 제국의 초기에는 마술이란 개념이 존재했으니까. 흑마술사들이 사용하는 힘 중 남을 해치거나 제물을 필요로 하는 마술만 흑마술이었고, 그 외는 마술로 분류됐다.”

그제야 좀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하긴 흑마술이 있으면 마술이 있는 건 당연하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윈터는 설명을 이어 갔다.

“하지만 아이슨 황제 시대부터 모든 마술에 흑마술이라는 이름이 붙고, 마술사들은 흑마술사가 되며 체포당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원래는 마술이던 것들이 전부 흑마술이 되었다니, 흑마술사들이 이렇게 억울해하는 이유도 이해는 갔다.

나는 윈터가 말한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원래는 마술이었는데, 모두 싸잡아 흑마술이라 불렸던 거라면?

‘그 뜻은 현재의 흑마술 중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게 있다는 뜻이네?’

나도 지금까지 아티팩트를 통해 흑마술을 이용한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마술사들이 아르콘을 어떻게 대했는지 들은 이야기가 있는 데다 흑마술 아공간에 갇혀서 개고생한 경험 이후로는 흑마술을 완전히 배제하게 되었다.

내 안에서 흑마술은 완전히 악한 것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흑마술이 무조건 악한 힘만은 아니라면, 필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실제로 흑마술은 꽤 유용한 힘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모든 흑마술사들을 적으로 간주할 필요 또한 없을 것 같았다. 세상 어딘가에는 남을 해치는 데 흑마술의 힘을 쓰지 않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야.”

나는 내 앞에 무릎 꿇고 앉은 흑마술사를 보며 삐딱하게 물었다.

“흑마술사들은 타고나는 건가?”

“예, 태생부터 마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흑마술사가 된 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죠. 이 마력을 방출하지 않고서는 답답해서 살아갈 수가 없거든요.”

왜 굳이 금지된 일인 흑마술사를 하려 하는지 의문이었는데, 그런 거였군. 마력을 방출하지 않으면 신체에 해가 되나 보다.

“하지만 어떤 흑마술은 흑마술사가 아니어도 쓸 수 있는 것 같던데?”

“가끔 그런 마술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은 마력 자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힘을 타고나야만 쓸 수 있는 마술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마술을 배워도 그걸 쓸 수는 없다는 말이구나.

흑마술은 분명히 유용한데, 내가 쓸 수는 없고. 그것들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 사람들 중 상당수가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역시….’

흑마술사에게서 모든 설명을 듣고 나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흑마술사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만일 어딘가에서 사람을 해친 적이 없고 2황자군에 가담한 적도 없는 흑마술사를 찾는다면, 우리의 편으로 포섭해 보는 거다.

흑마술은 앞서 말했듯 상당히 유용한 힘이고, 앞으로 우리의 혁명에도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 생각에 반대할 수도 있으니 일단 당분간은 비밀로 해야겠다.

생각에 잠겨 있는 내 표정이 나쁘지 않아 보였는지 흑마술사가 비굴한 목소리로 다시금 말을 건넸다.

“헤헤, 그래서 저는 풀어 주시는 겁니까?”

…물론 우리는 그 흑마술사를 질질 끌고 가 감옥에 처넣었다. 괘씸한 자식!

이렇게 나의 첫 임무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쨌든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참, 그나저나 이번 임무를 통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남주들이 얼마나 나에게 집착하고 있는지 더 절실히 알게 되었다. 흑마술조차 이길 정도의 깊은 감정이라니. 그리고 이시나도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몹시 아낀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최후에 이긴 것은 나였지만,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상당히 고민이 되었다. 늘 군대에서 정해진 명령만 따르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일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 * *

내가 생각한 사람은 바로 타로술사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 타로술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타로술사는 지구에서 봤던 타로점집처럼 간이 천막을 치고서 타로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기가 많은지 늘 그 앞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천막에는 ‘타로점 100% 적중. 어떤 문제든 맞히고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만일 이곳이 내 이전 세계였다면 과장된 광고라고 생각했겠지만, 이곳은 다르다.

‘여기는 로판 세계니까!’

로판 세계에서 보는 점은 정말로 100%의 확률로 적중한단 말이다! 그건 꼭 예언과도 같은 역할을 할 정도였다.

긴 기다림의 끝에, 나는 앞선 손님들을 보내고 천막 안으로 입장하는 데 성공했다.

“안녕하세요.”

그 안에 앉아 있는 건 피곤한 인상을 한 깡마른 남자였다. 거의 예전 국경방위군 시절의 타로를 연상케 하는 얼굴이었다.

“호호, 반가워요.”

남자가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간사한 웃음소리를 내며 인사했다.

“타로술사 빅팀이라고 한답니다.”

“예, 빅팀 씨. 고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요? 무슨 고민인지 훤히 보이는군요…. 보여, 고민이 보인다….”

갑자기 빅팀이 이상한 표정을 짓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빤히 보았다. 그건 꼭….

‘무, 무당?’

뭐지? 타로술사라더니, 지금 보니까 사주에 무당까지 같이 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이 세계의 타로술사는 이런 건가 보다.

빅팀은 어쩐지 신성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노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꼭 무당이 만들어 주는 부적 종이 같이 생긴 모습이었다.

“자, 고객님. 저는 무슨 고민이든 알아낼 수 있답니다. 고객님께서도 고민이 있으시다고 했지요….”

“네, 네. 맞아요.”

왠지 신뢰가 가는 영험한 모습에 내가 고개를 마구 끄덕이자, 그가 어느새 어딘가에서 꺼낸 부채를 촥 펼치더니 우후훗 웃어 보였다.

“그 종이 뒷면에 고민을 적어 보세요. 영혼이 공명할 정도로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며, 진솔한 마음으로 고민을 적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고민을 맞힐 수 있거든요.”

영혼이 공명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마도 이 종이에 고민을 적으면 남자가 내 고민을 듣지 않고 알아낼 수 있는 모양이다.

그는 내게 빨간 펜을 건네주었고, 나는 종이에 또박또박 고민을 적었다.

『남자들이 꼬임』

남들이 보면 자의식 과잉이냐고 물을 만한 고민이었지만, 내 고민은 진짜다! 내 얼굴 좀 봐라, 이 고민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지.

내가 고민을 다 적고 펜을 내려놓자, 남자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네, 당신의 고민이 전해졌습니다…. 느껴집니다, 당신의 고민이….”

“진짜인가요? 그럼….”

바로 그 순간, 남자가 번개처럼 손을 홱 뻗고는.

훅-!

내가 쓴 종이를 뺏어 자신의 앞으로 가져갔다.

“뭐, 뭐야?”

그러고는 내가 쓴 고민을 진지한 얼굴로 읽었다.

“당신의 고민은 남자들이 꼬이는 거군요. 적중했나요?”

“아니, 지금 당신이 봤잖아!”

“호호, 적중했나 보군요. 저는 무엇이든 맞힐 수 있답니다.”

아니, 이거 미친 XX 아니냐? 고민 적중률 100%? 이렇게 하니까 당연히 적중하겠지, 미친 XX야!

내가 어이없어서 씩씩거리고 있을 때, 빅팀은 여전히 영험한 타로술사인 척 연기하며 말을 이었다.

“자, 먼저 당신에게 남자들이 꼬이는 이유는….”

빅팀이 눈을 번쩍 뜨고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당신의 얼굴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그렇잖아요!”

“게다가 당신의 성격 때문이죠.”

“엥?”

“당신이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거야 당연한 소리잖아요!”

그럼 남자들이 꼬인다는데 매력이 있겠지, 없겠냐?

아무래도 사기꾼인 것 같아 내가 씩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할 때, 빅팀이 나에게 진정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어쨌든 당신의 얼굴과 매력 때문인 거는 맞지 않나요?”

“그거야… 맞긴 하는데….”

“그럼 제가 또 적중했네요, 호호.”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어쨌든 빅팀이 지금까지 틀린 말은 안 했으므로, 나는 일단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비록 지금까지는 엉망진창이었다 하더라도 역시 로판 세계의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가 곧 뛰어난 점술로 내 상황을 정확히 꿰뚫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한테 꼬여 있는 남자들이 있는데요, 그 사람들끼리 신경전을 해서 좀 피곤한 것 같아요.”

“흠…. 몇 명이죠?”

“세 명? 아, 네 명이네요.”

“…그래서 남자들이 너무 꼬여서 피곤하다는 게 당신의 고민인가요?”

“…….”

남의 입으로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한 고민 같았다. 달린이나 할 법한 눈치 없는 말 아닌가.

얼굴이 홧홧해져서 내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변명하듯 덧붙였다.

“아니, 그런데 이게 현실이 되면 진짜 다르다니까요? 원래 소설이랑 현실은 다르잖아요.”

“물론 저는 고객님의 입장을 이해하죠, 호호.”

빅팀이 뒤늦게 웃어 보였지만, 방금 어이없다는 얼굴 했던 거 다 봤다, 이놈아.

빅팀은 내 앞에 타로 카드를 촤르르 펼쳐 보이더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먼저 고객님이 현재 느끼는 감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자, 한 장 뽑아 보시죠.”

나는 그의 말대로 그들 중 한 장을 뽑았다. 그런데 이 카드는 내가 지구에서 보아 왔던 타로 카드와는 많이 다르게 생겼다.

‘이 세계의 타로 카드는 좀 다른가?’

내가 본 카드에는 돌에 눌려 있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그것을 건네자, 빅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이건 말이죠. 고객님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 명이 꼬이자 부담스러워하고 있군요.”

“…그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이번에는 고객님이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알아보겠습니다. 한 장 또 뽑아 보시죠.”

타로술사가 말을 돌리려는 것이 보였지만, 일단 돈을 지불했으니 나는 마저 타로 카드를 봐야만 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건 부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내가 이번에 뽑은 건 커다란 별이 하늘에 그려진 타로 카드였다.

“이건 이전에 고객님이 무언가를 동경했다는 뜻이랍니다, 호호. 지금 꼬이는 남자들을, 과거에 동경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없는데요?”

“…그럼 혹시 그들의 사랑을 동경하셨나요?”

그 말에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기울였다. 음, 집착받는 여주를 부러워했으니까,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군.

“예, 그런 것도 같고….”

“네, 바로 그거예요! 과거에는 그랬으니까 지금 막상 남자들이 꼬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시는 거죠. 그럼 이제 고객님의 미래를 봅시다.”

이번에는 사람 한 명이 밤하늘에 떠 있는 그림이 나왔다. 그건 꼭 인간이 그대로 별자리가 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예, 미래에는 당신이 그들을 다루는 법에 익숙해질 거라는 뜻이지요. 즉 고객님은 스스로 정답을 찾아낼 거라는 뜻이랍니다!”

“…제 고민 해결은요?”

“예, 그건 고객님이 스스로 답을 알게 되실 거예요, 호호. 정 안 되면 일처다부제였나? 그걸로 그냥 즐기시든가~.”

“이런 미친 사기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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