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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12화 (186/233)

“아니, 뭐. 황실을 치겠다고 수도로 올라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를 않으니….”

“…너희들이 그런 것에는 왜 관심을 가지는 거지?”

“뭐, 그럼 저희가 황제 편이라도 들어줄 줄 알았습니까?”

누가 봐도 아르콘의 것인 내 화려한 머리카락과 이시나의 녹색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저희도 저희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 정보가 필요하지 말입니다.”

“우리가 정보를 준다면 너희는 무얼 해 줄 거지?”

“그거야 정보를 정확히 제공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내가 뻔뻔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뭐, 한 번쯤 눈감아 줄 수도 있고….”

그 말에 그들이 눈짓을 주고받는 게, 우리가 흑마술사를 놓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렇군.”

“대장님, 정보 교환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흠, 대화로 풀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들은 자신들끼리 잠시 숙덕이더니 곧 논의를 마치고 내 쪽으로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아퀼라는 그들을 경계하여 검을 고쳐 잡았지만 나는 괜찮을 거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우리와 일시적으로 협력하기로 한 듯, 우리에게 곧이곧대로 정보를 털어놓았다.

“황실을 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니까.”

“명분이라면….”

내가 그들의 말을 읊조리자,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설명을 덧붙였다.

“2황자가 죽었으니 황실의 핏줄이라는 핵심적인 명분이 사라졌지.”

아, 그러고 보니 그들은 흑마술을 이용해 2황자를 부활시킬 예정이라고 들었다. 그래야만 황실을 칠 명분을 획득하고 새로운 황제를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그 일에 성공하지 못한 모양이다.

“우리는 블랙 드래곤이 수도에서 출몰했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에 왔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고 있다. 지금은 흩어져서 수도의 산을 뒤지고 있지.”

“블랙 드래곤의 심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블랙 드래곤….”

그들의 말을 듣고, 내가 다른 이들과 어색한 표정으로 눈을 맞췄다.

‘블랙 드래곤의 심장이라면, 이시나 님이 예전에 태워 버렸던 그거 아닙니까?’

‘악용되면 안 되니까.’

역시 이시나는 현명했다. 우리가 그것을 불태우지 않았다면 어딘가로 흘러 들어가서 이렇게 악용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블랙 드래곤은 주로 북부 국경지대에 서식하지 않나? 수도 근처에서 발견될 리가 없는데.

나는 2황자군이 절대로 블랙 드래곤을 잡지 못하리라고 확신했지만, 그들에게 굳이 정보를 주지는 않기로 했다.

“어쨌든 2황자를 되살리지 못해서 아직까지도 이렇게 수도를 헤매고 있는 겁니까?”

“그래, 그가 없으면 우리의 일은 성공하지 못하니까.”

그가 우리의 눈치를 슬그머니 보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여기서 우리에게 협력하여 우리를 놓아준다면,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지. 2황자 전하께서는 이종족에 대한 더 좋은 처우를 해 주신다고 약속할 수 있다.”

“흠….”

‘더 좋은 처우 같은 소리 하네. 우리는 조직의 간부가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이놈들아.’

원래 모든 조직에서 간부는 주적인 법이다!

그들의 말을 전혀 믿지 않으면서도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 고민하는 척을 했다.

“음, 그런데 꼭 황제가 있어야 합니까?”

“뭐? 그게 무슨….”

“아, 됐습니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에 그들이 당황하는 것 같아서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만 본능적으로 불순한 사상의 발언이 나와 버렸군.

하여튼 이들에게서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었다. 왜 아직도 이들이 황실을 덮치지 않느냐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이제 우리의 일을 할 시간이었다.

“다들 가까이 오도록.”

윈터가 흑마술사에게로 검을 겨누며 말했다.

그 말에 다시 2황자군과 우리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들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떠올랐다. 잠깐 조성된 우호적 무드 속에서 우리가 그들의 편을 들어주리라고 거하게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에게 협력은….”

“저희가 협력을 왜 합니까?”

내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하며 그들 쪽으로 총을 겨눴다. 금방이라도 총을 쏠 듯 방아쇠에 손이 올라간 자세였다.

“좋을 말로 할 때 그자를 넘기십시오.”

내가 다시 한번 경고의 말을 한 바로 그 순간, 흑마술사가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

“에잇!”

그가 한쪽 손을 높이 쳐들고 무언가 동작을 취한 순간, 어딘가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쿠르릉-

“뭐지?”

그리고 나는 불안해졌다. 이런 큰 소리가 갑자기 들린다는 건 그가 흑마술을 썼다는 얘기인데.

“사루비아, 달려!”

“아아악!”

산꼭대기에서 굴러오기 시작한 거대한 바위를 보며 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낙석이었다!

2황자군이고 뭐고 우리는 미친 듯이 산을 달려 내려갔다. 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다리가 관성적으로 움직일 정도의 속도였다.

“아악, 이 흑마술사 XX! 잡히기만 해봐!”

차라리 마물과 싸우는 게 낫지, 저 돌은 우리가 싸운다고 해서 방향을 바꿔 주는 것도 아니니 더욱 무서웠다! 이런 식의 공포에 시달려 본 적은 없는데!

‘옆으로 빠져야 한다!’

머리로는 그걸 알고 있었지만, 바위의 속도가 워낙 빠르니 앞으로만 달리기에도 바빴다. 바위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었고, 조금만 속도가 느려져도 우리는 그 아래에 그대로 깔릴 것 같았다.

‘안 되겠다!’

바위와 약간의 격차가 벌어진 바로 그 순간, 나는 총을 꽉 쥔 채 그대로 몸을 돌렸고.

“사루비아!”

탕-!

아퀼라가 내 이름을 부른 것과 내가 총을 쏜 일은 동시에 일어났다.

탄환이 그대로 바위의 한가운데에 적중하고.

쿠구궁-

바위 한가운데를 정확히 맞춘 탄환은 바위를 깨뜨리기 시작했다.

다만….

“으악!”

바위가 깨진다고 해서 굴러오고 있던 바위가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 아퀼라가 내 몸 위로 휘익 날아오더니 나를 감쌌다. 그러고는 그대로 나를 안은 채 몸을 옆으로 날렸다.

“아퀼라!”

그의 아래에 깔린 채, 금이 간 상태에서 여전히 아래로 굴러가는 바위를 보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사루비아, 괜찮아? 다친 덴 없어?”

아퀼라가 가까스로 내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서 애정과 뒤섞인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바닥에 구르느라 그가 입은 제복의 팔 부분은 찢어져 있었고 상처를 입은 것도 같았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나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응, 나는 괜찮아…. 너는?”

“괜찮아.”

그렇지만 아퀼라가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고 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퀼라의 몸을 샅샅이 살피고 있을 때, 반대편으로 피했던 윈터와 이시나도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이시나는 답답함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사루비아, 그런 멍청한 짓은 왜 한 거야….”

“그… 원래 군복에는 지능 디버프 저주가 걸려 있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이상하게 자꾸 생각 없이 행동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에휴….”

더 이상 잔소리하지 않고, 이시나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멋쩍게 웃다가, 화제를 돌리기 위해 외쳤다.

“도망친 흑마술사나 잡으러 가시죠!”

감히 나를 압사시키려 했던 그 미친 XX를 반드시 잡아넣고야 말 것이다.

* * *

이번에도 그들의 흔적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신없이 도망가느라 이동의 흔적을 지우는 기본적인 일조차 하지 못한 듯했다.

“이 XX들아! 거기서 딱 기다려!”

내가 머리카락이 잔뜩 헝클어진 채 무시무시한 자태로 외치자 그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도망쳐!”

“다들 달려!”

“어딜 달려어!!”

우리는 맹추격 끝에 흑마술사를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2황자군은 우리를 검으로 공격하려 했지만 나는 총을 검처럼 휘둘러서 검격을 간단히 막아냈다.

하여튼 간에 지금 흑마술사는 우리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잡히자마자 도망가 버린 동료들의 자리를 허망한 눈으로 보았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결속이었냐고!

“자, 가자.”

내가 챙겨 왔던 밧줄로 그를 포박한 채 거칠게 말했고, 윈터가 자세히 덧붙였다.

“당신은 체포당했습니다. 황실에 있는 감옥으로 이송될 예정입니다.”

“가, 감옥?!”

‘감옥’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공포에 질린 듯, 그가 무릎을 더욱 공손하게 꿇으며 빌기 시작했다.

“제, 제발 한 번만 봐주십쇼! 저는 정말 나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흑마술사인데 뭔 나쁜 짓을 안 하냐….”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모든 흑마술사가 나쁜 일을 했다는 건 편견입니다, 편견!”

그렇게 말하며 그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하.”

2황자군에 속한 흑마술사들이 거대한 흑마술 발동을 위해 사람을 잔뜩 죽여서 제물로 쓴 일을 이미 알고 있는데, 참 뻔뻔한 발언이었다.

어디 한번 그의 양심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내가 그의 앞에 웅크리고 앉아 물었다.

“그래서 본인은 나쁜 흑마술사가 아니다?”

“예, 정말로요!”

“좋아, 그럼 몇 가지 질문을 하지. 넌 사실만 답하고, 예 혹은 아니오로만 대답하면 된다.”

그 말에 흑마술사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맹렬히 끄덕였다.

“하나, 나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

“아니오!”

“…사람을 죽여서 제물로 쓴 적이 있다.”

“예!”

“이거 완전 미친 XX잖아!”

어이가 없어서 내가 버럭 외쳤지만, 그는 진심으로 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흑마술사라는 집단 자체가 윤리 의식이 없는 건가?

“그럼 둘, 사람을 납치한 적이 있다.”

“아니오!”

“사람을 강제로 데려와서 일을 시키고 부려 먹은 적이 있다.”

“예!”

“이 미친놈아!! 넌 나쁘지 않은 흑마술사라며!!”

“사, 사루비아, 침착해. 호흡!”

이시나가 재빨리 뒤에서 나를 붙들고 호흡법을 시켰다. 덕분에 나는 금방 다시 침착해질 수 있었다. 흠, 하마터면 고혈압이 올 뻔했다.

“아니, 그런데 대체 이번에 이 마을에 흑마술은 왜 건 거야? 그게 너희한테 어떤 이득이 되는데?”

그들이 감정을 격하게 만드는 흑마술을 건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그렇게 물었더니, 흑마술사가 위축된 태도로 대답했다.

“그건… 마을에 혼란이 일어난 틈을 타 식량을 좀 훔치려고….”

“에휴….”

하긴, 마을 꼴이 엉망이긴 했으니 배고프고 물자도 없는 그들에게는 기회이긴 했을 것이다.

“어쨌든 빨리 일어나! 너를 얼른 감옥에 처넣어야 하니까!”

그러나 흑마술사는 이번에도 일어나지 않고 바닥에 바싹 엎드린 채 말했다.

“제, 제발요! 제 말을 한번 들어 보시죠!”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사루비아.”

“앗, 습관이 돼서….”

내가 내 입을 찰싹 때리며 후회하고 있을 때, 흑마술사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말을 줄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말로 모든 흑마술사가 나쁜 건 아니라니까요? 다 황실이 그런 프레임을 만들어 내서 그래요!”

“흠, 황실이 좀 문제가 많긴 하지.”

“예, 맞습니다! 애초에 흑마술을 ‘흑마술’이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프레임이라니까요!”

그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옛날에는 흑마술이 아니라 그냥 마술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니까요! 그런데 아돌브 제국이 충분히 견고해졌다고 판단되니까 마술에 ‘흑마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그를 추궁하는 일을 멈췄다. 생각해 보니 정말로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냥 ‘마술’은 없는데, 왜 ‘흑마법’ 혹은 ‘흑마술’은 존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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