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11화 (185/233)

“그 커플들은 어디로 갔지?”

“사랑의 도피를 했습니다!”

“…일단 침착하고 찾아보자.”

졸지에 사랑의 도피를 한 연인들을 추적해야 할 상황에 놓인 우리 넷은 둥글게 서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이시나가 먼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했다.

“자, 먼저 그들이 어디로 갔을지 추측해보기 위해 다들 사랑의 도피를 한다면 어디로 하고 싶은지 말해 봅시다.”

“저는….”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아퀼라였다.

“우선 아무도 없는 곳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추운 곳을 싫어하… 아니, 왠지 싫어할 것 같은 예감이 드니 따뜻한 남부 지역으로 도피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내가 힘없는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고, 윈터도 뒤이어 입을 열었다.

“내 본가가 있는 북부 쪽이 좋겠군. 내가 그쪽 지리에 빠삭하니까. 날씨가 춥다고는 하지만, 성 안은 따뜻하게 덥힐 수 있다.”

“왜 자꾸 다들 따뜻한 걸 강조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걸로 칩시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시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시나 님은 어쩌실 겁니까?”

“응? 나는 도피 안 할 건데?”

“예?”

“나는 쟤들처럼 사랑의 도피를 할 정도로 미친놈이 아니야. 사랑을 하면 그냥 원래 있던 자리에서 하면 되지, 왜 자꾸 애를 고립시키려고 도피를 하는 거야? …잠시만, 애를 어디로 데려간다고? 북부? 남부?”

이시나가 그들의 말 속에 숨은 저의를 깨달은 듯 분노에 차오른 눈으로 아퀼라와 윈터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방금 떠난 커플들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은 대관절 어디로 향했을까? 나라면 어디로… 아니, 잠깐만.

“아니, 잠깐만! …말입니다!”

내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외치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어차피 이 마을을 떠나는 통로는 저희가 지나온 곳 하나뿐입니다.”

“…….”

이 자식들, 사랑에 눈이 멀더니 단체로 멍청해진 모양이다. 멍청한 남주는 용서할 수 없지. 각각 남주력 –40.

* * *

하여튼, 우리는 커플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붙잡은 뒤 그들이 보았다는 외지인의 위치에 대해 물었다.

“대체 외지인을 어디서 보셨나요?”

그러나 그들과 대화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들은 흑마술에 중독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저희 좀 사랑하게 내버려 두세요! 엉엉!”

그러자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윈터가 해답을 내놓았다.

“이들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 보지. 그렇다면 흑마술의 영향이 깨질 수도 있으니까.”

“아하, 역시 윈터 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들을 힘으로 붙든 채 마을 밖으로 질질 끌고 갔고, 그들이 마을 밖에 있는 땅을 밟은 순간.

“아!”

그들은 갑자기 이성적인 눈이 되어 말했다.

“사랑의 도피를 하는 건 좋지 않아.”

“그래, 주변인이 반대한다면 침착하게 동의를 얻기 위해 노력하자.”

“맞아, 집착하지 않고 건전한 연애를 하자고.”

“서로 집착하는 연애는 오직 소설 속에서만 아름답다는 사실! 다들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러더니 서로의 손을 잡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다며 마을로 되돌아가려 들었다. 왠지 그들의 말을 따라 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절로 혼잣말이 나왔다.

“아하, 역시 집착남주는 소설 속에서만 허용될 수 있구나!”

“사루비아, 어딜 보고 말하는 거야…?”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마을로 돌아가려던 커플들을 붙잡았다.

“그래서 외지인은 어디서 봤습니까?”

“외지인이요? 아!”

남자가 마을 안쪽에 있는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얼마 전에 마을 입구에서 봤는데, 저 산으로 향하더라고요! 제가 물어보니까 등산을 하러 간다고 했어요!”

“산이라…. 그 사람들은 총 몇 명이고, 어떻게 생겼습니까?”

“총 일곱 명이었고, 인상착의는…. 아! 한 명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네요.”

‘검은 로브!’

그 말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검은 로브라 하면 명실상부한 흑마술사들의 공식 복장 같은 거 아닌가? 나는 지금까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흑마술사들을 많이 봐 왔다.

그렇다면 산으로 올라갔다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로 이 사태를 일으킨 주범인 흑마술사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흑마술사를 찾으러 가도록 하지.”

나와 비슷한 결론을 내렸는지, 윈터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산을 바라보는 내 표정은 어두웠다. 왜냐하면 그건 한눈에 보기에도 몹시 험한 바위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희 저 산을 올라야 하는 겁니까…?”

“…알잖아, 사루비아. 우린 뭐든지 할 수 있어.”

XX! 기껏 제대했는데 또다시 등산이라니!

그렇게 우리는 오랜만에 클레도어 산악 대대의 기억을 되살리며 산을 올라야 했다.

“…업어 줘?”

아퀼라는 분한 눈의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지만….

“아니, 이 산을 스스로 오르지 못한다면 내 자존심이 상한다고. 절대 안 돼.”

내가 국경방위군 짬밥이 있는데, 귀찮다고 해서 가오가 상하게 업힐쏘냐.

한참 뒤, 산을 오르던 우리는 수상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불을 피운 흔적이 있었고, 야영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가운데에 마법진 같은 게 그려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게 혹시 흑마술을 일으킨 거 아니겠습니까?”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지워 보자.”

이시나가 신발로 마법진을 슥슥 문댔고, 그 진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감정이 변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화가 좀 덜 나는 것 같아.’

아까보다 차분해진 걸 보니, 정말로 이 마법진은 감정에 변화를 일으키는 마법진이었던 것이다!

“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한 거지?”

흑마술사들도 정치 세력에 휘말려 바쁜 요즘, 어떤 흑마술사가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런 짓을 한 걸까?

그때 내 머릿속에 그 흑마술사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지금 이런 산속에 숨어 있을 만한 흑마술사와 사람들이라면 한 부류밖에 없지 않은가.

‘2황자군…!’

흑마술사를 포함하고 있는 2황자군, 그들의 행적은 수도에 도착한 뒤 거짓말처럼 끊겼다. 어쩌면 그들 중 일부가 이 산 안에 숨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역시나 영리한 이시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 내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나 님, 만일 그런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2황자군 진압은 저희의 임무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이시나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답했다.

“네 말대로 그건 우리의 임무가 아니야. 만일 그들을 발견하면 체포하지 않는 거야. 단, 흑마술사만 체포하도록 하자. 그게 우리의 임무이니까.”

“그래, 이시나의 말이 옳다. 우리의 강령에 따르면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윈터 또한 이시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나는 에이프릴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무얼 위해 일하고 있는지 생각하라고 했지.’

이시나와 윈터는 단순히 흑마술사만 체포하자고 했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혁명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시나의 말대로 2황자군을 내버려 두는 것이 지금의 우리 위치에서는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2황자군을 내버려 둬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도 황실 소속의 2황자를 추종했던 만큼 우리와 한 편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현 황실을 뒤흔들어 놓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만일 그들을 만난다면 왜 황실을 습격하지 않고 수도에 숨어 있는 건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길을 떠났다.

우리는 바닥의 흔적을 샅샅이 뒤져 2황자군이 떠난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패티와 매티가 길을 잃었을 때 그 방법으로 몇 번 그들을 찾아내 봤기에 누군가를 추적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우리가 흔적을 따라 걷고 있었을 때, 저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스락-!

눈을 마주친 우리는 재빨리 신호를 보냈고, 잠시 후….

“멈춰!”

내 총은 자신들끼리 뭉쳐 있던 일곱 명의 사람들을 겨누고 있었다. 잔뜩 꼬질꼬질해진 몰골의 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놀라 숨을 들이켰다.

‘총은 없군.’

그들은 검만 소지하고 있는 데다 오러도 쓰지 못할 것이므로, 그들 쪽이 인원수가 더 많더라도 아마 우리가 이길 것이다.

게다가 그들 중 누가 흑마술사인지도 분명했다. 그중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멈춰, 움직이면 쏜다.”

“너희들은 누구지? 황제의 개인가?”

우리의 제복을 보자마자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황제의 개는 아니지. 따지고 보면 나는 에이프릴 님의 개….”

“사루비아.”

“…인간 보고 누군가의 개라니, 어쩜 그렇게 무례한 말을.”

이시나의 질책에 난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이시나가 그들에게로 총을 겨누고 내 앞으로 나서더니 말했다.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서 나왔습니다. 흑마술사를 체포하겠습니다.”

“흑마술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체포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저희는 흑마술사를 체포하라는 명을 받았고, 그 명을 따릅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윈터가 흑마술사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우두머리가 흑마술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의 동료를 데려가려면, 우리 모두와 싸워야 할 거다!”

“하….”

젠장, 2황자군과 흑마술사 간 연대가 이렇게 끈끈하다니. 그냥 정치적 협력 관계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동료 의식은 있는 모양이다.

물론 저들과 싸워서 충분히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니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음, 이럴 때는.’

나는 슬쩍 눈을 굴리다가, 이렇게 된 김에 이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이 뭔지 잊지 않고 행동하기. 혁명을 위해 중요한 건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거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려면 지금이 기회인 것 같아, 나는 물었다.

“왜 아직까지 황실을 습격하지 않고 있는 겁니까?”

“뭐?!”

내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줄 몰랐던 듯 그들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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