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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8화 (182/233)

* * *

잠시 후, 부대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저 명목상의 단체라는 말이 정말인지, 하나의 부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대원의 수는 적었다. 한자리에 모두 모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겠지. 그중에는 내가 아는 얼굴도 있었지만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

‘에이프릴이든 누구든 새로 영입한 사람이겠지, 뭐.’

“그런데 여기 있는 분들은 전부 믿을 수 있는 분들인 겁니까?”

에이프릴이 중대발표를 하기 직전에 걱정이 된 내가 그렇게 물었지만, 그녀는 그저 방긋 웃으며 간단히 답했다.

“응, 모두 검증을 한 번 거쳤어.”

“검증이라면 어떤 식으로…?”

“진실된 목표가 있지 않다면 통과할 수 없는 그런 역경을… 모두 한 번씩 거쳤지.”

짧지만 심연을 담고 있는 그 대답에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더 묻지 않는 게 좋겠다, 응!

하여간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에이프릴보다 기수가 낮은 사람들이었다. 설산 대대에 있으리라고 추정되는 지하단체에 비교했을 때, 이들은 아르콘의 젊은 피라고 할 수 있겠다.

에이프릴은 방문을 꼭 걸어 잠근 뒤, 그들에게 모든 진실을 공유했다.

그들은 몹시 분개했다. 다들 주변 집기를 다 깨부술 듯 극도로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 다행히 그녀의 말대로 이곳에 스파이는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일단의 혼란와 격렬한 분노 표출 끝에 구성원들은 국가 체제를 바꾸자는 제안에 극적으로 동의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체제를 어떤 식으로 어떻게 바꾸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자, 의견 있는 사람?”

에이프릴보다도 기수가 높아 보이는 누군가가 그렇게 물었으나, 좌중은 조용했다.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새로운 체제라, 음….

‘물론 난 민주주의가 좋지만….’

여기서 민주주의라는 걸 언급하고 신분제를 폐지하고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뽑자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내가 그런 말을 할 때 벌어질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아아, 이게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어이어이! 굉장하잖아!

-오옷! 민주주의! 대단하다고!

-이세계에서는 투표를 통해 왕을 뽑는다고? 굉장해!

-저 녀석, 천재적인 발상을 해냈어!

-사루비아! 사루비아! 사루비아!

일단 이럴 것 같지는 않았다.

-뭐? 신분제 폐지? 투표? 이건 뭐 멍청한 소리야?

-투표를 통해 왕을 뽑는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래, 오히려 이렇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겠지.

그래서 나는 일단 남들과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우리가 침묵하고만 있자 에이프릴이 가느스름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의견 없어? 흠, 그럼 어쩔 수 없지.”

“혹시 에이프릴 님은 국가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두신 게 있는 겁니까?”

왠지 그녀라면 뭔가 해낼 것 같다는 예감에 내가 그렇게 묻자, 그녀가 당당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 그건 바로 ‘내 마음대로 하기’다.”

“아하….”

…설마 본인이 황제가 되겠다는 건 아니겠지? 아냐, 군주제는 그녀의 이상과 맞지 않는 것 같으니 그럴 리는 없겠지….

“물론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준비가 다 될 때까지는 평소처럼 행동해야 해. 황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지극히 평범한 흑마술 수색군으로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말씀은….”

“근무해라, 사루비아.”

그 말에 내 얼굴이 왕창 일그러졌다.

세상에, 나는 이제 돈도 있고 자유의 몸인데, 재입대를 해서 다시 근무를 하게 생겼다니. 달린을 그렇게 미친X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내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미친 짓을 하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다시 허망한 얼굴이 되어 있을 때, 에이프릴은 다른 부대원들 쪽을 향해 말했다.

“뭐 해? 신입이다!”

그러자 모르는 얼굴과 아는 얼굴이 섞여 있던 부대원들 쪽이 시끄러워졌다.

“신입!”

“신입이다!”

“신입이래!”

“뭐, 뭐지?”

왠지 불안해져서 나는 아퀼라 쪽을 툭툭 치며 그렇게 물었다. 아퀼라는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려 하는 것 같았으나 내 눈에는 그 또한 다소 당황하고 있다는 점이 잘 보였다. 그의 남주력이 다시 오르기는 한동안 글렀나 보다.

우리가 경계하는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을 때, 그들은 마치 고인물 게이머들이 뉴비를 본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왔… 잠깐만.

‘뉴비?’

생각해 보니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 신입이 활발하게 들어오려나?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도움을 구하는 눈으로 유리를 쳐다보자, 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짧게 말했다.

“여기는 신입이 없다. 그래서 다들 신난 거야.”

역시, 그들은 정말로 희귀한 뉴비를 보고 신난 고인물 상태였던 것이다!

“이봐, 오랜만이군.”

흥분한 얼굴로 우리에게 몰려드는 선임들을 뚫고 누군가가 성큼 다가왔다.

“누, 누구세요?”

아무리 봐도 낯선 얼굴이었기에 내가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나 분명 그는 나를 아는 것처럼 보였다.

보라색 머리에 보라색 눈, 살이 올라 광채가 나는 피부, 건강해 보이는 얼굴…. 어딜 봐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기억 안 나나? 내 이름은 타로였는데….”

“아앗, 타로 님?”

내가 알던 그 피곤한 인상의 사람과 이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비로소 그의 이목구비에서 타로의 얼굴이 보였다.

‘역시 군대가 타로를 늙게 만들었구나….’

밖에서는 이토록 멀쩡한 타로의 얼굴을 보자니, 다시 한번 군대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따지자면 군대 중에서도 국경방위군이 큰 문제이다, 음.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 있는 타로는 이렇게 윤기 있는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타로 님은 도대체 여기 왜 오신 겁니까?”

매사에 의욕이 없어 보이던 그가 무언가를 한다는 게 신기해 내가 그렇게 묻자, 일순간 타로의 얼굴이 국경방위군에 있을 때와 거의 흡사한 정도로 지쳐 보였다.

“집값이 너무 올라서…. 일을 하긴 해야겠더군….”

“아아….”

“그 와중에 스카우트를 받아서 입단하게 된 거지. 나도 나를 이렇게 지치게 만든 국경방위군에 불만이 있기도 했고.”

하긴, 지금의 이 멀끔한 얼굴을 보라. 원래는 이렇게 멀쩡하던 사람이 국경방위군에서 그렇게 낡은 얼굴이 됐다면, 혁명을 좀 다짐할 만하다.

타로는 다른 선임들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여기서는 일단 팀을 짜서 흑마술사를 체포하는 임무를 실행하게 될 거다. 요즘은 대부분의 흑마술사가 정치계에 끼어들어 싸우고 있기 때문에 꽤 평화로운 시기야. 일이 많지는 않을 거다.”

하긴 그의 말대로 흑마술사는 2황자군 쪽으로 편입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도 2황자군이 황실군과 충돌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2황자군이 수도로 올라온 뒤 어딘가로 숨어들었다는 얘기인데, 그들이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황실을 습격하려는 걸까? 아니면 이대로 영영 숨어 지내려는 걸까?

“보통 팀은 2인 1조 혹은 3인 1조로 배정되지. 너희의 팀을 배정해 주겠다.”

나는 2황자군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다시 타로의 말에 집중했다. 팀 배정은 앞으로의 흑마술 수색 특수군 생활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이벤트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퀼라가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같은 팀이 되지 않는다면 할복이라도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타로 님.”

“응?”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쿨하고 민트하고 아이시한 목소리였다.

그는 바로 쿨민트아이스민간인 78기의 일원, 윈터…. 잠깐만.

‘이제 민간인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쿨민트아이스프로즌 78기라고 하자. 어쨌든 윈터는 쿨하고 민트하고 아이시하고 프로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사루비아와 한 팀이 되어 잘 지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국경방위군 시절부터 인연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 그래. 둘이 친했던 것도 같고.”

타로가 성의 없는 태도로 머리를 긁적이자, 이번에는 아퀼라가 열의를 보이며 손을 들었다.

“타로 님, 그렇다면 저도 한 팀에 배정되어 배우고 싶습니다. 윈터 님으로부터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설마….

‘삼각관계!’

젠장, 또 시작이라니!

내가 뻘쭘한 얼굴로 앉아 있을 때, 그들은 귀족 영애 같은 화법을 사용하며 공격을 주고받았다.

“제가 한 번에 두 명을 지도할 자신은 없는데, 아퀼라는 다른 사람에게 배정하는 게 더 효율적인 지도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윈터 님은 스스로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두 명 정도야 충분히 동시에 가르칠 수 있는 분 아니십니까. 그래서 제가 참 존경하지 말입니다.”

“글쎄, 언제부터 날 존경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사루비아에게는 내가 예전에 글을 가르친 적도 있으니 호흡이 잘 맞을 것 같고.”

“그런 식으로 치자면 동기인 제가 호흡은 더 잘 맞지 않겠습니까. 호흡으로만 따지자면 저와 사루비아가 같은 팀이 되어야 하지 말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타로의 얼굴에 약간의 피로가 감돌았다. 일순간 옛날의 피곤한 모습을 엿본 것도 같았다.

그리고 타로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우선 사루비아, 네 팀은….”

그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시나, 너다.”

“네?”

졸지에 지목받은 이시나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으나, 타로는 귀찮다는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원래 둘이 맞선임이었으니까 잘 가르치겠지. 그리고 아퀼라 너는 윈터로부터 지도를 받으면 되겠다. 이상, 끝.”

윈터와 아퀼라가 허망한 표정으로 자리에 서서 서로를 보다가, 동시에 이시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시선 세례를 받은 이시나는 황당무계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나한테 이런 재앙이….”

“어떻게 그게 재앙입니까.”

진지한 얼굴로 아퀼라가 말했다.

“그건 엄청난 혜택인데, 어떻게 그걸 재앙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맞다, 이시나.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군.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때는 ‘재앙’이 아니라 ‘수혜’라고 해야겠지.”

두 사람이 연달아 쪼아대자 이시나는 더욱 절망하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역시 이건 재앙이야…. 물론 사루비아 너를 함부로 방생할 마음은 없었지만, 저놈들 사이에 끼는 건 피곤한 일이거든.”

“뭐,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팀 배정에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이시나는 나를 잘 챙겨 주니까 그와 한 팀이 된 것에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저 둘도 제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팀이 된 것에 만족할 겁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모두가 만족하는 게 됩니다.”

“사루비아, 왜 내 만족도는 신경 쓰지 않아 주는 거야…? 그리고 저 둘도 별로 만족하진 않는 것 같은데.”

“팀 배정이 정말 잘 된 것 같습니다, 호호.”

이시나가 괴로워하고 아퀼라와 윈터가 서로를 은근히 노려보는 가운데, 나는 예쁘게 웃었다. 이시나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삼각관계는 일단락되었다.

* * *

‘일단락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일주일 전 한 말을 취소하기로 했다.

삼각관계는 일단락되기는커녕 더 심화되는 듯했다. 예를 들어 내가 일주일간의 교육을 마치고 오늘 아침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처음 출근했을 때.

“사루비아, 역시 오늘 아침에 내가 구운 계란 프라이는 너무 탔지? 내가 내일은 더 노력해 볼게.”

“아냐, 그럴 필요 없는데. 그냥 내가….”

“어떻게 너한테 그런 일을 시킬 수 있겠어. 내가 잘할게.”

아퀼라는 윈터의 앞에서 우리가 한집에 산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사루비아, 조심하도록!”

내가 테이블에 부딪칠 위기에만 처해도 윈터는 내가 목숨의 위협을 겪은 사람인 양 호들갑을 떨며 나를 챙겼다.

‘이놈의 로판 여주!’

나는 지금 내가 로판 여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러므로 이런 삼각관계가 발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내가 당면한 현실이란 말이야, 이놈들아!

‘뭐야, 남의 현실 망치지 말고 돌려놔요!’

그나마 아퀼라와 윈터와는 다른 팀인 덕분에 그들과 직장에서는 좀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시나 님, 준비됐습니다.”

“그래, 사루비아. 가자.”

내가 머리를 묶고 준비를 마치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이시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임무를 위해 떠나….

“그런데 넌 그걸 머리라고 묶은 거니? 에휴…. 이리 와라….”

떠나기 전에 다시 시간을 조금 지체했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비로소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 후 우리가 건물을 나서려고 할 때, 누군가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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