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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화 (180/233)

어째 제대하기 전보다 키가 더 큰 듯한 알타이르가 씨익 웃는 얼굴로 문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의 뒤에는 집들이 선물로 추정되는 것을 든 유리도 함께 서 있었다.

미리 말을 맞추고 온 건 아닌 듯, 윈터가 그들을 보며 황당한 얼굴을 했다.

“너희가 왜 여기 있지?”

“그거야 당연히 네가 걱정돼서 그랬지~.”

“네가 헛짓거리 할까 봐.”

각자의 성격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대답을 한 후, 그들은 나나 아퀼라가 권하기도 전에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초리가 꼭 윈터를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루비아, 잘 지냈냐? 너는 그대로네.”

알타이르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뭐, 알타이르 님도 그대로이시지 않습니까.”

“하하, 그런가?”

“응, 후임한테 친한 척하면서 젊어 보이려는 모습이 그대로다.”

옆에서 유리가 그렇게 지적했지만 알타이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답답함이 담긴 눈으로 윈터를 보았다.

“윈터, 너는 대체 뭐 하고 있냐? 사루비아 결혼한다면서.”

“윈터, 남의 신혼집에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유리, 그런데 우리도 지금 남의 신혼집에 쳐들어온 거 아냐?”

“…조용히 해.”

알타이르와 유리가 그들끼리 투닥거리기 시작한 동안, 윈터는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집에서 지내기 불편한 건 없나?”

“예, 없습니다….”

“제가 잘 챙기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젠장, 이파전이었다.

“그렇게 둘이 다투니까 애가 당황하는 거 아닙니까.”

…삼파전이었다!

내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그때.

똑똑-!

또 한 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격해지는 분위기를 잠깐 멈춰준 그 노크가 거의 반갑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문 쪽으로 달려가면서도, 나는 이번에 찾아온 사람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대체 누구지? 카론은 아직 복무 중일 텐데? 설마 나 때문에 탈영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사파전은 안 된단 말이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열었고….

“꺄아아악!”

“왜 만나자마자 비명이야?”

익숙한 금발을 보자마자 놀라서 뒤로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XX, 차라리 남주 넷이 나를 두고 싸우는 게 낫지! 내 오각 관계 돌려줘요!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을 의심해 보려 했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 봐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손에 와인 한 병을 든 에이프릴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사루비아,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미안하지만, 들어가도 될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문을 쾅 닫아 버리고 싶었지만, 내가 그녀의 말을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도 집들이 선물을 챙겼고 저렇게 예의 바른 어조로 물어본다는 점에서 앞에 왔던 인간들보다 훨씬 낫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연락도 없이 찾아온 건 예의에 어긋난 일이지만.

하지만 과거의 악몽 탓에 나는 도무지 에이프릴을 온전히 반길 수가 없었다. 압박감을 버티지 못한 나는 그만 슬금슬금 물러나서 아퀼라의 뒤에 살그머니 숨고 말았다.

여전히 나이 한 살 먹지 않은 것처럼 풋풋한 외모의 그녀가 우아한 태도로 내 맞은편 소파에 걸터앉았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지만, 그들도 모두 에이프릴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에이프릴이 돌아오니 다들 다시 남주력이 떨어지는군. 아퀼라와의 일 이후로 남주력 제도는 폐지하기로 했는데, 역시 남주력 제도의 부활이 필요하다. 전원 남주력 –100.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에이프릴은 혼자 여유로운 태도로 다리를 꼬며 말했다.

“다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니?”

…차마 나를 두고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고는 대답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도 에이프릴의 말에 대답해 준 건 사회성의 대명사 알타이르였다.

“그냥 이런저런 회포나 풀고 있었습니다, 뭐, 하하.”

“그래? 그럼 계속해.”

XX,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자신이 온 시점에서 우리가 그전에 하고 있었던 얘기는 모두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에이프릴이 특유의 ‘악마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루비아, 그래서 입대는 언제 할 거니?”

“이, 이, 입대요?”

저건 분명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의 입대를 말하는 거겠지?

하긴, 이제 혁명 준비를 시작해야 하니까.

아니, 그런데 제대하자마자 입대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냐고, XX! 지금까지 휴가도 한 번 없었는데 인간적으로 시간을 좀 주란 말이야!

안 되겠다. 어떤 식으로도 이 공간을 탈출해야겠다. 그래, 탈영을…. 아니, 나는 이미 제대를 했잖아, XX! 게다가 여기가 내 집인데 가긴 어딜 가!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다. 간다 해도 좀 휴식을 취한 다음에 가야 한단 말이다.

“그, 에, 에이프릴 님, 물론 함께 혁명을 해야 하지만 저에게 시간을 조금만 주신다면…. 아시다시피 국경방위군은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더 뜨거운 혁명을 위해 저는 휴식이 필요할 것 같고….”

“흐음.”

바로 그 순간, 옆에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렸다.

고개를 돌린 내가 발견한 것은 집들이 선물을 왕창 쏟아 버린 알타이르와 유리였다.

“뭐, 뭘 해…?”

유리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것?”

“그것을 진짜 한다고?!”

알타이르와 유리의 태도를 보며, 나는 그러고 보니 그들은 이 상황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나는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 가야 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흑마술의 실체를 파헤치면서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혁명을 준비해야 했으니까.

‘잠깐만, 그렇다면….’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마침 내가 동료로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카론이야 뭐 나중에 내가 오라고 하면 알아서 따라올 테고.

이 사람들을 내 동료로 삼으려면, 먼저 이들에게도 진실을 알려 줘야 할 것이다. 국경방위군에서 아르콘들을 이용하기 위해 건 계약 마법의 대가로 마물이 생성되고, 그래서 우리는 무의미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것.

“에이프릴 님.”

“응?”

내가 에이프릴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기울였다.

“에이프릴 님은 얼마나 준비하셨습니까?”

“음, 준비라니? 뭘 준비해? 사루비아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나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녀의 태도를 보고 황당해져서 입을 벌렸다. 왜 모른 척하는 거지? 그녀라면 당연히 뭔가 준비해 둔 게 있을 텐데!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래, 내가 그녀의 앞에서 제국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밝힌 적은 없으니 확실히 하라는 거구나. 하긴 내가 진심으로 혁명을 결심하게 된 건 에이프릴이 떠난 이후의 일이었다.

마침내 나는 이 자리에서 진실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에이프릴 또한 나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

“제가 여기 계신 모두에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내가 비장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저 사실 아르콘의 계약 마법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긴 설명이 끝난 후, 집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 모두 내가 전해 준 정보에 크게 충격받은 듯했다.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깨 보기 위해 내가 어색하게 말했다.

“다들 생각보다는 화가 덜 나시나 봅니다…. 저는 거실에 있는 화병 하나 정도는 깨질 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화가 나다 보니 행동조차 못 하는 것 같네.”

유리가 무뚝뚝하게 말했고, 이시나가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사루비아, 여기서 화가 난다고 화병을 깰 만한 사람은 너밖에 없잖니.”

…나는 그의 말을 대충 흘린 후, 반응을 기대하는 눈으로 에이프릴을 쳐다봤다. 늘 속을 알 수 없던 그녀는 이 이야기에 어떻게 반응할까?

그러나 에이프릴은 남들과 달리 홀로 싱긋 웃었다.

“어느 정도 추측은 하고 있었는데.”

…그랬군. 역시 그녀가 또 한발 앞서갔던 거군….

“다만 나는 정황상으로 추측한 것이지,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어서. 사루비아 네가 관계자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니 모든 상황이 확실해졌네.”

그녀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태도로 말했지만, 나는 그녀가 더욱 무서워졌다. 아니, 그런 사실을 알고서도 어떻게 저렇게 웃고 있을 수 있는 거지?

어쨌든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더 자세히 전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나는 에이프릴에게 지휘사관 때 겪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지휘사관 진급 때 설산 대대로 배치를 받아 갔는데 말입니다.”

“사루비아, 너 진짜 운이 없구나?”

“…동의합니다. 어쨌든, 그곳의 간부들은 이전부터 진실을 파헤치며 국가에 반하는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던 듯했습니다.”

“어머!”

에이프릴이 박수를 가볍게 짝 치며 감탄했다.

“하지만 국가에서 심어 놓은 첩자가 눈치채고 간부 두 명을 살해하는 바람에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곳의 대대장은 일을 다시 시작할 의사가 있다고 했고, 협조 의사 또한 전했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에이프릴은 그 이상 환해질 수 없을 정도로 밝은 얼굴로 또다시 박수를 쳤다.

“사루비아, 너 정말 대단하구나! 이전부터 느꼈지만 너는 재능이 있어!”

“하하….”

“어이어이, 믿고 있었다고~!”

알타이르가 괴상한 말투로 감탄을 표하자 유리가 질색하는 얼굴로 그의 등짝을 내리쳤다.

한편 아퀼라는 일견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다소 놀란 것 같았다. 윈터는 어두운 얼굴로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원칙이었다니….’ 이런 식의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시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은 것 같은데, 역시 흑막다웠다.

하여튼 그들은 모두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주변의 반응은 신경 쓰지도 않고 에이프릴이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루비아, 너는 정말 대단해.”

“하하, 감사합니다….”

“역시, 처음부터 너한테 호감이 갔던 이유가 있었어.”

“예? 호, 호감 말씀이십니까?”

첫눈에 나한테 호감을 느꼈다고?

“사실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관상이 끌렸다고나 할까…. 마치 너랑은 꼭 피로 이어져 있는 느낌이었어…,”

관상이라니, 그런 세계관에 안 맞는 소릴. 내가 미심쩍은 눈으로 에이프릴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내 미온적인 반응 같은 것엔 신경도 쓰지 않고 눈을 반짝였다.

“어쨌든 사루비아, 넌 정말 유능한 인재야. 꼭 필요한 인재구나!”

…불길했다.

“그러니까 사루비아, 지금 당장 나와 함께 가는 게 어떻겠니?”

“카, 카론이 제대할 때까지만! …딱 한 달만! 아니, 일주일만…!”

“괜찮아, 사루비아! 너는 할 수 있어!”

어쩐지 익숙한 그 멘트를 들으며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남주들아, 이럴 때 남주력을 발휘하란 말이야! 침묵하고 있지 말라고!

결국 나는 제대하자마자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끌려가게 됐다,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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