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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4화 (178/233)

* * *

‘왜 하필 여기서.’

아퀼라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윈터를 노려보았다.

그가 사루비아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사루비아는 지금 이 상황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윈터는 사루비아를 만나기 위해 수작질을 한 게 분명했다.

‘제길….’

이전에 국경방위군에 있던 시절에도, 윈터와 대치할 때면 아퀼라는 그의 말을 적당히 받아치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는 아퀼라의 선임이었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저주하다, 아퀼라는 문득 그가 이제 제대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더 이상 윈터와 그 사이에 어떠한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윈터와 편하게 말을 할 정도의 사이도 아니었기에, 아퀼라는 이전보다 사납게 느껴질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윈터 님, 이제 저도 편하게 말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내가 거기에 제약을 걸 수는 없지만….”

이번에는 윈터가 오싹하게 느껴지는 얼굴로 아퀼라를 쳐다봤다.

“사루비아와 함께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 들어갈 모양이던데, 그 경우엔 내가 다시 선임이 될 테니 참고하도록.”

윈터가 중개인에게 ‘흑마술 수색 특수군’ 운운했던 이유를 깨달은 아퀼라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윈터는 이미 사루비아의 행동을 예상해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 먼저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 다시 견제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마물을 볼 때와 같은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끼이익-!

바로 그때, 마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들의 옆을 지나갔다.

“사루비아!”

아퀼라가 급하게 사루비아를 자신의 품 안으로 잡아당겼다. 아슬아슬하게 마차를 피한 사루비아가 놀란 눈을 했다.

“괜찮나?”

윈터는 사루비아가 멀쩡함을 확인한 후, 마차로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는 마차를 몰 때 조심….”

그러나 윈터의 말을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사루비아가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말이 끊긴 것이다.

“아, XX, 운전 X같이 하네! 야,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녀라!!”

“…….”

“…….”

사루비아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마차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윈터와 아퀼라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한마음이 되어 눈을 마주쳤다.

그들이 아무리 열렬히 경쟁해도, 언제나 승자는 사루비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

내가 그들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 있을 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퀼라와 윈터는 마침내 대치를 그만두었다.

아퀼라는 윈터를 꺼리는 눈치였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윈터가 내놓은 집은 아주 괜찮았고, 중개인이 보여 준 다른 집은 모두 엉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윈터를 피하겠다고 거기서 살다가는 귀신과 동거하게 될 것이다.

윈터로부터 집을 계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듯, 아퀼라도 음울한 얼굴이었지만 내게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거야 갑자기 호러 장르로 인생이 바뀌는 건 좀 그렇지, 음.

그래서 우리는 윈터로부터 집을 계약했고, 도장을 찍고 난 후 윈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듯 외투를 입었다.

“맞다, 윈터 님!”

“응?”

“저한테 주신 열쇠, 가져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남의 집 은행 금고 열쇠를 가지고 있다니, 정말 나 같은 소시민은 심장이 쫄린단 말이다. 내가 윈터와 결혼한 것도 아니니 이걸 빨리 그에게 돌려줘야 했다. 따지고 보면 열쇠를 준다는 건 거의 프러포즈에 가까운 행위 아니냐고.

내가 그에게 열쇠를 내밀어 보이자, 윈터는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중얼거렸다.

“갖고 있었군.”

아니, 그거야 남의 집 금고 열쇠를 잃어버리는 놈이 더 이상한 놈 아니겠는가?

하지만 윈터는 꼭 내가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받은 것처럼 보였다.

“사루비아, 그건 앞으로도 네가 가지고 있도록.”

“예?!”

내가 놀라 되물었지만, 윈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후에 내가 필요해지면 돌려받도록 하지. 그러니 그때까지는 네가 가지고 있어도 된다.”

“그게 언제입니까?”

“…내가 들어갈 관을 준비할 때?”

저건 농담인가? 그렇지만 윈터가 농담을 할 리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저건 진담인 것이다! 죽기 전까지 나를 사랑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입만 쩍 벌리고 있으니, 아퀼라가 끼어들었다.

“윈터 님, 이 열쇠를 집에 둘 자리가 없어서 말입니다. 가져가십시오.”

“저런, 집이 좁나? 더 넓은 집을 소개해 줘야 했던 걸까?”

…저걸 저렇게 맞받아치다니. 아퀼라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결국 내가 열쇠를 전해 주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이미 윈터는 저 멀리 가 있는 상태였다. 나는 윈터의 뒷모습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윈터 님,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그래.”

“저번에 봤던 그 성인 겁니까?”

생각해 보면 이 비오튼 지역은 북부의 그 마을과 엄청나게 거리가 먼데? 자신의 집들을 둘러보러 잠깐 수도로 나온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던 그때, 윈터가 태연하게 문을 나서며 말했다.

“아니, 독립했다.”

“아, 하긴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출퇴근해야 하시니까 이 근처에 사시겠습니다. 그럼 어디 사십니까?”

“옆옆 집이다.”

…젠장, 남주력에 당했다.

* * *

“흠….”

사루비아와 헤어진 뒤, 윈터는 고뇌에 빠졌다.

“저와 결혼하기로 해서, 제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아퀼라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 윈터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표정이 사루비아한테는 어떻게 보일지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자리에 굳어 있었다.

곧 아퀼라와 서로를 견제하다가 마차에 치일 뻔한 사루비아를 보고 그만두기는 했지만, 자신의 집에 돌아오는 지금까지도 사루비아에 대한 생각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는 이전부터 아퀼라가 거슬렸다.

아퀼라의 앞에 있을 때 사루비아는 꼭 다른 사람인 것처럼 태도가 바뀐다. 그들은 서로를 가장 잘 알며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이였으니까.

사실 사루비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거슬리는 사람은 아퀼라만이 아니었다.

이시나는 늘 사루비아를 챙겨 줬고, 그랬기에 사루비아는 고민이 생기면 이시나에게 전부 털어놓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고는 했다. 이시나의 앞에서 사루비아는 어린애가 되는 것 같았다.

한편 카론은 좀 경우가 달랐다. 사루비아는 그를 하나하나 챙겨 주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고작 한 살 차이인데도, 사루비아는 카론을 자신이 챙겨 줘야 할 어린애 취급했다.

아퀼라와 이시나, 카론은 모두 그들에게만 보여 주는 사루비아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사루비아는 아직도 자신을 그저 선임 취급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열쇠를 간직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게 자신이 준 물건을 가볍지 않게 여겼다는 것 같아서, 윈터는 조금의 위안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대로는 안 되지.’

지금의 그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사루비아에게 훨씬 먼 존재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평소 자신의 옆에서 너는 가망이 없다며 혀를 차던 유리와, 좀 더 노력해 보라고 답답해하던 알타이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를 어려워하는 사루비아의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을까?

다행히 그가 옆옆 집에 살아서 사루비아를 만날 기회는 많을 것이다.

‘그래, 기회는 많지.’

윈터는 곧 냉철하게 생각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그가 사루비아의 옆옆 집에 자신의 집을 사 놓은 게 아니었다. 그는 사루비아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 행동을 개시할 시간이었다.

* * *

일단 집을 구했으니, 이제 우리는 시장에서 가구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가구를 전부 들여오고 필요한 물건을 다 사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니 차근차근 진행해야겠지만.

우리가 꾸민 집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거실에는 아늑한 벽난로를 둘러싼 소파가 있었고, 따뜻한 색의 커튼과 카펫이 어우러졌다.

2층짜리 집에는 침실 하나와 각자의 방이 하나씩 있었는데, 침실에는 큰 침대를 놓고 푸른 커튼을 주문했다. 내 방에는 넓은 책꽂이와 책상을 두기로 했다. 그리고 옷장을 내가 원하는 옷들로 가득 채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틈틈이 예쁜 꽃을 꽂은 화병들도 배치했다. 그 꽃들은 전부 아퀼라가 나를 위해 고른 거였는데, 내가 이 세계에서 꽃을 받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로 내가 처음으로 하는 모든 일들은 아퀼라와 함께인 것이다.

집에 가구를 어느 정도 배치하고 나서, 나는 집을 구하면 가장 먼저 하기로 한 일 중 하나를 하기로 했다. 그건 바로….

『이시나 님께

안녕하십니까, 이시나 님! 저 제대했습니다! ><

근데 이제 제대했으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됩니까?

우선 제 주소는 편지를 보낸 이곳입니다! 아퀼라와 함께 집을 샀습니다!

제가 이시나 님의 집으로 집들이를 가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이시나 님이 찾아오실』

“사루비아.”

“응?”

뒤에서 아퀼라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 바람에 만년필이 종이를 찌르면서 잉크가 편지 위에 번지기에 나는 황급히 만년필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왜 그래?”

“예뻐서.”

나는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 껴안았다.

“아, 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에게는 이 일상적인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래서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를 껴안고 있었다.

잠시 후 아퀼라와의 포옹이 끝나고 나서, 나는 이시나에게 쓰던 편지를 편지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다음에는,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를 부쳤다. 이 세계의 우체국을 이용해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어렵지 않았다.

뭐, 이제 이걸로 이시나도 내 소식을 알게 되겠지!

* * *

똑똑똑-

“편지입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책을 읽고 있던 이시나는 그것을 내려놓고 문으로 나갔다.

문을 열어보니 우편배달부가 편지 하나를 그에게 내밀고 있었다. 이시나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아무런 무늬도 없이 깨끗한 기본 편지 봉투였다. 다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그 편지 봉투에 적힌 이름이었다.

“사루비아….”

그에게는 지난 3개월이 마치 3년처럼 느껴졌다. 진짜로 3년을 기다린 윈터가 듣는다면 그를 비웃을 소리였지만, 이시나는 그만큼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간다고 생각했다.

사루비아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다 보니 자신이 제대했다는 사실에는 그다지 감흥이 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사루비아가 사고를 치는 일이 없기를 매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보니, 걱정한 바와 달리 사루비아는 영창에 가는 일 없이 무사히 제대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시나는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편지 봉투를 북 뜯었다.

그러나 편지의 내용을 읽은 이시나의 얼굴은 차갑게 식고 말았다.

“뭐지?”

『이시나 님께

안녕하십니까, 이시나 님! 저 제대했습니다! ><

근데 이제 제대했으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됩니까?

우선 제 주소는 편지를 보낸 이곳입니다! 아퀼라와 함께 집을 샀습니다!

제가 이시나 님의 집으로 집들이를 가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이시나 님이 찾아오실』

편지의 내용이 끊겨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편지 아래에는 잉크가 어지럽게 퍼져 있었다.

혹시 편지를 쓰다가 무슨 일이 있었나? 사고를 당했나? 암호 같은 건가? 수많은 생각들이 이시나의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얽혔다.

물론 기껏해야 편지를 쓰다가 다른 일이 있었는데 편지를 끝까지 쓰지 않은 걸 잊고 보낸 정도겠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그리고 아퀼라와 함께 집을 샀다는 말도 거슬렸다.

물론 둘이 결혼하게 될 건 알고 있었지만, 둘이 동거를 한다고 생각하니 그건 너무 빠르고 불건전한 것 같았다. 사루비아는 어엿한 성인인데도.

“휴….”

결국 이시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외투를 입고, 돈을 챙겨 외출할 채비를 했다.

“진짜 사람 신경 쓰이게 한다.”

이런 식으로 편지를 보내면 자신이 먼저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지 않는가.

아무래도 이시나는 사루비아가 제대한 후에도 이렇게 사루비아로 인해 속 썩을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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