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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3화 (177/233)

그 이후 우리는 집을 사기 위해 중개인을 찾아갔다.

“둘이서 살 만한 집 좀 보여 주세요!”

“예산이 얼마나 되시죠?”

“5500마크네요.”

우리에게는 둘이 합쳐 총 6000마크네가 있었고, 앞으로의 생활비를 위해 어느 정도는 남겨 두어야 할 것 같았기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입대하던 당시 3000마크네는 수도에 집 세 채를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그러니 아마 저 돈이면 평범한 집 네댓 채 정도는 거뜬할 거고, 으리으리한 저택을 산다 해도 두 채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멋진 저택을 소개해 줄 것을 기대하며 자신감 어린 표정을 짓자, 중개인이 가벼운 어조로 답했다.

“아, 예산이 넉넉하네요.”

“하하, 그렇죠?”

“네, 그 돈이면 대출 없이 집을 한 채 장만하실 수 있겠어요.”

“…네?”

고작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돈이 집 한 채라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난 아퀼라를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예상 밖의 상황을 마주했다는 듯 그의 동공도 몹시 떨리고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 돈으로 집을 한 채밖에 못 산다고요? 여러 채가 아니라요?”

“하하, 무슨 팔 년 전에나 통할 법한 얘기를 하고 계시네요. 요즘은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죠.”

잠깐만, 그 뜻은 설마….

“집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서 이젠 우리가 돈을 합쳐야 집을 겨우 한 채 살 수 있게 된 거라고?!”

XX, 아돌브 제국 이 XX XX들아!! 집값이고 물가고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올랐는데 상승분 반영을 안 하면 어떡해!!

지금 이 순간 나는 몹시 분노하고 있었다.

팔 년 사이에 집값이 말도 안 되는 수치로 오른 건 둘째치고, 아돌브 제국 이 XX들이 물가 상승분 반영이 전혀 안 된 금액을 우리에게 제공한 것이다!

아퀼라와 나는 어차피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 가야 할 운명인 거다! 왜냐하면 내 호의호식의 꿈은 끝났고, 우리는 앞으로의 생활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으니까!

“아아악!!”

내 백수 생활의 꿈 돌려놔, XX!

한참 뒤에야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혁명에 대한 의지는 이전보다도 더욱 활활 불타고 있었지만 말이다.

‘황제 놈의 재산을 몰수해 버리겠어. 이게 바로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이다, 이 XX야.’

내가 속으로 어떤 험악한 생각을 하든 겉으로는 좀 침착해진 것처럼 보였는지, 중개인도 비로소 집에 대한 논의를 꺼냈다.

“하하하, 신혼부부인가 보시죠? 제가 걸맞은 집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신혼부부, 음….”

나는 아직은 아니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눈을 굴려 아퀼라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닫았다. 쟤, 저거 엄청나게 만족하고 있는 표정인데. 그냥 계속 만족하도록 내버려 두자.

“저만 믿으시죠, 하하!”

중개인은 우리가 신혼부부라는 것에 신난 듯 자신만 믿으라며 가슴을 탕탕 친 뒤, 첫 번째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복층 집입니다! 가격도 아주 저렴한 5400마크네죠!”

“복층 집인데 정말 저렴하네요?”

그렇게 우리가 그에게 안내받게 된 집은….

“…왜 숨겨진 지하실이 있고 벽에는 핏자국이 찍혀 있고 수상한 거울이 도배되어 있고 기괴하게 생긴 인형이 있고 옷장에 이상한 그림자가 있고 ‘내 집에서 나가’라는 환청이 들려오는 거죠?”

이상하다? 갑자기 왜 미국 공포 영화로 인생 장르가 바뀐 거지? 이게 로판이 맞나?

나는 황급히 그 집에서 빠져나와 내 인생의 장르를 로판으로 돌려놓았고, 그는 두 번째 집을 소개해 주었다.

“이 집도 아주 저렴하게 나온 매물입니다! 5000마크네입니다!”

이번에 소개받은 집은 아주 멀쩡해 보였다. 맨 처음 보았던 미국 공포 영화 집보다 훨씬 작기는 했지만, 아담하고 좋을 것 같았다. 벽과 바닥도 얼마 전 새로 도배했다고 했고.

“여기 괜찮은 것 같아.”

아퀼라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고, 중개인에게 이 집을 계약할 의사가 있다고 말하려던 그 순간….

‘잠깐, 왜 이렇게 값이 싸지?’

오랜만에 내 빙의자 자아가 눈을 떴다.

전생에서 얻은 정보가 빠르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자, 어쩐지 이 집의 모든 것들이 수상해 보였다.

“벽이랑 바닥은 왜 새로 도배한 거죠? 누가 얼마 전 여기서 자살하기라도 한 건가요?”

“다음 집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너무 방심하고 있었다. 수도에서 집을 구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전생의 자아를 극대화시켜 매의 눈으로 집을 훑어봤고….

“이 집은 무려 수도 뷰입니다!”

“…이건 수도 뷰가 아니라 마차 뷰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마운틴 뷰는 어떻습니까?”

“산은 이미 국경방위군에서 실컷 봤… 잠깐, 산이 너무 창문 바로 앞에 있는 거 아니에요? 이건 마운틴 뷰가 아니라 나무 뷰잖아요?”

도시 뷰와 마운틴 뷰의 역경을 넘고.

“방금 지나간 저거, 벌레 아닌가요?”

“아퀼라! 가서 수압 체크 좀 해 봐!”

“천장에 금이 가 있는데요?”

모든 사항들을 꼼꼼히 체크하고.

“숨겨진 지하실이 있는 집은 전부 제외해 달라고요!”

“일가족 전체가 숨진 집을 왜 소개해 주시는 거냐고요!”

자꾸 내 인생에 찾아오는 공포 장르의 위기도 배제했다.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집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에휴, 다른 중개인을 찾아가자.”

아무래도 이 중개인은 우리에게 사기 칠 생각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퀼라를 끌고 나가려 했을 때, 갑자기 그가 우리를 턱 붙잡았다.

“자, 잠시만! 혹시 이종족이십니까?”

“…네, 왜요?”

혹시 우리에게 시비를 걸려는 생각인가 싶어 내가 눈을 치켜뜨자, 그가 아니라는 듯 손을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안성맞춤인 곳이 있습니다! 집주인이 이종족한테는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겠다고 했거든요.”

“아, 정말요?”

물론 괜찮은 집인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래도 이종족한테 싼값으로 내놓겠다는 조건 자체가 신기했다.

아마 집주인도 성공한 아르콘인가 보다. 이렇게 도움을 주다니, 고마운 일이었다.

물론 매매로 해야 할지 전세로 해야 할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 잠깐만, 그런데 여기 전세가 있었던가?

“그럼 이전 집주인으로부터 저희가 집을 사는 건가요?”

“아니면 월세를 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뭐, 예산이 충분하니 그럴 필요는 없으시겠지만요!”

중개인의 말을 들어 보니 이 세계에는 ‘전세’ 같은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음, 그럼 우리의 경우에는 매매를 하면 되겠지.

“게다가 위치도 아주 좋네. 황성이 있는 쪽과 가깝고, 그리고 집주인이 적어 놓은 정보에는….”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이 들고 있던 수첩에 적힌 내용을 보여 주었다.

『직장·주거 근접성 좋음 – 흑마술 수색 특수군 본부 도보 10분』

“예?”

“집주인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은 겁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직장에서 출퇴근할 때 좋다는 얘기 같던데요?”

그러나 나와 아퀼라는 멍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뭐지? 여기서 흑마술 수색 특수군이 왜 나오지?

집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를 만나보고 이런 정보를 굳이 강조한 이유를 알아보아야 한다는 건 확실했다. 아퀼라와 나는 주인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잠시 후, 이전의 집주인이라는 사람의 앞에서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왜냐하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위, 윈터 님?”

이전과 마찬가지로 북부대공 같은 포스의 윈터가 내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의 아래로 뚜렷한 이목구비와 차가운 푸른 눈은 여전했고, 제대해서 운동량이 적어졌을 텐데도 몸은 이전보다 약해지기는커녕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 묘한 매력마저 감도는 것 같았다.

역시 원작에서 얼굴로 세 문단의 묘사를 차지한 남자답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윈터 님이 여기 왜 계십니까?!”

분명히 윈터는 국경방위군이 있던 북부 쪽에 살던 북부윈터였는데?

내가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보자, 그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를 만나기 위해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을 고민해 보았다.”

“예?”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윈터는….

‘나를 좋아했지….’

나는 더 이상 ‘헤헤, 설마 남주들이 나를 좋아하겠어?’의 사루비아가 아니다. 지금은 정신을 똑바로 차렸단 말이다.

그러니 저 말인즉슨, 윈터가 제대 후 나를 만나기 위해 내가 올 것 같은 장소에 집을 샀다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일부러 내가 이 집을 사도록 저렴한 값에 내놓고.

‘그냥 나한테 만나자고 편지를 쓰면 안 되는 건가…?’

이렇게까지 명분을 따질 수가 있는 건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나는 다시 되물었다.

“이 집이 정말 윈터 님의 것입니까?”

“그래, 사루비아 네가 원한다면….”

윈터가 내 눈을 그대로 응시하며 말했다.

“돈을 받지 않을 테니 그냥 그 집에서 살아도 되는데.”

그때 내 옆에 서 있던 아퀼라가 끼어들었다.

“사루비아는 저와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책임질 겁니다.”

“…결혼을 한다고?”

윈터의 눈에 충격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래도 내가 설명해야 할 것 같아, 나는 그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퀼라와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제대했는데 왜 윈터의 앞에서는 말이 편하게 안 나오는 거지? 이시나를 보면 바로 반말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윈터는 편하게 말하기가 영 어려웠다.

윈터는 잠시 침묵했으나, 곧 그의 표정은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다. 하지만 사루비아 네가 원한다면 여전히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돼.”

“제가 책임질 테니, 윈터 님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윈터와 아퀼라가 팽팽한 신경전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다가, 나는 깨달았다. 이 장면은 분명….

‘삼자대면!’

이전에 이시나나 카론이 있었던 구도와는 다르다! 아퀼라와 윈터, 그리고 내가 끼어 있는 건 진정한 삼자대면인 것이다!

‘내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다니.’

정확히는 예전에도 몇 번 겪었지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던 거지만 말이다. 아니, 그런데 솔직히 그때는 군대가 잘못했다니까요?

하여튼, 로판스러운 삼자대면의 상황 속에서 나는 몹시 당황스러워졌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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