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56화 (174/233)

* * *

제대 D-day

“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건 감탄사였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곧장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대라고? 내가 제대를 한다고?”

평소에는 이 추운 날씨 때문에 아침에 이불 속에서 기어 나오는 게 힘들었는데, 오늘은 몸이 저절로 빠져나와져 있었다!

“제대! 제대한다! 야호!”

나는 이불 속에서 튀어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의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문을 열고 나오자, 아침 식사를 하러 가는 후임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들의 틈을 지나며 노래를 불렀다.

“안녕, 얘들아~! 호호, 너는 금발이 아름답구나~! 에리카? 너는 이름이 참 예쁘네~! 오오, 너는 초록색 눈이 아름다워~!”

“…미치신 건가?”

“제대하니까, 뭐.”

“하긴.”

그들의 반응은 개의치 않고, 나는 복도를 신나게 붕붕 날아다녔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복도를 반쯤 날았다.

아침 식사? 그런 건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았다. 마침 대대장 또한 각 부대의 오늘 제대하는 지휘사관들을 소집했기에, 나는 그곳으로 달려갔고.

마침 옆 중대에 나 말고도 제대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와 싱글벙글한 눈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

“제대 축하한다.”

“너도 축하한다!”

이름도 잘 모르는 병사와 축하 인사를 주고받고 있을 때, 대대장이 들어왔다.

“그래, 오늘 제대하는 병사들이지. 사루비아 양과 타이쿤 군.”

“예, 그렇습니다!”

“제대 축하한다.”

그 말을 듣자, 우리의 얼굴에는 더욱 웃음꽃이 피었다! 진짜 제대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달린은 이 미친 군대에서 계속 지내겠지?’

다시 생각해 봐도 그녀는 정말 미친X임이 틀림없다…. 왜 제대라는 이런 기쁨을 누리지 않으려는 거지?

하여튼, 대대장은 뿌듯한 얼굴로 우리에게 간단한 연설을 시작했다.

“그간 고생이 많았지.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 틈에서 배운 게 많았기를 바란다. 이제 사회로 나가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 거다. 부디 그 세계를 잘 헤쳐 나가길 바라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수는 제대 후 계약 마법이 해제될 때, 그 자리에서 함께 받을 수 있을 거네. 그 자리까지 가는 동안에는 수레를 타고 가면 되고.”

“예!”

제대라는 것 자체에만 기쁨을 느껴서 잊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보수를 받는 일도 남아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부자다!’

그야말로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내가 행복감에 젖어 샐쭉 웃고 있던 그때, 대대장이 타이쿤에게 나가 보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사루비아 양에게는 따로 이야기할 것이 있네.”

‘…뭐지?’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대대장이 나와 얘기할 만한 건이라면….

‘카이센 님과 라일라 님!’

그 일의 심각성을 추측한 내가 굳어 있을 때, 대대장은 소파에 편히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의 지시를 따라 편히 앉았다.

“…사루비아 양, 너무 편하게 앉는 것 아닌가?”

“어차피 이제 민간인으로 진급 예정이니까 말입니다, 하하.”

소파에 몸을 기댄 나를 보며 대대장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했지만, 나는 몸을 바로 하지는 않았다. 이전부터 이 편해 보이던 소파에 이렇게 앉아 보고 싶었단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곧 대대장보다도 신분이 높아질 민간인(진)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는 차마 나에게 더 지적하지는 못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사루비아 양의 말을 듣고 생각해 봤지. 정말 그들이 마물에 당한 게 맞을지.”

심각한 얘기가 이어질 것 같아, 나는 표정을 굳히고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해 보면 마물이 나타났다고 전한 부사관은, 부대에 온 지 얼마 안 된 하사였어. 그는 그 사건이 있고 얼마 뒤 설산 대대에 있지 못하겠다며 부대를 떠났지. 그때 그와 함께 떠난 다른 부사관들이 몇 명 더 있고 말이야.”

“그럼 그 사람들이 설마….”

“그래, 어쩌면 국가의 첩자였을지도 모른다. 국가에서 뭔가 낌새를 눈치챘다면 말이지.”

아악! 나는 당장이라도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야! 내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 정보를 그렇게 턱턱 던져 주지 말라고요!

“하필 카이센과 라일라가 있던 쪽에 마물이 나타났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들이 그곳에서 자주 만난다는 사실은 부대의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었겠지.”

이제 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수도에서는 황권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니, 더 이상 이 부대에 신경 쓰지 않을 거다. 그 이후로 우리는 조용하게 지내 왔으니 말이지.”

…예감이 든다. 뭔가 나에게 중요한 정보를 말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왠지 소년 만화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그러니 뭔가를 다시 시작할 때가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이겠지.”

으악! 결국 명대사처럼 보이는 걸 쳐 버렸다! 혁명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굴지 말라고요!

속으로 그렇게 절규하다가, 나는 곧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갑작스럽게 조력자가 더 추가되어서 놀란 것뿐, 어차피 그와 내가 지향하는 바는 똑같을 것이다. 언젠가는 힘을 합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목숨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사실만이 문제지, 사실 그가 나에게 진실을 밝힌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단 말이다.

“그 시절 황궁의 구조에 대해 파악해 둔 게 있지. 도움이 될 거야.”

대대장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고, 결국 나도 내 패를 어느 정도 까 보이기로 했다.

“저도 뜻을 함께 할 사람들을 어느 정도 만들어 뒀습니다.”

정확히는 에이프릴이 마련해 뒀을 거지만.

“저는 제대한 이후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갈 겁니다.”

“…또 군대에 갈 거라고?”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감탄하듯 말했다.

“정말 별종이군….”

그 순간 그는 진심으로 평범한 군인처럼 놀랐기에 나는 정말 억울해졌다. 나라서 그곳에 가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라고요….

“그럼 이곳을 나간 이후, 대대장님께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에 연락이 닿길 바란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것’이나 ‘혁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데 성공했다. 물론 누군가가 그 내용을 듣는다면 우리가 당장 반동분자로 국가에 잡혀 가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거지만 말이다.

어쨌든 대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대대장실을 나왔다.

그다음에는, 내가 이 군대에 들어온 뒤 지금까지 꿈꿔 왔던 일. 늘 부럽게 지켜봐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

바로 제대식이었다.

“…아.”

내 눈앞에 검들이 만들어 낸 길이 펼쳐져 있었다. 형형색색의 오러를 두른 그 길은 어쩐지 신비로운 낯선 세계로 가는 통로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로 사회라는 낯선 세계 말이다.

그 길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감동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과거 선임들이 이 길을 지날 때 종종 눈물을 흘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국경방위군에서 생존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많은 이들과 함께 했고, 그들 중 많은 수의 죽음을 목격했다. 그러나 나는 상실의 슬픔에 잠식되어 있을 새도 없이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이놈의 군대란 곳에서는 늘 상상도 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져 내 목숨을 위협했고, 나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끝에 도달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경주는 이제 끝났다.

“…모두 고맙다.”

그렇게 말하니 몸이 울컥 잠기는 기분이라,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짧게 말했다.

“모두 수고했고, 너희에게도 끝은 찾아올 거야. 너희는 틀림없이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럼 잘 지내.”

나는 천천히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검이 만들어 낸 길 사이로 들어가자, 오묘한 빛들이 내 위로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 길을 걸었다. 저 너머에는 설산 대대를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비록 이곳은 수레도 올라오지 못해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내려가야 하긴 했지만, 지금 이 상태라면 산을 데굴데굴 굴러서라도 내려갈 기운이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만들어 낸 길이 끝났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산을 내려왔다.

* * *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타이쿤이라는 다른 지휘사관과 함께 수레에서 내렸다.

이왕이면 마차를 보급해 줄 것이지, 수레 위에 짐처럼 얹혀서 실려 가는 건 정말 최악의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내 눈앞에 익숙한 장소가 보였기에, 몰려오는 감동에 나는 차마 불만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아….”

내가 처음 입대했던 장소. 그리고….

내가 처음 아퀼라를 만났던 장소.

내가 이 세계가 ‘네미집’ 속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장소.

이제 네미집이니 뭐니 하는 건 아무 의미 없지만 말이다. 이 세계는 내 세계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 입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손목을 내밀고 계약 마법을 제거 받았다. 금빛 주문이 없이 깨끗해진 손목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다음으로는 은행에 바로 등록할 수 있는 수표를 제공받았다.

그걸 전해 준 군인은 혹시나 잃어버리거나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그 어떤 강도도 막 제대한 아르콘의 돈을 빼앗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평소보다 10배는 더 강한 전투력을 자랑한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아퀼라를 만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아퀼라를 찾기는 힘든 일이었다.

‘여기 어디 있을 텐데….’

아퀼라의 머리가 핑크색이라면 눈에 띄기라도 할 텐데, 이런 곳에서 그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체 어디 있….

“사루비아.”

“아퀼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뒤에서 특유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곧장 고개를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그 누구보다 보고 싶었던 얼굴이 내 눈앞에 있었다. 그의 손목은 나와 마찬가지로 문양이 제거되어 있었고, 수표가 든 주머니 또한 손에 들려 있었다.

“사루비아, 제대 축하해.”

“아퀼라 너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정말 행복했다.

지금까지 나를 옥죄어 오던 것에서 벗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꿈꿔 오던 삶이었다.

“우리 드디어 제대했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다시 감격이 밀려와 내가 아퀼라의 옷소매를 잡고 그렇게 말하니, 그가 입꼬리를 올려 여유로운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러게, 이제 영창에 갈 일이 없네.”

“응?”

그다음 순간,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의 얼굴이 훅 가까워졌고, 입술이 맞닿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입술을 열어 주었다.

진정한 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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