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53화 (171/233)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던 그는 벌써 내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충분히 그가 내 말에 걸려들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중대장님, 설산 대대의 전설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설산 대대의 전설?”

“예, 아시다시피 이 부대는 워낙 사망자가 많으니까 말입니다.”

내가 공포감을 조성하는 어두운 얼굴로 그를 보며 속닥였다.

“유령을 봤다는 병사가 상당히 많지 말입니다.”

“뭐?! 유령?!”

“네. 제 생각에는 그날 중대장님이 보셨다는 존재가 유령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대장은 지금까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미신을 맹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에게 새로운 미신을 심어 주고, 그 미신 때문에 스스로 겁에 질려 범인을 찾지 못하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유령이라고?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러나 중대장은 생각보다 내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가 단호한 얼굴로 외쳤다.

“내가 이곳에 온 첫날 이미 유령 탐지 키트를 사용해 봤는데, 아무 신호도 없었단 말이다!”

…젠장, 지나치게 미신에 철저해서 탈이었군. 하지만 나는 그의 의심을 잘 넘길 자신이 있었다.

미신을 그토록 진지하게 여기는 종류의 사람이라면, 들어 본 적 없는 새로운 미신이라 해도 그럴듯하기만 하다면 곧장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들려줄 만한 새로운 미신들을 많이 알고 있다. 나는 그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온 사람이니까.

“아마 일반적인 유령과는 다른 존재라서 그럴 겁니다. 중대장님도 아시다시피 이곳은 무척 추운 부대 아닙니까. 죽은 시신도 금방 얼어 버릴 만큼.”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만들 가상의 유령은, 여러 존재들을 혼합해 놓은 것이었다.

“우선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땅에 묻혔더라도 스스로 땅에서 기어 나옵니다.”

먼저 좀비에다가.

“그리고 땅 위로 올라오면, 몸이 얼어 있기 때문에 몸을 꼿꼿하게 펴고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채 그대로 콩콩 뛰어다닌다고 합니다.”

강시까지 더하는 거다.

“으아악!”

아니나 다를까, 중대장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퍼렇게 질렸다. 생판 처음 들었을 귀신의 이야기에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그래서? 그런 유령이 이 부대에 있다는 건가?”

“예, 그리고 그 유령은….”

아직 여기서 부족하다. 가상의 존재를 더 구체화해야 한다.

“사람의 영혼을 빨아 먹으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허억…!”

“왜냐하면 영혼을 빨아먹으면 그 유령의 얼어 있는 몸 대신 멀쩡한 몸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유령은 타깃을 정해서 지속적으로 영혼을 빨아 먹고….”

내가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만약 기절을 한다면, 그건 유령에게 영혼을 일부 빨아 먹혔다는 증거입니다. 그 일이 반복되고 영혼을 전부 빨아 먹힌다면 결국 유령에게 몸을 빼앗기게 되는 겁니다.”

“말도 안 돼, 설마 그럴 리가….”

중대장이 알고 있을 진실을 통해 그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나는 덧붙였다.

“죽었지만 마법의 오류로 계약 마법은 풀리지 않아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유령이 나타날 때마다 마물이 한 마리씩 나타난다는 소문도 있는데, 저는 그 연관성은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잠깐, 계약 마법에 걸린 이종족…. 마물이 한 마리씩 더 나타난다…. 세상에!”

걸려들었다.

이걸로 중대장은 계약 마법에 걸린 아르콘 유령으로 인해 마물이 나타난다고 생각할 거고, 나는 그 진실을 알 리 없다고 알고 있으므로 내 말을 더욱 믿게 될 것이다.

“저, 정말 그런 전설이 있다고?”

“예, 후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물론 후임들은 나와 똑같은 대답을 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와 말을 맞춰 주는 대가로, 제대하기까지 정말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살다 가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들은 얌전히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반색하여 내가 들려준 전설을 달달 외웠다.

“그, 그래. 이곳은 춥고 시신도 잘 부패되지 않으니까, 그런 전설이 있을 만해….”

역시나 그는 내가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전설에 대한 상상을 붙여 나가고 있었다.

“그럼 그날 내 대화를 엿들은… 아니, 내가 느낀 게 그 유령이란 말인가?”

“예, 어딘가에서 발자국이 뚝 끊긴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아니겠습니까. 원래 유령은 불쑥 나타났다가 불쑥 사라지는 존재이니까 말입니다.”

“잠깐, 아까 그 유령이 타깃을 정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만일 그 유령이 중대장님의 말을 엿듣는 것 같았다면….”

이걸로 나는 그의 공포심을 최고조로 이끌 작정이었다.

“앞으로 그 유령이 중대장님을 타깃으로 잡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허억…!”

그가 숨을 들이마시더니, 팔찌가 주렁주렁 달린 자신의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그럴 리 없네! 자, 이걸 보게! 이건 마기를 막는 팔찌, 건강해지는 팔찌, 액운을 막아 주는 팔찌, 유령을 퇴치하는 팔찌….”

“하지만 ‘설산 대대의 유령을 퇴치하는 팔찌’는 없으신 거 아닙니까?”

“크윽, 그렇군…!”

유령이 자신을 타깃으로 정했다는 위기 상황을 받아들인 듯, 마침내 중대장이 유령보다 더 창백해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아나? 어떻게 그 타깃을 피할 수가 있지?”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한번 타깃으로 지정된 병사는 모두 마물과의 전투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입니다…. 피할 방법이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럴 리 없네! 모든 귀신에는 퇴치 방법이 있다고!”

“퇴치 방법이라…. 중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유령에 퇴치 방법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 인상을 찌푸렸다.

“설산 대대의 유령을 피하려면… 아!”

그러고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가볍게 손을 튕겼다.

“설산 대대의 유령이니까, 설산 대대를 빠져나가면 유령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 그런…!”

“어디까지나 제 추측일 뿐입니다. 저는 혹시나 중대장님까지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싶어 알려 드렸을 뿐입니다. 그럼 이만.”

나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벌벌 떠는 그를 뒤로 한 채, 뒤돌아 웃는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중대장, 이제부터 감독 사루비아, 각본 사루비아, 연출 사루비아의 때 아닌 납량 특징을 한번 시작해 보겠다.

* * *

물론 단순히 괴담을 들려주는 것만으로 그를 떠나보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는 그렇게 만만한 적은 아닐 거다.

나는 이제부터 그에게 괴담이 진짜라는 인식을 심어 줄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유령 역할을 해 줄 협력자가 필요했는데, 그 사람을 구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얌전해질 것을 기대하고 내 청을 들어줄 후임들? 아니, 그들은 비록 나를 두려워한다지만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부탁은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어차피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고, 그들에겐 중대장에게 진실을 말해 나를 영창으로 보내는 방법도 존재하니까.

대신 내가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 사람은….

“레드, 그래서 내 계획 어떠냐?”

“흠, 그거 완전….”

자신의 숙소에 널브러져 있던 지휘사관 레드가, 내 설명을 들은 후 머리를 긁적였다. 그 누구보다 백수 같은 몰골을 한 그가 입을 열었다.

“완전 재미있어 보입니다!”

나는 훈련병과 일등병, 상등병 시기를 거쳐 이제 지휘사관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각 계급별로 그들의 심리가 어떤지는 전부 꿰뚫고 있다.

특히 지금은 지휘사관들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단 말이다. 옛날에는 지휘사관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최근에 내가 깨닫게 된 지휘사관이란 종족들의 특성은….

‘심심해 죽으려고 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낯선 부대로 이동해 훈련에서도 빠지고, 잡무에서도 빠졌기 때문에 늘 심심해 죽으려고 했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마물을 별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긴장감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면 무척 재미있어 했다. 아, 물론 작업은 제외하고 말이다.

지휘사관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후임들이 자신을 즐겁게 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이상한 놀이를 고안해 내거나 간절하게 제대를 기다렸다. 예를 들어 예전에 나를 인간 시계로 쓰던 지휘사관 크리스처럼 말이다. 레드 또한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후임들과 놀고 있었고.

그렇기에 내가 ‘유령인 척하면서 중대장을 괴롭히자’는 언뜻 보기에 좀 괴상해 보이는 계획을 말했음에도, 레드는 왜 중대장을 괴롭히냐고 묻는 대신 신이 나서 수락한 것이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숨 좀 쉴 수 있겠지 말입니다!”

“그래, 내가 아주 재미있게 해 줄게.”

“이제는 간부를 건드리다니, 역시 사루비아 님은 정말 창의력이 대단한 분이십니다!”

…내가 중대장을 놀리는 이유를 오해한 것 같긴 하지만, 음.

하여튼 그는 나에게 협조하여 귀신 연기를 해 주기로 했다. 신나서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꼴을 보면 앞으로 하루 종일 숙소에서 귀신 연기나 연습하고 있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좋아, 전부 완벽해.’

배우까지 구했으니, 이제 중대장에게 제대로 된 납량 특집을 선사해 줄 준비는 전부 끝났다.

* * *

“중대장님, 중대장님!”

“누, 누구…? 사루비아 양!”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중대장은 몸을 움찔했다가 그 정체가 나인 걸 알고는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의 낯빛이 이전보다 어둡고 특히 눈 밑이 퀭한 게,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예전에 달린이 신병 시절일 때 내가 저 얼굴이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내가 그에게 들려준 전설이 효과를 발했나 보다. 안타깝게도 그는 내가 그에게 거짓말을 했으며, 사실 대화를 엿들은 범인은 유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아, 이번 훈련 관련해서 보고드리려고 말입니다.”

“아, 훈련…. 그, 그렇군.”

평소와 같이 훈련 관련 사항을 전달하면서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리 상황을 조성해 둔 거긴 했지만, 지금 이 장소에는 나와 중대장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른쪽에는 복도가 있었고 말이다.

쿵-! 쿵-!

내가 시간을 끌며 천천히 말을 하고 있던 그때, 정해진 시간이 되었고 어딘가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저, 저건 무슨 소리지?”

유령을 경계하고 있던 중대장이 눈이 튀어나올 듯 커져서는 물었지만,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양 태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또 시작이네….”

“뭐, 뭐가?”

“이전에 말했던 유령 말입니다. 원래 가끔씩 저렇게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보통 알아서 사라지니 타깃이 아니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 아.”

“타, 타깃? 내가 타깃일 거라고 하지 않았나!!”

쿵쿵거리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대장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중대장실의 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본 바로 그 순간.

“헉!”

머리에 검은 터번을 둘러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한 레드가 팔을 앞으로 쭉 뻗고 복도를 콩콩 뛰어 지나갔다.

시신에서 나는 악취를 조성하기 위해, 그는 작전 돌입 직전에 음식물 쓰레기장에 갔다 오기까지 했다.

“허억…!”

중대장이 제 입을 흡 틀어막았다. 너무 놀라서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성을 되찾고 저게 유령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난 X된다. 물론 그걸 막기 위한 해결 방안은 마련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지금 지휘사관이고 내가 후임이던 시절 지휘사관들이 보여 주었던 전략들을 모두 습득한 상태였다.

그래, 예를 들어….

“흡-!”

나는 빠르게 품에서 마취 침을 꺼내,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던 중대장의 목을 향해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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