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51화 (169/233)

* * *

제대 D-64일.

“행보관님은 어디 계시는 거지?”

지금 나는 이 밤중에 행보관을 찾아 복도를 걷고 있었다. 행보관실에 가 봤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휴게실이나 창고에 있을 것 같았다.

‘빨리 들어가서 잠이나 자야 할 텐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보급품으로 들어온 이불은 너무 질이 낮았다…. 물론 여기 물건들의 퀄리티는 거기서 거기라지만, 이 이불은 정말로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 문제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복도를 걷다가, 나는 중대장실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에서는 두런두런 말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구지?’

중대장은 이곳의 간부들과도 잘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제국민 출신 부사관들 정도가 전부였다.

“내가 좌천됐다고, 어, 누가 그래!”

탕-!

그때 안에서 책상을 강하게 내리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술 취한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한 잔 거나하게 했나 보네.’

뭐, 간부들이 몰래 술을 반입해서 먹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의 좌천에 관한 얘기는 꽤 흥미로운 주제였기에, 나는 문에 몸을 붙이고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술 취한 중대장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내가 뭘 크게 해 먹은 것도 아니고~! 그냥 적당히 챙길 거 챙긴 수준인데!”

…아무래도 횡령 때문에 이곳으로 온 모양이다.

“좌천은 무슨 좌천이야, 어? 내가 윗분들한테 바친 게 얼마인데, 나중에 다시 불러들여 줄 거라니까?!”

심지어 뇌물만 바치고 팽된 모양이다. 저런, 원래 버림받은 사람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법이지.

생긴 대로 비열한 행동과 아둔한 두뇌에 혀를 쯧쯧 차고 있었을 때,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상대방이 질문을 던졌다.

“황실 호위군은 어떻습니까? 여기랑 그렇게 다릅니까?”

내가 알고 있는 부사관의 목소리였다. 그는 제국민 출신으로 자원입대를 한 직업 군인이었고, 아부를 잘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아무래도 수도에서 온 새로운 중대장에게서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달라붙은 모양이다.

“그럼, 황실이랑 여기랑, 어, 비교가 되나?!”

중대장이 복도가 울리도록 쩌렁쩌렁 소리쳤다.

“거기는 국가의 핵심이고! 여기는 죽어도 상관없는 놈들만 모아 놓은 건데!”

…죽어도 상관없는 놈들? XX 빡치는군.

내가 날카로운 눈으로 문 너머를 노려보고 있을 때, 중대장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나도 그 소리를 자세히 듣기 위해 문에 귀를 더욱 바싹 붙였다.

“그거 아냐? 내가 윗분들한테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뭔가 대단한 걸 알고 계시는 겁니까?”

“그럼, 그럼! 아주 국가가 발칵 뒤집어질 걸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당연히 윗분들은 다시 나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지. 그때 너도 데려가 줄까?”

“그런다면 저야 정말 감사하지 말입니다!”

그의 아부에 신이 난 듯, 중대장이 흥얼거리며 말했다.

“국가는 여기 있는 놈들이 이대로 버티는 걸 원하지 않아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국가에 위험한 이종족 놈들은, 결과가 어떻든 마물이랑 싸우는 게 이득이라고.”

그 말에 나는 숨을 멈췄다. 뭔가 엿들어서는 안 되는 얘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직감이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라고 하고 있었지만,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침을 삼킨 후 더욱 이야기에 집중했다.

“말하자면 그런 거지. 계약 마법의 발동이랑, 마물의 등가 교환 같은 거. 오케이?”

“그 말씀은….”

“끝없이 계속 순환되고 있는 거야. 이종족의 관심을 돌릴 수 있도록.”

…지금 내가 뭘 듣고 있는 거지?

“그런데 요즘은 내부에서도 말이 많단 말이야…. 이제 순혈 이종족의 피도 많이 희석되었으니,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것 같으니까 이종족을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건 그렇습니다. 약한 부대에는 제국민과 별 신체적 차이가 없는 놈들도 끌려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런 거야. 그래서 점점 국경방위군에서 징병하는 수를 줄이고 있는데, 피가 충분히 희석됐다고 느끼면 아예 징병이 중단될 수도 있는 거고…. 뭐, 높으신 분들 생각은 나도 알 수 없지만 말이야~!”

나는 뭐라 반응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생각했다. 방금 들은 말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머릿속에서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잠깐, 잠깐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이상한 점은 많았다.

국경 너머에서 마물들은 갑자기 생겨나고는 했다. 원래 아르콘들이 국경 너머에 살 때는 기록된 적 없는 현상이라고 했고.

이 계약 마법에도 뭔가 대가가 있을 텐데, 지금까지 우리는 그걸 모르고 있기도 했고.

게다가 무엇보다도….

“계약 마법은 매년 스페시픽한 넘버의 이종족을 각성시키는 스트럭처이기 때문에, 이제는 제국민의 블러드가 더 많이 믹스된 사람들까지 국경방위군에 끌려가고 있답니다~.”

“너희도 황제에게 이용당하는 주제에 왜 황제를 돕는 거지?!”

우리가 체포한 흑마술사가 했던 말들.

놀랍게도 그 흑마술사들은 상당히 정직한 놈들이었고,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XX….”

지금까지 황실의 농간으로 이용당해 죽은 수많은 아르콘들을 생각하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국경방위군에서 얼마나 많은 죽음을 봐왔던가. 얼마나 많은 자들이 허무한 싸움을 하다 기억되지 못하는 죽음을 맞는 걸 목격해 왔던가.

제 꿈을 펴지도 못하고 얼마나 많은 젊은 아르콘들이 죽었던가.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수준의 감정이었다. 이 폭발적인 감정을 도무지 다스릴 수가 없었다.

‘해결해야 해.’

에이프릴의 말대로 현재의 체계는 자연스러운 체계가 아니었다. 황실이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만들어진 기이한 체계이다.

“이 XX XX….”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욕을 읊조렸다….

바사삭-!

…바사삭? 이상하다, 이런 소리가 왜 들리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떨리는 동공으로 내가 방금 밟은 것을 확인해 보았고.

‘어떤 XX야?’

대체 어떤 정신 나간 XX이 먹었는지 알 수 없는 비스킷 쪼가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 문제는 단순히 내가 이 비스킷을 밟은 것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비스킷이 부서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컸기에….

“잠깐, 방금 밖에서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나?”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중대장실 안에 있을 그들도 이 소리를 들어 버린 것이다!

내가 저 내용을 엿들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내 미래는 뻔했다. 어딘가로 끌려가서 흔적도 없이 마물의 밥이 되어 버리겠지.

마침내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깨달았다.

‘X됐다.’

이 와중에도 부사관이 중대장실 문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그가 밖을 나와 내 모습을 발견하기 전에.

타다닥-!

“어어, 누구야?!”

“빨리 잡아!”

나는 미친 듯이 복도를 달려, 그가 밖으로 빠져나오기 전에 얼른 모퉁이를 꺾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X됐다. 제대로 X됐다!’

아무래도 무사히 전역하기는 글러 먹은 것 같았다!

복도를 마구 달리다가, 어느 시점부터 나는 증거 인멸을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군화를 벗어 양손에 쥔 뒤, 양말만 신은 채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를 듣고 추적하지 않도록 소리를 죽이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자 숙소로 들어왔고.

‘혹시 군화 바닥 무늬로 추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창문 모서리에 군화 바닥을 열심히 문대 무늬가 변하도록 했다. 물론 사이즈로 추적하는 방법도 남아 있겠지만, 이 부대에 나와 같은 사이즈를 신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왜냐하면 보급품이 열악해서 사이즈가 얼마 없었으니까…. 나는 내 발에 비해 몹시 큰 군화를 신어야 했던 것이다.

하여튼, 모든 흔적을 지웠다고 판단한 후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에 빠져들었고.

그다음 날부터 내 대환장 생존 쇼는 시작되었다.

* * *

해가 밝자마자 중대장은 부대원들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어젯밤에 자리를 이탈한 자 있나?”

XX, 역시 기밀을 엿들은 자를 찾아내서 죽여 버리려는 게 분명했다.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자느라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러나 부대원들에게서 쓸 만한 대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당연하지, 어젯밤에 자리를 비운 건 나니까….

훈련 때문에 늘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곯아떨어지는 부대원들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자, 중대장은 지휘사관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지휘사관들은 모두 숙소를 나간 적이 없었나?”

“없습니다.”

그는 우리와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진짜인지 확인해 보려 하는 것 같았다. 내 옆에 있던 레드에게 다시 한번 정말이냐고 물은 그가 그다음으로 내게 시선을 고정했고….

“아시겠지만 저는 몸을 잘 안 움직여서 말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중대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 그간의 내 행적을 떠올리는 듯했다.

정확히는 남들이 훈련을 할 때 혼자 짱박혀서 농땡이를 부리는 내 모습과, 그 옆에서 함께 농땡이를 부리던 자기 자신을 떠올리는 표정이었다.

“자네는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앗, 중대장님? 그 지금 국경 보수 공사를 하는 것 같길래….”

“그런데 자네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여기가 참 아늑하고 좋습니다.”

“오, 좋은 정보 고맙군. 대대장님을 피해 있기 좋은 곳이야.”

회상을 마친 그는 이런 내가 한밤중에 싸돌아다닐 리가 없다고 생각한 듯, 다행히 나를 지나쳐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결국 그 방법으로 그는 범인을 검출하지 못했고, 대신 복도에 찍혀 있던 군화 발자국의 사이즈를 비교해 보려는 듯했다.

그렇지만….

“왜 다들 사이즈가 같은 거지?”

각자 가져온 군화를 차례로 발자국 옆에 대 보며 중대장이 썩은 얼굴을 했다.

“그건 보급품이 워낙 열악해서, 다들 자신의 발 크기에 안 맞는 군화를 그냥 신어서 그렇습니다….”

“제길! 대체 이곳은 제대로 돌아가는 게 뭐야!”

늘 욕해 왔던 국경방위군식 일 처리였지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결국 중대장은 신발 크기로도 범인을 잡아낼 수는 없었고….

“에잇, 맞는 무늬가 하나도 없잖아!”

각자의 밑창이 닳은 모양을 통해 신발의 주인을 유추해 보려 했으나, 그것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제 열심히 밑창을 문댔으니까.

온갖 방법을 썼는데도 범인을 찾아내지 못한 그가 씩씩거리며 우리들을 노려봤다.

“분명 범인은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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