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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47화 (165/233)

이제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으니 바로 목걸이를 사용해도 되겠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남아 있었다.

‘지금 바로 나가면 2황자군을 잡게 돼.’

2황자군은 현재의 황실에게 대적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장기말들 중 하나였다. 물론 그들도 한때 아돌브 황실의 구성원이었므로 그들을 완전히 지지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용은 할 수 있겠지.

그러므로 나는 2황자군을 잡지 않고, 여기서 시간을 끌며 그들을 멀리 보낼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쪽에 붙은 흑마술사의 수가 얼마나 되지?”

그 말에 흑마술사는 대답하기 싫은 듯 인상을 찌푸렸으나, 약물을 먹은 데다 어차피 곧 죽을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듯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제국에 숨어 있던 흑마술사 중 대부분이 그쪽에 붙었지. 이미 현 황실은 우리를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2황자도 죽어서 황위 계승도 불가능할 텐데, 어떻게 우위를 점하려는 거지?”

“2황자가 없더라도 그를 지지하다 실패한 귀족들 중 충분히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자들이 많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신이 점점 흐릿해지는 듯 그의 말투가 점차 불명확해졌다.

“2황자는 황실의 핏줄을 타고난 자이니… 그의 시신을 훼손할 수는 없었지…. 그는 독을 먹고 죽었고,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몇 가지 조건만 달성된다면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흑마술을 이용할 수 있어…. 아주 까다로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지.”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긴 했다. 아니, 그런 흑마술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든 그 흑마술을 쓰려고 안달이 나지 않았겠는가?

“그래…, 필요한 재료가 몹시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실행된 역사가 거의 없는 흑마술이지만 말이지….”

흑마술사가 흩어지는 목소리로 설명을 끝냈다.

흥미로운 내용이긴 했으나 나에게는 그렇게 간절하게 살려내고자 하는 사람도 없었고, 뭔지 모를 그 재료를 구하느라 뺑이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으므로 나는 그 마법에는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아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내 몸을 보면서 흑마술은 정말 함부로 쓸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뭐, 이제 모든 정보는 캐낸 건가?”

내가 카론과 베니에게 됐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던 그때,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거기 지금 뭐 하는 건가!”

우리를 발견한 간부들 중 한 명이 그렇게 외친 것이었다.

빨리 카론의 목걸이가 정말 작동하는지 시도해 봐야 했다. 간부들이 돌아오기 전에 해 봐야 할 것 같았기에 우리는 다급해졌다.

“카론, 한번 목걸이를 꺼내 봐!”

“예!”

카론은 내 말에 목걸이를 꺼내 들고 흑마술사 쪽으로 내밀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그럼 그 안에 담긴 흑마술의 마력은 대체 어디에 이용하는 거야?”

내가 혼란에 빠져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흑마술사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우리를 살핀 흑마술사의 눈이 급격히 분노로 물들었다.

“너희가 나를 농락해?!”

우리가 장교가 아니라 일개 병사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리고선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분개한 듯했다.

공격적인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바로 그 순간, 카론의 손에 들려 있던 목걸이가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빛은 마치 하늘을 공격하듯이 치솟아 올라가, 점점 밝게 빛나며 하늘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하늘이 땅으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뭐, 뭐야? 이건…!”

그와 동시에 환한 빛이 공간 전체를 메웠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사루비아 님!”

양쪽에서 후임들이 소리쳐 불렀다. 나는 얼른 베니와 카론의 손을 꼭 잡고 빛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우리는 아공간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깨진 거야?”

분명히 우리가 처음 대기하고 있던 풀숲이었다! 역시 내 감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뭐야, 이게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박당해 있던 흑마술사는 허망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직 좀 얼떨떨했지만 나는 일단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사랑의 힘이다, 이 XX야.”

이게 바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베풀고자 했던 사랑의 힘!

역시 사랑의 힘을 모르는 XX들은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 * *

잠시 후, 우리는 간부들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진 건지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콜록, 콜록!”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나는 먼저 자리를 떠나야 했지만.

“사루비아 님, 저한테 맡기고 치료받으러 떠나십시오. 이제부터 제이든 중장의 딸, 저 베니가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쓰, 쓰리스타의 딸!”

베니가 말하는 모양을 보면 그녀는 간부들에게 설명하는 데 성공할 예정이었다….

하여튼, 나는 자리를 빠져나와 의무관을 찾아 떠났다.

우리가 아공간에 갇혀 있던 시간 동안 2황자군은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거리를 벌렸다. 추적의 의미가 없었기에 우리는 일단 각자의 부대로 돌아가기로 했고, 나는 그 전에 의무관으로부터 처치를 받을 예정이었다. 부대 연합 훈련을 위해 따라왔던 의무관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자, 속은 괜찮으십니까?”

“아니오.”

“그럼 소화제를 드리겠습니다.”

“…그 속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국경방위군의 의무관은 X도 도움이 안 되지만.

“속이 안 괜찮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장기가 안 괜찮습니다!”

“그럼 소화제를….”

“소화가 아니라 피가 역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혈제를 삼켜 보시겠습니까?”

“…그냥 자연 치유하겠습니다.”

이 미친 XX들에게 뭔가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결국 내가 그들의 도움을 받는 걸 포기하고 바닥에 덩그러니 앉아 있을 때, 이쪽으로 다가오는 아퀼라의 모습이 보였다.

“아퀼라아아….”

“…어디 다쳤어?”

피가 묻어 있는 내 옷을 본 아퀼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이제 그에게서는 살벌한 기운까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디 다치셨습니까?”

그러나 의무관이 끼어들었기 때문에, 아퀼라는 잠시 침묵하다가 퉁명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머리… 머리가 아파서 말입니다.”

“그럼 머리에 붕대를 감아 드리겠습니다.”

“…외상이 아니라 내상입니다.”

“그럼 코를 통해 흡입할 수 있는 연고를 드리겠습니다.”

“…자연 치유하겠습니다.”

아퀼라는 국경방위군 식의 멍청한 진료 과정을 거쳐 내 옆자리에 앉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명목상으로는 부상자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에게 터치하지 않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빨리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게 좋지 않겠어?”

“여기서?”

“…….”

의무관들이 답이 없다는 건 인정하는지, 아퀼라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곧 나아질 거야. 흑마술의 영향 때문이었던 거여서.”

그리고 이 세계의 아르콘의 신체는 아주 튼튼했다. 뛰어난 신체 능력만큼 회복력도 좋았다. 이전에 드래곤 사건 때 다리에 입은 화상도 흉터 하나 없이 싹 나았지.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아퀼라는 나를 위로해 주려는 듯 내 손을 꼭 붙잡을 뿐이었다. 그의 온기가 느껴지면서, 나는 조금 전까지 지끈거렸던 두통이 나아지는 걸 느꼈다.

“…아퀼라.”

“응.”

“아까 네 생각을 했어.”

그래서 나는 그 온기 속에서 아퀼라에 대한 내 생각을 털어놓기로 했다.

아까 흑마술사가 나에게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을 때.

우습게도 나는 바로 그 순간 사랑이 뭔지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고민해 오던 그 문제를 이런 상황 속에서 해결한 것이다.

“아퀼라 네가 내 옆에 있으면, 그곳이 내 세계야.”

아퀼라는 언제나 내 옆에 있겠다고 약속했고, 그래서 이곳이 내 세계가 되었다. 만약 아퀼라가 다른 세계에 있다면, 나는 그곳으로 그를 따라갈 것이고 그래서 그곳이 내 세계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내 마음속 울림을 차분히 살펴보며 나는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았다.

이게 사랑이구나. 나는 얘를 사랑하고 있구나.

“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에 아퀼라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빤히 보더니, 입꼬리를 올리고 부드럽게 눈까지 휘며 웃었다.

내가 그에게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따뜻한 웃음이었다.

“나도 그래.”

그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네가 나의 세계야, 사루비아.”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옛날에는 이 세계가 싫다고 그토록 이 세계의 욕을 했고, 내 세계를 그리워했는데.

언제 그런 감정을 느꼈냐는 듯 지금 나는 행복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구름 위를 비행하고 있었는데, 앞으로도 추락할 것 같지가 않았다. 늘 이 하늘 위를 떠다닐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설사 내가 추락하더라도, 나는 추락하는 내 곁에 아퀼라가 있을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다.

* * *

“곧 돌아간다. 준비하도록.”

“예!”

중대장의 말에 대답하며, 루나는 사루비아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임무를 마치고, 그들은 원래 있던 부대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모두가 낡고 지친 얼굴이었지만, 대대장이 부대에 돌아간 뒤에는 모두에게 경계 근무와 마물 토벌 휴가를 약속해 줬기 때문에 루나는 그것만을 바라며 기운을 내고 있었다.

다만 부대원들 사이에서 혼자 웃는 얼굴을 한 사루비아는 공포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보통 사루비아가 웃고 있으면 그건 정말로 기분 좋은 게 아니라 화를 참는 경우였기 때문에, 루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 떠보기 위해 사루비아에게 말을 붙였다.

“사루비아 님, 뭐 좋은 일 있으십니까?”

“아냐, 그냥 뭐~. 그런데 루나, 오늘따라 네 금발 좀 예쁘다?”

“헉…!”

루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늘 자신의 금발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사루비아가 저렇게 말하다니, 뭔가 잘못되었다!

“애쉬, 지금 보니까 네 이름도 제법 멋진데?”

“…드디어 미치셨나 봐.”

요즘 자신의 선임이 사랑이란 걸 시작한 뒤로 좀 미친 것 같긴 했는데, 지금은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었다.

루나는 다른 후임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지금의 사루비아는 극도로 기분이 좋아 보였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도 허허실실 웃으며 넘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들이 저질러 놓고 은폐한 잘못을 고백할 기회는 바로 지금이었다.

루나의 눈빛에, 훈련병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루비아 님, 사실 저번에 화분을 깨뜨려서 중대장님이 저희 부대를 털었던 거 말입니다. 사실 그거 범인이 저입니다.”

“뭐라고 이 XX야?!”

“예? 아니….”

“돌아가면 너를 죽여 버리겠어, XX!”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루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기분이 아무리 좋아도 저런 건 그대로구나….’

사루비아가 유해지기를 기대한 자신이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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